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X - 아웃케이스 없음
방은진 감독, 류승범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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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Perfect Number, 2012

  감독 - 방은진

  출연 -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김윤성




  감독의 이름을 보고 ‘오!’하면서 골랐다. 전작인 ‘오로라 공주’를 괜찮게 보았기에, 이 영화의 원작이 워낙에 탄탄했기에 골랐다. 다만 제목에 ‘헌신’이 빠져있고 원작의 유가와 교수가 한국판에서는 빠졌다는 소식에 다소 불안하긴 했다. 괜찮은 점이 두 개이고 불안한 점이 두 개라서, 그냥 퉁치면 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는 게 아니라, 비중으로 계산했어야 했다. 원작 소설의 묘미는 두 천재의 대결과 보답 받지 못할 것을 알아도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 두 개를 쏙 빼버렸다. 그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밋밋하고 싱거운 맛이 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냥 추리물로만 보면, 괜찮았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뛰어났다. 그들의 내적 갈등과 망설임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장면에서는 ‘와-’하면서 감탄을 하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화면 안의 배우들이 느끼는 감정이 일치할거라는 막연한 믿음까지 생길 정도였다. 어떻게 저런 섬세하고 미묘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놀라기도 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원작의 유가와 교수 역할을 뺀 것은, 추리물이 주는 긴장감과 어떻게 될까라는 기대감을 없애버렸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범인의 노력은 보였지만, 그것을 추적하는 형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범인의 허점을 찔러 공략하는 형사가 아닌, 표적 수사를 하는 형사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형사는 그리 눈에 띄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역할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두 남녀의 감정이 어딘지 모르게 엇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집착한다는 느낌? 남몰래 순정을 바치는 사랑이 아니라 스토커에다 집착하는 사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후반부에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웬 신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013년에 갑자기 1960년대 감성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사랑하는 임을 위해 떠나는 상대가 예전에는 여자였지만, 이번에는 남자로 성별이 바뀌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두 축이 흔들리는 바람에 영화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감정만 던져주었다. 아니, 꼭 원작하고 똑같이 만들라는 법은 없다. 원작하고 토씨하나 다르지 않으면, 그건 또 재미가 없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실망스러웠다. 유가와라는 인물을 빼버렸으면, 범인과 형사의 대립 구도라도 제대로 세웠어야 했다. 보답을 받고 싶은 사랑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돕는 마음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인지 확실히 구별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의 마음이라도 나왔어야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그냥 대충 넘어간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잘 포착한 부분도 있었는데 말이다. 참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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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둘러보기 - 10주년 기념 개정판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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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오강남




  10주년 개정판이란다. 이런 책이 있다는 걸 10년 동안 몰랐다니, 나도 참…….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집어 들었다. 겉표지에 ‘종교 문맹을 깨우치는 명쾌한 안내서’라는 구절과 함께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표지를 넘기면, 세계 종교 분포도 그림이 나온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종교를 주로 믿는지 세계 지도에 색을 칠해 구분해놓은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리스도교가 많았고, 이슬람교는 집중현상을 보인다. 군데군데 토속종교도 보인다.




  책은 제목 그대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믿는 신자가 많은 종교에 대해 둘러보고 있다. 그 종교가 처음 나타난 지역, 처음 시작한 창시자, 그것을 발전시킨 사람, 교리, 특징 그리고 어떤 길을 따라 발전해오고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다루고 있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유교, 도교, 신도,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그리고 동학에 대해 얘기한다. 거기에 각 장마다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은 참고하면 좋은 책도 소개해놓았다.


