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도 넘게 불화하던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게 벌써 3년 전이었던가. 1959년 1월 1일, 훌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피델 카스트로는 인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새로운 독재자가 되어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대중에게 설파했지만, 이웃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로 카스트로와 그의 혁명 동지들의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쿠바 섬에 상륙한 이래, 식민지배의 사슬은 끊어 버렸을 진 몰라도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꿈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으로 미국과 국교정상화가 되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는 국교정상화 이전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시 한 번 카리브해에 어떤 종류의 허리케인이 불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다.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남북 라틴아메리카를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 때 소련이 미사일을 배치해서 미국의 목을 겨누지 않았던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의 하나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일찍이 쿠바를 미합중국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퍼슨 뿐만 아니라 존 퀸시 애덤스와 뷰캐넌, 먼로를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쿠바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를 고대해 마지 않았다. 쿠바섬에 평화롭게 살던 인디오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식민화한 스페인 제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미국은 짭짤한 수익을 냈다. 필리핀 제도와 괌 그리고 쿠바를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플래트 수정안이라는 해괴한 법안으로 지금도 말썽이 되고 있는 관타나모 기지를 비롯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쿠바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합법적 장치들을 만들어냈다.

 

미국은 자신들의 도움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었던 쿠바에 개입해서, 대의민주주의를 이식한다는 명분 아래 부정부패를 일삼는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매판자본전략을 활용해서 쿠바의 모든 것이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게끔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40년 뒤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칠레의 구리 가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것처럼, 쿠바의 유일한 생산품인 사탕수수 재배를 통해 만든 설탕산업을 비롯한 쿠바의 모든 산업을 미국 자본에 종속시켜 버렸다. 다시 말해 기존의 지배자가 가톨릭 십자가를 앞세운 제국주의 스페인이었다면, 이번에는 자본주의 미국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지배자는 군바리이자 깡패두목에 가까운 바티스타를 대리인으로 삼아 기존의 불평등한 플래트 수정안을 폐기하고, 외국의 이익을 통제하며, 교육 제도 등을 개혁하려고 했던 안토니오 기테라스의 기도를 무산시키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를 암살시키는 방식으로 자국의 쿠바에서의 우월한 기득권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아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이전에 걸출한 혁명가 호세 마르티가 있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어제 읽은 <체 게바라>의 상당 부분도 쿠바혁명에 할애되었었는데, <쿠바혁명과 카스트로>에서는 대놓고 쿠바 혁명의 연원과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피델 카스트로를 주연으로 삼아 리우스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카스트로는 망명지 멕시코에서 운명의 동지 체 게바라를 만나 참단한 실패를 경험삼아 새로운 조직과 혁명 대의 그리고 치열한 군사훈련을 통해 쿠바에 상륙해서 역사에 기록된 게릴라 전투의 신화를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어쩌면 쿠바야말로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 그룹은 우선적으로 토지개혁으로부터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전문적인 경제관료나 국가운영을 해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게릴라 전사들은 상당한 시행착오도 경험했다고 한다. 수만 명을 희생시킨 독재정권에 기생했던 부역자 청산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독재자와 혁명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가톨릭교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좋지만, 공산주의는 싫다는 대중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혁명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카스트로는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CIA의 사주를 받는 반혁명그룹의 지속적인 공격과 부유층 부르주아 계급 사보타주로 쿠바는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폴란드 같은 사회주의 진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력사용도 마다하지 않았고, 케네디 행정부 시절 처참한 실패로 끝난 피그스만 침공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 때 포로로 잡힌 용병들 몸값으로 한 명당 한 대의 트럭을 요청해서 관철시켰다고 했던가. 용병 쿠바인들이 쿠바 경제발전에 유일하게 공헌한 일이었다고, 리우스는 그리고 있다.

 

점점 쿠바가 사회주의 진영으로 경도되는 움직임을 미국은 쿠바산 설탕의 수입을 중지하고, 자신의 동맹국들에게도 쿠바의 설탕을 구입하지 말 것으로 요청했다. 미국은 1970년대 아옌뎨의 칠레산 구리 판매처를 없애 버리기에 앞서, 카스트로의 쿠바산 설탕에 대한 경제적 제재라는 방식을 동원했던 것이다. 한편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카스트로 정권은 사회 다방면에 걸쳐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혁명 영웅 체 게바라를 공업부장관에 임명해서 경제 재건과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에 나섰지만,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해 왔던 상황에서 설비투자를 위한 자본도, 공장 운영을 위한 기술력도 없던 상황에서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련의 시기였다고 리우스는 적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연 재해에, 미국의 침공에 대비한 전쟁물자 비축도 허약한 쿠바 경제에 짐이 되었을 것이다. 다수의 미국 경제전문가들이 쿠바 경제의 몰락을 예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쿠바는 1969년까지 농지개혁을 필두로 해서 도시개혁, 교육제도와 의료제도의 개혁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무엇보다 높은 문맹율을 헌신적인 교사들의 노력으로 라틴아메리카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수많은 부르주아 의사들이 미국으로 탈출하면서 절대 의료전문가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훗날 베네수엘라를 비롯해서 라틴아메리카 각지로 의료진을 수출할 정도로 뛰어난 의료인들을 양성하는 기초를 세웠다.

 

물론 리우스 작가가 쿠바혁명에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종의 선전선동도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리우스 작가는 바티스타 정권에 부역한 반대파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망명함으로써 오히려 쿠바가 내정개혁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전개하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너무 좋게만 해석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쨌든 미국의 계속되는 경제봉쇄로 쿠바 경제가 입은 타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수퍼맨 미국을 상대로 반세기가 넘게 혁명정신을 고수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카스트로 독재에 대한 평가도 객관적으로 다루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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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9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찾는 헌책방에 라이트 C. 밀즈의 《양코배기야, 들어봐라!》라는 책이 있어요. 밀즈는 이 책에서 쿠바 혁명을 지지합니다. 레샥매냐님의 글을 읽으니까 밀즈의 책을 사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이 책을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 책의 주제가 유행이 지난 거라서 그런지 이 책을 고르는 사람이 없어요.

레삭매냐 2017-06-09 11:51   좋아요 0 | URL
모름지기 한 가지 사건에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한데, 그런 균형이 아쉽습니다.

<양코배기야, 들어봐라>도 재밌는 책 같아
보이네요. 저도 바로 램프의 요정 헌책방
에 있나 검색해 봤네요.

말씀 대로 유행타는 주제가 아니라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듯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