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7.8






 제목이나 표지를 보니 작풍이 어렴풋이 연상됐는데 막상 다른 풍경이 펼쳐져서 얼떨떨했던 작품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게 바로 작가의 노림수였는지 모르겠다. 표지는 둘째 치고 - 저게 원서의 표지이기도 하다는데 일본인들 책 표지 꾸미는 센스는 늘 느끼지만 정말 이상하다. - 폐쇄병동, 정신병동을 떠올리노라면 밝은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정신병동을 무대로 한 작품은 종종 접하지만 밝은 이미지만큼이나 어두운 이미지도 유감없이 그려서 인식 자체에는 그다지 변함이 없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현직 정신과 의사 작가의 작품이라니 흥미로워 보였지만 뭐 어차피 비슷비슷한 작품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신파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했거나 통원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등장하는데 환자치곤 너무 멀쩡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너무 환자 같지 않아서 섣불리 몰입이 안 될 정도였는데 이게 우리의 편향된 인식을 꼬집기 위한 설정이었다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작중의 환자들은 환자 같지 않은 몰골을 하고 있다. 간질이나 당뇨와 마찬가지로 간헐적으로 터지는 증상이지만 그게 '정신적인' 증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면 색안경을 끼게 되는 세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또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들 간의 드라마로 하여금 일종의 반성마저 들게 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뿐이라면 우리가 색안경을 껴도 정말 두껍게 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는 그렇게 몰입도가 높지 않았다고 본다. 일부분은 신파적이고 일부분은 또 상투적이지 않았나 싶다. 여러 캐릭터의 군상이 긴밀하게 연결됐다기 보단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할 때 적당히 나열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전개가 살짝 느닷없거나 빨라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더욱이 작가가 정신과 의사라서 쓸 수 있는 작품이란 느낌도 그리 강하게 들지 않았다. 이른바 현장감이랄지, 전문적인 부분에서 해당 직업의 종사자이기에 묘사함에 있어 수월했던 부분이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유달리 통찰력이 발휘되거나 돋보이는 전개가 미미했던 게 살짝 아쉬웠다.


 기대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소설이 겹쳐 보였는지 몰라도 약간 과대평가 받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따뜻한 시선이라든가 주제의식은 괜찮았지만 '읽다가 눈물로 적셔질' 만큼 감동적이었다는 평엔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뭉클한 나머지 여운에 젖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는 정도가 이 작품에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성의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 167p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 3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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