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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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보통의 글은 나름 꽤 사변적이어서 역자가 글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중간도 못 가는 번역이 되기 쉽다. 논리의 흐름을 툭툭 끊어 놓으면 역자의 말만 믿을 수 밖에 없는 가엾은 독자들은 어떤 대목에서는 정말로 머리를 풀고 길거리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을 거다. 오늘은 원서 바로 2째 페이지에 나오는 오역을 한 번 살펴본다.

원문: 2page

Yet after an exhausting and fruitless search, we may be forgiven [or at least understood] for our decision to share mortgages with a being whose qualities in no way exhaust our imagination, but who is nevertheless the finest specimen to have yet betrayed a sustained interest in us, and whose hunched back, curious politics, or high-pitched laugh we find the energy to ignore, retaining a hope of upgrading if a better candidate should subsequently announce themselves.

역서: 8page

보람도 없이 지치도록 탐색한 끝에,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와 주택대출금 부담을 함께 짊어지기로 한다면 그것은 용서[적어도 이해]받을 만한 일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버리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굽은 등과 특이한 정치적 견해, 새된 웃음소리는 무시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

배우자 감으로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라,,, 어떤 존재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그 사람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는데 그래야 좋은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정치적인 견해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그의 못마땅한 점을 무시해야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날 희망이 있다고 한다고 한....

제발!!!!!!!!!!!!!!

초벌번역이란 게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그런 번역을 역자나 편집자가 다시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인쇄해버린 것일까?

“a being whose qualities in no way exhaust our imagination,”은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가 아니라 ‘절대로 우리의 상상력을 다 끌어낼 만한, 즉 이해하고 또 상대하는 데 우리의 상상력을 충분히 사용할 만한 자질이 없는 따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별로 상상력이 필요 없어' 식의 얘기겠지. 어쨌건 따분한 인간이 졸지에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상적인 남자친구로 바뀌었으니 당사자의 기분은 좋을 것 같다.

“the finest specimen to have yet betrayed a sustained interest in us,”도 못지않은 오역이다. ‘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버리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해석을 했는데 여기서 betray란 동사는 ‘버리다’는 뜻이 아니라 ‘무심코, 의식하지 못한 채 보여주다’란 뜻이다. 좋아하면 말로 안 해도 행동으로 다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 해석도 “이제까지 우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인간들 중 그나마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됐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덜컥 그를 남자친구로 낙점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의 부족한 자질들, 즉 그의 꾸부정한 자세,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상한 처신(정치적 견해가 아니다), 새된 목소리를 참아낼 힘이 내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놓고 더 좋은 킹카가 다가오면 차를 바꿔 탈 꿈을 꾼다는 것이다.

제안 번역:

지치도록 물색을 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을 때는 대충 한 명 골라서 한 지붕을 이고 살아도 용서를 받을 수[아니 적어도 이해는 받을 수]있지 않을까? 물론 전혀 내 상상력을 돋구거나 할만한 자질을 가진 인물은 아니더라도 이제껏 우리에게 쭉 관심을 보여온 인간들 중에 제일 괜찮은 사람, 그의 꾸부정한 자세와 엉성한 인간 관계, 그리고 새된 목소리도 그냥 저냥 참아줄 만한 사람 말이다. 그렇게 일단 한 다리를 걸쳐놓고 괜찮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거지.

이왕 손을 대었으니 1장을 좀 더 살펴본다.

.....

원문: It sickened Alice to think of love in these pragmatic terms, a question of making do with the misshapen character one had happened to bump into at the swimming baths, a cowardly accommodation with the flawed products of the social world in the name of baser biological and psychological imperatives.

역서: 엘리스는 사랑을 이런 실용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싫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과 사귀는 것은 마뜩지 않았다. 그건 생리적, 심리적 필요라는 미명하에 사교계의 불량품들과 비겁하게 타협하는 거니까.

Misshapen이란 (이 문장에서는)중요한 단어가 빠져있고 social world를 불필요하게 사교계와 연결시켜 놓았다.

