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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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소설, 아니 그 보다는 영어로 소설을 쓰는 몇 몇 작가들을 좋아해서 대학졸업 후 그들과 함께 늙어가는 기분으로 작품들을 모으고 읽으며 즐겨왔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부쩍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시간이 나는 대로 인터넷에서 번역에 관한 교육이나 모임, 또 번역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블러그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외국에서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귀국한 후 들른 서점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반가워서 일부러 몇 권 사본 적이 있습니다.  Paul Auster나 Bill Bryson등 평소에 좋아하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우리 글로 옷을 갈아입고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자니 뜻하지 않던 곳에서 죽마지우를 만난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그 존재를 모르고 있던, 그 책을 구입했을 많은 독자들과 묘한 연대감이나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고 그 느낌을 좀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충동적으로 번역서들을 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번역해 놓은 우리 말의 느낌이 이상한 경우가 많더군요. 의역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맥락이 어색한 곳들이 말이죠.  몇 곳 원본과 대조를 해보니 참담할 지경의 오역들이 눈에 띄더군요. 얼마 전까지 느꼈던 친밀감과 호감이 배반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부러 원서와 번역서를 대조해 읽지 않더라도 오역의 문제는 이 곳 저 곳에서 계속 마주치게 되더군요. 


    예를 하나 들자면 Paul Auster의 작품 중 Mr. Vertigo라는 책으로 학생들의 영어강독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첫 장을 넘어가기도 전에 놈들이 제가 해석을 해주는 내용에 딴지를더군요.  알고 보니 공중곡예사라는 제목으로 나온 번역서를게 말하면 부교재로 제대로 말하면 컨닝용으로 보고 있더군요.  그 책 첫 장 중에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부분에 느닷없이 “공중제비 1번에 1달러씩 받으려고 그녀가 어떻게 재주를 부렸고"란 내용이 나왔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how she turned the tricks over in East Saint Louis for a buck a tumble이라는 원문이 그렇게 번역되어 있더군요.

  
   ‘Turn the trick은 원래 매춘부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말에서도 남녀간의 특정한 활동을 그리 고상하게 묘사하지 않을 경우 ‘뒹군다는 말을 쓸 때가 있는 것처럼) a tumble은 한 번 같이 뒹구는데 (자는데)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일껀 가르쳐주니 학생들이 자기들 참고서랑 틀린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그녀가 한 번 자는데 1불씩 받고 몸을 팔았는지로 해석을 해야 할 문장이 자습서에는 기계체조선수의 묘기를 설명하는 듯한 아주 건전한(^^) 내용으로 바뀌어진 것이죠.  학교를 빼먹고 길바닥을 헤매는 농땡이 학생들을 잡아다 학교나 집으로 돌려보내는 선생님이나 경찰 등을 말하는 truant officer를 말 그대로 해석해서 나태한 공무원으로 해석해 놓은 것은 애교로 치더라도 전선에서 “적의 독가스를 맡고 사망했는지”를 “어떻게 술에 취해서 죽었는지”로 번역하는 등 원전의 detail한 부분들을 마음대로 바꾸어 놓는다면 원서를 읽은 사람들과 역서를 읽은 사람들이 과연 굵직한 줄거리 외에 동일한 책을 읽은 경험, 심지어는 감동을 공유할 수 있을 지 심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취미로 하는 작업이라면 모르겠지만 프로페셔널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오역이 지적이 된 후에는 출판사나 역자 본인의 홈페이지에 정오표를 게시하든 정확한 번역을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진정한 전문 번역인이 아닐까요? 

 

    이런 저의 의견에 대한 공감의 확산이어도 좋고 무책임한 번역에 대한 압박이어도 좋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우선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라도 시간이 되는대로 한 번씩 들여다 보고 명백한 오역들을 채집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제가 직접 번역을 해봐야겠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구요.  잘못된 오역을 보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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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7-11-1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110%!^^
정말 어처구니 없는 번역들이 많아요.
저도 정영문이 번역한 레이몬드 커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을 읽고 화가 나서
문학동네에 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글쎄... 같은 돌로 두 여자를 죽이는 결말을 같은 바위에서 두 여자랑 섹스를 했다...로
끝내더군요. 오역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결말을 바꾸는.... ㅠㅠ
앞으로 좋은 작업을 부탁드려요^^

asnever 2007-11-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커버의 드라이한 문장을 좋아합니다.

정영문씨가 정말 죽이는 (^^) 번역을 했군요. (정말 다의적인 표현입니다,,,)
대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하는 번역도 아니고 왜들 그러는지,,,,,

당분간 취미차원에서 많이 팔려나간, 그러면서도 부실한 번역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독자들에게 해를 입힌 번역서들에 gadfly역할을 좀 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