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아무리 바쁜 시기에도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나 자신도 마음이 풀어지거니와, 이미 일을 의뢰한 고객이나 새로운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그런 편일게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날씨와 시즌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일을 하다보면 그런 경우를 자주 느낀다.  내 역량이 더 늘어나면 더욱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회사를 더 확장할 필요가 있겠지만, 사람관계에 능한 편이 아니라서 누군가를 고용하여 속을 썩느니 좀 적게 벌어도 이렇게 자유롭게 오가면 더 좋겠다.  오늘도 그래서 간만에 부모님 댁으로 넘어와서 개들을 보면서 메일과 전화, 그리고 notebook PC로 업무를 처리하면서 점심에 운동을 하고 집밥도 먹고 하니 맘이 푸근하다.  


최근에 검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체력단련, 그리고 기존에 비축된 근력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힘으로 바꾸기 위한 일환으로 합기도를 시작하였다.  사실 한국 합기도의 원류나 초기 지도자들에 얽힌 나쁜 이야기가 많고, BJJ나 MMA같이 요즘 대세를 타는 무술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순전히 인연이 그렇게 닿은 덕분에 한국 육군 퇴역 소령이 관장으로 있는 곳에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중기적인 목적은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다가 도장시설을 이용해서 검도의 기본동작을 연습하다가 어느 정도 체력과 자세가 회복이 되면 검도장에 등록하는 것이다.  그래도 한때에는 우리 도장의 후기지수들 중 꽤 괜찮은 시합성적을 내던터라 그냥 가서 못난 꼴을 보이기는 싫은 것이다.  한 가지 plus라면 이분이 총을 잘 쏘는 분이라서 지역 경찰국 강사도 하고 경관 개인지도도 하기 때문에 총 한 자루만 구하면 가끔 좀 배워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냉병기는 아무래도 개인단련과 수양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무인이라면 화병기를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A Game of Thrones를 읽으면서 느끼는데, George R.R. Martin은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어느 판타지 보다도 훌륭한 구성과 현실세계와의 대비는 특히 이 작가의 빼어남을 보여주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예컨데 LOTR시리즈나 퍼언 연대기도 그렇고 좀더 단순한 패턴을 따른다면 Martin의 작품은 매우 냉혹한 것이 현실과 그대로이다.  정의도, 불의도, 선과 악도,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끊임없이 돌면서 정반합을 이루고 변한다.  이 정도의 통찰이 판타지 세계관에 무리없이 녹아 있는 점도 그의 비범함을 보여준다.  이곳에 살고 있으니 영어로 된 원본을 읽는데, 매우 실망스러운 한국어 판의 번역 평판을 들어보면 좀 다행인 듯.  순전한 추측이지만, 세 명 이상의 다른 사람들이 공동번역을 하고 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의 부주의함이나 편집의 불성실이 아닐까 싶다.  Bran의 Direwolf인 Summer를 어느 챕터에서는 서머로, 다른 곳에서는 여름이로 번역하는 수준이라면 거의 발번역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한다.  paperback edition은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팬으로써 한국어 판에 실망한 독자라면 영어로 도전할만하다.  무엇보다 단어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한번 잘 분위기를 타면 무리없이 계속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 6권이 곧 나올 예정이었으나 금년 10월에는 외전격인 the World of Ice and Fire: the Untold History of Westeros and the Game of Thrones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이미 이곳에서는 절판된 세븐킹덤의 기사 3부작도 다시 나온다고 하니 아마도 HBO 시리즈의 대히트에 힘입어 Song of Ice and Fire는 modern classic으로 등극할 것 같다.  이 시리즈를 다 읽을때까지 영문판으로 세븐킹덤의 기사 3부작이 복간되지 않으면 아마도 한국어 판을 구해서 읽을지도 모르겠다.