제안 해석: 엘리스는 이런 실용적인 관점에서 사랑을 생각하기 싫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못생긴 남자에 적당히 안주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건 저열한 생리적, 심리적 절박함을 해결하기 위해 비겁하게도 세상의 불량품들에 만족하는 짓거리이다.

.....

원문: She had learnt that god was dead and Man [that other anachronism] was on his last legs as an embodiment of an answer to Life,

역서: 신은 죽었으며 삶의 해답을 체현하는 건 인간임을 알았다.

어차피 어려운 이야기니까 대충 해석해도 상관은 없겠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가끔 나같이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있으면 원문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On his last legs’은 사전을 찾아보면 “At the end of one's strength or resources; ready to collapse, fail, or die.”라고 나와있다. 이 문장에서 생략할 만큼 의미 없는 단어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Man [that other anachronism]을 역자는 따로 “Man은 ‘인간’이면서 ‘남자’란 뜻이기 때문에, 지은이는 ‘인간’과 ‘남자’를 동의어로 취급하는 이 말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anachronism이란 단어를 쓴 것 같다’고 설명을 했지만 내가 보기엔 that other란 말로 anachronism을 한정한 것으로 보아 신과 인간이라는 대칭에서 신이 사라진 순간 그에 기대 설명이 되었던 인간이란 의미도 구태의연한 것이 되었다는 뜻일 것 같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보통선생이 명확히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 각자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으로 생각하고 이쯤에서 넘어가자.

제안 번역: 신은 죽었으며 삶의 해답을 체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도 한계에 부닥쳐 있다는 것을 배웠다.

.....

번역서에는 (11page) “대단한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고난 장점이 있었다.”란 문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이 어디서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즉 “Alice had always considered herself prettier. She had comforted Suzy that whatever their paucity, compatible men would in due course announce themselves,”이란 문장 사이에 위의 ghost sentence가 해석이 되어 있다. 원문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앞 뒤의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한 문장도 아니다.

여기서 “Whatever their paucity, compatible men would in due course announce themselves”이란 문장도 ‘부족하나마 괜찮은 남자가 나타날 것이고’라는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하지만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해놓았다. 친구에게 이따위를 위로라고 한다면 그날로 우정을 접어야 할 것이다. ‘쓸만한 남자들이 아무리 눈에 띄지 않더라도 곧 괜찮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원래의 뜻이겠다.

원문: She no longer felt like seeing anyone, or rather, the absence of the one made others seem superfluous. She knew many who categorized themselves as friends, her address book was swollen because she asked people about themselves, took an interest in their lives, remembered their stories and therefore skillfully fulfilled their need for recognition. If the urge to resume contact eluded her, it was perhaps because these friends represented company without for that matter alleviating her own sense of being alone.

역서: 그녀는 이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애인이 없으니 오히려 사람이 필요치 않은 듯이 느껴졌다. 친구의 범주에 드는 남자는 많았다. 그녀는 곧잘 남들의 안부를 묻고 생활에 관심을 가져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알은체해주는 성격이어서, 수첩에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넘쳐났다.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들이 혼자라는 느낌까지 없애주지는 못하겠지만. 활기찬 얼굴들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어가 이상하면 대부분 원문해석이 잘 못 된 경우다. 번역문에는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라고 해 놓았기 때문에 ‘앨리스는 친구들이 있으면 구태여 남자가 필요 없겠구나’라고 독자들은 이해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는 “활기찬 얼굴들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아니 세상에, 주인공이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으면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고 했다가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고독이 멈추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면 독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얘기인가?

문제는 마지막 문장을 잘 못 해석한 데 있다.

원문: If the urge to resume contact eluded her, it was perhaps because these friends represented company without for that matter alleviating her own sense of being alone.

역서: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들이 혼자라는 느낌까지 없애주지는 못하겠지만. 활기찬 얼굴들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고독은 멈추지 않았다.

제안 번역: 친구들을 다시 만날 마음이 안 생긴다면 아마도 그건 그들이 같이 있어도 그녀의 고독을 덜어주지 못하는 일행이라는 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원문: elf-pitiers consider themselves tragic figures if jilted in the course of a banal love affair; they suffer from a mild inflammation of the throat and, wrapped in scarves and surrounded by medicines, shed nose-phlegm as though it were pneumonia.

