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 규칙 1
이안 콜드웰.더스틴 토머슨 지음, 정영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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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했다.
화가는 모든 그림을 검은 색으로 칠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자연 속의 모든 것이 빛에 노출될 때를 제외하면 검기 때문이라고...

4의 규칙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생각처럼 시작된다. 모든 것이 검은 색인 일색 중에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책을 한참 읽어도 그 규칙이나 비밀에 대해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작가가 비춰주는 빛의 사각 안에서만 우리는 모든 것들 중 하나를 볼 뿐이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 언급되는 책 한 권. 바로 <히프네로토마키아>가 있었다. 

세 명의 남자가 <히프네로토마키아>의 연구에 몰입했다. 빈센트 태프트와 리처드 커리 그리고 패트릭 설리반이었다.  세 사람 모두 이 책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내용을 바라보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패트릭은 한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찬사로 본 반면 빈센트는 수학적 논문으로 보고 있었다. 리처드는 책의 수수께끼에 집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패트릭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리처드는 유명한 화랑 주인이 되었으며 빈센트는 유명한 사학자가 되었다. 

그렇게 종결된 과거는 이 책의 시작점일 뿐이었다.  패트릭이 죽고, 그의 아들 토머스는 프린스턴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처럼 그도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의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서양 초기 인쇄물 중 가장 귀한 한 권의 책이면서도 매우 난해한 이 책은 프란체스코 콜론나가 쓴 책이었다. 

분명 토마스의 시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중요한 사람들은 역시 과거의 세 남자였다. 아버지를 비롯한 빈센트와 리처드. 누구의 해석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 책의 해석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지...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보다 읽는 내내 재미는 그 책 한 권 속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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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김탁환.강영호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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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특이한 책이 손에 들어왔다. 99라니... 1Q84만큼이나 아리쏭해졌다.
대체 저 99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무언가의 갯수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호해졌다. 그리고 책을 펼치는 순간 숫자에 대한 궁금증도 곧 사라졌다.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사진이란 비밀을 담아내는 비밀이다. 라는 다이앤 아버스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비밀을 담아내는 비밀이라니...사진은 추억을 간직하고 시간을 스크랩하며 누군가를 위한 그리움의 매개체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진이 비밀을 담아낸다니. 사실 카메라의 셧터가 "찰칵"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이미 그 순간의 비밀은 사라지는 것이다. 남겨진다는 것은 밝혀진다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작가는 비밀엄수를 부탁하듯 읊조리고 있었다. 무엇이 비밀을 요구할만큼 특별한 일인 것인지...작가의 타 작품에 비해 99는 매우 실험적이 작품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사진작가 강영호가 보여주는 흡인력 있는 퍼포먼스들은 작품을 더욱 음습하며 괴기스럽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작가와 사진작가의 상상력은 맞닿아 있으면서도 또한 따로 떼놓고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개별성이 존재했다. 

[99]는 예술적 동거의 기록이었다. 첫장부터 심상치 않기는 했다. 강영호의 "신중하지 않은 뿔"의 표현은 놀라웠다. 팀버튼의 영화에서나 발견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흡사 불에 탄듯한 인간형상으로 괴기스럽고 흉물스러웠지만. 

제이킹은 지킬박사처럼 "신중하지 않은 뿔"이라는 하이드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 사진관 주인 강영호는 그를 카페 "습작"에서 만났다.  서른 즈음의 그는 처음엔 깔끔한 차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 본모습이 드러난다. 연쇄살인마. 드라큘라 성을 설계하는 건축가에게 그만한 이력은 최고인 것일까. 드디어 제이킬이 죽고 드라큘라성은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사라진 건축가를 대신해 건축주인 "나"가 상을 대신 받지만 그 앞에 또 하나의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주 익숙한 인물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기 위함인지, 상상하라고 던져둔 것인지 모를만큼 강렬한 무언가를 뿜어낸다. 역동적이다라는 표현과는 걸맞지 않지만 강한 임팩트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재미있다. 아니다 를 논할 수 없는 특이한 작품. 소설인지 사진집인지 모를 모호한 소설 하나. 
드디어 읽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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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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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그너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 저주받은 사랑의 진실이 노트 세 권으로 밝혀진다.

전임 성직자슈테판 신부의 후임으로 보이론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린데 신부를 반겨 준 것은 세 권의 노트였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도서대여점 직원이 골라준 [어느 독일 여가수의 회고]가 이 노트 세 권과 이어져 있는 것임을.

 

독일 에로티시즘 소설로 길이 남을 이 책 속에는 남녀의 섹스와 누드,육체의 희열 뿐만 아니라 여가수 자신의 경험담들이 진하게 녹아 있었는데, 사실 그 진실들은 아주 불행한 사랑의 증거일 뿐이었다.

 

세 권의 노트에 대한 신부의 변이 마쳐지고 나면 노트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번째는 소년 루드비히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였다. 유명한 화가인 아버지의 품 아래에서 넉넉하게 자랐지만 소리에 대해 민감하고 예민한 청각을 지닌 루드비히. 게다가 소년은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천상의 소리와 비슷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위험한 것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루드비히는 아버지와 헤어져 게장스 음악학원에 입학했다. 그곳은 소년들을 거세해서 카스트라토 합창단을 구성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야 했다.

