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보푸리
다카하시 노조미 글.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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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 - 다카하시 노조미

  그림 - 다카하시 노조미

 

 

 

  노란 스웨터를 너무도 좋아하는 소녀가 있다. 다른 옷은 더러워지면 혼이 나지만, 이 스웨터만큼은 그러지 않아서 매일 입고 다닌다. 그리고 소녀는 그 스웨터 끝에 달린 보푸리도 좋아한다. 소녀의 제일 친한 친구가 바로 스웨터에 달린 보푸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심부름을 나갔던 소녀는 그만 스웨터 올이 풀리는 바람에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봤지만 남은 것은 기다랗게 늘어진 노란 털실 뿐……. 과연 소녀의 친구 보푸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제일 친했고 언제나 옆에 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특별했던 것은 내 눈에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항상 곁에 두려고 했던 뭔가가 있다. 그게 없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상상의 친구와 항상 갖고 다녀야했던 것이 일치할 때도 있고, 별개의 것일 경우도 있다. 하여간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두 개가 있어서 혼자서도 재미있게 매일매일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막내 조카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 매일 밤마다 껴안고 자는 털 인형이 그것이다. 아토피가 있어서 한때는 인형 친구들과 같이 자는 게 금지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 녀석은 인형 서너 개를 머리맡에 두고 잔다. 그리고 자기 전에 학교에서 있던 일이라든지 아빠나 할머니에게 혼나서 속상했던 일을 소곤거린다. 난 어린 시절 그런 상상의 친구를 가졌던 기억이 나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애 아빠엄마는 조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흐음, 초등학교 다니는 남자 아이에게는 그런 행위가 허용이 되지 않는 가보다. 하지만 큰조카나 둘째조카도 중학생 때까지 인형이나 수건 같은 것을 보물단지처럼 소중히 아꼈다고 하는데…….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보다. 그렇기에 철 좀 들라는 말로, 정신 차리라는 말로 아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상의 세계를 깨트리는 짓을 할 수 있는가보다. 참 슬픈 일이다. 우리도 부모님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슬퍼했으면서…….

 

  이 책에 나오는 소녀의 엄마는 그런 점에서 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왜 아이 스웨터에 늘어진 부분을 다듬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덕분에 소녀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가 되찾는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스웨터와 보푸리를 더 소중하게 아끼고 주의 깊게 행동할 것이다. 부주의하게 행동했다가 잃어버렸던 기억이 있으니까 말이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느끼게 하다니, 참 멋진 엄마였다.



 

  이 책의 그림은 참 독특했다. 종이를 여러 겹 붙여서 입체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양털의 폭신함이나 다른 사물들의 질감도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다소 투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꼼꼼하게 색칠을 하고 모양을 냈다. 처음에는 ‘흐음’이었지만, 여러 번 보니 따뜻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찾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상상을 지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알려주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만……. 엄마가 집에서 치렁치렁 긴 홈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요즘 저런 엄마가 어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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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스 크리퍼스 - 할인행사
빅터 살바 감독, 레이 와이즈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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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Jeepers Creepers , 2001

  감독 - 빅터 살바

  출연 - 지나 필립스, 저스틴 롱, 조나단 브렉, 패트리샤 벨처

 

 

 


  십대 후반 내지는 이십대 초반의 남매가 차를 몰고 가고 있다. 흔한 남매처럼 말싸움도 하고 서로 이죽거리면서 놀리기도 하면서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던 중, 커다란 트럭 한 대가 그들을 지나친다. 그걸로 끝이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로 옆에 있는 교회 건물을 지나치다가 남매는 그 트럭이 서 있는 것을 본다. 트럭 차번호가 인상적이었기에, 운전자가 누굴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던 둘은 의심스러운 상황을 목격한다. 시트에 꽁꽁 묶인, 뻘건 액체가 잔뜩 묻어있는 뭔가를 운전자가 던지는 것을 스치듯 본 것이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몰래 다가간 남매. 지하로 숨어든 남동생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엄청나게 많은 시체들이었다.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식당에 도착한 둘. 하지만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직접 교회로 가던 남매와 경찰은 이상한 존재의 습격을 받는데…….

 

  처음에는 '텍사스 전기톱 학살 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같은 종류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버릇없고 호기심 많은 어린애들이 우연히 지나가던 시골 마을에서 살인마와 맞닥뜨려 사건이 벌어지는 그런 것 말이다. 처음에는 남매만 나오기에 '사람 수가 적은데?'라고 생각하며, 히치하이킹을 하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나올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이런! 그 예상이 빗나갔다. 비슷한 또래를 만나 개념 없이 시골 사람들을 놀리거나 남의 집을 드나들다가 사고를 당하는 게 아니었다. 둘은 봐서는 안 될 뭔가를 목격했기에, 살인마가 원하는 뭔가를 그들이 갖고 있었기에 추격을 당했다. 게다가 남매를 쫓던 살인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죽였다. 남매를 잡는데 방해가 된다 싶으면 무조건 죽였다. 심지어 둘을 찾기 위해 경찰서까지 습격하는 대담함까지 보여줬다.

