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1>


어젯밤에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의 <알릴레오>를 봤다. 보수우파들의 공간이 되어 버린 유튜브를 평정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열렬한 호응이었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수상한 시절에 진실을 알리겠다는 유 작가의 발랄한 선언보다 그의 정치 재개 뉴스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달보다 손가락만 보게 되었구나 싶다.

 

무려 5년 전에 산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것도 해를 넘겨 가면서 말이다. 나의 새해 결심 중의 하나인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1호로 당당하게 기록되었다. 유시민 선생의 <나의 한국현대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고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어느 리버럴리스트의 자전적 기록이다. 그렇다, 자유주의자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통제를 참을 수 없어한다. 그가 성장하던 시절은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독재자로 남을 어느 대통령이 지배하던 때였다. 독재자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묘한 방식으로 민주화 대신 산업화를 택했고, 그의 대한민국 백성들을 가난과 배고픔에서 구해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대학 시절, 절친한 과 동기 녀석이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게 다 그 독재자 덕분이 아니냐는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재벌 몰아주기 산업화 덕분에 작금의 빈부격차가 더더욱 벌어지고, 1970년대에는 유효했던 성장추구 전략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되지 않았느냐는 따위의 말은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는 너무 어리고 무지해서 제대로 된 논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술을 마실 게 아니라 책을 더 많이 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가 된다.

 

어쨌든 3선 개헌 후에 세 번째 대선에서 승리한 독재자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정치인의 말대로 종신 총통으로 영구집권을 획책했고, 1972년 10월 유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전형적인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수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화를 특유의 “라면 된다” 식의 군바리 정신으로 밀어 붙였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패자가 부활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아닌가. 특히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권리는 철저하게 유린되었고, 조국의 산업역군으로 희생해야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19세기 일본에서 있었던 메이지유신 스타일의 근대화가 강제되었다.

 

전 세계 청년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1968년, 한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반공정책의 시행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당장 조국이 등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무슨 놈의 한가한 시대정신 타령이냐는 것이었을까. 전 세계를 뒤흔든 흐름이 왜 한국에서는 없었나에 대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가 한국처럼 대결구도로 간 나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영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들었다. 그것에는 사상과 문화 그리고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한 것도 아니었다. 작년 말에 읽은 조너선 스펜스의 <반역의 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사 이래 사상 통제가 가능한 적이 있었던가? 유시민 작가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병영국가를 통치하는 독재자의 통제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일시적인 통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 뒤에 이어진 1980년의 봄 그리고 1987년의 민중항쟁에서 보듯이 억눌린 민중의 힘이 폭발하는 순간, 어떤 수단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역사가 확인해 주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어렵에 쟁취한 87체제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지만, 결국 신군부의 2인자였던 노태우가 양김의 분열 때문에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던가. 한 때 민주투사였던 YS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의 주가 되어 꿈이 그리던 대통령이 되었지만, IMF사태로 국가를 결딴 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그 뒤 이어진 진보정권 집권 10년으로는 분단이래, 한국을 지배해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반격을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의 적폐청산 작업은 단기간 내에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는 동안 보수언론과 야당은 지속적으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87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거구제가 민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나? 절대 아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가장 민의를 대변하는 합리적인 선거제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밥그릇이 날아갈 지도 모르는데 어느 국회의원이 그런 선거제 개편에 동의하겠는가? 게다가 국회의원들의 특권이 너무 많다. 그런 특권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의원수를 늘인다면 대찬성이지만, 특권은 줄이지 않고 국회의원수를 늘이는 것에는 반대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것을 고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울러 유시민 작가가 지적하는 국가적 차원의 인구감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제 저임금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서구사회처럼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의 대가가 정당한 대접을 받는 시절이 곧 도래할 것이다. 그 때가 와도 최저임금이 과도하다는 타령을 지금처럼 해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시대의 의식을 가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을 길을 가려니 버거울 수밖에. 유시민 작가가 지적한 에너지 가격 상승 역시 문제다. 중국과 인도의 수많은 잠재적 중산층의 에너지 수요가 폭발하면 기존 화석 에너지 수요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할 게 뻔한데 에너지 생산을 위한 원유에 수입에 전량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전시작전권 반환과 검찰 개혁이 불가역적일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보수정권 시절 감당할 능력도 없이 논하던 흡수통일 대신, 독일식 합의통일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워진 남북한 간의 대화를 통한 화해 분위기를 종언선언까지 이어가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을 미국이 해준다면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로 시작된 일촉즉발의 위기들은 해소될 것이다. 또한 최근 조국 민정수석의 말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검찰의 권한조정이라는 궁극적 개혁과제를 위해 법적 테두리를 위한 시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 또 다시 검찰의 정권 타고 넘기 전략을 그대로 용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오고 갔는데 막상 리뷰로 담아내려니 역부족이다. 어쨌든 어두웠던 병영국가 시절을 벗어나 이제는 시민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인이 되는 광장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주인의 뜻과 어긋난 ‘통치’를 한다면 대통령이라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입증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한국현대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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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1-07 17:42   좋아요 1 | URL
상생으로 가지 않고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위기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면 뭘합니
까 소비할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
이 없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되는 경제 생태계
를 조성해야 하는데, 당장 눈 앞의 돈벌
이에 어두워 약탈식 경제를 추구하니
큰 문제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1-23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다가 멈추고 있는데 다시 읽으면 레삭매냐님 덕입니다 서가파먹기 좋네요 냉장고파먹기처럼 ㅎㅎ 지르지 않고 파먹기만해도 몇년은 버틸텐데 ㅋㅋ

레삭매냐 2019-01-23 13:39   좋아요 1 | URL
신간으로 산 책을 이렇게 오래도록 쥐고
있다가 지금에사 읽었으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분간 책은 안사도
된다라면서 어제도 두 권 질렀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1-23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책을 이렇게 리뷰하신 것도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굿뜨~

레삭매냐 2019-01-23 13:39   좋아요 1 | URL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