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베르펜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을 읽고 나서 좀 아쉬운 마음에 머리맡에 있던 로베르토 볼라뇨의 <안트베르펜>을 집어 들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지나 한밤중으로 치닫고 있었다. 책이 더 읽고 싶었다. 볼라뇨의 팬을 자처하는데 나는 왜 이 책을 사두고 읽지 않았을까. 하긴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둘이던가. 읽다만 책들도 참 많지. 그래 볼라뇨 전작 읽기 중이니 당연히 이 책도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내가 얼마 전에 시집도 읽었는데 뭘하는 하는 마음으로.

 

 

칠레에서 태어나 메히코에서 교육 받은 세계인이자 반항아 볼라뇨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문청 생활을 한 모양이다. 생활고를 다스리기 위해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도 책과 글쓰기를 부단히 갈고 닦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짤막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이라기 보다 산문시에 혹은 어느 문청의 습작에 가까운 <안트베르펜>에는 훗날 볼라뇨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밑바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지하고 불초한 독자는 하나의 통일된 플롯이나 캐릭터를 기대했지만, 27세의 문청은 독자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않는다. 끝없이 분절되고 글을 쓸 당시의 본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해석불가한 이야기들을 주절주절대고 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리따운 어린 소녀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콜란 야르에게 너도 쫓기냐는 조금은 황당한 질문이 등장하지 않던가. 소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경찰에 대한 묘사는 왜 그렇게 리얼한지. 자신이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카탈루냐 캠핑장에 대한 이야기들, 밤바다가 당연히 검은 색인지 몰라서 그런 글들을 남긴 걸까. 아, 등대도 검다고 썼지 아마.

 

피씨통신 시절 유행하던 스키조프레닉(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가 볼라뇨의 끝없이 분절되는 글 속에서 연상이 되었다. 볼라뇨의 글 덕분에 자마이카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몬티 알렉산더의 연주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가 있었다. 피아노의 리드로 시작해서, 베이스 주자의 리듬 그리고 드럼 삼위일체의 <Isn't she lovely> 라이브 연주는 그야말로 황홀했다. 털이 부숭부숭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대며 자신의 흥에 도취된 몬티 알렉산더의 연주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책 리뷰를 하다가 또 삼천포로 빠졌구만 그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십대의 볼라뇨는 체류 허가증을 가진 이방인이었다. 확실히 젊은 시절 볼라뇨의 글에는 문청 특유의 오만과 분노 그리고 폭력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정확하게 인생의 좌표를 정하지 못한 불확실성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문학도가 보고 듣는 모든 정보들은 글쓰기의 소재다. 제목부터 안트베르펜으로 가는 길에 발생한 사고에서 유래한 게 아니던가. 소설의 제목은 카탈루냐 혹은 바르셀로나 그것도 아니라면 람블라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 그런 임의성이야말로 이후 사반세기에 달하는 볼라뇨 문학여정의 시발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누워서 책을 보던 사람도 벌떡 일어날 만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 수많은 불면의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작가는 글렀다는 체념도 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좌절과 체념의 시간들이 굳건하게 뭉쳐서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작가를 만들었겠지. 그러나 <안트베르펜>은 여전히 나에게는 모호하고 분절된 이야기들의 연속일 따름이다. 큰 줄기를 이루는 내러티브의 부재 덕분에 강제된 의미찾기는 어느 순간 실종되어 버린 그런 느낌이다. 도대체 ‘파란 꼽추’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소유하지 못한 것은 파괴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리석은 독자는 이미 읽은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따름이다. 나의 유한한 삶이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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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2-06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2월 계획대로 착착 읽고 계시네요.^^

레삭매냐 2018-12-06 13:36   좋아요 0 | URL
넵... 이제 앞으로 6권 남았습니다 !!!

얇다란 책으루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