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의 길 - 상 - 정조평전 성군의 길
한영우 지음 / 지식산업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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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렵다. 학창시절의 역사는 맥락을 무시한 단순 암기과목이었다. 정확한 연도와 사건의 명칭과 등장인물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 결과 얻어진 점수가 곧 나의 역사 인식도였다. 졸업이후 역사는 현실과 괴리감을 가진 단순 과거의 사건이었고 미래만을 읊조리는 풍조 속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시간은 순차적으로 그리고 누적되어 흘러간다. 지금 의 모습은 과거 시간의 합이며, 지금의 대한민국 또한 과거 시간의 총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책 속에서 죽은 활자가 아닌, 현실에 물리적으로 살아 숨 쉬는 활동사진과 같다.

 

일반인으로서 과거를 바라보는 눈은 전문가들에 의지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같은 사건을 너무나 많은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다 보니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넘쳐나고, 그 속에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하게 된다는 것이다. 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분들이 정확하게 결론을 내려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정조라는 인물은 영조와 사도세자를 건너뛰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당연히 정조평전임에도 절반가량은 영조와 사도세자와의 갈등을 담고 있다. ‘권력과 인간에서는 사도세자의 성격적인 면을 문제시 하고 사도세자의 고백에서는 당쟁의 암투 속에서 사라지는 불운한 세자로 그려진 반면 이 책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임오화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 말한다.

 

할 수 없이 두 살 때 세자로 책봉하고 세자궁에 보내 궁녀들에게 양육을 맡겼다. 궁녀들이 세자의 비위를 맞추고 떠받드는 데 신경을 쓴 나머지 버릇없고 전쟁놀이를 좋아하며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아이로 자랐다. 성격도 무인 기질을 타고났다.” p. 212-213

 

세자는 점차 성격이 비뚤어지기 시작하고 지나치게 엄한 아버지에 대한 공황증과 반항심이 생겼다. 영조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성격이어서 더욱 세자를 힘들게 했다.” p.213

 

궁녀들의 손에서 버릇없이 자란 것, 문치를 선호한 영조와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사도세자와의 갈등, 거기다 아버지로써 따뜻하게 보듬어 주지 못하고 문책과 꾸중만을 남발한 영조.

 

다만, 영조는 당론을 일으키는 노론의 관직을 삭탈하거나 귀양 보냈다가 풀어주는 온건한 방법을 선호했지만, 과격한 성격을 지닌 세자는 피바람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영조는 늘 걱정했다...... 그래서 노론 벽파는 세자를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고 세자의 비행을 수시로 임금에게 보고하면서 세자를 폐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p.215

 

사도세자는 남인에 속했지만 영조의 탕평책을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왜 노론은 세자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폐위시킬려고 했을까? 만약 세자가 정신병이 있다면 노론만이 아닌 소론, 남인들도 충분히 위협을 느끼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자는 18세에 정조를 얻었다. 처음에는 한없이 기뻐했으나 5세 이후로 아들의 영특함이 드러나면서 임금의 사랑과 관심이 점차 손자에게 쏠리기 시작했다....자신의 후계자를 세자가 아닌 세손으로 바꾸기로 결심하고 이를 신하들 앞에서 수시로 연명했다. 이를 알게 된 세자는 이성을 잃고 난폭한 행동으로 임금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p.215

 

사도세자는 영조의 꾸중에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영조의 정조에 대한 사랑 때문에 생긴 사도세자와 정조와의 갈등은 어디에도 없다. 또한 만약 사도세자가 정말 세손에 대한 영조의 사랑에 불안감을 느꼈다면 굳이 자살을 시도했을까? 오히려 세손을 해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후계자에 대한 욕심이 큰 세자였다면 자기 자리만 지키면 자연스럽게 왕좌에 오르는 사람이 굳이 영조와 갈등을 일으켰을까? .....

 

사도세자의 죽음. 풀리지 않은 의문들. 그 속에서 살아남아 왕이 된 정조. 그는 어떤 생각으로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것을 방조한 이들을 바라봤을까? 어떤 슬픔과 분노를 안고 살아갔을까? 이 책은 그 후의 정조의 모습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계속 서술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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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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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뽑을 때, 절대 빠지지는 않는 분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다. 어릴 때부터 훌륭한 분이라고 배워왔고 들어왔지만 정작 그 분에 대해 아는 건 목민심서정도이다. 그것도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접한 책이 다산 정약용 평전.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들어오다 어릴 때부터 운명하실 때까지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책을 읽으면서 왜 그 분이 세월을 관통해 기억되고 회자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1. 다방면에 뛰어남

유럽 르네상스 하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화가로서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런 그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충분히 비견된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규칙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을 죄악시한 그 시절에 북학에 관심을 가지고 천대받던 과학, 종교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글,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부친의 별세로 삼년상을 치르고 있음에도 정조는 그에게 화성축조를 담당하도록 지시했다고 하니 기술 관료서 그의 뛰어남을 짐작할 수 있다.