 

두번째 노트는 사촌이모 콘스탄체의 집에서 시작된다. 이기적인 부모로 인해 노처녀로 살고 있던 콘스탄체의 집에 기거하면서 마르티나,루도비카를 비롯한 숫한 여자들을 죽여버렸지만 그건 그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향수]의 그루누이가 아무 감정없이 계획적으로 여인들을 살해한데 비해, 루드비히는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다. 그와 성관계를 갖는 여자는 반드시 죽어버렸고, 그는 성적충동을 이기기엔 너무나 열정적인 나이때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튀르스톡 노인에게서야 자신의 저주가 트리스탄에게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 루드비히는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한꺼번에 소유하고 있는 트리스탄의 힘의 본질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이 그 후예임을 깨달은 동시에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노트는 고백한다. 트리스탄의 후예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졸데의 후예도 존재하고 있음을. 이졸데의 후예인 마리안네와의 사랑은 그래서 금기시 된 것이다. 서로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운명. 루드비히의 사랑은 스스로를 거세하여 죽음을 맞는 것으로 종결되고 있었다.

 

운명앞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고스란히 숙제처럼 남아 있다. 루드비히의 사랑뿐만 아니라 그에게 희생된 많은 여성들의 운명 또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결국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이 노트 세권과 또 하나의 고백서 뿐인지....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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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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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자의 일생이 있다면 남자의 일생도 있다. 남자의 일생이라고해서 부귀영화나 누리는 그런 영웅전이 아니라 전제군주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고 치욕당하는 능욕의 역사를 살아가는 남자의 일생도 있다. 아르나우의 일생이 그러했다. 

아르나우는 출생부터 남달랐다. 그 당시로보면 정상적일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삶과 대조해보면 그는 불운을 타고났다. 스페인 까딸루냐의 농도 베르나뜨와 프란세스까의 결혼은 신성한 것이었으나 그의 영주가 초야권을 실행하면서 가족의 불운은 시작되었다. 영주의 야만성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프란세스까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일까봐 불안해하면서 죽이려고 했고, 베르나뜨의 아이임이 밝혀졌는데도 프란세스까를 성으로 데려와 능욕의 삶을 살게 만들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신들이나 하인들까지 프란세스까를 성의 노예로 일삼았다. 영주는 그것을 묵인하였다. 

결국 베르나뜨는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도망자의 삶을 택하게 되었다.  갓난 아들을 데리고 도망나와서 정착한 곳은 여동생이 풍요롭게 살고 있는 바로셀로나였다.  처남의 비겁한 성격탓으로 베르나뜨는 일꾼으로 살아야했지만 아들과 함께 시민권을 얻을 그날만을 기다리며 참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여동생이 죽고,  악녀 마르가리다의 음모로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된 부자는 결국 아버지 베르나뜨의 죽음으로 전멸을 비켜가야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르나우가 성인이 되었다. 그는 이제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멋진 청년이 되었고 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 다시 과거의 그림자가 비추기 시작했다. 

바다의 성당은 민중의 핏빛역사를 비춘다는 거대한 부제와는 다르게 아르나우와 그 집안의 삶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여자의 삶만큼이나 불행하고 비굴해야했던 남자의 삶. 중세의 로맨틱을 벗게 만드는 현실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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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지음, 양억관 옮김 / 황금부엉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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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관포지교. 이 유명한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관중"이라는 이름 한 자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때엔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나 삶을 살면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저자 미야기타니 마사미쓰는 잘 모르는 작가다. 중국 역사에 심취한 역사소설가라는 약력을 읽어보아도 도무지 아는 작가라고 여겨지진 않는다. 그러다가 저서 중에서 [하희]를 발견하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읽었던 [하희]가 이 작가의 작품이었구나. 라면서.

중국은 그 드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시대의 역사라 하더라도 워낙 많은 나라들이 세우고 사라지고 했던지라 그들간의 우호관계, 적대관계,회맹관계를 표기하며 읽어나가는 일은 참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책의 도입부에 제후국관계도를 그려놓은 것은 참 잘 한일인 듯 싶다. 독자의 이해를 돕는 가장 빠른 길이기에.


사실 소설의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나라 대부 포경숙의 셋째 아들 "아"가 유학을 떠나오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포숙"이다. 포숙은 패일이라는 아버지의 가신과 함께 왔고 결국 관중의 도움으로 좋은 집에서 서식하며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승의 수제자에게 배우게 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관중"이었다. 관중과 포숙의 인연은 이렇듯 사제지간으로 시작된다.  그의 천재성을 믿어주는 아버지의 유복한 아들로 자라난 포숙과 달리 관중은 영웅의 일대기를 거쳐야 했다. 

"원수가 죽고 없다는 게 원통하다"라고 울부짖지만 사실 관중의 가장 큰 적은 죽어버린 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어머니였는지도 모른다. 영상호족의 차남으로 태어난 관중의 이름은 "이오"였다. 그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공부했고 예비된 아름다운 정혼녀까지 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이후, 질투에 먼 형의 방탕한 생활로 재물도 정혼녀도 다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형에게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어머니는 그에게 현실의 짐이 되어 그를 끝까지 괴롭힌다. 친어머니가 어떻게 아들을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관중. 그는 직감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직감은 때때로 이성이나 지식을 넘나들며 인생의 지표를 세워 준다. 미실에게 통찰력이 무기가 되었다면 관중의 직감은 그가 인맥을 이루는데 가장 큰 재산이 된다. 

사람을 너무 좋게 본다. 그것을 뒤집으면 거기에 관중이 있다.  직관도 있고, 능력도 있고, 인품도 훌륭하였지만 관중의 운명은 바람앞의 등불 같은 것이었다.  반면에 포숙은 행운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포숙이 관중을 믿어주었다. 그것이 관중의 모든 불운을 덮고도 남을 행운이었다.  나를 알아주는 이와의 인연. 하늘이 이어준 가장 멋진 인연이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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