 

  설정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23년마다 잠에서 깨는 살인마. 그는 23일 동안 사람들을 무차별도륙이 아닌, 특정한 사람을 골라 특정 부위만 골라 먹으면서 영양분을 보충한다. 쓸데없이 미식가인 척 한다. 어차피 깨끗이 씻어서 끓여먹을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자신이 죽인 사람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면서, 의심을 피한다. 이 부분은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레더 페이스가 떠오른다. 따라쟁이같으니라고. 대충 설명만 봐도 이 살인마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만 하면 꽤나 인기 있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이 아닌 존재를 등용하고도 영화는 좀 그냥 그랬다. 초반 남매의 투 샷이 너무 길었다. 주변 상황 설명이라든지 둘의 말장난 내지는 분위기 조성하느라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렸다. 그냥 두 남매가 좀 짜증이 났다. 뭐, 위기의 상황에서 뭉치는 게 핏줄이라고 하지만…….

 

  지하 동굴의 시체가 쌓인 산 장면이라든지 마지막 장면은 좀 충격적이었다. 비명소리가 참 마음이 아팠다. 나쁜 놈. 산 사람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지? 2편도 있는데, 이번에는 좀 당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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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말 못하는 아기 돼지 네네
사비네 루드비히 글, 사비네 빌하름 그림, 유혜자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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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ie Geschichte vom kleinen Schwein, das nicht Nein sagen konnte (2012년)

  작가 - 사비네 루드비히

  그림 - 사비네 빌하름

 

 

 

  네네는 남에게 싫다는 말을 잘 못하는 아기 돼지이다. 그것이 집에서 무조건 착한 아이가 되라고 강요를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소심해서 자기주장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괜히 남들과 의견을 달리해서 논쟁을 벌이거나 대화를 길게 하는 게 귀찮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의 네네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마 그냥 어른들이 착한 아이가 되라고 해서 무조건 ‘네네’거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헐, 그러보니 이름도 네네다. 자식에게 저런 이름을 지은 부모의 작명 센스가 참…….

 

  그날도 네네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모자를 챙기고 튜브, 공, 수건 그리고 과자까지 챙겼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법은 별로 없다. 시작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뽀뽀하고 가라는 엄마덕분에 버스를 놓치고, 강아지 때문에 비싼 튜브는 개시도 하기 전에 터져버렸다. 거기다 고양이에게는 모자를 강탈당하고, 너구리에게는 과자를 삥뜯겼다. 하지만 네네는 그런 동물 친구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벌어진다. 결국 네네는 폭발하고 마는데…….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이건 착한 아이가 아니라, 그냥 호구잖아? 요즘은 착하면 바보 내지는 호구로 본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에게 딱 들어맞았다. 얘가 평소에 다른 동물들에게 얼마나 얕잡아보였으면, 집을 나서자마자 이렇게 당하고 사는 걸까? 남의 물건을 망가뜨리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다른 동물들을 보면서, 그런 애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하는 네네를 보면서, 혹시 이 마을의 아이들은 어디가 이상한 게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후반에 가서 결국 네네도 ‘싫어!’라고 말을 하게 된다. 하긴 그 정도로 당했는데도 아무 말도 못하면 그건 바보겠지……. 조카도 책을 읽으면서 ‘얘 이상해, 고모.’라고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저렇게 당하기 전에 확실히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과하지 않는 동물들을 보며 저런 예의 없는 짓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나중에 보상해주면 모든 것이 무마될 거라고 생각하는 동물들의 사고방식이 어이없었다. 좀 심한 비유지만, 사람 찔러놓고 ‘미안해, 상처 치료해줄게.’라고 하면 끝나는 게 아니잖은가? 아이를 괴롭히고 ‘우린 장난이었어요, 보상해줄게요.’라고 하면 끝이 날까? 물론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네네의 사고방식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화책이라 결말이 해피엔드이긴 하지만, 그냥 다 행복하게 살았다고 웃으면서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각도를 조금 바꿔서 생각해보니, 달리 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은 네네를 자기 자신에 대입시켜 당하는 피해자의 마음을 간접경험 해보게 만들어,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말자고 교훈을 주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당하면 속상하니까, 다른 친구를 괴롭히거나 다른 친구의 물건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을 도우면 언젠가 보답을 받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아이들에게 무조건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다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걸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직접 부딪히고 겪어보지 못하면 모르는 문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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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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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殺戮にいたる病, 1992년

   작가 - 아비코 다케마루

 

 

 

  다 읽고 나서 ‘제길! 이럴 수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글이 너무 허술하다거나 내용이 욕이 나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길! 이런 글을 왜 이제야 봤을까?' 내지는 '이럴 수가! 이런 트릭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아, 그렇구나.'라고 책장을 넘기며 잔인한 장면에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는데, 거의 끝부분에 가서는 '헐, 대박!'하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책에서는 3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전직 은퇴형사 히구치, 연쇄 살인범 미노루와 그의 어머니 마사코. 굳이 스포를 하자면, 마지막 4번째 인물이 있었다. 그의 정체가 바로 이 소설의 반전이고, 읽는 사람들을 덜덜덜 떨게 만드는 장치였다.