한창 판타지를 읽던 때는 10년도 더 넘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Forgotten Realm세계관에 기초한 RA Salvatore의 작품을 많이 읽었었다.  비록 protagonist인 Drrizt Do Urden의 숙명은 비애 그 자체이기는 하지만 늘 헤피엔딩으로 끝나고 주요인물이 죽어버리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LOTR시리즈는 이에 비해 좀더 무거운 톤의 classic이지만, Martin의 책은 여기서 훨씬 더 발전한 형태이면서 더 나이든 독자층을 겨냥한 작품같다.  세계관을 판타지에 기반했다는 점을 빼면 동화적인 요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읽을 책이 많아서 TV가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심심하지는 않겠지 싶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소설이 흠뻑 빠져들어가고 나니, 갑자기 중세유럽의 검술이 배우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근처에서 Davenriche European Martial Arts School이라는 것이 나온다 (궁금한 사람은 http://swordfightingschool.com/About_Dav.html 에 가볼것).  롱소드, 사이드소드, 대거, 레이피어, 그리고 세이버를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 비용이 얼마가 될런지.  합기도 도장으로 가는 길에 보면 펜싱학교도 있던데, 이런 것들을 다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책도 읽고, 운동하고, 일하고, 그렇게 삼박자를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삶이면 좋겠는데, 딴지팟캐스트에서 말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르네상스인이 혹시 나일까 하는 망상도 하게 된다.


오늘 SF구장에서 SF Giants대 LA Dodgers의 3연전이 시작된다.  우리 측 선발은 범가너이고 LA는 류현진이다.  갑자기 야구를 볼까, 운동을 갈까 고민되는건 왜일까...플레이오프 진출권이 걸린 시합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단하 야구팬도 아니면서.  아버지의 응원은 이렇다.  류현진이 던지는 7회까지는 1점 정도로 LA가 앞서다가 중간계투가 나오면서 SF가 역전승을 거두는 것.  그러면 류현진은 패전투수가 안되고, 우리는 이기고.  흠.....


지난번에 쓴 것처럼 독서속도가 많이 느려졌기 때문에 자꾸만 책이 쌓여만간다.  누군가 사들인 책의 70%정도는 읽어야 장서가의 자격이 있다고 했다.  꼭 그 기준이 아니더라도 예전처럼 적어도 한국어 책은 100%의 가독율을 유지하고 싶다.  영어책은 조금 더 미루더라도.  


TV보는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 외에는 시간을 더 낼 수 있는 묘수가 달리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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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5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5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전에 podcast에 올라온 강신주의 감정수업 (보충수업)편을 듣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하는 일에 대한 존경도 있고, 뱃심있게 센소리를 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사람은 젊고 경험한 것과 아는 것이 적을 때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쉽게 한다.  배우고 경험한 것이 적으니까 세상은 단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사람은 너그러워진다.  타인의 실수에도 모자람에도.  세상이 그리 단순하게 흑백으로 양단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워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신주 박사는 나이도 배움도 경험도 적지 않을터인데, 어떤 이야기에 있어서는 에누리가 없이 강한 발언을 한다.  그 중에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는데, 아마도 누구나 개인적인 호불호가 있을 듯 싶다.

 

문예창작과에 대해서:

무척 신랄하게 비판을 한다.  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기교를 배워서 끼워 맞춘다는 뜻 같다.  기실 예전에는 작가로 등단하기 위해서 사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부단히도 습작을 하여 그 과정이 쌓이면 등단을 하곤했다.  조정래 선생도 그랬고, 대다수의 작가들이 다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속을 긁어들어가 글을 쓰고 버리고를 되풀이 한 끝에 전업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깊고 넓은 다각도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의 글이 나왔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인지 작가가 되려면 문창과를 가야하는 것이 정설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강신주 박사의 관점에 공감한다.  나 역시 문학적인 글을 그렇게 깊이 내면으로 들어가서 다양한 경험 끝에 쓰여지는 것이지 기교를 배워서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창과가 생산할 수 있는 글쟁이는 방송작가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문창과는 학교마다 유명한 전대의 소설가나 문학가를 데려다가 교수를 만들어주고 그 댓가로 학맥을 만들어냈다고 하면 심한 비판일까?  이제는 등단을 위해서 any 문창과가 아니라 특정 문인이 교수로 있는 특정 대학교의 문창과를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보았다. 

