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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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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Big Four, 1927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의 첩보물에 대한 애정은 급기야 그녀의 명탐정 포와로까지 국제 조직에 맞서게 만들었다. 이 책은 ‘갈색옷의 입은 사나이 The Man in the Brown Suit, 1924’와 ‘세븐 다이얼즈 미스테리 The Seven Dials Mystery, 1929’의 사이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내용은 음, ‘프랑크푸르트행 승객 Passenger to Frankfurt: An Extravaganza, 1970을 연상시킨다, 이 이야기가 먼저 나왔으니, 이 책에서 그 책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거의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의 4호와 싸우는 포와로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모리아티 교수와 싸우는 셜록 홈즈의 느낌까지 났다.

 

  아르헨티나에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헤이스팅즈. 오랜만에 영국으로 건너와 친구 포와로를 만나는데, 뜻밖에도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포와로의 말에 의하면 재력가와 과학자, 정치가 그리고 사형집행인으로 구성된 조직이 전 세계를 상대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은 끝없이 두 친구를 협박하더니 급기야 헤이스팅즈의 부인까지 납치했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불쌍한 헤이스팅즈, 그는 묶인 상태에서 부인을 살리느냐 친구를 구하느냐 중대한 갈림길에 놓인다.

 

  이야기는 포와로와 헤이스팅즈가 ‘빅 포’라 불리는 조직의 벌이는 음모를 하나하나 파헤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어떻게 보면 단편 모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면 연작 소설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까?

 

  사건들은 얼핏 보면 사건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것 같은 경우도 있었는데, 그 해결을 보면 ‘아-’하면서 놀라게 된다. 하아, 난 아직 멀었다. 이래갖고 미스터리 애독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에 포와로의 영원한 적수라는 베라 로사코프 백작 부인이 등장하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직 안 읽은 책에 있나보다. 포와로가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경애를 표하긴 하지만, 이 여자는 좀 다른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연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니고. 홈즈와 아이린 애들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까? 흐음,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이 셜록 홈즈를 연상시키는 설정들이 몇 개 들어있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 깜짝 게스트가 한 사람 나온다. 좀 억지스럽지만, 꽤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P.188에 보면 ‘여우의 트로트인가 하는 춤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고 말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여우의 트로트라니, 설마 ‘폭스 트롯 Foxtrot’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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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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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三體

  작가 - 류츠신

 

 

  읽으면서 여러 번 놀랐다. 몇 번이나 놀랐는지 차근차근 세어보겠다.

 

  첫 번째, 중국에서도 SF 소설을 쓴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처럼 단단하게’를 읽었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이 작품을 접한 놀라움이 더 컸다. 헐, 대박! 중국에서 SF를 써? SF는 민주주의 국가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문학의 장르는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게임과 외계 문명을 어쩌면 이리도 교묘하게 결합시켰는지 감탄했다. 단순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외계인과 관련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외계인의 문명 변천사를 반영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게임 제작사는 어떻게 외계인과 접촉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역사를 알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지구의 종말 가능성까지 엮는다. 우와, 그 부분을 읽을 때는 진짜 오싹하면서 그럴 법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설마 누군가 날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가끔 드는 건 바로…….

 

  세 번째, 물리학 이론이 많이 나온다. 물리학 공부하는 친구들은 신이 나서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거 다 몰라도 소설을 읽는데 별 지장이 없다.

 

  네 번째, 문화 혁명에 대해 대놓고는 아니지만 우회적으로 깐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병처럼 광기와 공포에 휩쓸렸는지, 그래서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소설은 말하고 있다. 부인이 남편을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때리고……. 그러면서 그 당시 얼마나 정부와 사람들이 어리석었는지 간접적으로 얘기한다.

 

  어떻게 이런 내용의 소설이 나올 수가 있는지, 중국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요즘 우리나라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정권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면 대뜸 ‘너 종북, 빨갱이지?’라는 비난을 받는데 말이다. 이 책도 중국에서 그런 일을 겪었을까? 하지만 그랬다면 중국에서 주는 상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흐음, 참으로 궁금하고 궁금하다.

