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실수차원의, 그래서 더 명백한 오역들을 짚어 봅니다.

번역본 19쪽에는 캐나다에 대한 주인공의 심정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도에 있는 고향, Pondicherry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지만 자신이 새로 살게 된 땅에 대한 유머러스한 평가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제 2의 고향, 캐나다에 대한 주인공의 애착을 고백하는 장면이죠.

excerpt: It is a great country much too cold for good sense, inhabited by compassionate, intelligent people with bad hairdos. Anyway, I have nothing to go home to in Pondicherry.

공경희씨 번역: 캐나다는 너무 추워 정신을 차리기 차리기 힘든 대단한 곳이고, 헤어스타일이 제멋대로인 선량하고 지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어쨌거나 폰디체리에는 내 마음이 젖어들 만한 게 없다.


허리케인에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 대한 신문 기사에서 흔히 보이지만 (ex: People actually have nothing to go home to. Your heart goes out to them) ‘have nothing to go home to’는 돌아갈 거처가 없다는 숙어적인 표현이죠. “어쨌거나 폰디체리에는 돌아갈 일가친척 하나 없었다”정도로 번역이 되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Come home to란 숙어가 ‘~이 절실히 느껴지다, 가슴에 사무치다’의 뜻으로 쓰이고 Bring something home to a person이 ‘~에게 간절히 호소하다, ~에게 ~을 절실히 자각시키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 때문에 “내 마음이 젖어들”이란 표현이 나오지 않았을까 거꾸로 추론도 해봤습니다.



번역본 19쪽에 주인공이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인도식당에 갔을 때 겪었던 일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방식대로 손을 이용해 음식을 먹다가 이제 막 인도에서 온 무지랭이냐는 식의 업신여김을 받고 주인공이 충격을 받는 내용입니다.

excerpt: My hands trembled. My somber lost its taste.

공경희씨 번역: 손이 떨렸다. 큰사슴 고기가 맛이 없어졌다.

보트에서의 생활의 영향으로 주인공이 육식의 습관을 들인 걸까요?
Sambar를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해보면 동남아시아산(産)의 세 갈래 뿔을 가진 큰 사슴이라고도 나와있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야채와 콩가루, 카레가루 등을 주재료로 한 채식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요리 이름입니다.



챕터 2는 7줄의 짧은 분량으로, 저자가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인 Piscine Molitor Patel을 처음 본 느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끝 부분에 다음 문장이 나옵니다.

excerpt: Speaks quickly, hands flitting about. No small talk. He launches forth.

공경희씨 번역: 손을 움직이면서 빨리 말한다. 잡담은 하지 않는다. 그가 앞으로 나아간다.

졸역: 손을 움직이면서 빨리 말한다. 잡담은 하지 않는다. 지체 없이 그가 말을 시작한다.

Launch forth에 ‘날려 보내다, 쏘아 보내다, 쏘아진 듯 나서다’의 의미도 있겠지만 위 컨텍스트에서는 ‘그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어색합니다. 위의 상황에서 처럼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 동작을 설명할 때는 ‘launch forth’는 거리낌 없이, 구애됨 없이 긴 장광설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냥 말을 시작하다란 의미만 건져도 될 것 같구요. 저 같으면 “지체 없이 그가 말을 시작한다”로 해석을 하겠습니다.



21페이지에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주인공의 친구이기도 한 마마지가 주인공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영을 가르치게 된 첫 날 바닷가로 주인공을 데리고 간 마마지가 바다를 가리켜 보이며 “이것이 너에게 주는 내 선물”이라고 말하죠.

excerpt: “And then he nearly drowned you”, claimed Mother.

공경희씨 번역: “이제 마마지가 널 물에 빠뜨릴 거다.”

졸역: “그 날 마마지가 널 거의 익사시킬 번 했단다.”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nearly와 과거동사가 같이 쓰이면 ‘거의 ~할 번했다’로 해석을 해야겠죠.



다음엔 약간 미묘한 부분을 한 곳 살펴보겠습니다.

excerpt: Life is so beautiful that death has fallen in love with it, a jealous, possessive love that grabs at what it can. But life leaps over oblivion lightly, losing only a thing or two of no importance, and gloom is but the passing shadow of a cloud.

공경희씨 번역: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우울은 구름의 그림자를 지나칠 뿐이고.

