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三體
작가 - 류츠신
읽으면서 여러 번 놀랐다. 몇 번이나 놀랐는지 차근차근 세어보겠다.
첫 번째, 중국에서도 SF 소설을 쓴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처럼 단단하게’를 읽었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이 작품을 접한 놀라움이 더 컸다.
헐, 대박! 중국에서 SF를 써? SF는 민주주의 국가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문학의 장르는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게임과 외계 문명을 어쩌면 이리도 교묘하게 결합시켰는지 감탄했다. 단순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외계인과 관련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외계인의 문명 변천사를 반영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게임 제작사는 어떻게 외계인과 접촉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역사를 알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지구의 종말 가능성까지 엮는다. 우와, 그 부분을 읽을 때는 진짜 오싹하면서 그럴 법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설마 누군가 날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가끔 드는 건 바로…….
세 번째, 물리학 이론이 많이 나온다. 물리학 공부하는 친구들은 신이 나서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거 다 몰라도 소설을 읽는데 별 지장이
없다.
네 번째, 문화 혁명에 대해 대놓고는 아니지만 우회적으로 깐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병처럼 광기와 공포에 휩쓸렸는지, 그래서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소설은 말하고 있다. 부인이 남편을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때리고……. 그러면서 그 당시 얼마나 정부와 사람들이 어리석었는지
간접적으로 얘기한다.
어떻게 이런 내용의 소설이 나올 수가 있는지, 중국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요즘 우리나라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정권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면
대뜸 ‘너 종북, 빨갱이지?’라는 비난을 받는데 말이다. 이 책도 중국에서 그런 일을 겪었을까? 하지만 그랬다면 중국에서 주는 상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흐음, 참으로 궁금하고 궁금하다.
그러니까 총 네 번 놀랐구나. 날 네 번씩이나 놀라게 하다니, 오랜만의 일이다.
과학자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들이 죽기 전에 ‘과학의 경계’라는 집단과 접촉을 했기에, 최근에 그쪽과 친분을 맺은 과학자
왕먀오가 대책반으로 불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협조해, ‘과학의 경계’라는 단체에
더 자주 접촉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면서 ‘삼체’라는 게임에 대해 알게 되는데…….
‘삼체 三體’는 가상현실 게임이다. 하지만 아이템을 구입해서 렙업을 하고, 파티원과 함께 사냥을 가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갈취해서 온갖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조준해서 헤드샷을 날리는 것도 아니다.
한 문명이 발생하고, 멸망한다. 바로 세 개나 있는 태양의 불규칙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문명이 거듭될수록 세 태양의 주기를 밝혀서 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리학이나 지구과학 등등과 관련이 깊은, 아주 교육적인 게임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왕먀오는 삼체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오가면서, 과학자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집단의 정체 그리고 예전 정권 때 있었던 홍안 기지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고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뜻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소설은 꽤나 재미있었다. 440쪽 정도 되는 분량인데, 중간에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네 번이나 놀라고, 과연 외계인과
지구인의 만남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해하다보니까 끝까지 쭉쭉 그냥 읽혔다.
게다가 게임 세상에서 유명 과학자나 철학자들의 이름을 가진 유저인지 npc인지가 나누는 대화도 꽤 웃겼다. 그들이 제창한 이론에 따라서 행동하는
게 참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저자가 미적분을 자기가 발명했다고 말했오!”
가발을 다시 쓰고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왕먀오에게 허리를 굽히며 유럽식 예를 갖췄다.
“아이작 뉴턴이오.”
“그러면 도망가는 저 사람은 라이프니츠겠군요?”-p.234
과학과 게임, 외계인과 음모론, 그리고 잔혹함이 뒤섞여 괜찮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획일화된
사회는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자연을 아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