역서: 자기연민에 빠지면 평범한 실연을 당해도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목이 아프다며 스카프를 친친 두르고, 사방에 약을 벌여놓고, 폐렴이라도 걸린 듯 콧물을 흘린다.

실연을 당하면 목이 아프다고 스카프를 친친 두른다? Semicolon ‘;’의 의미를 되새기자. 여기서 ‘;’는 앞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한 번 더 반복함으로써 이해를 돕는 다는 의미이다.

제안 번역: 자기연민에 빠지면 평범한 실연을 당해도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된다. 즉, 가벼운 목 감기에 걸리고도 스카프를 친친 두르고, 사방에 약을 벌여놓고, 폐렴이라도 걸린 듯 콧물을 흘리는 꼴이다.

번역 또는 오역 http://blog.naver.com/as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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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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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랭 드 보통의 여러 번역서들 가운데 이 책이 제일 판매실적이 저조한 것 같습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독자들이 도저히 콘텍스트를 유지하며 읽기 어려울 정도로 오역이 많은 탓도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첫 페이지부터 요령부득의 문장들이 나오는군요.

..........

However gloomy the thought may strike those of ethical disposition, there is difference between letting it bubble discreetly in one's mind while squeezing an orange or skimming through the channels of late night television and hearing it confirmed in the fury of another's accusation, along with a couple of vases sent crashing to the ground to emphasize the point.

역서: 도덕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이런 생각으로 무척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생각이라도 밤늦게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오렌지 주스를 만들면서 떠오르는 것과, 남에게 비난을 듣고 화가 나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려고 꽃 병 몇 개를 집어 던져 깨뜨리고서 실감하게 되는 것과는 다르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결국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게 마련이지만 이런 자기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도덕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겐 좀 불편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 남이 나에게 “그래, 잘났다, 잘났어. 혼자 다 해먹어라” 하며 홧김에 병들을 바닥에 집어 던질 때 나의 우월함을 실감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얘기죠. 밖으로 나의 우월감을 드러내어 사람들의 원성과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는 혼자서 오롯이 스스로의 우월감에 잠기는 것은 무해한 일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번역: 도덕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결국 세상에 쓸만한 인간은 자신 밖에 없다는 이 생각이 무척 암담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오렌지주스를 짜거나 밤 늦게 무료하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과 누군가 내게 “그래, 잘났다, 잘났어. 혼자 다 해먹어라” 하며 홧김에 병들을 바닥에 집어 던질 때 나의 우월함을 실감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

다음 문장에서는 간접적으로, 즉 의도적으로 자신을 깎아 내림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 번역되어있는 문장으로는 이런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군요.

The charm of self-inflicted insults comes in knowing how far to dig the knife and, with a surgeon's precision, how to avoid the rawest nerves. It is as harmless a sport as tickling oneself. When Elton John sang a beautiful song in which he lamented to his beloved, in the well-worn tradition of singers and moist-eyed poets, that he only wished his art could do justice to his ardour (‘Your Song’, 1969), we would be foolish to suppose that he doubted his talent for even a moment.

역서: 자해소동을 자주 빚는 이들의 특징은 현재 부엌칼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고, 외과의사처럼 가장 민감한 신경은 잘도 피해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신을 간질이는 것만큼이나 무해한 오락이다. 엘튼 존이 부른 아름다운 사랑 노래 가운데 사랑했던 이에 대한 비탄을 담은 곡이 있다. 낡은 전통을 고수하는 가수들과 우수에 찬 고고한 시인들 속에서 그는 오직, 자신의 열정(1969년 발표한 ‘너의 노래’)이 작품 속에 제대로 구현되기만을 원했다. 비록 한 때이긴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재능을 의심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번역을 해서도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저 경이로울 지경입니다. 거의 코믹한 수준이군요.

