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 <오월>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리우스(에두아르도 델리오)라는 예명의 멕시코 출신 카투니스트가 그리고 쓴 <체 게바라>를 읽었다. 그동안 체 게바라의 일기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저작을 읽었는데, 그림과 사진, 도판 그리고 지도로 구성된 리우스의 <체 게바라>는 100쪽 남짓한 팜플렛 사이즈의 만화지만 내용 면에서는 다른 저작에 비해 뛰어난 컨텐츠를 자랑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세기 최고의 혁명가 중의 하나이자 “완전한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꼬만단떼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릴라 전사였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르헨티나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해서, 아르헨티나에서 의사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 모터사이클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누비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형성된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 그리고 착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성공과 안락이 보장된 평안한 길 대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게릴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평범한 의학도였던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된 게릴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1954년 합법적으로 선출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의 개혁 시도를 미국 CIA 주도 아래 폭격까지 동원한 폭력적 방법으로 무산시키는 과정을 보고 의식의 일대전환을 이루게 된다. 아르헨티나 대사관을 거쳐 멕시코로 도주한 체 게바라는 그곳에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론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본격적인 혁명전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물론 이듬해 이루어진 쿠바 출신 망명객 피델 카스트로와의 만남은 추후에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도화선이 될 예정이었다.

 

미국의 지원 아래 바티스타 독재정권 아래 신음하던 쿠바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한 일단의 쿠바 망명객들과 멕시코의 모처에서 철저하게 게릴라 훈련을 받은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는 그란마호라는 이름의 고물배에 실려 쿠바혁명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1956년 12월 2일 천신만고 끝에 쿠바 동부해안에 상륙한 카스트로 부대는 사전에 그들의 상륙계획을 알고 있던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의 게릴라 대원들이 전사하고 체포되는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5명의 게릴라 대원들은 험준한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배경으로 게릴라 작전을 시작하면서 쿠바혁명의 전설을 쓰게 된다.

 

25개월 동안의 고난에 찬 투쟁 끝에 결국 카스트로 부대는 더 버틸 수 없게 된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1959년 1월 1일 마침내 쿠바혁명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외부인 체 게바라에게 진짜 혁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가경제를 꾸려오오던 쿠바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상상이상으로 어려운 난제들의 연속이었다. 케네디 정부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무력침공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재정지원이 끊기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금수조치가 계속되면서 쿠바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체 게바라가 중앙은행 총재로서, 공업부 장관으로서 자발적인 노동을 강조하면서 솔선수범한다고 해서 산적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초짜 비경제전문가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은 수시로 마찰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쿠바인이 아닌 외국인 출신 게릴라 전사의 활약을 시기하는 세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쿠바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체 게바라는 다시 혁명전선에 나서게 된다. 타고난 게릴라 전사답게 전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에서 촘베의 용병들과 전투 중이었던 콩고를 필두로 해서(콩고에서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위대한 게릴라 전사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로 무대는 이동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수염까지 깎고 우루과이 출신 사업가로 변신해서 볼리비아에 잠입한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 5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볼리비아야말로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전초지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게바라의 볼리비아에서의 게릴라 활동은 참담한 실패였다. 쿠바에서의 전설적인 게릴라 활동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볼리비아에서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해야 할까. 우선 볼리비아에서는 바티스타 같은 절대악으로 규정할 만한 독재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혁명주의자였던 게바라를 볼리비아에서는 단순하게 잘난 아르헨티나 출신 게릴라 전사 정도로 판단했던 게 아닐까. 쿠바에서와는 달랐던 볼리비아 농민들의 비협조 혹은 밀고로 게바라가 계획했던 게릴라 활동은 극도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체 게바라의 명성을 확인한 미국 CIA가 파견한 미군 군사고문단과 그린베레의 활약은 지난 세기 최후의 완전한 인간의 체포와 처형으로 귀결됐다.

리우스 작가는 이 책에서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체 게바라의 삶을 다룬다. 아르헨티나 출신 청년이 어떻게 해서 혁명대의에 불타는 최고의 게릴라 전사로 거듭나게 되는지,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는 어떤 외압에도 시달리지 않는 탄탄한 국가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기존의 실패를 전범으로 삼아 개혁가로 활약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이상주의자 피델과 체에게 국가개조는 무력혁명 이상으로 어려운 과제였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오랜 불화 끝에 결국 화해에 나선 오늘날의 쿠바의 현실을 혁명가가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6-07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두아르도 델리오. 이름이 흔하게 느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라딘에 검색해봤어요. 레삭매냐님이 읽은 책이 알라딘에 나오지 않는군요. ‘라우스의 현대사상학교’ 나머지 시리즈가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17-06-07 16:51   좋아요 0 | URL
리우스라고 제가 좋아하는 멕시코 만화가
인데 원체 출간된 지가 오래 돼서 알라딘
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려 1988년에 나온 책이네요.
저도 아벨서점인가에서 2천원에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인 것 같습니다.

오월 출판사에서 나온 현대사상학교 시리즈
읽을 만합니다. 다만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죠.

제 블록을 뒤져 보니 무려 2008년에 산 책
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