 

2. 정치인으로 다산

조선은 유교 국가이다. 특히 주자의 성리학을 신성시해 그 이외의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논리는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당화 수단이 되었다. 목민관으로서 다산은 기득권이 아닌 백성을 위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 유혹되어도 안 되며, 위세에 굴복해서도 안 되는 것이 수령의 도리이다...... 상사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히 자신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p.245)

 

다산하면 목민심서가 떠오르는 이유는 그의 철학과 실천력을 가진 정치인을 21세기 우리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다산

뛰어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런 자질은 세상의 풍파에 깎기며 변한다. 그러기에 일반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하고 남아공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그러하다. 정조와 체재공의 비호아래서 충분히 성장해 기량을 뽐낼 수 있었을 다산이지만 체재공과 정조의 이른 죽음은 그를 죽음의 늪 근처까지 끌어내린다. 18년이라는 유배생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만큼 그것을 펼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할 법도 하지만, 유배지에서 오히려 부족한 자신의 학문을 완성해 수백 권의 책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힘써 많은 제자를 거두었다고 한다.

 

뛰어난 지성이나 지위 때문이 아니라 확고한 철학과 원칙, 실천력, 거기서 나오는 아우라, 그리고 대체 불가능함이 누군가를 존경하고 따르도록 만든다. 그러기에 다산 정약용을 학자들은 연구하고 일반인은 관심과 존경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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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 독서법 -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독서교육의 모든 것
최승필 지음 / 책구루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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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원한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알고 1점이라도 더 받아오면 아이들이 이뻐 보이고 똑똑해 보인다. 그런 보상심리는 남들이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면서 더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태아를 위한 클래식에서 4,5세를 위한 영어유치원 그리고 유명한 학원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남들만큼 시키기 위해 검색하고 이야기한다.

 

물론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의무이며 노력이다. 하지만 간혹 의문이 든다. 누구보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더 즐거워하고 부모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나이의 아이들이 가정의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과연 그들에게 더 유익할까?

나는 부모가 가장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중학생이전까지는 부모와의 관계, 부모의 행동, 부모의 말 등이 더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 중요하다고 믿는다. TV 보다는 아이와 대화를, 스마트 폰보다는 책을, 학원보다는 놀이를 함께 해 주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관계형성 방법을, 사고하는 방법을, 그리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기계적으로 주입해서 나오는 기계적인 지식들은 무너지기 쉽다. 문맥을 보기보다는 한 두 문장의 핵심적인 정보만을 보고, 독해를 통해 이해하기 보다는 암기하려고만 한다. 따라서 초등학교까지는 지식의 습득이 아닌 부모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책과 가까워지는 습관 그리고 책이 공부가 아닌 또 다른 놀이기구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문맥을 보고 독해를 하는 능력이 키워진다고 믿는다.

 

초등학교까지 이렇게 부모와 책과 가깝게 보낸 아이들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지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배우더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이 시기에 학원을 갔을 때 그 효과가 배가 됨은 말할 필요 없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독서는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최고의 학습법이다. 거기에 부모와 함께 라는 말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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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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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았다. 혹독하고도 가혹한 한 겨울같이 모질고 잔인한 일본인들의 학대와 무자비함을 당해보지 못했다. 교과서나 학교에서 들은 것들이 전부인 나에게 식민지시대의 아픔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식민지의 해방을 직접 보지 않았다. 해방과 동시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외치는 ‘대한민국 만세’ 라는 소리를 듣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해오는 전율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해방이후의 이념대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왜 농민과 소작농들이 자신의 땅을 갖고자 하는 꿈을 갖고 공산당에 가입하고 같은 민족과 대결을 하는지, 왜 친일파를 처벌하기보다는 함께 독립을 꿈꾸고 함께 힘겨운 삶을 이겨내며 살아간 사람들을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6.25를 경험하지 못했다. 뉴스로 전해지는 9.11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TV나 영화에서나 전해지는 것들이다. 실제 전쟁에서 겪게 되는 아픔, 서러움, 슬픔은 글자 그 이상의 의미로 전달해 지지는 않는다. 교과서, 전문서적을 통해 그리고 영화를 통해 그 당시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에게는 딱딱하고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너무 거시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TV 나 교과서에서 전해지는 역사는 엉성하고 감정이 실어져있지 않은 신문기사 같은 느낌이라면, 소설 ‘태백산맥’은 하루하루 감정과 변화를 기록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일기와 같은 책이다. 독립이후에 전개되는 이념전쟁과 그 와중에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6.25전쟁을 현미경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듯 세밀하고 상세하고 그리고 내가 직접 그 시대를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글이 전개된다. 공산당이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도 없으며 단지 자기 땅 가지고 자식들 입에 풀칠할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전부인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 이념이 다른 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것을 목격해야만 하는 부모. 공산주의를 믿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가 죄가 되어 고문당하고 여자로서의 감당하기 힘든 수치를 인내해야 하는 여성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만한 누군가가 아닌 거리를 거닐다 한번쯤 스치고 지나갔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나는 또한 땅을 분배해주기를 원하는 소작농을 공산당으로 몰아 죽이는 지주들에게 분노하고, 친일이었다가 해방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붙어 기생해 나가는 그들에게 치졸함과 야비함을 느끼며, 정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무조건 공산당이라고 처벌하는 권력의 무서움을 보았다. 

