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 - 철학자들이 알려주는 화의 잠재력
오가와 히토시 지음, 이서연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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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怒りの作法

  저자 - 오가와 히토시



  흔히 ‘화를 낸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고함을 치고 언성을 높이는 걸 생각한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수는 건 선택 사항. 때로는 그것을 ‘성질을 낸다’고도 하고, ‘분노한다’, ‘열받았다’, ‘뚜껑이 열렸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저런 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한 성격한다’나 ‘성질 더럽다’고 말할 때도 있다.


  화를 내는 것이 두려웠다. 고함을 치고 언성을 높이다가 잘못하면 내가 의도치 않은 행동을 하고, 이성을 잃을까 겁이 났다. 그리고 가끔 언성을 높여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나면, 내가 너무 심했던 걸까내지는 내가 잘한 걸까라고 자책을 하곤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내 기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에게 화를 내도된다고, 대신 현명하게 화를 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철학자들은 화에 대해서 어떻게 언급했는지, 그들은 어떻게 화를 다루었는지, 저자의 생각과 함께 정리하고 있다.


  제1장. 현대인은 왜 화내지 않는가.


  여기서는 희노애락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에서 왜 노(怒)만 억압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너무 억누르다보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며, 저자는 폭언과 폭력을 수반한 화가 아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화의 표출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화를 낼 줄 모르기에 혼을 낼 줄 모르고, 그 때문에 아이들은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이 좌절을 겪으면 이성을 잃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고 덧붙인다.


  제2장. 화는 왜 행복을 가져오는가.


  저자는 이 장에서 화를 종류별로 나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화를 제일로 여긴다. 즉, 바르게 화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억제보다는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제3장. 화는 삶의 원동력이자 무기다.


  앞에서 얘기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의 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분노를 담은 문장이 어떤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예를 보여주면서, 적절히 사용한 여러 철학자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위협적인 것이 아닌, 설득의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제4장. 당당하게 화내라.


  여기서는 현대인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익명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당하게 화를 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제5장. 제대로 화내는 법을 배워라


  화를 잘 내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이 제시된다. 의문 발견, 문제제기, 의견제시, 논의진행 그리고 결론 정리이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고려해야할 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에 닥친 여러 가지 문제, 예를 들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라든지 청소년 보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분노를 표출하면 좋은지 저자의 적용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화가 난다고 무조건적으로 분출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 그것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확실히 전달하여 내가 원하는 방향의 결과를 얻는지 고려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 상대방이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면, 상대방은 왜 내가 이러는지 알려는 마음보다는 ‘성격 참 드럽네.’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으레 성격이 저 모양이라서 저 난리를 피운다고, 별 거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다보면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는 건 순식간이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은 그냥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속으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서 제대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라는 말이었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라는 조상님의 충고였다. 오늘부터 나도 그 뜻을 따라서, 화난다고 성질부리지 말고 냉정하게…….


  하아, 하지만 요즘은 다들 화내는 법도 모르고, 혼내는 법도 모르고, 혼나는 법도 몰라서 힘들기만 하다. 이건 뭐 어느 분의 말씀처럼 말을 해도 알아듣질 못하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자.


  당연한 일에 화내고, 모르는 일에 화내고, 부당한 권력에 화내고, 불합리한 국민성에 화내고, 자기 자신의 모순된 인생에 화낸다. 분노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열정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조건이다. ‘분노는 곧 철학이다.’ -p.65



  121페이지 세 번째 문단 첫째 줄에 ‘표만 달라고 때를 쓰는’이라는 문장이 있다. 때가 아니라, 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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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밤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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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ndless Night, 1967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녀가 직접 뽑은 자신의 작품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책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가사 크리스티가 뽑은 자기 자신의 작품 베스트 10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예고살인', '오리엔트 특급살인', '화요일 클럽의 살인', '0시를 향하여', '비틀린 집', '누명', '움직이는 손가락' 그리고 '끝없는 밤'이다. 


  지금까지 읽은 7개의 작품들이 다 마음에 들었기에, 이번 책도 ‘당연히’라는 기대를 품고 읽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이 책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남자의 입을 통해 서술되고 있다. 부유한 어린 소녀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지,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고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인간의 추악함과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말한다.


