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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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오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오락이 필요했던 거겠지. 신년 들어 산 첫 번째 책(어제 샀다)을 바로 다 읽어 버렸다. 요즘 머리 아픈 책들을 만나서 신년에는 왠지 산뜻하고 재밌고 뭐 그런 책이 읽고 싶었다. 그럴 만한 책으로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책만한 게 있을까 싶었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동안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을 찾아 읽곤 했었는데 그것도 정말 한참 전의 이야기가 되었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부러 신간들을 찾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냥 아무 때고 읽고 싶어졌을 때 읽으면 되는 게 아닐까. 신간이랍시고 사들였는데, 읽지 않아서 구간이 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중고서점에서 읽지 않은 책을 만나게 되면 속이 다 쓰리다.

 

새해부터 샛길로 샜다. 책 이야기에 집중해 보자. <무코다 이발소>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전쟁이 나던 해에 만들어진 무코다 이발소의 두 번째 주인장 무코다 야스히코 아저씨다. 대처에 나가 살던 아저씨는 이발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디스크로 더 이상을 일을 못하시게 되자, 가업을 잇고자 귀향했다고 한다. 무코다 이발소가 위치한 도마자와 면은 홋카이도에 있는데, 한 때 탄광 산업을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탄광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그저 그런 시골의 과소지 마을이 되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인근 삿포로나 대도시 도쿄로 나가 자신의 꿈을 좇게 되었던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진출하면서 공동화된 시골 풍경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런데 야스히코 씨는 삿포로에서 학교를 나오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실은 실패해서 낙향한 것이다. 다행히 대학시절부터 자신과 연애해오던 교코 씨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점이 하나의 수확이라고나 할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처럼 시골에서만 살다 보면 혼기를 놓쳐 중국에까지 가서 신부를 맞이해야 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오쿧 히데오 작가는 시골 마을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라고 내내 당부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장 야스히코 씨부터 도시에서 지내다가 가업을 잇겠다고 돌아온 아들 가즈마사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 않은가 말이다. 부모라면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그나마 도마자와가 흥하는 고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손님도 거의 들지 않는 조합 소속의 이발소라 가격마저도 일률적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그런데 말입니다, 야스히코 씨의 이야기 속을 거닐다 보면 뭐 그래도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 몰라라할 수밖에 없는 삭막한 도회의 삶보다는 프라이버시가 좀 없긴 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동정하는 이들이 사는 그런 곳이 사람 냄새가 나고 뭐 그래서 더 좋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고 싶은 심정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의 관심은 좀 꺼주세요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충돌하고 있더라 뭐 그런 거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서 다 큰 어른들이 사나에 씨네 조그만 술집에 모여 묘한 긴장감을 즐기는 장면도 그렇지만, 이웃 어르신이 뇌졸중 증세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자 그야말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돕겠다는 장면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진부하긴 하지만, 왜 슬픔이나 괴로움을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을에 사는 것도 하나의 행복이 아닐까. 물론 우리의 주인공 야스히코 씨는 그런 단면만 보고서 시골 마을에서 사는 불편함을 아는 척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호통을 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큰 일이 없는 마을이다 보니 저예산 영화이긴 하지만 마을을 무대로 해서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에겐 같이 공유할 만한 그런 오락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책읽기 같은 건전한 프로그램은 안되는 걸까. 마을에 있던 도서관도 이용자가 없어서 폐관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같은 책쟁이들이라면 도서관에 읽을 만한 책만 많이 비치되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영화 촬영과 관계해서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려는 사람들에 대해 야스히코 씨는 냉정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서로 양보하고 지내면 좋으련만, 하나라도 더 챙기려다 보니 그런 소소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합십해서 찍은 영화의 내용이 연쇄살인을 다룬 예술영화였다는 사실에 마을 주민들은 분노하지 않았던가. 더 재밌는 건, 나중에 그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상을 받으면서 재평가를 받게 되자 영화의 진가를 몰라 봤던 자신들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죽음이라던가 재정이 파탄에 달한 마을 부흥이라는 쉽지 않아 보이는 주제들을 오쿠다 히데오 작가는 특유의 유머를 섞어 가며 즐거운 이야기들로 만들어낸다. 내가 이래서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가 말이다. 새해를 시작하기에 이렇게 읽기에 부담 없으면서도 재밌는 <무코다 이발소>만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달랑 6개의 에피소드 밖에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도마자와라는 멋진 공간과 흥미로운 캐릭터가 이렇게 잡혔는데, 한 편으로 끝내는 게 아쉽지 않나. 후속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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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8-01-04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드매냐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며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18-01-05 16: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