우선, dig the knife는 (신기하죠, 친구란 영화에서 보면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을 담근다고 하잖아요?) 찌른다는 뜻입니다. 더 큰 우월감과 만족을 얻기 위해 짐짓 자기비하를 하는 사람들을 자해하는 행위에 비교하는 거죠. 하지만 그들은 얼마만큼 깊이 찌르면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지 잘 알고 있고, 또 가장 민감한 부분은 교묘하게 피해서 자해를 하기에 결국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한 짓거리란 점에서는 자신을 간질이는 오락에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in the well-worn tradition of singers and moist-eyed poets,’는 ‘낡은 전통을 고수하는 가수들과 우수에 찬 고고한 시인들 속에서’가 아니라 ‘가수들과 감상적인 시인들이 이전부터 으레 해오던 방식으로’라고 해석을 해야겠습니다. ‘do justice to his ardour’도 ‘자신의 열정이 작품 속에 제대로 구현되기’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맞겠죠. ‘we would be foolish to suppose that he doubted his talent for even a moment’ 역시 ‘비록 한 때이긴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재능을 의심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가 아니라 ‘엘튼 존이 자신의 예술적 재능으로는 자신의 열정을 제대로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식으로 엄살을 떨 때 그 말을 잠시라도 믿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해야겠습니다.

번역: 어느 정도 깊이 찔러도 목숨에 상관이 없는지, 어디는 피해서 찔러야 할지 외과의사처럼 정확하게 알고 있을 때 자해는 매력적인 수단이 된다. 그것은 자신을 간질이는 것만큼이나 무해한 오락이다. 가수들과 감상적인 시인들이 이전부터 으레 해오던 것처럼 엘튼 존이 연인에 대한 그의 열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슬퍼하는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불렀을 때 그가 진짜 잠시라도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가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http://blog.naver.com/asnever

혹시 내가 먼젓번엔 오해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몇 페이지를 더 들쳐본다.

어떤 번역작품은 독자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아니 그 보다는 정신적인, 심지어는 신체적인 고통까지 독자들에게 가할 수 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옛날에 영국에서 행해지던 고문기구 중에 rack이라는 것이 있었다. 사지를 잡아당겨 뼈가 탈구되고 근육이 끊어지게 만드는 가혹한 심문방법이었는데 여기에서 rack one’s brain(머리를 쥐어 짜다)이란 표현이 유래했다고 한다.

오역으로 엉망진창인 문장들을 책으로 내놓는 것은, 말 그대로 독자들의 머리를 형틀에 올려놓고 이해의 폭을 강제로 비틀고 잡아당겨서 마침내는 ‘그런 뜻이겠지’라는 타협과 굴종을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일이다. 독서를 통해 즐거운 인식의 확대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인식의 퇴행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

글에 이어서 책에서는 거짓 겸손, 즉 겸손을 가장한 자화자찬에 관한 글이 계속 이어진다. 바로 앞에는 엘튼 존이 자신의 노래실력으로는 연인에 대한 그의 열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탄식하는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나왔다.

원문: 2page The ability to deprecate his musical skill was premissed on an apparently humble but profoundly arrogant belief that he had in fact written something of a gem.

역서: 12page 이렇게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탓할 수 있다는 것은 겸손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보석 같은 작품을 썼다는 믿음은 사실 아주 거만한 행위다.

마치 산탄총알처럼 공중으로 흩어지는 해석이다. 목표를 향해 뿌려지는 그 숱한 총알 중에서 한 개라도 의식에 걸려 의미를 형성하겠지 하는 역자의 느긋함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Premise (전제가 되다)란 단어만 제대로 살렸으면 저렇게 자의적인 해석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말은 엘튼 존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 짐짓 겸양을 떨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정말 보석 같은 노래를 작곡했다는 자만심이 전제되었기에, 즉 그런 자만심이 마음에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제안 번역: 그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비하할 수 있었던 것은, 겉으로는 겸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거의 보석 같은 작품을 썼다는 거만한 믿음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행위였다.

..........

이런 자기비하는 “to show how much he can spare”를 위한 남자들의 유희라는 말이 뒤 따른다. 역자는 이 문구를 “그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라고 해석했는데 can spare는 ~없이 지내다, 즉 do without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다음에 나오는 문장들에 비추어 볼 때도 “그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고 문맥에도 어울리겠다. 하긴, 다음에 나오는 문장들도 모두 오역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원문: 2page What musical confidence it must take to sing melodiously one has not a jot of it. What greater assurance one attain than casually to spare the thought one is a self-centered churl?