  그러나 음, 뭔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 감성적인 면을 덧붙인 느낌이 드는, 작가가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 감정 과잉의 상태에 이른 것 같았다. 설마 그게 포인트였을까? 기존의 서술 방식을 바꿔서, 심리 묘사에 치중하여 섬세한 여류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것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 취향에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더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너무 연애와 감정의 흐름이 강조되어, 얼핏 보기엔 추리 소설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부유한 상속녀와 가진 것 없는 청년의 영화 같은 만남과 운명적인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위의 눈을 피해 비밀 연애를 하고, 기습 결혼식을 올리고. 그냥 로맨스였다.


  후반에 와서야 사건이 터지는데, 그냥 어영부영 해결이 되어버렸다.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추리 소설인데! 피가 철철 흐르고 사람이 여럿 죽어나가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긴장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초반에 집시 노인의 경고가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행복한 가운데도 불안감이 둥둥 떠 있거나 이상한 징조를 느낄 수 있어야하는데, 그 역할을 해야 할 복선이 너무 흐지부지 잠깐 떠돌다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읽은 크리스티의 소설 중에서 제일 재미없었다. 하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 분도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하긴 내놓는 책마다 다 내 마음에 들면, 그게 사람인가? 귀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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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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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저자 - 천종호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물론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멀쩡히 자기가 하는 일이 범죄라는 걸 알고 저지르는 사람을 왜 용서해야 하지? 자기가 한 일에 어떤 결과가 뒤따를 지 뻔히 알고 했다는 건, 그 뒤에 오는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거잖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하지만 예외는 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그 예다. 막말로 부모가 집에서 가르친 게 때리고 욕하고 훔치는 것이라면, 그 애들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짓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 잘 모르기에, 자기가 하는 일이 범죄라는 것을 모르기에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모 방송국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문제가 있다고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열이면 열 다 부모가 문제가 있는 경우였다. 부모가 애를 그따위로 길러놓고는, 아이 탓을 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애한테 대놓고 욕을 하고 무시하고 폭력을 보여주고는, 애가 욕을 하고 폭력적이라고 고민이라고 한다.


  뭐가 정의고 뭐가 불의인지 가르쳐야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가정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가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바로 집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성을 기르고, 기본 예의를 가르치고, 올바른 선과 악의 구별을 익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집이다.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부모이다.


  하지만 가정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가해자들, 특히 학교 폭력에 가담한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자기들이 하는 일이 그렇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일이 허다했다. 왜 그것이 나쁜 일인지,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부모 역시 비슷한 시선이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왜 남의 집 아이 앞길을 망치려 하냐는 식이었다. 자기 아이가 처벌을 받을 것 같으니 달려가서 피해자를 협박도 하고 빌기도 하다가, 선처를 베푸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부모들의 얘기가 책에 있었다. 읽으면서 완전 어이없었다. ‘뭐 이런 싸가지 없는!’이라는 말과 함께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학교는 자기들의 체면 유지와 교장이나 교감, 교사들의 평가를 위해 쉬쉬하고, 부모는 자기 자식만 잘 되면 장땡이라는 주의인 세상에서 과연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 수 있을까? 가해자는 떳떳하게 학교를 다니고, 피해자는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해야 하는 이 불편한 현실에서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당한 놈이 멍청한 거다? 당하는 애는 다 그런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누군가 그들보다 힘이 센 사람이 나타나서 괴롭히면, 뭐라고 할 것인가? 내가 멍청하고 이유가 있어서 당하는 거라고 포기하고 말 텐가?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지독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학교에 득실댄다는 것이다.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부모들은 말하는데, 자기 아이가 바로 그 잘못 사귄 나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이러니 학교 폭력으로 처벌받는 아이 카카오 스토리에다가 ‘남자라면 교도소 한 번 다녀올 수 있는 거지.’라는 격려 댓글을 다는 아이들이 나오는 거다.


  문제는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가정도 문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집에서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한다거나 도둑질을 해야 한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가정이 앞장서서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다. 대개 가정은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야하는데 말이다.


  소가 낳은 것은 소 새끼이고, 개가 낳은 것은 개 새끼라고 한다. 그리고 개나 소는 끼리끼리 뭉치면서 살아가고, 소나 개가 갖춰야할 덕목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세대를 내려가며 학습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사회에는 겉은 인간인데 속은 개만도 못한 것이 들어찬 존재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간으로 배워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서, 인간도 못한 것이 몸을 강탈한 모양이다. 영화 ‘신체 강탈자’처럼 말이다.


