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알고 있지.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냥 어른인 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어른답게 산다는 것의 고단함을 나는 알지. 나는 또 알지. 죽는 날까지 나는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른 흉내만 내며 살 뿐이라는 것을.
2.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피곤한 이유가 있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 놓고 사니 먼지가 많아 실내 바닥을 자주 닦아야 하고, 땀을 흘리니 샤워를 매일 한 번 또는 두 번 해야 한다. 이렇게 체력 소모가 많다 보니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걷고 있는 여름밤에 한 줄기의 바람이 목덜미를 시원하게 스칠 때면, 잠을 청하는 여름밤에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면 내 마음이 두둥실 허공을 떠다니는 것만 같다. 오직 여름에만 가질 수 있는 이 느낌을 사랑한다.
3. 나는 완독을 지향한다. 여러 책을 병행하여 읽어서 완독하지 못한 책이 많지만 언젠가는 꼭 완독하리라 마음먹는다. 그 이유는 보석 같은 문장은 어디엔가 숨어 있어서 그걸 놓치는 게 손해로 여겨져서다. 가령 책의 뒷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거기에 내가 놓친 좋은 문장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샅샅이 뒤지듯 읽는 것. 이게 나의 독서하는 태도다. 지루하게 읽히는 페이지를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할 때면 쾌감을 느끼며 밑줄을 긋는다. 나는 책 전체의 흐름보다 문장 낱개를 중시하는 모양이다.
4.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라게 하는 게 좋은 육아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한다. 상처를 받고 그것을 극복하는 가운데 ‘성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로서 할 일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아이와 함께 연구하는 일이다. 과거에 어떤 일로 상처를 받은 기억이 나면 그게 재산 같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 상처를 견디는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아주 나약한 사람으로 살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일도 겪었는데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이렇게 마음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상처받은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5. 여름이 되면서부터 친정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자주 모시고 다녔다. 무슨 검사를 할 때마다 혹시 돌아가시려고 큰 병이 있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며 긴장하여 입 안이 쓰고 목이 말랐다. 어머니는 80세이시다. 우리나라 여자 평균수명이 85세라니까 적어도 5년은 더 사셔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어머니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큰일이다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이 되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다면... 나는 내게 친정이 없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여러 병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우리 식구 모두 어머니가 무탈하시길 바라며 이 여름을 지내고 있다. 아무래도 가을이나 되어야 여행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