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룬업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이동현 지음 / &(앤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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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어떤 장르로 봐야할지 끝까지 읽고 나서도 딱히 정의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기름을 짜내는 공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다양한 주변 인물 들의 시각으로 이 소설은 전개됩니다. 어찌 보면 SF 연대기적인 내용인데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생명력을 얻어 일상사에 개입하는 상황을 보면 판타지 소설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넥서스 경장편 우수상 수상작답게 소설의 서사는 꽤나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얼핏 노벨상 수상 작가인 마르케스의 걸작 백년의 고독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소위 남미 문학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입니다.


마침 왕복 7시간이 소요되는 뉴델리-아그라 자동차 여행이 예정되었기에 차 안에서 상당 부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이야기를 이루는 인물들의 서사에 푹 빠지게 되는 소설이더군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혼재되어 서술됩니다. 단순히 인간의 기름을 짜내는 노동 이야기뿐 아니라 이 기름을 담은 구체가 기억을 담아낸다는 설정이 상당히 흥미롭고 이에 얽힌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 또한 다소 추상적이지만 제대로 궤를 맞춰 나갑니다.

페이챙, 마르티네스, 덕분, 울찌, 조니, 유나, 정정배 등등의 등장 인물 들의 이름 또한 다국적이기에 무언가 이국적이면서도 존재할 수 없는 듯한 세상을 들여다 보는 느낌 또한 받게 됩니다.

심사위원 들의 간단한 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기억'을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 들 또한 각각이 처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축적해 갑니다. 이 기억은 모이고 모여 하나의 서사가 되고 역사가 됩니다. 분명현실과는 어느 정도 동떨어진 배경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 자체가 우리가 처한 현실의 메타포로 볼 수도 있겠구요..

미래를 꿈꾸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 살게 된 지금의 우리로서는 누군가의 지나간 기억을 지켜보며, 또는 자신의 나름 잘나갔던 과거를 살펴보며 간신히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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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문기업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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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을 때 먹는걸로 이를 푸는 이들이 제 주위에도 꽤 많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만족시킴으로써 주변의 골치거리들을 잠시 잊는 것이겠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고민이 잊혀지는 법이죠..

모리사와 아키오의 소설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은 세상에 상처 받은 스물다섯살 여성 에밀리가 엄마의 고향인 작은 어촌 마을에 귀향하여 외할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는 요리 들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는 그야말로 힐링 스토리입니다. 상당히 완벽한 서사와 재미를 가진 소설이죠.

작가의 작품들 중 영화나 드라마화 된 것이 많습니다. 그만큼 재미나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부엌칼이 주요한 소재로 쓰이는만큼 소설 곳곳에 어촌 마을에서 주로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 과정이 자주 등장합니다. 구체적이면서도 재밌게 묘사되어 있어 읽으면서 식욕 또한 자극하게 만드는 소설이죠.

제대로 된 요리는 할 줄 아는게 거의 없던 에밀리는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통해 가족과 함께 만들어 먹는 요리의 소중함, 그리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차츰 깨닫아 나가게 됩니다. 또한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작은 부엌칼을 직접 갈면서 이에 얽힌 사연에 조금씩 접근하게 되죠.

대개 힐링 스토리에는 감동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어설픈 서사로 제대로 된 감동을 끌어 오긴 어렵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 들도 많아졌지만 독자의 수준과 눈높이 또한 상당히 높아진 상태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소설은 나름 높아진 제 기준 또한 충분히 만족시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닥 정감 가지 않던 캐릭터였던 에밀리를 소설이 끝나는 시점에선 강하게 응원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으니까요... 더군다나 출장 다녀와 피곤했던지라 없던 식욕도 강하게 자극 받았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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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골드러시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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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가깝고도 먼나라는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실질적으론 북한을 대체하는 관용어로 바뀌고 있는 듯 합니다. 세계 여권 파워 2위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도 갈 수 없는 나라이고, 점점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감 또한 희박해져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발한 내용의 소설로 인기를 모아온 고호 작가의 신작, 평양 골드 러시... 만석꾼이었다 월남하게 된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당시 집터에 묻힌 금괴를 찾고자 실제 북한 평양에 잠입하게 된 오누이의 모험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들 오누이의 평양 방문(?) 좌충우돌기에 평양 삼지연공연악단 소속의 촉망 받는 가수였다가 졸지에 교화소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 리손향의 고난기가 엮이는데다가 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대의 악연에 가까운 인연까지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생생한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이죠..

남한 사람의 진입이 애초에 허용되지 않는 현재(정확히는 2024년 근미래)의 북한이 배경이라는 것도 재미 요소인데다가 북한과 북한 인민 들의 현재 모습이 꽤나 핍진성 있게 묘사 되어지기에 소위 손에 일단 잡으면 바로 읽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급의 금기시 된 소재를 생각해 내고 이를 개연성 있게 소설로 탄생시켜내는 것을 보면 고호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칭찬을 아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본격 스파이물이거나 쓸데 없이 진지함을 강조하는 내용도 결코 아닙니다. 유쾌한 유머도 곁들여지고 어느 정도 훈훈한 결말도 함께 내오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한때 평창 동계 올림픽에 몇 종목에서 공동 선수단을 꾸려냈고, 정전 협정 사인에 거의 다가갔을 정도로 남북 관계가 진전된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도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큰 위협 세력이 아니라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진 하나의 이웃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소위 '좋은 이웃론'이 대두된 적도 있었구요..