 

강신주 박사의 발언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겠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심한 표현은 삼가는 편이다) 상당부분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문학으로써의 글쓰기는 그렇게 4년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키 비판:

일종의 문학적인 포르노라고까지 말한다.  인생 경험이, 찐한 사랑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나 먹히는 정도라고.  하지만 진짜를 경험한 사람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일단 하루키는 좋다.  그가 들려주는 심각한체 하는 이야기도 좋고, '노르웨이의 숲'같은 이야기도 좋다.  오에 겐자부로는 인정하면서 왜 하루키는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하다. 

 

희재류의 인간들이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주목받고 싶고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강신주 박사의 거침없는 발언은 그가 그만큼 이제는 어느 경지에 올라 세상의 이목을 초월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아가서 그는 care하니까,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발언에 대한 타당성을, 특히 하루키 비판에 대한 부분을, 따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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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08-2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런 생각이 멀리멀리 사라집니다. 때론 이 사람이 잘난체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만 남더라고요...호불호가 갈리는데 전 호에서 불호로 옮겨 가고 있는 중입니다.

transient-guest 2014-08-29 02:0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잘난체만 갖고는 지금의 성원을 얻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그런대로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독선적인 의견이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8-2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으면서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은 드물죠.오히려 나름대로 고집이 생기고 나이를 먹으면서 남에게서 배우려는 마음가짐도 없어집니다.걸핏하면 남을 가르치려고 하고...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사람들이 나서서 호통치고 잔소리 하고 그러죠...

하루키는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깊이 있는 사람들일까요? 하하하...

transient-guest 2014-08-29 02:0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나이를 먹는건 쉬운데 잘 먹는건 쉬운일이 아니겠어요.ㅎㅎ 저는 누가뭐래도 아직은 하루키가 좋습니다. 제 젊은 시절에서 missing된 무엇인가를 보게 되더라구요. 뭔가 그립고, 아련합니다.

Alicia 2014-08-2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신주가 하루키의 글에서 어떤 점을 보고 폄하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성애 묘사하는 장면에서 강신주가 지적하는 부분이 엿보이기도 해요.
강신주가 잘난 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어떤 뻔뻔함 때문인데, 강신주가 좀 뻔뻔해지라고 부추기는 대상들은 어떤연유로 자존감을 상실하거나 자존감이 약해진 사람들인걸 감안하면, 그 뻔뻔함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transient-guest 2014-08-29 02: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부분에는 동의합니다. 본질을 보라는거죠, 피하지 말고. 그런데, 어떤 비유나 예를 드는 부분 또는 특정한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겠어요.
 

그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중학교 때였던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획일적인 교육에 길들여지고 있는 사립학교 학생들에게 예정된 미래 이상, 순간의 삶이 중요함을 깨우쳐 주던 키팅 선생님으로 나왔던 그 때.  알고보니 Robin Williams라는 이름의 유명한 배우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에서는 정작 그리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입시에 시달리던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것 같다.  나만해도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고 당시 비싼 돈을 주고서 비디오 가게를 통해 원판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그 뒤로도 꾸준한 활동을 하던 그가 오늘 아침 갑작스럽게 지구를 떠났다.  은막 뒤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자살을 할 뚜렷한 이유를 알지는 못하겠다.  그저 나이가 들고 커리어가 예전 같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로써 내가 한 시절을 기억하게 해주는 또 한 사람이 떠났다.  이럴 때마다 나이가 드는 것을 느끼는데, 그의 죽음으로 난 한 시대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키팅 선생님으로 나왔던 그 모습은 잊지 못할 것이다.

