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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9.2
JTBC 대선 후보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문재인 후보에게는 적잖은 치명타였을 텐데 - 내가 그의 보좌관이었더라면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 이 논란에 대해 나중에 심상정 후보라도 정리를 해줘서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성 정체성은 정체성일 뿐, 개인에게 있어 호와 불호가 있을 순 있지만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되지 못하며 차별 또한 있을 수 없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소설집을 읽고나서 시청한 토론이었기에 이 논란이 유독 충격적이었다.
소설가 메리언 데인 바우어가 편집한 <앰 아이 블루?>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성장 문학이 수록된 엔솔로지다. 이 책이 출간된 해를 보니 자그마치 20년도 더 전이던데 이게 오늘날까지 읽힐 만큼 아직도 동성애 차별 문제가 있다는 게 씁쓸했다. 아주 얄궂은 말이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분명 '시대를 관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참여한 작가가 꽤 되는데 작품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이었다. 게이가 게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게이더망'부터 커밍아웃을 하기에 앞서 오가는 좌절과 용기, 연인에서 친구 사이가 된 이성 친구나 사랑의 도피 등 다양하게 풀어냈다. 개인적으로는 게이와 레즈비언 같은 동성애자에 국한하고 다른 성소수자에 대한 얘기가 없었던 건 아쉬웠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남들과는 곱절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때론 가족들에게마저도 멸시를 당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교훈적이었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표제작인 '앰 아이 블루?'와 최근에 <헬프>와 동일 선상의 감상을 남긴 '어쩌면 우리는', 그리고 편집자의 작품인 '거꾸로 추는 춤'을 꼽는다. '앰 아이 블루?'는 고백을 함에 있어 신중해야 하는 동성애자의 애환을 달랜 유쾌한 작품으로 동성애자가 파란색으로 보이는 게이더망을 얻게 되면서 따라오는 깨달음과 해피엔딩이 쾌감을 선사해준다.
'어쩌면 우리는'은 최근 읽은 <헬프>가 떠올랐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차별이란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며 괜히 심각해졌는데 이 작품은 개방 또한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유대인 할머니가 손녀의 커밍아웃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 추는 춤'은 동성애 문제에서 빠지지 않고 개입되는 종교를 배경으로 둔다. 종교적 장소인 수녀원에서 너무나 비인도적으로 두 동성애자 소녀를 추방한 내용은 일종의 추잡함마저 느끼진다. 당장 명동을 거닐면 동성애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피켓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와 비슷한 역겨움을 풍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소녀가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사랑이 시작됐음을 암시하니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제목도 신의 한 수였다. 거꾸로 추는 춤은 우스꽝스럽다. 관객의 시선이나 박수를 중요시한다면 거꾸로 추지 못하겠지만 그것들이 딱히 중요하지 않다면 즐겁게 추면 그만이다. 허를 찌르는, 곱씹을수록 좋은 제목이다.
지금까지 읽은 엔솔로지 중 가장 진실되며 재밌었다. 비슷한 주제의 책이 또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동성애자 청소년의 희로애락에는 범접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아주 얄궂게도 말이다.
게이를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단지 모른다고 착각할 뿐이지. - 26p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은 인종도 성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 - 57p
하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용기만 낸다면 얼마든지 따라 들어갈 수 있도록. - 138p
난 남들이 잘못 넘겨짚게 내버려두는 사람들을 혐오한다네. - 228p
관객의 시선이나 박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중요한 건 춤입니다. - 2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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