그럼에도 현재 우리는 강대국 들이 인위적으로 조장해 터뜨리는 세계적 분쟁 구도 속에 우리 또한 끌려 들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상태이기도 합니다.우리 기준에 북한은 형편 없는 세습 왕조 국가일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수천 만의 사람 들이 살아가는 곳이고 나름 자기 국가에 자긍심을 갖고 사는 이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급작스럽게 다가올지도 모를 화해 모드와 먼미래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이런 소재의 소설 작품 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같은 민족이란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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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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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도심을 가르는 템스강.. 여기 강변에 위치한 100년도 더 된 작은 서점이 이 소설의 사실상 주인공입니다. 영국이 소설의 주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작가인 프리다 쉬베크는 사실 스웨덴 사람입니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샬로테, 그녀의 엄마인 크리스티나, 이모 사라 역시 스웨덴에서 온 이들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모 사라가 런던에서 운영하던 서점을 상속받게 된 샬로테의 좌충우돌 분투기와 치유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1년여 전 사고로 남편을 잃고 인간 관계를 거의 단절한 채 일에만 몰두해 살아가던 작은 화장품 회사의 성공한 CEO 샬로테, 거의 히키코모리의 삶에 가까웠던 그녀가 별안간 이모인 사라의 유언에 따라 런던의 낡은 서점의 주인으로 부임하게 되죠. 처음엔 바로 털고 스웨덴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녀였지만 서점과 런던의 묘한 매력에 사로 잡히게 되고 이에 관련된 인물 들과도 우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 와중에 서점에 세들어 살던 작가 윌리엄과도 사랑에 빠지게 되죠..

그렇지만 서점은 이미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한 상태였고, 무언가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그녀는 서점뿐 아니라 새로운 친구들까지 모두 잃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소위 힐링 소설답게 내용은 극적인 반전과 전개를 이어 갑니다. 이 와중에 엄마와 이모의 오래 된 과거의 비밀, 그리고 평생 모르고 살았던 샬로테의 친부에 대한 단서까지 알게 되죠. 이 과정이 때론 유쾌하면서도 꽤나 재미있게, 한편으론 안타깝게 묘사되어지기에 전혀 지루함 없이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쉽게 읽어갈 수 있었습니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소설 속 깜짝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하죠. 런던이란 거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답게 내용 전개도 점점 거대해지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읽는 내내 힐링이 느껴지는 소설이었고, 실재 이 서점이 런던에 존재한다면 꼭 한번 들려보고 싶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더군요. 서점은 책을 보관하고 판매하는 장소이지만 책을 읽는 이들에게 힐링을 매개하는 장소이기도 할 것입니다. 온라인 도서 구매가 일반화된 요즈음이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이런 류의 서점들이 오래 남아 있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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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의 살인자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이수은 옮김 / 창심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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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과 온라인 정보 검색이 활발해짐에 따라 그 부작용으로 개인 정보 노출 또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신상 공개'가 공공연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죠.

이와는 조금 다른 성격이지만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이가 나와 같은 동명의 인물이라면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까요? 단순히 농담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범죄자를 향한 혐오와 비난이 오롯이 나에게 향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왠지 모를 선입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겠죠..

왕따 문화가 최초로 형성된 일본 사회 역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시모무라 아쓰시의 소설 '내 이름의 살인자'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6살 소녀를 잔인하게 칼로 난자하여 죽인 살인자 오오야마 마사노리...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은 주변의 냉혹한 시선을 마주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진범이 당시 16세의 소년범이었던 관계로 불과 7년 만에 석방되게 되면서 동명인들은 더욱 큰 고통에 직면하게 되죠..

결국 마사노리란 이름을 가진 10명의 본의 아닌 피해자 들이 모임을 결성하여 진범 마사노리를 쫓으려 합니다. 그의 얼굴을 비롯한 신상을 분명하게 공개하여 자신들은 그와 전혀 다른 사람임을 입증하려 하는 의도에서였죠.. 그들의 의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님 또다른 복선과 반전이 존재할련지...

미스터리 성격보다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이었지만 이에 이르는 과정은 왠만한 추리 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엽기적 살인이나 아동 관련 범죄 등 추악한 행위를 저지른 이들의 신상은 차츰 공개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른 이들의 신상 역시 온라인에서 종종 털리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에 통쾌함을 느끼고 비난의 대열에 가세하곤 하죠..

하지만 그 범죄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잘못된 신상털이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라면 과연 이런 행위가 어떻게 다가올지는 명약관화합니다.. 비록 소설 속의 일이었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도 능히 발현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인권 역시 어느 정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중용적 자세를 가지고 이런 문제를 대해야 할지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고민이 됩니다. 이 소설은 나름 무언가를 제시해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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