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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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아르망 소벨의 죽음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인 듯 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운명은 더 일찍 시작되었다. 라자루스 얀이 정신병력이 있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아버지이자 가장이었던 아르망의 죽음 후,빚쟁이들을 피해 가족은 크래븐무어로 들어가 살게 된다. 파리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들의 평온한 일상은 하녀 한나의 죽음으로 공포로 변해버린다. 


한나의 사촌 이스마엘과 사랑에 빠진 이레네는 그에게서 섬과 등대에 얽힌 전설을 듣게 되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왠지 모르게 저택에서도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택내에서의 기운의 출처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이스마엘과 함께 한나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레네는 점점 더 이상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크래븐 무어는 장난감 제작자인 라자루스의 집이면서 그의 장난감 창작의 장소였다. 그는 20년 전부터 중병에 걸려 은둔하며 사는 알렉산드라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고 여러 장난감들도 저택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이레네가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둠의 기운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는데....

9월의 빛은 등대섬에서 빠져 죽었다던 어느 여자의 영혼이 반짝거리며 나타나는 것을 의미했다. 유령과 악마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저택주인의 저주.

이 기괴한 느낌의 소설은 카를로스 루이스만이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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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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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다케후미는 제 55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잘 짜여져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나 온다 리쿠가 극찬을 할만 했다. 벌써부터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것을 보면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즌 트릭]은 감옥밀실살인사건인셈인데, 프리즌 브레이크와 쇼생크탈출 그리고 유주얼서스펙트의 혼합작같은 구성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어느 페이지도 속도감을 늦추지 않았고, 결코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에 4마디로 확인되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책장을 덮게 만든다.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다. 개방형 감옥인 이치하라 형무소에서 완벽한 밀실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두 명의 제소자가 사라졌는데, 한 명은 타인의 감방에서 지문과 얼굴이 약품으로 뭉개진 채 발견되었고 한 명은 증발했다. 대체 사라진 쪽은 누구이고, 죽은 시체의 이름은 무엇이란 말인지...


수사의 혼선이 야기되던 가운데 미야자키를 죽인 이시즈카가 사실은 몇년전부터 식물인간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누군가가 이시즈카를 사칭해 감옥에 일부러 잠입했고 그의 목표는 미야자키였다는 말인데, 대체 어떤 원한으로 그를 노렸는지 밝혀내려면 범인의 존재부터 파악해야만 했다. 


결국 고스케와 도다라는 인물의 합작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이것은 마지막 반전에 비하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이 어떻게 신분을 바꿔치기해서 옥에 들어갔으며 미야자키를 찾아내 죽이고 탈출하기까지의 트릭은 쇼생크 탈출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부분이었다.


일본 작가들이 "뜻이 높다"라고 표현한 점은 일본식 표현이라 어떤 의미인지 그 뜻이 와 닿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동감을 표하고 싶다. 소년 탐정 김전일도 탐낼만한 밀실트릭이었으며 복잡한 두개의 글줄기 속에서 독자를 묘하게 줄타게 만드는 작가의 힘에 놀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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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알리 쇼 지음, 김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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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그려집니다. 
월령의 숲처럼 아름답게 우거진 숲 저 너머에 사는 신비로운 생명체들의 모습이.
투명하리만치 깨끗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된 그 싱싱한 생명력이...
그 한 가운데 아주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 물 아래엔 투명한 사람들이 담겨 있는, 소설 페이지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통 좋은 대본은 읽는 순간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그 페이지마다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시각화되는 것은 특별한 일일 것입니다.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는 그랬습니다. 읽는 순간 특히, 아이다가 서서히 유리로 변해가는 순간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고 또 보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변해있는 몸체, 투명한 유리발, 아이다의 슬픈 표정. 그 무엇하나 놓치면서 봐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다 맥클레어드는 정말 무엇때문에 세인트하우다랜드에 오게 된 것일까요. 이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과연 올 수 있었을까요? 물론 생에 단 한번의 사랑 마이다스를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아이다가 섬에서 만난 최초의 괴이한 남자 헨리 푸와는 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듯 했지만 결과를 뒤바꿀 순 없었습니다. 헨리가 사랑한 여자의 아들인 마이다스도  사랑하는 여인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지키지 못했고 홀로인 채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닫혀 있는 삶의 주인공들입니다. 아이다 역시 그들을 바꿀만큼의 발랄함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어쩌면 등장인물들이 모두 닫혀 있는 인물들이기에 세인트하우다 랜드라는 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항상 당신과 함께 할래요"

라던 아이다의 말처럼 끝까지 함께한 운명이었지만 마지막 이별 장면은 애틋하기보다는 안타까우면서도 무서워집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남자주인공이 죽고 홀로 구출되었던 로즈가 죽은 그의 손을 놓으며 물 속으로 사라지는 그와 굿바이를 하던 장면처럼, 마이다스도 유리로 변한 그녀의 손을 놓으며 구명보트에 의해 구해지는 순간은 묘하게도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오열하는 남자의 울음소리는 귓가를 맴돌게 됩니다.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여라 는 명언이 있긴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그 말은 적용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 마이다스의 마음에 묻혀버린 아이다를 그는 과연 잊을 수 있을지.....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그들의 슬픈 사랑을 가슴에 잔잔히 묻혀버릴 시간을 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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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가의 붕괴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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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 일러스트에 매료되는 것은 매우 오래간만이었다. 장 자끄 상뻬의 개구지지만 귀여운 표지를 보고 넋을 잃었던 것처럼....

