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다시 읽고 싶은 명작 2
엔도 슈사쿠 지음, 김윤성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 금요일 추위를 피해 아무 것도 소비하지 않고, 잠시 조용하게 책을 보러 극장에 갔다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일런스>의 트레일러를 보게 됐다. 그리고 영화 <사일런스>가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곧바로 읽던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미 한 번 읽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읽었을 적에는 솔직하게 말해서 그 무거움 때문에 리뷰를 쓰지 못했다. 두 번째 도전에서 책에 대한 잔상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 본다.

 

17세기 도쿠가와 막부가 전국을 통일한 시절, 막부는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전파를 금한다.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기독교 사상이 사무라이가 신분제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개항장이었던 나가사키의 수령 이노우에 지쿠고노가미는 외래 종교가 일본에 무익하다고 판단하고, 해외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의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기존 신자들을 박해하기에 이른다. 특히 “후미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배교와 구덩이에 매다는 형벌로 배교를 강요하는 이노우에의 악명은 소설의 주인공 세바스티안 로드리고의 조국 포르투갈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다.

 

한 때 수십만 명의 신자를 자랑할 정도로 동방의 모범 선교지역이었던 일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게다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신념의 사나이였던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문에 충격을 받은 세 명의 청년 신부들이 기독교 신앙이 소멸해 가고 있던 일본을 향해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서게 된다. 동방 선교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 고아와 중국 마카오를 거쳐 정크선을 타고 로드리고와 프란치스코 가르페 신부는 일본 도모기 마을에 도착하기에 이른다. 원래 의기투합했던 세 명 중, 호안테 신부는 병으로 마카에오 잔류하게 되었다.

 

소설 초반에 작가가 저술한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가 단순한 선교 활동의 위축이나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동양에 대한 “유럽 전체의 신앙과 사상의 굴욕적인 패배”로 받아 들여졌다고 기술되어 있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지배계급에 대한 과다한 연공과 부역에 시달리는 일본 민중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기독교의 본질적 구원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거의 종교적 이데올로기 수호를 위해 세 명의 신부들이 파견되었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파견의 진짜 목적이 아니었을까. 로드리고 신부의 갈등의 원인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문제점을 안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목적으로 살아온 신부들에게 배신자 가룟 유다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기치지로의 존재는 그저 귀찮을 따름이다. 도모기 마을에 은신하며, 6년의 박해기간 동안 아무도 받지 못한 세례며 고해성사 같은 가톨릭 제의를 집전하며 신부들은 자신들을 종교적 불모지에 파견한 그리스도의 가늠할 수 없는 은혜에 감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지는 일본 민중들에 대한 끔찍한 박해(수책형)를 직접 목격하면서 이 모든 사건에 침묵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며, 심지어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신이 부재할 지도 모른다는 궁극적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며, 도모기 마을 부근의 오두막에 은신해 있던 로드리고와 가르페 신부는 옥죄어 오는 관아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지만 결국 체포되고, 주인공 로드리고는 한 때 자신들을 따르던 신자들의 죽음과 그들의 죽음을 만류하려던 가르페 신부가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은전 300냥에 자신의 팔아먹은 기치지로에게 끝없는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배교한 신자 기치지로는 자신을 약하게 만들어 놓고, 순교자의 길을 따르라는 건 무리라며 로드리고 신부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관아에 체포된 로드리고 신부는 일본에 도착하기 전부터 각오한 대로 일본 위정자들의 요구대로 배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순교를 각오한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자신의 스승이자 믿고 따랐던 페레이라 신부를 만나면서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에서도 마틴 스코시지 감독이 가장 주목한 부분이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선배 배교자는 기독교가 일본에 들어와서, 본질을 잃고 일본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구덩이에 매달린 가혹한 형벌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라는 설득을 계속한다. 신자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왔다는 로드리고 신부의 존재 자체가 길 잃은 양을 위협하는 형세가 된 것이 아닌가. 이런 역설 가운데, 한 때 죽어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로드리고 신부의 양심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순교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니면 구덩이에 매다는 형벌을 받고 있는 신자들을 구하기 위해, 페레이라라는 이름 대신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아내와 자식까지 하사 받은 사와노 추안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에서 가톨릭이라는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교묘한 방식을 동원해서 신부들을 배교시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이노우에 지쿠고노가미도 주목할 만한 캐릭터다. 그는 신자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하는 박해방식이 오히려 기독교 포교를 순교차원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해외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을 배교하게 유도하는 혁명적 방식을 채택했다. 단순히 성화를 밟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화에 침을 뱉고 성녀 마리아를 모욕하는 행동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다리를 끊고, 배를 불살라 되돌아갈 곳을 원천봉쇄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주 이노우에는 일본을 네덜란드와 영국,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등 서구 열강에 열렬한 구애를 받는 남자라는 묘한 비유를 들면서 서구의 문물이 일본에 유입되어 일본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 지도자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야말로 개항 이래, 일본 국가가 가진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엔도 슈사쿠는 예리하게 짚어냈다.

 

같은 책을 두 번 읽었어도 대가의 걸작은 역시나 리뷰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일단 영화를 보기에 앞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됐다고 위로하고 싶다. 다만, 영화가 선전하는 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아니고 실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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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 배경이 제가 좋아하는 쪽이라서 꼭 읽어봐야 겠어요 . 바다와 독약 먼저 읽고나서요 .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레삭매냐 2017-03-16 09:38   좋아요 1 | URL
<바다와 독약>도 대단히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침묵>이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장소] 2017-03-16 16:08   좋아요 0 | URL
우와~ 알겠습니다. 바다와 독약이 책이 두껍지 않으니 후딱 끝내고 침묵으로 쓩 해보겠습니다~^^ 추천 , 조언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