역서: 12page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꼭 필요한 음악적 확신이 전혀 없는 이들도 있다. 사실 자기 중심적 얼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접어두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건 오역을 넘어선 반역이다. 이 문장을 어떻게든 녹여보려고 산화해갔을 독자들의 뇌세포에 애도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Spare란 단어의 해석도 계속 난항을 보여준다. 앞에서는 ‘없이 지내다’ 란 뜻이었지만 여기에서는 share, 즉 ‘나누어주다, 알려주다’ 란 뜻이다.

앞의 문장, 즉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게 남자들의 유희라는 내용과 연결되어서 해석을 하면

제안 번역:

도대체 얼마나 음악에 자신이 있으면 자신은 음악에 관해서는 전혀 내세울 게 없다는 내용을 멋지게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또, 얼마나 자신감이 있어야 자신은 자기중심적인 잡놈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을까?

.....

이런 자기 겸양은 “엄마, 이것 좀 봐요, 나 손 놓고도 자전거 탈 수 있어요” 하고 엄마에게 뽐내는 아이들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원문: 2page

“Johnsonian deprecation appears as a branch of cocksure, ‘Look, Mum, no hands’ cycling boast, in which the need to keep a firm grip on the handlebars of self-respect can temporarily be relaxed, so one can freewheel down the hill shouting merrily, ‘I’m such a lousy singer,’ and ‘Oh, what a brat I am.’

역서: 13page

새뮤얼 존슨이 지적했던 것은 독선과 자만의 양상을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자전거 실력을 뽐내는 아이를 보라. “보세요, 엄마. 이제 손 놓고도 탈 줄 알아요.” 잠시 긴장을 늦추며 뿌듯해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전거 핸들을 꽉 움켜잡아야 한다는 사실일 뿐이다. 누군가는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난 정말 재수없는 가수야”, “나는 정말 개차반 같은 놈이야”라고 유쾌하게 소리를 지르며 언덕 아래로 내달릴 수도 있겠다.

“자전거 핸들을 꽉 움켜잡아야 한다는 사실일 뿐이다” 는 거꾸로 해석을 해놓았다. One을 누군가로 해석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고 lousy는 ‘재수없는’ 이 아니라 가수가 노래실력을 비하한다는 뜻이므로 inferior, worthless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제안 번역:

새뮤얼 존슨이 지적했던 것은 독선과 자만의 양상을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자전거 실력을 뽐내는 아이를 보라. “보세요, 엄마. 이제 손 놓고도 탈 줄 알아요.” 사람들은 자존심이란 자전거 핸들을 잠시 놓고는 페달도 밟지 않는 채 “난 정말 형편없는 가수야”, “나는 정말 개차반 같은 놈이야” 라고 유쾌하게 소리를 지르며 언덕 아래로 내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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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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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이 너무 자주 눈에 띄네요.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에 3번 째로 소개된 DRUG CULTURE (번역서에는 “잠자리에 드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소개 되어 있음)란 제목의 수필을 읽어 봅니다.

먼저, 제게는 해석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몇 개 골라 보겠습니다.

“a small selection of movies on the premium movie channels mainly involving nubile actresses disporting in the altogether.” 번역서 해석: 프리미엄 영화채널에서는 주로 결혼 적령기의 여배우들이 유쾌한 소동을 벌이는 영화들을 틀어줄 것이다.

“in the altogether”는 “벌거숭이로, 나체로”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죠. 밤 늦게 방영되는 선정적인 프로그램들을 젊은 여배우들이 “유쾌한 소동을 벌이는” 영화라고 번역하는 것은 좀 어색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프리미엄 영화채널에서는 주로 묘령의 여배우들이 벌거숭이 상태로 농탕질을 치는 (너무 고어인가요, 그럼 설쳐대는 정도로 번역을 해도 괜찮을 것 같구요) 영화들을 틀어줄 것이다.” 쯤으로 번역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순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에세이의 후 반에 나오는 내용들은 (다음 문장에서 바로 그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훨씬 적나라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런 배려는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Another more intriguingly asks, "Have you ever treated a vaginal yeast infection in the middle of nowhere?" (Not knowingly!)”

