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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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이 책은 순전히 팟캐스트 빨간책방 소개로 읽게 되었다. 보통 팟캐스트 방송에서 소개된 책에 대해 듣고 말지, 실제 독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데 1부를 읽고 나서 흑임자 작가의 다섯개 짜리 낚시 바늘에 잘 끼운 떡밥에 물려 책 구매를 결심했고, 2부를 듣고 나서는 결제 버튼까지 눌러서 오늘 수중에 넣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거나 혹은 중고서점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두 가지 방법 모두 실패했다. 모름지기 책 관련 팟캐스트 하면서 이 정도 실력을 되야 하지 않나 싶다. 그들의 완승임을 인정한다.

 

게다가 올해 읽은 책 중에 손꼽히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에 버금가는 ‘여자 스토너’라는 데이지 스톤의 일대기를 10년 단위로 끊어서 다뤘다고 하니 더더욱 직접 읽어 보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우선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흔히 영미소설에 등장하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캐나다라는 점이 매혹적이었다. 물론, 주인공 데이지 굿윌 플렛이 미국으로 이주해서 거의 미국인처럼 자라나기는 하지만, 소설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매니토바 주 틴들의 시골마을이라는 점은 지금도 많은 미국 작가들이 꿈꾸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 참, <스톤 다이어리>에는 정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관계로 시작 전에 엄청난 인맥을 담은 가계도가 떡하니 등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첫 페이지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스톤 다이어리>에 주인공 데이지 굿윌은 태어나면서 어머니 머시 스톤 굿윌을 잃었다. 탄생과 더불어 고독한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삶이란 결국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 고독한 항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마련이지만, 갓난쟁이 데이지가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어쩌면 평생이 걸릴 지도 모를 일이다(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남편 카일러 굿윌은 아내 머시를 지극정성으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뚱뚱한 아내가 임신한 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된다. 아내가 죽고 난 뒤, 카일러는 아내를 추모하는 자신만의 탑을 만들기 시작하고 뒤이어 명성과 부가 그를 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막 태어난 데이지는 이웃의 클래런틴 플렛 부인이 맡아서 기르게 된다. 클래런틴으로부터 죽은 머시 스톤에게 어느 순간 그 유명한 무의식의 흐름이 개입했다고 해야 할까? 남편 매그너스 플렛이 단순히 클래런틴의 치아를 치료할 비용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클래런틴은 갓 태어난 이웃의 데이지를 데리고 남편의 곁을 떠난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사건들의 소설의 초반을 장식한다. 그에 비하면 소설의 후반부는 잔잔한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캐럴 실즈 작가는 십년 단위로 기술되는 데이지 굿윌의 삶을 찬찬히 조명하기 시작한다. 어쩔 때는 자신의 탄생을 목격한 데이지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과 주고 받은 편지글이나 타인의 남긴 평가 등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캐럴 실즈 작가의 도입한 이 기법은 소설을 다양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 그리고 아주 매혹적이다. 이 즈음에 등장하는 것이 클래런틴의 큰아들 바커 플렛이다. 여성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모습으로 사는 식물학자의 고고한 풍모를 풍기는 그의 관심사는 레이디스 슬리퍼라는 처음 들어보는 식물 뿐이다. 그런 바커의 삶에 고향집에서 탈출한 어머니 클래런틴과 갓난쟁이 데이지가 뛰어 들면서 비로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 스토너 교수의 무채색 삶이 연상됐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오롯하게 담겨 있는 것 같아 슬쩍 웃음꽃이 피어 오르기도 했다. 한편, 미국 인디애나 주의 블루밍턴으로 초청된 석공기술자 카일러 굿윌은 건축붐이 일기 시작한 북미 곳곳에 자신의 기술과 석재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러운 상처 뒤에 종교에 귀의해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변신한다. 소설 <스톤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석공기술자 카일러가 몇 시간이고 대중을 상대로 장황한 연설을 할 수 있게 되었노라는 설정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미국식 산업화의 수혜자는 시골 석공에서 부르주아지 자본가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대성공을 거두게 된 카일러는 거의 잊고 지내다시피 했던 딸 데이지를 미국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대학교육까지 마친 딸 데이지는 블루밍턴의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 해럴드 호드와 만나 결혼식까지 치르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문제는 예의 신혼여행지에서 불의의 사고로 남편 해럴드가 추락사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데이지의 첫 번째 결혼 역시 그녀의 삶에 또하나의 비극을 추가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아, 그 전에 아내 클래런틴과의 이별 후에 홀로 남은 매그너스 플렛이 자신의 고향인 영국 오크니 제도로 귀환했다는 중요한 사실도 독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매그너스는 엄청나게 오래 살면서, 아내가 남긴 소설인 <제인 에어>를 통째로 외우는 기발한 기억력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그리고 데이지는 어린 시절 한 때 같이 살았던 오타와의 바커 플렛을 찾아가게 된다. 모름지기 삶의 결정적 순간이 있다고 아마 데이지에게는 바커와의 재회가 그런 순간이었으리라. 다시 만난 그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23살이나 나는 나이 차는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앨리스와 조앤 그리고 워런 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시간이 흘러 바커 플렛이 죽고 홀로 남은 데이지는 그의 뒤를 이어 “원예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자그마치 9년 동안이나 칼럼을 쓰면서 데이지는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세 아이의 어머니에서 독립적인 여성으로 변신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야말로 무소뿔처럼 홀로 살아가는 그녀 삶의 유전자는 어머니 머시 스톤으로부터 자신을 거쳐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이주해서 교사로 사는 앨리스와 역시 식물학자가 된 종조카 빅토리아로 멋지게 전달된다. 어느 순간 핑키 풀럼이라는 신문사 직원에게 자신의 일거리를 빼앗긴 데이지 굿윌은 남편 바커를 잃었던 것 이상의 낙담과 절망에 빠지기도 하기만 그 역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 들이며 인생의 황혼을 준비한다. 종조카 빅토리아의 식물 채집 여행 도중에 시아버지 매그너스 플렛을 만나게 되는 설정은 좀 과유불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캐럴 실즈는 <스톤 다이어리>에서 머시 스톤-데이지 굿윌 그리고 앨리스 플렛 이렇게 스톤 집안 세 명의 여자들의 삶을 통해 지난 세기 여성의 삶에 대한 초상을 전개해 주고 있다. 지난 세기의 구식 유물이 된 가사를 돌보고 육아를 담당한 전통적인 여성상을 주인공 데이지는 유산으로 상속받은 동시에 극복해내고 직업(일거리)을 통해 신여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연히 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앨리스는 신식 교육을 받고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홉을 전공하면서 신대륙을 떠나 구대륙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개척해낸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물질적 토대는 데이지의 아버지 카일러 굿윌의 풍부한 유산과 평생 성실했던 바커 플렛이 남긴 자금 덕분이었다. 부유한 노인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리다 주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데이지가 노후에 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점은 정말 축복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장장 한 세기에 걸친 장구한 시절을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스톤 집안 세 모녀 삶의 연대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꿈꾸는 삶의 희로애락이 어쩌면 정말 평범한 삶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캐럴 실즈 작가는 데이지 스톤이라는 멋진 여성의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순간들을 분석하고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우리에게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주는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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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4-2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스토너라니 꼭 읽어 보고 싶군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