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1
김성동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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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월초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는데 무려 보름이나 걸렸다. 그런데 시작부터 프로 불편러의 모습을 보여야 하나. 고민이다. 솔직히 말해서 어지간한 외국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이유는 6권 세트로 구성된 <국수>의 마지막 권 국수사전이 이유가 돼지 않을까 싶다. 어려서는 참 모르는 말들을 찾기 위해 두터운 국어사전 찾기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김성동 작가가 구사하는 구한말 단어들은 생소하고 어렵고 또 그 의미를 찾기가 귀찮았다. 프로 불편러는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편이지 그런 세세한 의미까지 눈여겨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읽었다는 말에 그야말로 날개 돋친 책 판매고가 뛰었다고 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마치 로또 맞은 것 같다고 했던가. 좋은 일이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책을 읽게 되는 동력을 맞는다는 건. 그런데 낱권으로는 (알라딘 지수로)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1권에 비해 나머지 책들은 1/3 토막이다. 판매의 비대칭성이라고 해야 하나.

 

조선 최고의 국수(國手)를 꿈꾸는 유가의 꼬맹이 김석균은 적적암에 기거하는 백산노장에게 기세 좋게 도전장을 던졌다가 일패도지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 불편러는 이 장면부터 벌써 불편해지는 걸까. 그러니까 작가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 사고로부터 이야기의 출발을 예고하는 걸까. 기존 질서를 뒤집어 엎을 수 없었던 동학운동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듯이, 꼰대정신은 빛을 발한다. 완고하게 구축된 기존 질서에 대한 석균의 도전은, 기존 자동차 업계에 일대 도전장을 던진 경세가 일론 머스크의 그것이 연상됐다. 가솔린 오토메이커들은 일론 머스크가 구상한 테슬라 전기자동차가 망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일이 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망해라를 연호하는 모습. 석균과 백산노장의 대결이 그렇게 나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솔직하게 말해서 국수 1편만으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대원군처럼 무작정 조선의 대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고유의 시스템(그것도 중국에서 유래한 성리학적 질서에 다름 아니다)과 악랄한 신분제를 고수하겠다는 방식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애써 부인하는 위정자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없긴 매한가지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그리고 갑오농민운동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의 밑밥이 깔리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내러티브의 전개가 궁금하기도 하면서 각주가 없다면 알아먹을 수 없는 조선말 찾기가 귀찮고 버겁다. 단어들을 읽다 보면 문맥을 뚝뚝 끊어지니 말이다. 아마 그래서 분량은(285쪽) 얼마 되지 않는 읽느라 시간이 곱절은 더 걸린 느낌이다.

 

백산노장이 유가의 막둥이에게 유불이 다루는 진리가 다름이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쌩뚱맞다. 애시당초 조선 설계자들의 국시가 간단하게 말해서 숭유억불이 아니었던가. 국가적 차원에서 유교 질서의 지배자들은 불교를 억압하고 탄압하는데 전력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척점에 서 있는 노승이 말하는 대로 두 상이한 집단이 화해할 수 있단 말인가. 모를 일이다.

 

김사과 댁 영재이자 석균의 아버지 김병윤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공맹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실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공정한 인재선발이라는 명목 하에 시행되어온 과거라는 시스템 자체가 중앙집권적 군주를 위한 제도가 아니었던가. 아산현감이 되어 기존의 적폐들을 일소하고, 백성들을 위한 어진 목민관이 되겠다는 김병윤의 시도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정조의 개혁정치도 영명한 군주가 추구하는 개혁을 뒷받침할 때묻지 않은 신진 사대부들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개혁이 정상궤도에 오를 절대적 시간과 지속적 추구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없었기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일개 목민관이 수세대에 걸쳐 누적된 병폐를 일소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시도였다.

 

아산이라는 작은 고을에서도 현실이 이럴진대, 국가적 차원에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민비를 중심으로 한 외척 민씨들이 조선 팔도를 주무르면서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관직매매는 기본이었고, 민서들은 기껏 농사를 지어도 대동세 같은 세금과 지주 몫으로 내정된 곡식을 내고 나면 그야말로 남는 게 없었다. 어째 상황이 날이 갈수록 보수 언론에서 그렇게 목놓아 외쳐 대던 트리클 이펙트는 어디로 다 가버리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과 다를 게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마당에 아버지 김병윤처럼 입신해서 무언가 해보려는 노력 대신 조선 팔도에서 제일 가는 국수 김시 씨를 이겨 보겠다는 유가의 막둥이 석균의 꿈이 한편으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면서(뭣이 중헌디 시방!) 또 한편으로는 마치 스타크래프트 세계대회에 출전해서 세계 킹왕짱이 되어 보겠다는 21세기 소년의 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애잔해지기도 했다.

 

외세의 대결과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는 격변의 시기를 맞아 한가롭게 바둑 타령이나 할 수 없다는(석균이 지주 김사과댁 맞손주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언명령에 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후속편들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난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21세기에 순수한 조선말을 지켜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도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고. 그렇다면 아예 한글이 창제된 15세기 국어 표기를 하자고 주장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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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대가 많았는데
의외로 평은 그다지 않좋아 일단
보류중입니다.
그런데 레님은 완독은 안하실 건가요?
갈수록 좋은 느낌이라면 저도 고려는 해 보겠는데...ㅋ

레삭매냐 2018-08-16 20:00   좋아요 1 | URL
전 아무래도 완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읽어야 할 다른 책들이 너무
많구요... 시간 들여서 나머지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