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았다. 혹독하고도 가혹한 한 겨울같이 모질고 잔인한 일본인들의 학대와 무자비함을 당해보지 못했다. 교과서나 학교에서 들은 것들이 전부인 나에게 식민지시대의 아픔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식민지의 해방을 직접 보지 않았다. 해방과 동시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외치는 ‘대한민국 만세’ 라는 소리를 듣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해오는 전율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해방이후의 이념대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왜 농민과 소작농들이 자신의 땅을 갖고자 하는 꿈을 갖고 공산당에 가입하고 같은 민족과 대결을 하는지, 왜 친일파를 처벌하기보다는 함께 독립을 꿈꾸고 함께 힘겨운 삶을 이겨내며 살아간 사람들을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6.25를 경험하지 못했다. 뉴스로 전해지는 9.11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TV나 영화에서나 전해지는 것들이다. 실제 전쟁에서 겪게 되는 아픔, 서러움, 슬픔은 글자 그 이상의 의미로 전달해 지지는 않는다. 교과서, 전문서적을 통해 그리고 영화를 통해 그 당시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에게는 딱딱하고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너무 거시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TV 나 교과서에서 전해지는 역사는 엉성하고 감정이 실어져있지 않은 신문기사 같은 느낌이라면, 소설 ‘태백산맥’은 하루하루 감정과 변화를 기록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일기와 같은 책이다. 독립이후에 전개되는 이념전쟁과 그 와중에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6.25전쟁을 현미경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듯 세밀하고 상세하고 그리고 내가 직접 그 시대를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글이 전개된다. 공산당이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도 없으며 단지 자기 땅 가지고 자식들 입에 풀칠할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전부인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 이념이 다른 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것을 목격해야만 하는 부모. 공산주의를 믿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가 죄가 되어 고문당하고 여자로서의 감당하기 힘든 수치를 인내해야 하는 여성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만한 누군가가 아닌 거리를 거닐다 한번쯤 스치고 지나갔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나는 또한 땅을 분배해주기를 원하는 소작농을 공산당으로 몰아 죽이는 지주들에게 분노하고, 친일이었다가 해방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붙어 기생해 나가는 그들에게 치졸함과 야비함을 느끼며, 정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무조건 공산당이라고 처벌하는 권력의 무서움을 보았다. 

 

 그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태백산맥은 우리가 왜 슬픔을 간직한 민족인지 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 어떤 위인들보다 위대한지를 알도록 해 주었다.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인터넷과 TV에 빠져 정작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우리 윗세대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태백산맥과 같은 책을 놓치고 있다. 세대가 지날수록 사라져버릴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은 태백산맥과 같은 책으로 후세들에게 전해져야 우리를 포함한 후대들이 대한민국을 더 잘 이해해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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