  특별히 어떤 종교 하나만 교리나 철학적 문제를 깊이 다루진 않았다. 저자가 이 교리는 일반인이라도 알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자세히 설명을 한다거나 과거 시작점부터 현재까지 역사가 길거나 분파가 많으면 분량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읽는 사람이 심심하지 않게 중간 중간 발상지의 사진이나 벽화내지는 조각상, 사원, 창시자의 그림 내지는 현재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사진이 곁들여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이나 내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한다는 말이 맞다. 아직까지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도교와 노장사상이 목적으로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에서는 ‘엥?’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도교=노장사상’이 아니었던가? 저자는 도가 사상은 죽음과 삶의 문제에서도 초월하는 참자유를 추구하지만, 종교로서의 도교는 육체적 불멸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스라엘을 건설한 사람들은 주로 유대교를 믿는다는 것도 알았다. 하긴 유대인들이니 유대교를 믿는 건 당연한 걸까? 왜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인들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리스도교를 하나로만 분류한 것이다. 그러니까 음, 가톨릭과 개신교는 교리부분이나 조직에서도 다르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그냥 그리스도교에서 다루었다. 개신교를 그냥 한 분파 정도로만 분류했다. 그러면 너무 자료가 많아지거나 복잡해질 것을 우려했던 걸까? 사실 이슬람교와 유대교,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의 차이나 비슷한 점을 알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종교란 인간의 마음에 평화를 준다고 느꼈다. 각자 가는 길을 달라도 산꼭대기를 향하는 건 똑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종교는 빙 둘러서 산을 올라가고, 어떤 종교는 직선 계단으로 올라가는 차이인 것 같다. 그러니까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으로 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에 교황께서 ‘무신론자도 양심에 따라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시피 말이다.


  그런데 왜 종교 때문에 그렇게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는지 모르겠다. 다른 종교끼리 뿐만 아니라, 같은 종교, 같은 교회 내에서도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 인간은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우상을 믿는 모양이다. 신을 온전하게 믿거나 인간의 양심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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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는 아이 숨 쉬는 역사 1
안선모 지음, 최정인 그림, 한양도성연구소 감수 / 청어람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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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안선모

  그림 - 최정인

  감수 - 한양도성연구소




  안녕? 나는 물미. 올해 열네 살 된 여자아이야.


  난 두만강 근처 마을에서 살아. 두만강 알지? 모른다고? 야, 지도 좀 봐라. 그럼 너 여진족은 알아? 몰라? 헐, 너 바보야? 자, 잘 들어. 여진족은 두만강 건너에 사는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이야. 가끔 우리 조선에 쳐들어와서 먹을 걸 빼앗아 가기도 해. 그런데 여진족이라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고, 어떤 사람은 우리랑 같은 조선 사람이 되겠다고 하기도 해. 티무르도 그런 애야.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먹을 걸 얻어 가는데, 사냥을 엄청 잘 해. 손재주도 좋아서 저번에는 나한테 가죽신발도 만들어줬다. 부럽지? 후훗.


  그런데 말이야, 문제가 생겼어. 한양이라고 임금님이 사시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성을 쌓아야한대. 그래서 일을 시킨다고 마을 남자들을 다 데리고 가버렸지 뭐야.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우리 할아버지도 거기 끌려갔다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를 또 데리고 간 거야. 거기다가 나쁜 여진족이 쳐들어왔어! 난 숨어있어서 잡혀가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끌려가셨어. 티무르가 잘 보호해드린다고 했지만, 걱정이야.





  결국 난 아버지를 찾으러 한양으로 가기로 했어. 먼 곳이지만 아버지를 찾아서 같이 어머니를 되찾으러 가야지. 그래서 난 남자아이로 변장을 했어. 아무래도 여자아이는 위험하잖아? 다행히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겨우 도착할 수 있었어. 그런데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쓰러져버렸지 뭐야. 정신을 잃은 날, 높은 벼슬을 하는 양반 댁에서 거둬주셔서 살 수 있었어. 김종서 장군이라고, 얼핏 보면 무섭지만 좋은 분이야. 그 분의 따님인 해원 아기씨가 이것저것 날 챙겨주셨어. 우선 거기서 심부름을 하면서, 아버지를 찾아보기로 했어.





  아, 겨우 만난 아버지는 많이 몸이 상하셨더라고. 난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랑 같이 돌아가려고 성 쌓는 일을 도와드리기로 했어, 인규 도련님이 알려주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큰 돌도 금방 옮기고 그랬지.