 

Good bye Robin...may your soul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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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8-2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시인의 사회>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모두 소설로 읽어보았습니다.둘다 주인공이 학교를 떠나는 게 마지막 장면이죠.단, 후자에서는 주인공이 자살하여 관에 넣어져 떠난다는 것...그때가 6공화국인데 5공화국이 추친한 재학생들의 과외금지 학원 수강 금지가 풀려 학생들이 사교육에 찌들어 가고 있었죠.

transient-guest 2014-08-22 06:18   좋아요 0 | URL
이 시절은 이미연의 리즈시절이었지요.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본 그 청순가련한 모습은 요즘 아이돌은 따라갈 수 없는 그 시절 특유의 모습이 있었던 것 같아요. 6.10항쟁으로 전두환이 물러났지만, 도루묵 같은 노태우 시절이 돌아왔던 것에 어린 나이였음에도 매우 실망하고 분노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책을 읽고, 읽은 것을 남기는 서재활동을 시작한 이래 가장 게으른 한 달이 아니었나 싶다.  책은 8권을 읽은 것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약 4-5권 정도의 리뷰가 밀려 있다.  아니, 밀렸다고 말하기도 힘들만큼 저 멀리 내 기억속으로 사라져가는 것 같다.  날씨와 업무량에,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이것저것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쌓아놓고 읽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가는 것 같아 걱정도 많이 하고 있다.  이제 다음 주부터 거의 열흘 단위로 7월에 지른 알라딘의 책들이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갖고 있는 한국어 책은 완독률 100%를 자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이들도 80%대로 떨어지는 것 같다.  영어책들의 경우 워낙 예전부터, 그러니까 읽기속도가 느린 시절부터 사들여 버릇한 덕분에 완독률은 아무리 잘 잡아도 70% 이쪽저쪽이 아닐까 하는데, 한국어 책도 이제는 점점 더 사들이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독서에만 집중하기에는 일단 직업적으로 무리가 있다.  요즘도 유행하는 것 같은 각종 자계강사나 독서강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취미로 읽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한눈을 팔면 확 뒤쳐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소원도 아니고 희망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 만약 일을 매우 적게 하고도 삶을 그럭저럭 원하는 형태로 이어갈 수 있다면 아마도 남는 시간은 독서와 운동/무술, 그리고 하고 싶은 공부로 채울 수 있을텐데 말이다. 

 

8월에는 조금 더 분발하자.  뭐 이런 얘기다.  후덜덜한 엄청난 양의 책들이 몰려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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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2 0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2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5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6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6 0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6 0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까지 쓴 글을 다듬고 정리하여 책 한 권으로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고픈 마음이 있다.  물론 출판이나 인세 또는 유명세를 보는게 아닌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작은 희망인데, 어제 마침 조금 일찍 업무를 마치고 시간을 낼 수 있어 프롤로그를 써봤다.  간만에 평일, 해가 밝은 시간에 시원한 카페에 앉아 아이스모카를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끼적거리다 무라카미 류를 읽다가 하면서 작업한 글이다.  