번역서 해석: 또 다른 광고는 “질 세균감염에 대한 만족스러운 처치를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같은 보다 자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문장은 미국의 넘쳐나는 건강서적들에 나오는 광고문구들 중의 하나를 인용한 것입니다. 질 세균감염 같은 질병은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운 질환이니만큼 “남의 눈길을 피하기 의해 멀리까지 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느냐, 이젠 그런 불편을 경험하지 말고 이 약으로 치료를 해봐라는 의미의 광고문구로 해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장에 나오는 intriguingly는 “자극적”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남자인 자기에게는 이런 선전문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썼을 것이고 번역서에서는 해석을 하지않고 건너 뛴 "Not knowingly!"란 문장까지 이런 맥락에 입각해서 번역을 하면

"또 다른 광고는 ‘질 세균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멀리까지 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라고 나의 호기심을 북돋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한, 난 그런 치료를 받아본 적은 없지.)"

번역시에는 가능한 한 원 저자의 글을 생략하지 않고 다루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복선과 암시로 가득한 브라이슨의 문장들을 모두 국어로 되살리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르겠지만 Bill Bryson의 글을 번역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런 고통을 떠맡겠다는 약속이기도 할 것입니다.

“The television lectures, which nearly all appear to have been filmed in the early 1970s, typically involve a geeky-looking academic with lively hair and a curiously misguided dress sense (even by the accommodating standards of that hallucinogenic age),

” 번역서 해석: 대부분 1970년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방송 강좌에는 주로 헝클어진 머리에 이상한 옷차림을 한 괴짜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번역서는 (even by the accommodating standards of that hallucinogenic age)란 문장을 생략하고 넘어갔습니다. 방송강좌에 출연하는 강사들의 행색을 유머스럽게 비꼬는 내용인 만치 “대부분 1970년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방송 강좌들에는 주로 헝클어진 머리에 (웬만하면 모든 걸 대충 넘어가주던 대마초에 찌든 70년대 히피문화의 관점에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복장관념을 가진 괴짜 학자들이 등장하는데,”로 문장을 살려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빌 브라이슨이 보안검색과 관련해 자신이 경험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글 중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내용인 즉 슨, 막상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사진이 붙은 신분증명서가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브라이슨이 마침 지니고 있던 자신의 책 표지에 실린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기까지 했음에도 정당한 신분확인증명서류 목록에 책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하는 보안요원들과의 실강이를 묘사하는 글입니다.

“I need to see some picture ID,” said the clerk, who had the charm and boundless motivation you would expect to find in someone whose primary employment perk is a nylon tie.

번역서: 직장에서의 첫 포상으로 나일론 넥타이를 탔을 것 같은 매력적이고 열의가 넘치는 항공사 직원이 말했다.

브라이슨 특유의 빈정거림이 나타나있는 문장이죠. 이런 느낌과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취업했다고 자랑하는 친구가 “야, 오늘 내가 한 번 거하게 쏠게. 만원 범위 내에서 원하는 거 망설이지 말고 다 시켜!”라고 말 한다거나,,,또는,, 미국에는 가게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의 가격이 1불인 Dollar tree인가 하는 상점들이 있습니다. 호기심에 들어가보면 벽에 붙여놓은 광고들은 엄청 활수하죠. 마치 그 곳에서 인생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겠다는 투의 선전들로 가득합니다. 주어진 문장도 그런 투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차관급이면 몇cc의 자가용, 장관급이면 몇cc, 하는 식으로 직업에 따라 받게 되는 특전이나 혜택이 perk죠. 여기서는 취업한 후 무료로 제공받는 가장 큰 특전이 고작 나이롱 넥타이인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간적인 매력과 열의를 가진 보안요원, 즉, 보안요원들의 심드렁하고 사무적인 태도를 그들의 보잘것없는 직업과 연관시켜 흉보고 있는 겁니다.