 

  그러니까 총 네 번 놀랐구나. 날 네 번씩이나 놀라게 하다니, 오랜만의 일이다.

 

  과학자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들이 죽기 전에 ‘과학의 경계’라는 집단과 접촉을 했기에, 최근에 그쪽과 친분을 맺은 과학자 왕먀오가 대책반으로 불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협조해, ‘과학의 경계’라는 단체에 더 자주 접촉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면서 ‘삼체’라는 게임에 대해 알게 되는데…….

 

  ‘삼체 三體’는 가상현실 게임이다. 하지만 아이템을 구입해서 렙업을 하고, 파티원과 함께 사냥을 가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갈취해서 온갖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조준해서 헤드샷을 날리는 것도 아니다.

 

  한 문명이 발생하고, 멸망한다. 바로 세 개나 있는 태양의 불규칙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문명이 거듭될수록 세 태양의 주기를 밝혀서 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리학이나 지구과학 등등과 관련이 깊은, 아주 교육적인 게임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왕먀오는 삼체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오가면서, 과학자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집단의 정체 그리고 예전 정권 때 있었던 홍안 기지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고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뜻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소설은 꽤나 재미있었다. 440쪽 정도 되는 분량인데, 중간에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네 번이나 놀라고, 과연 외계인과 지구인의 만남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해하다보니까 끝까지 쭉쭉 그냥 읽혔다.

 

  게다가 게임 세상에서 유명 과학자나 철학자들의 이름을 가진 유저인지 npc인지가 나누는 대화도 꽤 웃겼다. 그들이 제창한 이론에 따라서 행동하는 게 참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저자가 미적분을 자기가 발명했다고 말했오!”

  가발을 다시 쓰고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왕먀오에게 허리를 굽히며 유럽식 예를 갖췄다.

  “아이작 뉴턴이오.”

  “그러면 도망가는 저 사람은 라이프니츠겠군요?”-p.234

 

  과학과 게임, 외계인과 음모론, 그리고 잔혹함이 뒤섞여 괜찮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획일화된 사회는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자연을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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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인문학 -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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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저자 - 안상현

 

 

 

  우와, 우와, 우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내뱉은 소리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한 독자의 입에서 나온 감탄사이다.

 

  찌잉-찌잉-찌잉-.

  무슨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아까 그 독자의 마음이 짠하게 울리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읽으면서 평소에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쉽고 구체적으로 풀어놓으며 동시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장들 때문에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다 읽은 다음에는 허기진 마음이 채워지는 그런 느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짠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모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왜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저런 강의가 없었는지, 요즘 학생들에게 부러움을 넘어선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물론 달리 생각하면 예전과 지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굳이 인문학이라고 따로 배우지 않아도, 교양 과목을 듣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공은 둘째 치고 좋아하는 역사나 문학을 파고드는 학생들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하면, 그래갖고 먹고 살 수 있겠냐고 나중에 어떡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상황은 점점 더 심해져서, 요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수학이나 영어 빼고는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경우가 없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이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대신 보습 학원이나 영어 학원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그러다 대학에 가려고 고등학교 때 미술 학원에서 스킬만 익힌다. 독서 역시 책을 좋아해서 읽기보다는 숙제 때문에 억지로 쓰거나, 원서 넣을 때 필요한 몇 권만 읽는다. 역사 공부 역시 단순 암기식으로 외우는 것에만 치중해서, 흐름이나 관련성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공부하기 싫은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건 공부해야할 과목이 하나 더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서 그것을 중요시한다고 하니, 취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하는 분위기이다. 초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을, 취업 때문에 공부한다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입시학원처럼 단지 유용한 '스킬' 몇 가지만 배우고 끝나는 것은 아닐까?