프롤로그: 태초에 책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내 기억이 닿는 가장 먼 과거의 순간부터 책은 늘 내 옆에 있었다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단편적인 몇 개의 장면들이 영화화면처럼 그렇게 내 눈앞에 펼쳐진다.  5살 즈음에 인천 송림아파트에 살던 시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놀이터에서 트럭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가을 무렵의 저녁 해를 등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가던 모습,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사는 이모가 보내온 예쁜 구두를 신고 신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가 한바탕 구르고 울던 모습, 그리고 조금 더 나중에 살던 도화동의 단독에서 따끈한 구들장에 배를 깔고 엎어져서 책을 보던 내 모습이 그들이다어렵던 시절에도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에는 늘 책이 가득했는데, 서울의 모 백화점에서 팔던 월트디즈니 동화전집과 카세트 테이프는 그 당시로는 드물게 책과 테이프 모두 국어본과 영어 원문이 같이 들어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그렇게 집에서 사주는 책을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읽었는데,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세계위인전기 전집, 백과사전세트, SF전집과 함께 청아출판사에서 나온 이야기 세계사, 중국사, 그리고 한국사를 열심히 읽던 모습이 대략 중학교 2학년 무렵까지의 내 독서편력이다그러다가 3학년 때부터는 김용의 무협지를 무려 점심값을 아껴가면서 한 권씩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내게도 독서의 정체성 같은 일종의 자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그 시기부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을 들려 책을 구경하고 갖고 싶은 책은 돈을 모아서 한 권씩 구입하곤 했었다선인재단의 가장 꼭대기에서 교문까지 걸어서 내려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거기서부터 제물포 지하상가를 통과해서 버스 역까지 내려오는 시간은 15분 정도였고, 그 중간에는 오락실, 분식집, 술집, 당구장과 함께 서점들도 여럿 있었는데, 구매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정책적(?)인 차원에서 구매는 당시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실직한 선생님께서 운영하던 서점에서 하려고 노력했다그 서점에서 사 읽은 책들 중, 니벨룽겐의 노래, 서부전선 이상없다, 그리고 나의 투쟁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서 쉬고 있다물론 부모님 몰래 사서 숨겨놓고 읽던 공작왕과 북두신권 해적판도 잊을 수 없다.  집에서 사주지 않는 책은 용돈을 아껴서 사들였고, 모자란 부분은 밥값을 아껴서 채웠다예를 들어 점심으로 백반을 사먹으라고 준 돈 1000을 라면으로 때우면 약 700원 정도가 남고, 그 짓을 5일간 되풀이 하면 책 한 권 값이 나온 원리인데, 더 모자란 경우에는 버스표를 팔고 나머지 거리를 걸어가는 방식으로 충당했다내가 갖고 있는 김용의 책 대부분이 그렇게 얻어진 것인데,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그 옛날 인세도 지불하지 않고 들여온 김용의 소설 전부를 금사 벽혈검을 제외하고는 모두 갖고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훌쩍 미국으로 와버렸는데, 이 시기부터 책이라고는 여름방학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는 시기를 택해 이런 저런 CD와 함께 사들여 미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전부였기에 그리 다양한 독서를 할 수는 없었다영어로 된 책이야 지천에 깔려있었지만, 당시만해도 영어 = 공부였고, 영어책을 재미로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부모님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한국어로 된 책은 내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고리였기 때문에 신주단지처럼 갖고 있는 책을 모시고, 읽고 또 읽고 했던 것 같다이 시기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이문열의 평역삼국지와 청아출판사의 역사책 시리즈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지금이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비교적 쉬운 경로로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고, 책도 좋았지만 수퍼닌텐도로 구현된 당시 최고의 오락게임인 Street Fighter 2와 운동, 영화, 그리고 몇 안 되는 현지친구들과 노는 일에도 시간을 빼앗기느라 갖고 있는 책이 고장 책장 두 개가 채 못 되었기 때문에 일단 다양한 책을 읽기보다는 한 권을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그때 만약 영어책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였더라면 아마도 한 10년은 더 빨리 R. A. Salvatore Robert Jordan같은 판타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유럽역사를 전공한 덕분에 교과서로 쓰인 고전을 중심으로 영어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살면서 처음으로 문학을 제대로 접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려고 로스쿨로 진학하게 될 것이었지만, 95년 입학 당시만 해도 역사를 공부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꽤 열심히 책을 보고, 서점을 돌아다니고 했는데, 따르던 몇 교수님의 방에도 종종 들려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등 꽤나 열정적인 공부를 했었다물론 성적은 생각만큼 나와주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재미있는 공부를 한 처음이자 지금까지는 마지막의 4년으로 남아 있는 UCSC의 맑은 공기를 맡으며 보낸 대학생활은 내 인생의 큰 자산이다지금도 찾는 다운타운의 헌책방이자 중고음반을 파는 LOGOS와도 이때 맺은 인연을 시작으로 근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에만 