 

 그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태백산맥은 우리가 왜 슬픔을 간직한 민족인지 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 어떤 위인들보다 위대한지를 알도록 해 주었다.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인터넷과 TV에 빠져 정작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우리 윗세대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태백산맥과 같은 책을 놓치고 있다. 세대가 지날수록 사라져버릴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은 태백산맥과 같은 책으로 후세들에게 전해져야 우리를 포함한 후대들이 대한민국을 더 잘 이해해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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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세트 - 전12권 (반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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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선을 대표하는 양반문화. 500년 이상을 한국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지금도 양반이라는 말에 어색함을 못 느낄 정도로 익숙한 말이다. 학식과 경제적 안정은 물론 사회적 지위까지 가진 그들은 높게는 영의정에서 낮게는 지방의 낮은 관직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중요한 정책을 관리 집행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인물들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그들에게는 의무와 책임이 아닌 권리와 권력만이 존재한다. 못 배우고 못 가진 이들 앞에서 소리치고 고함치며 무시하는 것에서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정당화 하며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남 탓이며 주위의 상황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는 그들의 논리는 언제나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아리랑은 민중의 노래이다. 족쇄처럼 자신의 운명을 옥좨는 계급, 양반들의 잘못과 비리를 대신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 민중의 노래이다. 소설 ‘아리랑’은 민중, 즉 억장이 무너질 정도의 억울함,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수치감을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 민중의 이야기이다. 을사조약, 정미7조약에 이은 1910년 한일합방 그 중심에는 양반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자랑스러워하며 떳떳하게 조선을 일본에 넘긴 이들이며, 누군가는 민중에게 고함지르던 당당함과 자신감은 사라지고 약삭빠르게 눈을 굴리며 자기의 살 길만 물색한 이들이다. 그 짐과 부담은 고스란히 민중들에게로 향한다. 조선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그 과정 속에서 굶거나 죽어가며 싸운 이들도 민중이며,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생명줄인 농토를 잃어버리고 분통해 하는 이들도 민중이며, 일본의 전략기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조선임을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간 이들도 민중이다.

 프랑스혁명이 위대한 이유는 귀족과 성직자들에게서 민중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민중의 승리 그것이 지금의 프랑스와 유럽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조선은... 일제시대에는 일본을 등에 업고 휘두르는 친일파들의 니폰도에 의해, 해방이후에는 이승만과 권력을 다시 이어가는 친일파의 이념전쟁에 의해 활활 불타오르는 뜨거움과 열정을 가진 조선의 아들, 딸들은 타오르는 불을 피우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갔다.


 작년 12월 대선과 함께 프랑스의 레미제라블이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전반부의 장발장의 인간적인 변화를 다룬 면 그리고 후반부의 대중의 항쟁을 그린 장면이 우리의 시대적 분위기와 일치하여 흥행을 몰고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감동은 있었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만드는 마음에 와 닿는 뜨거움은 없었다. 소설 ‘아리랑’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글자로 읽어 내려가는 내내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양반과 관리들에게 고함치고 농민을 포함한 민중들의 항쟁과 친일파들의 더러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치고 욕을 해 됐다. 나는 바란다. 우리 젊은 세대들이 레미제라블이 아닌 소설 ‘아리랑’을 보고 가슴 치는 억울함과 가슴 뜨거워지는 감정을 느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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