 

  소설은 상당히 잔혹하다. 범인이 벌이는 살인 과정이나 이후 그의 심리는 정말로 ‘얘는 진짜 제대로 확실히 미친놈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 이런 놈을 보고 미친놈이라 하는 것이다. 원래 미친놈의 생각은 정상인이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는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이게 진짜 미친놈의 생각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달랐다. 아마 작가의 상상력일 텐데, 그렇다면 그건 또 나름대로 대단하다.

 

  그의 살인 행각을 따라가다 보면 차마 뒷장을 넘기지 못하게 책을 덮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얀 바탕에 적힌 까만 글자 사이에 읽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가 여자만 죽이기 때문이겠지만, 역시 유방과 자궁을 잘라내는 그 과정 묘사는……. 책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묘사된 부분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편인데, 그런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공포 영화나 미국 수사 드라마에서 본 인체 해부 장면이 연상되면서, 내가 당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저런 미친놈이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니 세상 참……. 뭐, 이미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니 저런 놈이 없다고 믿는 것도 우습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저런 놈과는 맞닥뜨리지 않고 살고 싶다. 난 그냥 조용하고 평범하게 가늘고 길게, 행복하게 살다가 가고 싶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 반전을 위해서 작가가 초반부터 구성을 그렇게 짰다고 생각하니, 굉장하다. 스릴러는 역시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뇌구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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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The Snowy Road (Hardcover, 한영합본) Modern Korean Short Stories 3
이청준 지음, 최재은 그림 / 한림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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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The Snowy Road

  작가 - 이청준

  그림 - 최재은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슬퍼 보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과 뭔가 할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꾹 다문 입 그리고 볕에 탄 주름진 얼굴. 분명히 손도 거칠거칠할 것이다. 그리고 눈이 하얗게 머리에 내려앉았지만, 모자나 귀마개 하나 쓰지 못했다. 분명히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닐 것이다. 왜 이 할머니는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날씨에, 어째서 이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야기는 한 남자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조카들만 남기고 죽은 형 때문에 학창 시절부터 집안을 떠맡아야했던 주인공. 그가 입버릇처럼 생각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와 자기 사이에는 빚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자기가 해야 하는 정도의 일만 어머니에게 하고, 그 이상은 해줄 마음이 없었다. 그에게 어머니나 형이 남긴 조카들, 형수는 그리 살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작은 아들에게 변변하게 해준 것이 없다는 미안함으로 가능하면 부탁 같은 걸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난생처음 부탁 비슷한 것을 말한다. 바로 집을 고쳤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 것이다. 당신님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지금 방한 칸밖에 없는 초가집은 그럴 수가 없으니, 증개축을 했으면 하는 소원을 조심스레 말한다.

 

  주인공은 그에 뿔이 나서 시골집에 온 지 하루 만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에 상심한 노모를 달랜 것은 주인공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모자 사이의 앙금을 해소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며느리와의 대화에서 노모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하나둘씩 내비치는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큰아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길에 나앉았지만 타향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주고 뜨끈한 방에서 하룻밤 재우고 싶었던, 도시로 돌아가는 어린 아들 밤길에 혼자 가면 위험할까 그 먼 눈길을 같이 왔다가 혼자 돌아가야 하는 먹먹함, 조금이나마 자식과 같이 있고 싶었던, 먼 곳에서나마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기원하는, 아들에게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으면 힘이 나겠지만 어린 자식에게 그런 짐을 지울 수 없기에 혼자 참아내야 했던, 자식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단호함과 그리움이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희생의 대명사로 대변되는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자식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안쓰러웠다. 아들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어머니가 자식 복은 없지만 며느리 복은 있는 것 같았다. 큰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일찍 죽었고, 작은 아들은 어머니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냉담하게 군다. 하지만 큰며느리는 시골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작은 며느리는 남편과 달리 사근사근하니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남편과 화해시키려고 한다. 아들보다 훨씬 나았다.

 

  모자가 화해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변화는 생길 것 같다. 주인공이 아주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보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제대로 보려고 했으면, 아마 조금은 서로에게 다가서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구성이 그런 감동 느끼는데 여러 번 방해했다. 이 책이 한국 단편을 영어로 번역해서 내놓은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편집이 좀 아쉬웠다. 한 쪽은 한글로, 다른 쪽은 영어로 구성해놓았는데, 두 언어의 문장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연달아 영어로 된 페이지가 나온다거나, 그림과 글 내용이 살짝 어긋나기도 했다. 그래서 감동이 반감된다거나 중간에 툭 끊어졌다. 차라리 앞은 한글, 뒤는 영어로 나누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살아있었고, 심경을 나타내는 배경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편집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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