 

  저자 역시 이런 점을 걱정한다. 아마 그 때문에 저자가 이런 강의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왜 공부해야하는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삶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제일 인상 깊은 것은 꿈과 진로는 다르다는 말이었다. 무척 많이 공감이 갔다. 단지 유명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라면, 취직한 다음은? 취직하고 나면 그 사람의 삶은 끝나는 걸까? 취직하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은 행복할까? 평소에 막연하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그런 거야! 어쩌면 이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공감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역시 내공의 차이란……. 난 아직 멀었다.

 

  많이 공감하고 인상 깊은 부분의 책장 귀퉁이를 접다가 나중에는 포기해버렸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었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어린 친구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이었다. 내가 옆에서 뭐라고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그냥 읽어보라고 슬쩍 들이밀어야겠다. 그들도 나처럼 뭔가 깨닫는 게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사회는 어린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다 A로 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루저라고 비난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놓고, 그게 싫으면 B로 가는 길을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보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그리고 A로 가지 못하거나 B로 가는 길을 만들지 못한, 그 때문에 루저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척이나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게 책 추천밖에 없는 못난 어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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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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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저자 - 사사키 아타루

 

 

 

  이제야 말하지만,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미리 추측해보는 버릇이 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 그런가? 미리 짐작해서 맞춰보고 맞으면 혼자 좋아하고, 틀리면 '오오!'하면서 놀라곤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보았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이 조합이 이루어지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일본이 요즘 자위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데 그런 무력 武力 증강에 관한 문제를 철학적으로 논하는 내용일까? 그런데 표지에 그려진 책은 뭐지?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어딘지 이상하다. 뭔가 말이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다. 내가 생각한 힘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차'하고 깨달았다. 제목의 무력은 武力이 아니라, 無力이었다. 하아, 어쩐지 내용이 이상하더라.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제목이 영어로 적힌 일본어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자로 된 원제목도 적혀있지 않았다. 결국 다시 책을 읽어야했다.

 

  사사키 아타루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일본에서는 떠오르는 철학가이자 작가라고 한다. 이 책은 2011년부터 그가 참석한 강연이나 좌담회 등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예전에 낸 책에 관한 언급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난 여기서 이름을 처음 들었으니 책을 읽어봤을 리가 없다. 거기다 그와 같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역시 처음……. 그래서 어떤 한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할 때는 그냥 머리 굴리지 않고 가만히 읽기만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때는 잠자코 있는 게 제일이다. 괜히 이것저것 생각하고 추측하다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저자는 2011년 3월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일본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졌다고 얘기한다. 하긴 그 정도 재난을 접하면, 사람들은 대자연의 위력을 느끼고 인간이란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냐고 생각할 만하다. 그래서 그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철학과 소설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크게 감명을 받으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고, 또 다른 부분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그냥 글자만 읽기도 했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 때는 잘 이해가 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우리의 제정신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를 요약한 기본 주기 21개는 간단명료하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적어둔 부분이다. 그런데 저 제목, 어딘지 어색하지 않은가? '우리가 제정신으로'라고 해야 문맥상 더 맞을 것 같다. 하여간, 저 부분에서 21번째가 마음에 들었다.

 

  문학이나 예술이 무력하다는 뻔한 말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우리는 훌륭하게 '제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를 만든 사람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이 참화의 나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음을. -p.181~182

 

  제목처럼 무척이나 치열하게 글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아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무가치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창작 활동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치열했다. 그냥 취미삼아서, 어쩌다보니 하는 게 아니었다. 내 삶의 흔적이란, 그야말로 내 존재의 증명과 비슷한 말이었다.

 

  저자의 언어에 대한 생각도 꽤나 신선했다. 언어와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또한 책을 다르게 읽는다는 말도 공감이 갔다. 책이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니까.

