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서점에 가서 한 장이라도 들춰 보지 않고서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소설집 이야기다. 특히나 우리 Cyrus님이 언급한 <노찬성과 에반>은 말이다. 바깥은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데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대형서점은 별천지였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일단 서가에서 책을 집어다 읽기 시작했다. 모두 7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이다. 아직까지 난 김애란 작가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다.

 


노찬성, 올해 나이 열 살 먹은 소년이다. 2년 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죽어야 이생의 고통이 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이 단편에서 내가 주목한 키워드는 소외다. 가난에서 비롯된 소외 중에 하나는 찬성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한 사실을 겨냥한다.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 찬성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보험금 소송조차 기각이 된 상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버지가 당시 골육종을 앓고 계셔서였다고 했던가. 같은 증세로 병역면제된 사실 때문에 한동안 실검 수위를 장식했던 배우 생각이 났다. 솔직히 말해서 골육종이라는 낯선 단어로는 그 병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알 도리가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내가 게으르다는 방증이겠지.

 

같이 놀 친구조차 없는 소년에게 어느날 친구가 하나 생긴다. 할머니가 일하시는 휴게소에 버려진 개, 소년들이 열광하는 터닝메커드에 등장하는 캐릭 이름을 따서 에반이라고 찬성이는 노견을 명명한다. 경제적 궁핍에 쪼달리는 할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에 개를 집에 들일 여유가 없다면서 찬성이를 구박한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어디에서고 해피엔딩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소년은 덜컥 자신이 에반을 책임지겠다는 선언을 던진다. 소년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를 과연 알고서 자신있게 내던졌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았으리라. 이미 소년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리에서 커피를 파시던 할머니를 통해 깨닫지 않았던가.

 

다음 수순은 소년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다. 찬성이와 에반은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이다. 에반이 어느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자, 꼬불쳐 두었던 돈을 가지고 동물병원을 찾고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수의사로부터 전해 듣게 된다. 우리 에반이 암에 걸렸다고. 아버지랑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가 되는가. 수술을 받는 것도, 안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죽음이 코 앞에 닥친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인간의 숙명이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찬성이의 선택은 안락사다. 그런데 죽음에도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찬성이는 바로 깨닫게 된다. 안락사 비용 10만원을 벌기 위해 찬성이는 수천장의 전단지 알바에 나선다. 열 살 짜리 꼬마의 어깨에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그림자의 무게가 어찌나 그렇게 무거워 보이는지 모른다.

 

마침내 목표액 10만원 모으기에 성공한 찬성은 잠시 동안 성취감에 달뜬다. 그런 성취감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건, 할머니가 얻어다 주신 중고 스마트폰이라는 첨단기기다. 자본주의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현대판 물신주의는 이렇게 순수한 소년의 영혼을 잠식한다. 그동안 또래 커뮤니티에서 소외되었던 소년은 마침내 그네들의 리그에 입성하기 위한 장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의 곁에서 에반이 죽어가는 동안, 소년은 자기 나름의 비상을 준비한다. 휴대전화 사용을 위한 제등록비, 액정을 보호하기 위한 필름 그리고 멋진 케이스를 차례로 소비하면서 에반의 죽음을 위해 애써 마련한 둑을 허물어 낸 것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에서 죽음에 대한 동경, 물신주의가 만연한 소비천국 같이 다양한 주제들이 변주와 반복을 거치며 독자의 마음을 휘젓는 동안, 에반은 스스로 죽음에 뛰어든다. 마치 찬성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사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건조하면서 냉정하다. 세상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개개인의 삶이 가진 다양한 방식의 나열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을 온통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미 우리에게 계몽은 지난 9년 동안의 엉터리 시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가.

 

결국 책은 사지 않았다. 앞으로 매일 같이 서점에 가서 한 편씩 읽을 계획이다.

독서에서 소비란 사는 게 아니라 읽는 게 아닐까. 보통 책을 사서 읽는 걸 더 선호하지만 이번에는 순수하게 소비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이 방식으로 한 번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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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0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0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딩 때 집에 반려견과 함께 살았어요. 그때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반려견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17-07-20 18:28   좋아요 0 | URL
Cyrus 님 덕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날로그 사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디지털 사진을
인화해서 사진첩에 담아야 하는 걸까요 과연.
근데 너무 귀찮아요. 예전 같은 애정이 안생
기더라는.

김애란 작가 글이 좋긴 좋군요.
버뜨, 구매는 좀 더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될까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