해도 하드커버나 가죽으로 제본된 장정본에 대한 욕심은커녕 그런 것들 것 대한 인식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되는대로, 손길이 가는 대로 책을 구했는데, 특히 교과서로 쓰인 녀석들은 거진 값이 저렴한 펭귄문고판이 대부분이라서 지금은 그 두께가 반 정도로 줄어버린 채 보관되고 있는데 나이와 함께 떨어진 시력 덕분에 2002년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한 뒤로도 눈은 계속 나빠졌기 때문에 이 책들을 읽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한때는 싹 정리하고 큼직한 녀석들로 바꾸어 나갈 생각도 했었지만, 좋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영광이나 미래의 기대만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은 안쓰러움을 넘어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달리 보면, 누구나 이런 시기를 거쳐서 보다 더 안정적인 삶의 시기에 들어서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다결국 문제의 본질은 일종의 balancing인데, 그런 의미에서 난 로스쿨 생활 내내 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공부는 늘 어렵게 마련이지만, 적성에 맞는 공부에는 지식을 얻는 즐거움이 있다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공부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큰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데, 돌아보면 로스쿨 공부가 나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차라리 변호사인 지금 실무를 통해 특정분야의 일과 법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지금은 재미를 느끼지만, 법률의 바탕공부는 정말 재미없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했다그나마 나를 버티게 한 것은 과거도 아닌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었는데 시험에 붙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보니 그 희망은 일루션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로스쿨 시절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몇 년간은 거의 책을 읽지 못했다내 독서인생을 하나의 컬러차트로 만든다면 이 시기는 아마도 백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 초입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물꼬는 대망시리즈로  1부에 구성된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쓰였다야마오카 소하치라는 걸출한 대하소설작가의 책인데, 손자병법, 삼국지와 함께 기업인들이 꼽는 경영서적들로 늘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특히 이 책에는 영웅호걸과 기인이사, 그리고 미녀들이 등장하는 모험담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인생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에 내 생각으로는 30대에 즈음하여서는 누구나 한번 정도는 읽어봐야 할 책이다오다 노부나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어지는 일본통일의 시기를 권력의 중추에서 보내면서도 살아남아 종국에는 일본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는 200년간 이어진 평화시기를 연 일통강호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하나의 재미라고 하겠는데, 당시 나는 이 책을 통해, 꿈을 품되, 현실에 맞춰 가장 먼저 해 나갈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배웠고, 이로 인해 상당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마음으로 받들지 않는 사람을 보스로 받들고 그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적응하고, 힘을 길러 자신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는 이렇게 읽은 책을 실생활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대비하여 하나씩 배워진다.

 

이때부터 연간 읽은 책의 권수를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는데,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해 평균 220여권을 읽은 것 같다그리고 2011년부터는 읽은 것을 남기기 위해 알라딘에 서재를 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면서 연습하는 독서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까지가 어제 쓴 글의 전부이다.  정말 글모음을 만들게 된다면 여러 번 고쳐 쓰게 될 것이지만, 점심을 먹다가 심심해서 한번 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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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0 0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0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4-07-26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ransient-guest 님께서는 아주 일찍 미국으로 건너가셨군요. 유럽사를 전공하셨다는 것도 흥미롭고, 지금 하시는 일도 흥미롭네요. 그리고 독서 편력도 정말 독특하신 데가 많고요.

아무튼 책을 펴내기 위해 시작한 '이번 시도'가 부디 좋은 결실로 이이지길 바라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4-07-28 02:58   좋아요 0 | URL
안정을 추구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끊임없는 배움과 변화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독서도 그런 취지에서 가급적 통달을 목표로 장르를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구요. 격려 감사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