제안 번역: 공짜 나일론 넥타이나 유니폼으로 받는 알량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가능한 최대의 매력과 열의를 가지고 보안요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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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 윈투어 - 스타일리시한 포스를 만드는 39가지 자기경영법 Wannabe Series
제리 오펜하이머 지음, 김은경 옮김 / 웅진윙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번역서인지 요약서인지,,원서의 반도, 아니 1/3도 번역이 안되어 있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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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never 2009-12-2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ront Row : Anna Wintour가 워너비 윈투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더군요. 아니, 번역이 되어 나온 줄 알았더니 한글로 된 요약집이었습니다. 원문의 반은 고사하고 채 삼분의 일도 번역이 안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제리 오펜하이머라는 인기작가가 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모델, 안나 윈투어의 전기, ‘Front Row : Anna Wintour’ 의 한글 번역본인줄만 알고 책을 집어들었을 많은 독자들이 얼마나 황당해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아니, 꼭 그렇진 않겠죠.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을 했다면 이런 책을 펴낼 배짱이 생겼겠습니까? 원래 원서가 그렇게 나온 책이려니 독자들이 생각하리라고 여겼겠죠.
잠깐, 제가 요약본이라는 책의 형태에 대해 이의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수능을 위해 줄거리만 요약해 놓은 교양서적시리즈들이 불티나듯 팔리고 있듯, 바쁜 세상에 이런 저런 이유와 필요로 내용만이라도 알아야겠다는 독자들에게 다이제스트 형태의 출판물이 공급되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의 원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디, 제발, 그런 경우라면 책 앞에다 '요약본'이라고 표시는 해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문화산업까지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상도의라도 차려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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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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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역이 좀 심한 느낌입니다. 약간 책의 원문내용이 복잡해지면 상상력이 뛰어난 독자라도 일관된 흐름을 읽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오역이 나오네요.. 3장”A ‘Democratical Phrenzy’: America In Tha Age Of Revolution”을 예로 들어 봅니다. 미국독립전쟁 초기에 독립군인 식민지군대가 승리를 거둔 중요한 전투였던 벙커힐 전투가 사실은 벙커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벌어졌음에도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연원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원문: Though the battle was intended to take place on Bunker Hill (these matters being rather more formally arranged in the eighteen century), for reasons unknown colonial troops under Colonel William Prescott fortified neighboring Breed’s Hill instead, and it was there that the first pitched battle of America’s war for independence was fought. 번역서: 이 전투가 본래 벙커힐에서 시작될 예정이었지만(이 문제는 18세기에 가서야 공식적으로 정리되었다) 윌리엄 프레스콧 장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근의 브리즈힐에 요새를 세웠다. 미국 독립전쟁의 첫 총력전이 벌어진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 되어있는 부분이 잘 못 번역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영국에서 신사들 사이에서 많이 행해지던 결투장면을 떠올리면 좀더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18세기에는 전쟁에서 전투를 치를 때도 미리 적장들끼리 만나 전장과 시간을 정했다는 내용이죠. 즉, ‘비록 그 전투는 원래는 벙커힐에서 시작될 예정이었지만(18세기에는 전투를 언제, 어디서 벌일지 와 같은 이런 문제들은 공식적으로 미리 합의가 되는 편이었기에), 독립군 측의 윌리엄 프레스콧 대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근의 브리즈힐에 진지를 구축했고, 그곳에서 미국 독립전쟁의 첫 총력전이 벌어졌다.” 처럼 해석해야 맞을 것 같네요. 좀 뒤에 가면 사실 영국이 식민지, 즉 독립 이전의 미국에 부과한 세금이 역사책에서 알려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원문: Nor, it should be noted, were the taxes levied on the colonists by any means onerous. 