하지만 [시미가의 붕괴]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삐딱해보이지만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래서 눈길이 갔다. 표지가 헤드라인화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이 책은 내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처음부터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녹아간다/시미가의 붕괴/죽음과 밀실/하얀 아침/주사위, 데굴데굴/오니기리, 꾹꾹/나비/나의 자리/ 옛날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까지 총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엔 저자의 말이나 번역자의 말이 전혀 실려 있지 않다.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서론도 모자라 책을 쓰면서...라는 끝페이지까지 저자의 글이 장식이 되고, 그 다음에 번역자의 번역후기가 실려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 페이지들을 몽땅 없애버린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된 부분은 전혀 없지만.

9편의 단편 중에 가장 눈길이 가던 이야기는 제일 먼저 시작되던 이야기였다. 
[녹아간다]는 좀 독특한 이야기였다. 짧은 단편 드라마가 되어도 좋을만큼의 이야기였다.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 미사키는 올봄부터 건강식품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고 독립했다. 하지만 독립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야기 상대가 없어서 쓸쓸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낼만한 동료도 없다. 점장 이하 네 명이 남자, 여자는 다섯 명인데 다들 서른이 너머 미사키와는 나이차이가 좀 졌다.  그 곳에서 미사키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주문을 기입하는 일을 한다. 게다가 괴롭히는 상사까지 포진해 있다. 그런 미사키에게 탈출구가 되어 준 것은 어느날 편의점에서 고른 만화잡지였다. 미사키 가스미. 자신과 같은 성의 작가는 "초상화"를 그려놓은 듯 자신의 직장동료들을 똑같이 만화 속에 그려놓았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사키의 비밀스러운 작업은...

누군가와 소통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여자의 독백은 위험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오려진 종이캐릭터들이 가득한 방안에서 혼자 웃으며 말하는 미사키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했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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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수의 결사단 - 전2권 세트
훌리아 나바로 지음, 김수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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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과거를 지배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기도 하고, 이미 결정해 버린 것이기도 하기에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간혹 영웅영화 속에서 과거가 바뀌기는 하는데, 그렇다면 그 결과 또한 바뀌어 버리므로 현재의 과거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과거는 결코 뒤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옳든 그르든 걸어온 길을 똑바로 가고자 한 사람들이 있다. 템플기사단의 사람들과 아다이오쪽 성의 교단 목자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한 쪽은 지키려는 쪽이고 다른 쪽은 빼앗으려는 쪽이었을 뿐. 무엇이 이들의 삶을 그토록 질기게 교차시키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수의였다. 아주 오래전에 삶을 마감한 한 사람을 감쌌던 수의.  그리스어로 "만딜리온"이라 불리는 예수의 수의는 서기 944년 에데사에서 만딜리온은 사라졌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만딜리온을 찾아 유서 깊은 기독교 교단은 그 명맥을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었다. 

사실 수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빚에 쪼들리던 보두앵 황제로 부터 템플 기사단이 구입한 것이었다.  사실 수의는 두 벌이었다. 진짜 수의 한 벌과 그 수의를 잘 보관하기 위해 똑같은 천으로 감쌌던 원단. 다시 펼쳤을 때엔 기적이 깃들여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똑같은 천에 새겨진 똑같은 문양과 혈흔. 기적은 그렇게 두 개의 수의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어느 것이 진본인지 밝혀낼 필요가 없었다. 둘 다 진본이니까. 기적이 만들어 낸. 그리고 템플기사단은 스코틀랜드를 제외하고는 다들 해체된 상태었다.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비밀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부유하게. 

기자 아나는 역사적 사실을 쫓아 가고 있었다. 1314년 3월 19일 노트르담 광장의 화형대 앞에 있었던 것 같은 악몽을 되새기면서. 그녀는 결국 비밀을 가장 먼저 알아내게 되었고.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 이브 신부와 함께 묘지 안에서 생매장 되어 버렸다. 

역사학자 소피는 사건을 쫓아 가고 있었다. 혀를 잘리고 열 손가락의 지문을 태워버린 채 나타나는 사람들의 정체를 쫓아 진실을 파헤쳐 내고 있었다. 결국 아나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가 알게 된 진실은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다. 다만 토리노 성당에서 발생했던 숱한 사건들이 현재의 일이 아니며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라는 진실이 밝혀졌을 뿐이었다. 

살아남은 소피가 더 행복할지, 죽었지만 진실을 알게 된 아나가 행복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수의를 둘러싼 피비린내 진동할 수많은 사건들은 신이 원했던 것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과거 그리고 현재가 담겨 있는 [성수의 결사단]이 두 권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다행이었다. 2권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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