 

  저자와 다른 사람들이 소설과 철학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참으로 좋았다. '소설을 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되는 모험이다.' 라는 소제목도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아, 맞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느낌이 팍 왔다. 작가가 그런 모험을 하니까, 읽는 독자도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글이란, 작가와 독자가 서로 교감을 할 수 있는 통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보다 여유 있게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했다시피, 책은 읽을 때마다 내가 받아들이는 폭과 느낌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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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찰리 헌냄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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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acific Rim , 2013

  감독 -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 찰리 헌냄, 이드리스 엘바, 키쿠치 린코, 찰리 데이

 

 

  난 말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도 그랬다. 애인님은 로봇물을 좋아해서, 그런 류의 영화가 나오면 거의 꼭 보는 편이다. 그런데 난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냥 애인님이 보자고 하면 같이 보곤 했다. 내 취향이 아니지만 너무도 좋아하는 애인님을 위해서 ‘괜찮네.’정도로 대답을 했었는데, 이 영화는 끝나자마자 내 입에서 ‘재미없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랬어?’라는 애인님의 실망스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대답이 이어졌다.

 

  아차, 실수했다. 내 주장대로 거의 매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호러 영화를 같이 봐주는 애인님인데, 난 아주 가끔 로봇 나오는 영화 그거 하나를 같이 못 봐주나. 게다가 감독도 그 사람이 너무도 좋아하는 델 토로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난 왜 이 영화가 별로였는지 조목조목 얘기해주기 시작했고, 애인님의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갔다. 아, 나 또 실수했나보다.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에 거대 괴생명체가 나타난다. 인류는 힘을 모아 그 거대 생명체 카이주에 맞서 싸우기 위해 거대 로봇 예거를 만든다. 어떤 이유로 잠시 로봇 조종을 그만뒀던 주인공이 복귀하면서, 인간은 반격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바로 카이주의 의식과 연결하는 실험이 성공하면서,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지구에 왔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이 지구로 넘어오는 통로를 막기 위해, 모든 로봇 조종사들은 힘을 다하는데…….

 

  델 토로 감독의 다른 영화는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내용과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은 어디서 본 것 같고, 이 설정은 모 영화를 약간 바꾼 것 같고…….’ 계속 이런 생각만 들었다.

 

  카이주의 뇌와 인간의 의식을 연결하는 과학자의 실험을 보면서,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Independence Day, 1996’이 떠올랐다. 거기서는 컴퓨터로 해킹을 해서 우주선의 방어 시스템을 파괴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카이주의 뇌와 인간의 뇌를 연결해서 상대의 의식을 파고 들어가 정보를 캐냈다. 게다가 최후의 공격에 나서기 전 현역에서 물러나있던 최고 사령관이 참전하는 장면 역시,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비행기를 몰고 나갔던 부분이 연상되었다. 싸우기 전에 애국심, 인류애, 그리고 동료애에 대해 일장 연설하는 것도 비슷하고 말이다. 거기다 초반에 형이 죽는 장면은 작년에 보았던 ‘배틀쉽 Battleship, 2012’에서도 나왔었다. 하지만 배틀쉽보다는 몇 배 나았다. 거기다 마지막 장면! 하아, 약간의 변화만 주었지 ‘스타게이트 Stargate, 1994’와 비슷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호러 영화도 스토리 진행이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왜 굳이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고,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려고 하고,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왜 꼭 기형을 가졌을까? 미친놈의 정신 상태를 정상인은 이해 못한다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 놈이 미쳐서 그렇다고 결론내리는 것도 이상하고…….

 

  이 영화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나 둘 다 스토리 때문에 본 건 아니었다. 이 작품은 CG로 만들어낸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의 화려하고 실감나는 전투 장면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썰고 베고 죽이고 도망가는 그 순간의 스릴과 흥분 때문에 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다 똑같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좋을 수는 없으니까, 공략 대상만 만족시키면 된다. 그런 의미로 이 영화는 꽤나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을 테니 말이다. 애인님은 델 토로 감독이 빨리 2편을 만들어주길 완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키쿠치 린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시다 마나는 특유의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여전히 귀여웠다. 난 그 정도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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