  이건 어른들이 후대에 사죄해야 할 일이다. 지금 잘못 가르친 행동 하나가, 알려주지 않은 사회성과 예의범절 하나가 후대에까지 이어지면서 앞으로의 사회를 더욱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미래를 다룬 SF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무법천지의 미래 사회는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야 늙어서 죽으면 끝이지만, 후손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책에서 보면 어떤 아이들은 과거를 뉘우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면 그건 그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 된다.


  그들을 범죄의 길로 내몬 것이 어른들이라면, 역시 올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상황을 똑바로 인정하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머리를 모아야 한다. 무조건 남의 탓만 해서는 절대로 아이들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내 아이는 문제가 없다고, 내 아이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일이 아니다. 폭력이라는 건, 이미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로 부모들도 정기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 부모가 문제 아이를 만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교육을 누가 담당해야 할 지…….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 중에 모범이 될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라면이 너무 짜다고 비행기 승무원을 폭행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이 나라는 참 골고루 문제가 많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나처럼 구석에서 해결책은 내놓지도 않고 무조건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고. 반성한다. 혹시 조카들에게 나도 모르게 폭력적인 태도라든지 욕설을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직업상 만나는 아이들에게 불의와 정의를 제대로 구별해줬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5천만 국민들이 나부터, 나 하나라도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생각하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막내 조카를 만나면 사랑한다고 꼭 안아줘야겠다. 이제 열한 살이 되었다고 고모가 안아주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런 거는 고모의 위엄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의 범죄를 다 용서해주자는 건 아니다. 상습적이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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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존 무어 감독, 브루스 윌리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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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 Good Day to Die Hard, 2013

  감독 - 존 무어

  출연 - 브루스 윌리스, 재이 코트니,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율리아 스니기르




  아들이 러시아에서 감옥에 가게 되자, 맥클레인은 만사 제쳐두고 달려간다. 그런데 어랍쇼? 재판정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면서, 아들은 한 남자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른 채 맥클레인은 아들을 공격하는 놈들을 무찔러주면서 따라가지만, 이놈의 애물단지 아들은 아버지가 왔는데 좋아하기는커녕 짐짝 취급한다. 알고 보니 아들은 CIA 요원이었고, 비밀 임무 중이었던 것이다. 적들의 공격에 팀원을 다 잃은 아들은 아빠 탓이라고 난리를 피우며 작전을 계속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을 노리는 건, 반전이 숨어있는 함정의 연속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존 맥클레인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족 때문에 생고생을 하는 걸까?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애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으니, 다음 생에서도 평온한 삶을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세계 평화를 지키기는 했지만, 글쎄?


  그보다 저 아들 녀석은 대체 뭘까? 적들이 비밀 은신처를 급습한 것은 지들이 방심해서이지, 아빠 탓은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테러 집단과 단신으로 맞서 싸운 존 맥클레인이 그 경험을 되살려 혼자서 거의 공격을 막아주고 목숨을 구해줬건만, 아들은 성질만 낸다. 와, 진짜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옛말이 있는 모양이다. 저런 XX도 자식이라고 감싸고 도와주려고 하다니.


  영화의 설정은 괜찮았다. 반전과 함정에 뒤통수도 강하게 때려주고. 하지만 아들의 캐릭터가 너무너무너무 재수 없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래도 명색이 CIA인데 개념도 없고 싸가지도 없고 철도 안 들었다. 아주 그냥 없는 것투성이다. 저런 놈이 어떻게 요원이 되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하긴 한국의 국정원 직원들은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그 나이 먹도록 댓글 놀이나 하고 있으니까, 뭐……. 역시 FBI가 짱인가보다. 멀더와 스컬리를 보면 말이다.


  4편까지는 거의 브루스 윌리스의 원맨쇼에 가까웠다면, 이번 편에서는 변화가 생겼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브루스 윌리스는 한발 뒤로 물러서고 아들 역을 맡은 배우가 거의 전면에서 몸을 쓰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보여줬던 그의 톡톡 튀던 재치 있는 대사를 들을 수가 없었다. 활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적들을 골탕 먹이던 날렵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치고 관망하다가 한두 번 기회를 만들어주는 노 스승의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면 아들이라도 분위기를 살려야하는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 녀석은 징징대고 짜증만 내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영화는 예전의 재기발랄함이 많이 사라졌다.