  우와! 우와! 큰일이야! 나라님께서 날 보시겠다는 거야! 우왕! 떨려! 어떡하지? 내가 여자라는 걸 들키면 쫓겨날까?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소에 생각했던 걸 말씀드리는 것도 좋을 거 같아. 할아버지처럼 성을 다 쌓고 집에 오다 돌아가시는 일이 없어야 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라도 있으면 좋겠고. 아, 여진족에게서 우리를 좀 안전하게 보호해달라고 부탁도 드리고.




  하아, 너무 인자하셨어, 우리 임금님은. 평민 주제에 임금님에게 할 말 다하고 살아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드디어 성을 다 쌓았어. 해원 아가씨의 도움으로 난 내 이름만 겨우 배워서, 돌에 새겼지. 궁금하면 찾아봐. 임금님이 나한테 선물을 주셨어! 뭐지? 예쁜 치마저고리잖아? 뭐야, 임금님을 알고 계셨다는 거야? 어떻게? 대단해!




  이제 아버지랑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빨리 어머니를 찾아야지. 그럼 안녕.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응? 아쉽다고? 그럼 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성을 쌓는 아이’를 읽어봐. 내가 까먹고 잊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을 거야. 그럼 난 이만 간다. 지도 좀 보고, 역사 공부하는 거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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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 책을 읽다가, 물미가 만난 임금이 누굴까 생각해봤다. 설마?


  조선의↗궁궐에↘당도한 것을→환영하오↘낯↘선↗이여↘

  나는↘나의↗ 훌↗륭한↘백성들을↗ 굽↗어↘살피는↘

  깨우↗친↘ 임금↗ 세↘종↗이오↘ ……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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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션
마커스 던스탠 감독, 섀넌 케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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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ollection, 2012

  감독 - 마커스 던스탠

  출연 - 크리스토퍼 맥도널드, 다니엘 샤먼, 리 터제슨, 나비 라왓




  ‘콜렉터 The Collector, 2009’의 다음 편.


  지난번에 가정집에 숨어들어 온갖 함정장치를 발동시킨 후, 사람들을 죽이던 놈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아주 스케일 크게 노는데, 나이트클럽 하나를 인수해서 거기에 놀러온 젊은 남녀들을 죽인다. 이건 뭐 요리하기 전에 재료 다듬는 것도 아닌데,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재료 다듬기, 토막 치기, 즙 짜내기…….


  그 와중에 1편에서 잡혀갔던 도둑 아킨이 가까스로 탈출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그에게 들어온 제안. 놈이 클럽에서 잡아간 여자가 엄청난 집안의 딸인데, 그녀를 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구출 팀이 꾸려지고, 아킨은 그들과 함께 놈의 본거지로 향하는데…….


  똥개도 홈그라운드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가 있다. 똥개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면 어떨까? 물론 주인공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지난번에 잡혀갔던 인질이라든가 약한 여성이라면……. 그래도 미국 영화는 가끔 총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여자아이들이 괴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두고 보기로 했다.


  영화는 미친놈의 영역에 들어간 용병들이 어떻게 고문을 당하고 어떤 식으로 죽어나가는지 확실히 보여준다. 또한 놈의 아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려준다. 시작 부분의 엄청난 나이트클럽 학살 장면은 그냥 맛보기였다. 너무 많이 그런 장면을 봐서, 나중에는 그냥 무덤덤해진다. 아, 여기는 팔다리만 모아놓은 비밀 장소구나. 얘가 또 취미로 곤충을 모으는구나. 아, 거기다 사람도 부위별로 수집하는 거구나. 어랍쇼, 수집뿐만 아니라 마구잡이로 접합도 시켜놓네.


