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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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중에 넣은 찰스 부카우스키(부코스키보다 왠지 이렇게 부르는 게 더 멋지게 들린다 나는)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영화 <싱글맨>을 다 보고 나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 너무 재밌다. 얼핏 보면 작가라기 보다 기인에 가까운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걸 그의 소설인 <우체국>과 <여자들>을 읽으면서 느낀 바 있지 않은가. 그의 자유분방한 삶은 경이스럽다고 해야 할 정도인데, 일흔 살을 넘긴 노작가의 삶도 왕년의 그것에 비해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꾸준하게 글을 쓰고, 돈을 벌어 생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다. 그가 이 저널을 쓰고 난지 3년 뒤에 그는 책에서 입버릇처럼 말하는 ‘하데스의 세계’로 위치이동을 했다. 과연 부카우스키는 왼쪽 주머니에 죽음을 찔러 넣고 다니며 언제라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어떤 회한 없이 먹고 마시고 섹스하면서 산 70평생을 마감 지을 무렵에 노작가는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던 모양이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두려워할 법한 죽음조차도 이 작가가 가진 불굴의 또라이 정신은 꺾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지. 대단하다 대단해 정말.

 

그의 저널에서 경마장 이야기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복잡한 길을 거쳐 운전을 해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마장에 마치 인생의 비밀이라도 숨어 있다는 것처럼 부카우스키는 뻔뻔하게 경마장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양반이 아주 또라이는 아닌 것을 증명하는 것이, 당시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하는 모습도 보인다. 별것도 아닌 전쟁에서 이긴 것(걸프전)을 가지고 으스대지만, 실상 경제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더라는 냉정한 분석에 할리우드에서 수천만 달러를 들여 만든 거지같은 영화들이 소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어라, 이 양반 보통 노인네가 아닌데 그래.

 

작가론도 눈여겨 볼만하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글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압권이다. 하긴 그 시절만 하더라도 요즘처럼 SNS 같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악플이 없었을 시절이니. 비록 사반세기 전의 일들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부카우스키가 살아 있가도 해도, 강철멘탈의 소유자인 이 늙다리 작가는 소통만능의 시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내질르며, 술도 양껏 마시고 경마장에 출입하며 그렇게 살아겠지 싶다. 내가 가진 도덕률 때문에 그의 글들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지만 묘하게도 공감하는 발언들이 이어진다.

 

시인들의 삶에 대한 예리한 지적도 눈길을 끈다. 도대체 전업시인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지 부카우스키는 매우 궁금하다. 나 역시 그렇다. 주변에 보면 시를 읽는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소설이나 다른 책들은 제법 읽지만 시 소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하나 같이 부르주아 계급 출신인 시인들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입 혹은 부모에게 급료를 받으며 풍족하게 산다는 것이다. 거 참... 심지어 어떤 시인의 어머니는 시인을 대신해서 시까지 써준다나. 세상은 참말로 요지경이다.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이 된 부카우스키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거절했지만, 인터뷰를 하겠다고 꼬시고 전문적으로 사진촬영을 하겠다고 덤비면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 후에 아무 연락이 없었던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들이 진짜 팬이라기보다, 이제는 전설이 된 작가가 어울려 술마시고 노닥거릴 수 있는 영광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편지에 현금을 보낸 케이스도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비록 다큐멘터리 제작은 엎어졌지만, 아마 받은 돈으로 우리의 부카우스키가 경마장으로 달려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상상하면 그 또한 삶의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내가 부카우스키의 팬이었던가? 부카우스키의 새로운 책이 나왔을 걸 알게 된 순간 그의 책을 냉큼 사서 헐레벌떡 읽은 걸 보면 말이다. 그전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체국>과 <여자들>을 읽었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래서 전자는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썼는데 후자는 아예 후기를 쓸 생각도 못한 것 같다. 내년에 다시 한 번 부카우스키를 읽어봐야겠다. 참,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의 원제목은 <선장은 점심 먹으러 나가버리고 선원들이 배를 접수했다>이다. 그런데 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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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12-2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덕분에 몰랐던 작가님 한 분을 소개받네요. 특히 우체국이 재밌을 것 같아요. 북플을 하다 보니 정말 세상에 재밌는 책이 참 많네요.

레삭매냐 2015-12-21 15:34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세상은 참 넓고 읽을 책은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찰스 부카우스키 아주
재밌는 작가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