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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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고래>는 한국 최고의 데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소설 한 편으로 나는 천명관 작가의 팬이 되었노라고 자부한다. 문제는 그 후의 행적이다. 야구로 치면 클리이튼 커쇼 급의 신인투수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리그 MVP, 사이영상 그리고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 놓을 정도의 활약으로 타자들을 씹어 먹었다. 그런데 2년차부터 서포머 징크스에 시달리다가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해서 저니맨이 되었노라는. 그런데 되짚어 보면 천명관 작가의 출발부터 B급 정서의 유전자가 그의 작품 곳곳에 잠재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애정이 <고래>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마음으로 읽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에서는 정말 싸이의 <강남 스타일> 저리가라할 정도의 B급 정서가 폭발한다.


우선 내고향 인천의 지명이 숱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핵심적인 주인공 인천 연안파의 때깔 나는 보스 양석태 사장이 산 채로 묻혔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해서 복수극에 나선다는 건달전설로 시작되는 소설의 책장은 정말 쉴 새 없이 넘어간다. 그 와중에 한 껀 크게 잡아서 건달로 성공해 보겠다는 야심만만한 청년 건달후보 울트라(리스크)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탕 크게 사기 치고 베트남으로 튄 뜨끈이가 등장하며, 에로 영화계의 신화 박 감독이 가세하며, 안산 아웃소싱 인력업계의 거물 장대리, 빼어난 미모로 양 사장을 현혹시키는 연변 출신의 안마사 연희 아니 지니라는 아가씨, 20억 짜리 다이아몬드 강탈사건에 연루된 삼 대리의 출현, 영암출신 조폭으로 국회의원 도지사를 거쳐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며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겠다고 덤벼드는 시골촌닭 남 회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35억 짜리 종마 천둥이를 도둑맞은 부산 손 회장까지 악머구리 끓듯 욕망의 행성이 대충돌하는 난장이 벌어진다. 그런데 물론 소설은 그만큼 재밌다.


건달세계도 신자유주의 영향을 받아 꼭 필요한 인원만 챙기고, 일이 있을 때마다 동네에서 건달을 꿈꾸는 비정규직 선수들을 수급하는 아웃소싱 시대라는 말에 실소가 터졌다. 전세계를 정복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느 순간 건달업계에도 그 마수를 미쳤구나 싶어서 말이다. 헬조선의 대표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울트라와 깡구 그리고 공업용은 건달업계에서도 밑바닥 인생이다. 아, 조 위에 목록에서 양 사장의 오른팔이자 브레인으로 활동하는 형근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구나. 빵에서 알게 된 동생 루돌프와 야릇한 관계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 참말로 눈물겨울 지경이다. 마초 중에 마초일 수밖에 없는 건달이 호모라는 설정은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기발하면서도 해괴한 발상인지 웃음이 빵빵 터진다.


업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관심법의 명수로 알려진 양 사장이 자신이 원래 슈킹하려고 계획했던 20억 다이아먼드를 털리고, 괘씸하게 자신의 재산을 털어갈 만한 이들의 목록을 주욱 작성해서 궁예를 능가하는 신기의 기술로 마침내 범인을 지목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느닷없이 베트남에서 어렵게 모셔온 뜨끈이를 자기네 물건이라며 강탈해간 영암 남 회장과 일당의 호랑이 사랑은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호랑이 대신 고양이로 바꿔치기하려고 했다가, 족보도 모르는 무지렁이 건달들에게 다구리 당하고 동네 건달에게 접촉사고 때문에 두들겨 맞은 망신은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지 답이 없어 보인다. 우리 헬조선 삼총사들은 마떼기 작업에 나서서 부산까지 원정가서 말 무르팍을 조지라는 명령을 받고 갔다가, 양 사장보다 한 수 위인 손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35억짜리 종마 천둥이를 무슨 옆징 똥개 훔치듯 그렇게 탈취한다. 하지 말라는 짓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라고 하고, 하라는 짓은 당최 관심없는 이들이 건달계를 평정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바닥이 엉망진창이 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어설픈 투시법이 종국에 가서 성공한다는 만화 같은 설정 역시 최고다.


이 시점에서 천명관 작가는 코믹활극 장르 정도로 해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게 아닌가 하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의심이 불쑥 튀어나온다. 건달세계에조차 청년실업 문제를 갈음하는 아웃소싱이라는 노동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현실 비판에서부터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지는 사행성 성인게임방이 유원지에까지 등장할 수 있다는 가설, 밀수와 해외도피, 에로 영화 촬영 등 하류사회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저인망식으로 긁어내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그것은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코리언 드림을 이룰 수 없다는 사회구조적 병리현상에 대한 찌질한 수컷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기록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헬조선 삼총사들은 부의 상징인 BMW나 아우디, 벤츠 같은 고급차량을 자신도 언젠가는 몰 수 있는 착각에, 그런 차에 늘씬한 미녀를 태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판타지를 적절하게 배합한 비현실적인 황홀경에 젖는다. 업계 뒷면에 도사린 누군가의 조종과 보호를 받고 배분의 법칙이 냉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은 뒤로 한 채.


양 사장은 또 어떠한가. 시대의 로맨티스트답게 연희 아니 지니를 업계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박 감독을 통해 에로영화 데뷔를 도모하고, 그녀의 과거를 덮어줄 줄 아는 그런 호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연안파의 전설로 불리는 그도 알고 보면 어린 시절 어창에 갇혀 죽을 뻔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단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오늘의 자리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할 게 공부 밖에 없어서 공부로 성공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또 누군가는 할 게 소위 뜻이 하늘에 통해 건달이 되었다는 식의 등치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쉴 새 없이 읽다 보면, 한 무리 건달들이 각종 연장을 들고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분탕질을 치고, 2미터 장신의 용가리와 폐유를 뒤집어 쓴 루돌프라는 이름의 애인을 둔 형근이 슬로모션으로 싸우는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베레타를 들고 다이아몬드와 종마 천둥이를 모두 거머쥐고 튀다가 호랑이 밥이 되어 버리는 어느 건달의 최후는 너무 황망하니 이쯤에서 마무리짓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정말 뛰어난 페이지 터너라는 데 의견이 없다. 아울러 영화로 만들어도(흥행은 보장할 수 없다) 괜찮은 수작이라는 느낌이다. 다만 문학적 완성도에서 본다면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너무 가벼워서 탈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볍게 읽기에는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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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이 작품으로 처음 읽었어요. 너무나도 유명한 《고래》는 아직 안 읽어봤어요. 독서모임 시절 때 형님, 누님들이 《고래》를 호평했던 것이 기억나요. 이번 천 작가의 신작 소설은 가벼워 보였습니다. 《고래》를 인상 깊게 봤던 독자라면 신작 소설의 가벼움을 참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6-11-29 14:42   좋아요 0 | URL
정말 기대를 많이 하게 되고 <고래> 때문에 놓지
못하게 된 그런 작가인데,,, 그 후의 족적은 데
뷔작을 능가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너무 뛰어난 데뷔작을 쓴 덕분일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