  곤충 표본 장면에서 문득 예전 영화 ‘편집광 The Collector, 1965’이 생각났다. 거기서도 남자가 곤충, 특히 나비를 모으다가 목표를 바꿔서 여자를 모으기로 한다. 연쇄 살인마들은 어린 시절에 대개 방화를 저지르고, 곤충을 죽이다가 애완동물을 괴롭히다가 죽이고 결국에는 사람을 목표로 한다는데, 음…….


  하여간 버려진 호텔 건물 전체에 온갖 함정을 설치해놓고, 방음 시설까지 완벽하게 해놓은 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너 이 새키, 돈 많구나. 그러면 그런데다가 쏟아 붓지 말고, 나한테 치킨 사먹으라고 기부를 좀 해봐! 기부를! 나 치킨 먹고 싶다고! 세 끼 꼬박꼬박! 1년 365일 내내!


  그러다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걸 알았다. 놈이 감금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수십 명, 절단된 시체들만 해도 백 명은 넘을 거 같은데? 개 중에는 시체로 발견된 경우도 있고. 그러면 놈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거지? 어째서 그동안 정부에서는 놈의 꼬리도 잡지 못한 거지? 설마? 아, 이래서 음모론이 끊이질 않는 거다.


  1편만큼의 긴장감은 없었다. 놈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1편보다는 훨씬 더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였다. 긴장감 따위는 갖다 버리고, 오직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어떻게 죽이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런데 끝까지 놈의 얼굴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와, 치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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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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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장석주



  이런 글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해왔으며, 얼마나 주의 깊게 사물을 관찰했을까하는 놀라움과 감탄이 절로 나왔던 책이다. 주위의 사물을 보면서 거기에서 연상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과 철학적 의미 그리고 철학가들까지의 연결이 독특했고 개성이 묻어나왔다.


  문득 작년에 읽었던 '식탁 위의 철학'이 떠올랐다. 그 책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리들에서 철학가와 그들의 사상을 연결시킨 책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비슷하다.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 또는 요리를 철학가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아무래도 쓴 사람이 다르다보니, 각자의 개성이나 관점, 중요시 여기는 사항들에서 차이점이 있다. 우선 다룬 소재부터 다르다.


  이 책은 분위기가 차분하다. 어떤 느낌이냐면, 골목에 있는 다른 집들의 불은 거의 다 꺼지고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에 한두 개 켜있는 새벽. 가끔 컹컹거리는 개 짖는 소리만 들리는 그런 적막한 골목. 겨울이라면 찹쌀떡 사라는 소리도 간간히 들리는 시간. 약간의 바람이 불어 창이 미약하게 덜컹거리는 그런 날씨. 내 앞에는 차 한 잔. 날씨에 따라서 차갑고 따뜻한 것이 결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용한 음악.


  저자는 현대 사회에 관심도 많고, 시사적인 부분이나 연예오락도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상당히 현대 문물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런 걸 느낄 수 있다. 첫 이야기인 '신용카드'에서부터 시작해서 후반에 나오는 '활'까지 그런 어조를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냉소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다시 보면 그것보다는 비정하고 비인간적인 현대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관계, 취향, 일상, 기쁨 그리고 이동이라는 주제로 저자는 신용카드, 휴대전화, 담배, 면도기, 가죽소파, 탁자, 책, 병따개, 시계, 여행가방 그리고 우산 등등의 주변 사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펼쳐내고 있다. 사회의 부품이 되어버린 인간, 타인을 제쳐야 자기가 이기는 경쟁 사회, 텔레비전에 조련당하는 인간들.


  사물과 어떤 철학가의 사상과의 연결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처럼 금방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리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의 사색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생각한 것을 다른 이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아직 철학가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기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 정도에서 넘어갔다. 하지만 그 외에 저자의 생각을 적은 부분은 꽤나 흥미 있게 읽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등장하는 철학가들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놓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짧게는 한 쪽, 길게는 두 쪽 정도로 생애와 사상 그리고 대표 저서에 대해 적혀있었다.


  무엇보다 스티브 잡스를 철학가로 분류한 것은 흥미로웠다. 진짜 이 사람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재평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난 애플 제품이 하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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