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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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가 임신 중이다. 임신 33,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려면 한 달 반은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중태에 빠졌다.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폐렴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혈액검사를 해 보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초짜 아빠 톰은 패닉에 빠진다.

 

병원은 정말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최후의 선택지라는 생각이다. 병원에서의 무력감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메르스가 창궐하시던 시절 병원에 입원하셨던 아버지의 경우에도 그랬고, 꼬맹이가 신생아 시절에 20여일이나 입원했던 경험을 보면 정말 내가 무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모습을 보여 주는 주치의 선생님은 나에게 구세주 같아 보였다.

 

어라? 그런데 이게 뭐지. 카린의 남편 톰은 급성 백혈병에 걸린 아내의 증상에 대한 의사의 설명을 자기가 먼저 듣겠다고 나선다. 그러니까 환자의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겠다는 거다. 왜 이러지? 카린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앞서 누군가의 딸이지 않았나. 나는 도대체 그런 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면, 카린의 부모님에게도 역시나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 설사 카린과 사전에 그런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의사가 카린의 증상을 설명해 주는 자리에 부모님과 형제를 제외시킨 결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책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느낌이 좋지 않군 그래.

 

톰파는 왜 간호사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모든 걸 통제하고 알아야 한다는 건가? 나하고 정말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느낌에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미숙아로 태어난 딸 리비아도 그의 허락이 있어야 리비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볼 수 있다니... 할 말이 없어진다. 문득 미친 사랑의 노래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결국 아내가 죽었다. 법적으로 그들은 부부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결혼할 계획이었다. 톰 말름퀴스트는 이야기의 시간을 꼬기 시작한다. 카린의 심장맥박이 0이 된 뒤, 리비아를 가졌을 당시로 돌아간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신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가져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톰파는 아무리 봐도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임신해서 예민한 카린과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서사의 시작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시간꼬기와 톰파의 삶에 대한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카린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편 톰파의 아버지 말멘 역시 10년 전에 암진단을 받고 죽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막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아비에 한부모가 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까지 건사할 상황이 될까.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복지사는 카린이 자신에게 남긴 딸 리비아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아라는 판정을 내린다. DNA가 같다는 의사의 진단이 법적으로 친자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상황이 한숨을 자아낸다. 의사들도 리비아가 톰파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행정절차는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구나 그래.

 

장인 장모인 스벤과 릴리메르와의 관계도 카롤린스카 병원에서 톰파가 병상에서 죽어가는 카린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서먹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전에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부모님 때문에 카린이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톰파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카린은 뇌수술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병실에서 생일을 맞이할 카린을 위해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생일축하 카네이션을 준비했지만,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던 카린에게 꽃을 전달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던 간호사 덕분에 꽃다발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했다. 물론 그런 톰파의 무심함을 먼저 지적해야겠지만. 바로 이게 남자 작가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아버지의 죽음을 4개월 상관으로 맞이해야 했던 남자 톰파의 이야기는 리비아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돈을 벌어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남자의 숙명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죽음 앞에 선, 나로서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특이한 감정에 대한 내러티브는 복잡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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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21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첫 문장 내용을 보는 순간 레삭매냐님이 겪은 일인 줄 알았어요... ^^;;

레삭매냐 2019-01-21 21:40   좋아요 0 | URL
너무 자극적인 시작이었나요?

제가 싸이러스 브로를 지대 낚은
모양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