졸역: 삶이 아주 아름답기 때문에 죽음은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죽음이 삶에 품은 사랑은 삶이 가진 모든 것을 질시하고무엇이든 삶에 관한 것이면 움켜쥐려는 소유적인 사랑이었다.  하지만 죽음이 삶에 대해 아무리 집착하더라도 망각으로 특징화되는 죽음을 삶은 가볍게 넘어선다. 물론 몇 가지 소소한 피해를 입긴 하지만, 삶이 경험하게 되는 우울함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같을 뿐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이해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삶이 아주 아름답기 때문에 죽음은 삶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삶이 가진 모든 것을 질시하고 가능한 무엇이든 삶에 관한 것이면 움켜쥐려는 소유욕의 사랑이라는 것이죠. 번역에서처럼 사랑이 “시샘 많고 강박적인” 것이 아니고요. 하지만 죽음이 삶에 대해 이런 끈질긴 집착을 보이더라도 삶은 망각으로 특징화되는 죽음을 쉽게 넘어서죠. 물론 몇 가지 소소한 상실이 있긴 하겠지만,,,(제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들 중에는 시들어 가는 연인의 얼굴이나 전 같지 않은 입 맛 등도 그런 예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울은 구름의 그림자를 지나칠 뿐이고”란 대목도 이상합니다. 우울이 구름 그림자를 스쳐지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우울함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그토록 아름다운 삶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원래 의미 이겠지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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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1-1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제 블로그에 글 남기신 걸 보고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왔어요. 엉터리 번역들이 님 손에 된통 혼나게 생겼군요. 앞으로 종종 들릴게요.

수강생 2009-02-2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서로 파이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제 실력 탓인지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번역서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상승효과가 있더라구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파이파텔 2023-01-2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lauch forth는 지체없이 말을 시작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영어에 hold forth라는 표현이 있죠. 그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도 안되는 번역 ㅠ

파이파텔 2023-01-2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리고 oblivion은 망각이라기보다는 a state of nothingness의 의미같습니다.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죽음을 가볍게 뛰어넘고˝라고 번역되었으면 싶고요. gloom은 우울함의 의미라기보다는 어둠의 의미같습니다. 죽음=어둠으로 비유하는 거죠. ˝죽음이라는 어둠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 같은 뿐이다.˝
 

 

파이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기엔 너무 진지하고 어른들을 겨냥한 책이라기엔 너무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인류학자나 종교학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정도를 썼다는 느낌으로 읽으면 될 책 같습니다. 

excerpt:
The fiasco did not affect me too much. I had already moved on to another story, a novel set in Portugal in 1939. Only I was feeling restless. And I had a little money.
공경희씨 번역: 난 큰 실패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미 다른 이야기를 진척시키는 중이었으므로. 1939년의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다. 다만 마음이 불편했다. 돈도 별로 없었다.

원문은 지은이가 1996년에 출간한 책이 실패를 했었지만 이미 1939년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 새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으므로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마음이 불편했을 뿐이지, 돈도 아직 약간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충격이 덜 했다는 내용이겠죠.
little은 거의 없는 상태, a little은 적지만 있는 상태인 것을 뜻한다는 것을 혼동한 해석입니다.
이런 혼동은 일회성 실수로 끝나지 않고 반복됩니다.

excerpt:
Well, I still had a little money and I was still feeling restless. I got up and walked out of the post office to explore the south of India.
공경희씨 번역: 여전히 돈이 없었고 여전히 불안했다. 나는 일어나서 우체국을 나와, 남부 인도를 탐험하러 갔다.

"돈이 아직 좀 남아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라고 해석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excerpt:
They left Pondicherry in 1954, leaving behind nice white buildings, broad streets at right angles to each other, street names such as rue de la Marine and rue Saint-Louis, and képis, caps, for the policemen.
공경희씨 번역: 1954년, 마침내 프랑스는 멋진 흰 건물과 적당히 교차되는 '드 라 마렝'가와 '생 루이'가 같은 넓은 도로를 남기고 폰디체리에서 철수했다.

'broad streets at right angles to each other'는 서로 직각을 이루고 있는 대로들"이 맞는 해석이겠죠. 바둑판 모양의 계획된 도시모습이 말 그대로 적당히 교차되는 무계획한 도시로 바뀌게 됩니다.


번역을 하면서 어떤 문장이나 묘사가 중요하고 안 중요한지는 일단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몫이고 번역자는 가능하면 원저자가 설정해 놓은 설정을 가능한 한 충실히 옮겨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아래문장에서 왜 일부분을 생략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cerpt:
The place is furnished to capacity with identical square tables, each with its complement of four chairs.
공경희씨 번역: 사각테이블마다 의자가 네 개씩 놓여 있다.

완역을 했으면
졸역: 그 가게는 동일한 모양의 사각테이블로 가득했고 각 테이블은 의자가 꼭 4개씩 맞춰 놓여있었다.
였겠지요.

메뉴설명도 좀 이상하네요.
excerpt:
The coffee is good and they serve French toast.
공경희씨 번역: 커피는 맛이 좋고 프렌치토스트도 딸려 나온다.
졸역: 커피는 맛이 좋고 그 가게는 프렌치토스트도 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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