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

p122~
생각을 많이 한다고 인생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잘못된 부분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될 뿐이다. `난 뭐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난 왜 만족스럽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깊이, 오래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가끔은 오래 고민을 하다 보면 뭔가 대단한 통찰을 얻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제야 내 인생이 어디에서부터 꼬였는지 알게 되었다`거나, `나는 절대로 잘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거나, `마음의 상처는 죽어도 해결 못할 거다`라는 결론이 번쩍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정답이 아니고, 설혹 정답이라고 하더라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에 무거운 짐 하나만 더 늘어날 뿐이다.

p129
관찰자 연습을 해보면 도움이 된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마름속에 떠오른 생각과 느낌을 관찰해보는 거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기 생각을 관찰한다. 생각을 기차라고 여기고,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보는 것처럼 생각을 `보는` 것이다. 왜 생겼고, 무엇이 문제인지 따지려 들지 말고, 그저 관찰하는 거다. 생각을 관찰하는 자아의 한 부분을 `관찰자 자아`라고 부른다. 개념화된 자기가 아니라 관찰자 자아의 힘이 커질수록 심리적으로 여유로워지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58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생각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역기능적인 결과가 일어난다. 특정한 사고방식이 주는 숨겨진 이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특정한 사고방식 때문에 우울해진다는 것을 깨닫더라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고방식을 주입하려고 한다는 걸 느끼면 반사적으로 저항한다. 자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행해지는 인지 재구조화 작업은 득보다는 독이 된다.

p78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과 대처 켈트너 교수는 권력이 우리 뇌에 미치는 변화가 전두엽 외상 환자가 입은 손상과 유사하다고 했다. "공감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전두엽 부위가 문제가 생기면,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변한다. 사람이 약간의 권력만 갖게 되어도, 이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 권력을 가졌다는 인식은 다른 사람과의 교감을 방해하고, 공감 능력을 손상시킨다. 타인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 우리 뇌는 다른 사람을 돌보도록 진화해왔다. 타인이 고통을 느끼면, 그의 고통을 같이 느끼도록 구성되어 있다.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면, 타인의 고통을 보기만 해도 그것을 같이 느끼게 된다. 그런데 권력은 이런 자연스러운 뇌 반응을 방해하고 억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213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꿈이나 희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소망을 자녀에게 투사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88
내 나름의 `비법`이 있기는 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49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을 살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우리는 각자 정체성이 다른 자아들이다. 누구도 타인에게 삶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는 삶은 비천하고 허무할 뿐이다. 숱한 고난을 받고 살다가 모진 핍박을 받아 죽을지라도, 스스로 뚜렷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면 훌륭한 인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