  반전이나 뒤통수치기는 훌륭했지만, 4편까지의 분위기와 너무 달라졌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조직이라고 하지만, 별로 크게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차라리 저 대본으로 다이하드 시리즈에 넣지 않고, 그냥 CIA 팀원들이 고군분투하는 스파이 액션물을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부자지간의 화해 같지도 않은 화해를 곁가지로 넣었다가 분위기만 이상해졌다.


  게다가 딸내미조차 러시아로 가는 아빠한테 사고치지 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4편에서 아빠가 사고치고 싶어서 쳤나? 네가 인질로 잡혀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가족들이다. 평소에는 개소 보듯이 상대해놓고는, 위기에 처하면 아빠 살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기껏 도와주면 사고나 치고 다닌다고 뭐라고 하고.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이하 생략)


  돌아가신 피천득씨는 그의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와 세 번째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나도 역시 존 맥클레인과 다섯 번째는 만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아들과는 절대로 안 만났어야 했다. 그 전까지의 좋았던 감정이 반으로 깎이고 말았다. 역시 시리즈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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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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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chneewittchen muss Sterben

  작가 - 넬레 노이하우스



  꽤 유명한 작품이지만 어쩐지 손이 선뜻 가지 않는 책이 있다. 남들이 다 'yes'할 때, 괜히 ‘no'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 그럴까? 아니, 어쩌면 그건 나만의 비뚤어진 심성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책은 그런 좀 웃기는 이유로 계속 볼까말까 망설이기만 했던 소설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예상치 못하게 손에 들어왔다.


  책을 편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건 다수가 소수를 폭행하는, 가슴 아프고 동시에 화가 나는 소설일거라고. 그리고 어쩌면 중간에 읽다가 몇 번 덮고 싶을지도 모르는 책이라고.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엄친아 그 자체였던 토비아스.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모든 남학생들의 좋은 친구이자 질투의 대상, 그리고 모든 부모들이 바라던 완벽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여자 친구와 전 여자 친구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10년형을 선고받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10년 후, 형을 다 마치고 출소한 토비아스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딸의 살인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피해자의 가족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몇몇 사람들 그리고 죽은 소녀를 쏙 빼닮은 아멜리의 등장은 겉보기에 평온했던 마을 사람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한편 반장인 보덴슈타인은 가정적으로 엄청난 문제에 부딪히고, 급기야 수사팀마저 삐걱대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추악하고 비열하며 더러운 인간들이다. 읽으면서 아주 그냥 욕을 하고 싶었지만, 읽는 장소가 집이 아닌 카페여서 꾹 참았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과 자신이 허용하는 범위 안의 사람을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눈으로 그걸 다시 한 번 확인하려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뭐 이딴 놈들이 다 있어! 이런 가증스러운 것들! 쓰레기라고 욕하고 싶지만, 어쩐지 그러면 쓰레기한테 미안한 XX들!


  너무 재미가 있어서 중간에 손에서 놓기 싫었는데, 한편으로는 화가 나서 속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토비아스가 당하는 일도 화가 나는데, 보덴 반장이나 수사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성질이 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내가 첫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본 게 아니라서 앞에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지만, 이번 편에서만 보면 팀원들이나 그들의 가족들도 아주 그냥 나쁜 사람들의 향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건을 해결하려는 수사원들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


  책은 등장인물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통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본성을 위로 끌어내 보여준다. 그것은 선함일수도 있고, 비열함이거나 추악함 내지는 사악함일 수도 있다. 그런 감정들이 얽히고 비틀리면서 갈등을 빚어내는데, 어쩌면 그리도 노골적인지 모르겠다.


  노골적이면서 은밀하다. 은밀하면서 동시에 욕망엔 솔직하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엔 솔직하지만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그렇다. 그 무감각함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마을에 그처럼 엄청난 비밀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해와 평온함은 속마음을 숨기는 가면의 연장선이었다. 타인과의 친밀한 교류 행위는 결국 그런 척을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어쩌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인간이란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해서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종족이라고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선함은 결국 악함에 먹히고 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추리 소설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범인은 결국 잡히게 마련이다. 모든 진실은 밝혀지고, 죄가 없는 사람은 그 결백이 입증된다. 그런 사실 하나만으로, 누군가 타인을 돕기 위해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은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다.


  그런 믿음으로, 인간의 선함에 기대를 품으면서 사람들은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비록 뉴스에서 보이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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