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이재웅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9.9







 성장문학의 불문율 중 하나로 애늙은이 같은 주인공을 들 수 있겠다. 그들은 어른 못지 않은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행동에 제약이 따른다. 다시 말하지만 성장문학이라고 하면 꼭 공유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만날 때마다 질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만날 때마다 경이롭고 다른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처절하다. 유독 이 작품이 그랬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내가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걸 보고 변태 같은 소설임을 상정하고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꼭 있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데, 한 번이라도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보긴 했는지 진지하게 따지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쏘아붙이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정도다. 절대적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소설도 정말 일본 못지않게 변태 같다는 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특히 성姓을 묘사함에 있어서는 그 농도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일본 소설은 차라리 해맑기라도 하지.


 상투적이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는 얘기부터 꺼내겠다. 처음엔 가난한 소년이 나오길래 수없이 답습한 비극의 일종이겠니 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가 주인공을 거두어들이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난은 우리나라 소설에서 안 다뤄지는 게 더 이상한 낯익은 소재긴 하지만 다루는 방식에 따라 와 닿거나 지루하게만 여겨질 수 있는 법이다. 이 소설에선 1억의 빚을 진 주인공의 누나가 포주인 남자 밑에서 어떤 식으로 빚을 갚는지, 그리고 주인공은 그런 누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묘사하는데 아이의 눈을 거쳤음에도 잔혹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작품 속 문체가 투박한 게 상당히 독특했다. 흡사 번역 소설인 듯 주어 동사 목적어를 꼬박꼬박 넣어서 나열되는 등장인물들 대사가 어색하면서도 제법 느낌 있었다. 글쎄, 뭐라 말은 못하겠는데 이 문장이 가식은 개나 준 작품에 미치도록 잘 어울리긴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난한 적이, 더욱이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가난했던 경험이 없는데 나와 같은 모든 사람들은 이 작품의 이야기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말이 궁금해서 고통스럽지만 읽어나가야만 했다. 페이지가 줄어들어도 끝없이 고통스럽고 어두컴컴해서 불안한 와중에도 말이다. 날 것 그대로의 정경을 머리에 피도 마르기 전에 깨우쳐서 조금도 아이답지 않은 서술이 내 불안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위에 애늙은이 주인공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얘는 처음에 스스로 밝힌 것처럼 '늙은 소년'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단순하면서도 모순된 단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꿈도 뭣도 없이 너나 할 것 없는 비정한 현실 속에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섥혔을 뿐이다. 하나같이 동정이 가고 하나같이 한숨이 나오는 행색들이다. 빚을 진 누나나 그 누나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포주나 누나를 사랑하고 만 공원이나 포르노 만화를 그리기 싫어 콜택시 기사로 연명하는 아저씨나 자신을 늙은 소년이라고 부르며 지나치게 냉랭한 주인공... 말할 필요도 없다. 실은 전부 외면하고 싶지만 이 작품은 그걸 허용하지 못하게끔 그들의 삶에 관여하게 만들어버린다. 제3자가 뭐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무력감, 마치 주인공이 겪는 것처럼.


 모르고 지나쳤더라면 정말 후회했을 작품이다. 물론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지만, 말이 안 되는 표현을 써가면서 이제서야 읽은 나 자신을 꾸짖고 싶다. 불쾌한 작품이었지만 몰라선 안 될 불쾌함이기 때문이다.

너는 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증오하니까요.

그건 사탄의 마음이야.

맞아요. 사탄의 마음이에요. 나는 사탄이 좋아요. 사탄은 맨날 지고, 욕만 먹고, 쫓겨 다니기만 하잖아요. 선생님은 맨날 천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천사는 가난하지도 않고, 더러운 옷도 입지 않고, 저 하늘 위에서 웃을 일밖에 없는데 왜 제가 천사를 좋아해야 하죠?

(중략)그때, 나는 내 머리를 온통 지배했던 막연했던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증오였다. -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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