번역서: 식민지 주민에게는 세금도 부과되지 않았다. 번역 제안: 또한,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과된 세금이 절대로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식민지 주민에게는 세금도 부과되지 않았다’라고 해 놓은 후 바로 다음 문장에서 (식민지에 부과된) 인지세를 비롯한 수익 증대를 위한 여러 가지 조처의 중요한 목적은 식민지를 보호하기 위한 자금마련이었다는 문장이 나오면 독자들이 혼선을 일으키겠죠. 다른 문장,,,, 원문: It was hardly beyond the bound of reason to expect the colonists to make a contribution toward the cost of their own defense. Even so, Americans were lightly taxed. 번역서: 식민지 개척자들이 스스로 방위비용을 부담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약간의 세금을 부담했다. 정반대로 번역이 되어있네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당연히 기대할 수 있다’는 내용이잖아요? 번역제안: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비용이므로 식민지 주민들이 비용을 추렴해 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절대로 비합리적인 발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인들에겐 얼마 되지 않는 세금이 부과되었다. 원문: And in any case, Americans seldom actually paid their taxes. 번역서: 그렇게 따지면 미국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번역제안: 미국인들은 실제로는 부과된 얼마 되지 않는 세금마저 거의 납부를 안 했다. “Taxation without presentation is tyranny.” 번역서: 대표 없는 과세는 폭정이다 번역제안: 대표를 뽑아 목소리를 낼 권리도 주지 않고 세금만 부과하는 것은 폭정이다. According to the one surviving eyewitness account – written by a French hydrologist who just happened to be present, 번역서: 생존한 목격자들 가운데 우연히 회의에 참석한 수문학자가 있었다. 번역 제안: 우연히 회의에 참석한 수문학자에 의해 작성된 아직까지 남아있는 목격담에 따르면, 이번엔 R-rated 급의 이야기를 한 번 해겠습니다. 4장, Making a Nation을 읽다 보면 미국의 founding fathers들의 언사가 상당히 상스러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a decidedly earthier and more free-spirited age) 그랬다고 변호를 하면서도 몇 가지 재미있는 저열한 언어사용의 예들을 들어주었습니다. 나열해 놓은 천박한 단어들, 예를 들면 보병을 fartcatcher라고 하는 등 -- 왜냐하면, 군대에서 보병생활을 한 사람은 기억할겁니다, 한 번 행군을 나가면 앞 사람의 엉덩이만 바라보면서 기약도 없이 걷던 그 경험을…그러다 보면 자연히 앞사람의 방귀에 항상 무방비상채로 노출되게 마련이었죠 – 텍스트의 문제일지 아니면 적당한 말을 찾아내기 어려워서일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역서에는 모두 빠져 있군요. 또 하나의 예로 든 것이 헌법제정위원회 의원이었던 Elbridge Gerry가 상비군 (a standing army)에 대해 한 진술입니다. He compared a standing army to an erect penis – “an excellent assurance of domestic tranquility, but dangerous temptation to foreign adventure.” 역서: 그는 상비군을 발기한 성기에 비유하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그것은 가정의 평화는 확실히 보장하지만 외부의 모험에 대해서는 위험한 유혹이다. 이해력이 보통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분이라면 발언의 취지를 이해하실 수 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제가 다시 한 번 부연해서 설명을 하면,,, 일단 문장의 앞 부분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반찬내용이 달라지더라느니 어쩌니 하는 남자들끼리의 객적은 무용담에서 흔히 등장하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문장의 뒤 부분은 언뜻 직관적으로 파악이 안될 것 같군요. 내용인 즉 슨 Elbridge Gerryf라는 분은 상비군을 창설하는데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상비군이 있다면 국내의 질서유지에 확실한 보장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an excellent assurance of domestic tranquility) 미국이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지고 있다면 몸이 근질거릴 거라는 얘기죠. 그러면 항상 불필요하게 밖으로 눈길을 돌릴 것이고 방금 자기들이 독립전쟁을 벌였던 영국의 식민제국주의 같은 위험하고 비도덕적인 행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경고의 발언인 셈입니다. 평소 그들의 생활자세에 비추어 당시의 남자들에 더 큰 설득력을 갖도록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 위의 문장입니다. 제안 번역: 그는 상비군을 실한 남자의 연장에 비유했다 – “잘 사용하면 집안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호시탐탐 밖으로 나돌 기회를 노릴 수 도 있다"는 점에서. http://blog.naver.com/as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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