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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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작가... 21세기 들어 가장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이는 소설가 중 한명이라고 해야겠습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의 굵직한 문학상은 죄다 휩쓴 작가이기도 하죠. 장편이나 단편 모두 능한 작가이긴 한데 이번에 700페이지에 가까운 신작 장편 소설 '잃어버린 사람'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배경은 부산, 시기는 해방 이후 1947년 9월 16일 단 하루의 일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수십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연작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아... 하나하나의 사연이 너무나 슬프고 간절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미물인 고양이에 대한 서사조차도 슬픕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일제가 근대화를 시켜줬다는 이들의 주장이 무색하게 한국엔 제대로 된 선진 공업 시설이 거의 없었고 겨우 자전거 정도나 만드는 수준이었죠. 태평양 전쟁 와중에 한없는 수탈과 징용, 징병에 시달리며 식민지 조선은 그 활력을 거의 상실했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을 거치면서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렸고, 도무지 미래를 알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렸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우리의 이야기와 사연 들을 작가는 다소 건조한 문체지만 참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초들의 삶이 모이고 쌓여 우리의 역사가 됩니다. 악랄했던 일제는 차치하고라도 해방군으로 알았던 사실상의 점령군 미군 역시 민초들의 삶을 힘들게 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반항하는 소리는 빨갱이 취급하여 때려 잡으면 그만이었구요.

배경이 부산이다 보니 강제 징용 되었던 귀환자 들이 작품 내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들의 한서린 삶을 알아주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들의 설움이 먼 훗날 극히 일본이 바라던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위정자에 의해 다뤄지리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자꾸 다뤄지고 더욱 자주 상기되어야 할 우리의 역사이며 우리의 한입니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은 하등 신경쓸 가치조차 없습니다. 김숨 작가가 쓴 이 작품은 문학적인 성과 외에 역사적인 성과 또한 인정해야 할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읽고 나서도 계속 한숨이 쉬어지는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 합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기도 했지만 마치 한편의 대하소설을 읽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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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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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람 작가의 테라리움은 소위 종말 문학, 아포칼립스 장르의 SF 소설입니다. 핵전쟁 이후 엄마와 단 둘이 10년 이상을 벙커에 피신해 살고 있던 소년이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외부로 나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종의 로드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배경은 한국입니다.

SF 소설이지만 죽음이란 존재와 이에 맞서는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를 찾는 철학적인 부분까지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살아가던 인간들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기아에 시달리게 되고 전쟁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외계 기술을 이용한 식량 문제 해결책이 제시되지만 완전치 않았던 기술인 관계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고 수많은 인류가 이에 희생되게 되죠. 이 기술을 도입한 것이 바로 소년의 엄마였습니다. 인류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 것이죠.

엄마를 찾는 여정에서 소년은 여러 존재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죽음이 형상화된 존재, 외계 AI, 그리고 엄마의 연구소에서 일했던 연구원들까지도... 이 와중에 소년은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줄거리는 비극적인 듯 하면서도 희망을 담아내는 결말로 마무리 되고 나름 생각할꺼리를 남깁니다. 인류 멸망 후 새롭게 현현되는 세계에 대해 작가의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지죠.

장편 소설이지만 200여 페이지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인지라 그야말로 내용이 꽉꽉 차 있고 전개 역시 상당히 빠릅니다. 엄마를 찾아 나선 소년의 여정은 한편 안타깝지만 또 한편으론 마지막 인류로서 겪는 모험 자체를 내내 응원하게 됩니다. 마지막 3장 부분은 그야말로 미스터리 물에 가까울 정도로 소년에 얽힌 비밀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기에 긴장감 역시 갖춘 소설입니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수상은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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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의 노래 - 가슴에 머문 바람
유광우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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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남북간 교류가 꽤나 자유로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금강산-개성 관광이 가능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잘 모르는 분들이 많겠지만 인천-평양간 직행 항공기가 정규편으로 있었고 당시 제가 근무하던 회사에도 일정 개인 부담을 원칙으로 북한 평양 시장 조사나 마케팅 활동을 제안하는 공문이 돌곤 했었죠. 그때 평양을 가보지 못한게 많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원산의 노래는 약 20여년 전 경수로 건설을 위해 파견되었던 유광우 씨가 당시의 경험을 정리한 에세이입니다. 북한이 당시엔 핵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한 상태였기에 미국은 북한을 이에 묶어두기 위해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제안했고 북한이 이를 승낙했었죠. 비용은 미국이 거의 부담하되 건설 등 기술적 제공은 남한 측에서 하기로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 북미 관계 경직에 따라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고 열받은 북한은 본격적으로 자체 핵 무기 개발에 나서게 되죠..


장교 출신인 저자는 상당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당시의 경험을 정리합니다. 당시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경제가 최악이었던 북한의 사정 역시 감안해야 하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보는 북한은 상거지 나라에 다름 없습니다.

1980년대에 접어 들며 사실상 체제 경쟁에서의 우위는 판별이 난 상태였습니다. 핵을 제외한 재래전이 발생하면 단 3일이면 북한은 끝장 나는 상황입니다. 일부 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과대 포장하고 있지만 전쟁은 결국 경제력 싸움인건 자명한 사실이죠.. 굳이 혹독한 경제적 제재를 감수하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가면서까지 북한이 핵을 들고 나온 것은 그야말로 자위권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저자는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철저한 통제 사회임을 유독 강조하고, 실패한 공산주의 국가임을 적극 피력합니다.


전 세계로부터 제재 대상이 된 북한이 세계 10위 권 내 경제력을 갖게 된 남한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음은 명확합니다. 단지 어떻게든 평화를 유지하며 가는 것이 중요하며 파멸적 갈등과 전쟁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말을 꺼낼 가치도 없는 선동적 행위에 불과합니다.

이미 저자는 20년 전에 그 사실을 명확히 보았고 느꼈습니다. 당분간 통일은 요원할지 모르고 섣부른 흡수통일이나 무력 통일은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같은 언어와 풍습을 가진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유대감은 가지되 서로 철저하게 평화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웃 나라로서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 북한 체제를 비판하던 저자 역시도 북한의 동포들만큼은 한없이 긍정적으로 묘사해주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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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명령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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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작가.. 베니스의 개성 상인, 소설 자산어보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주로 역사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마지막 명령 역시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어우러진 일종의 팩션 내지는 대체역사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기도 했던 전두환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광주에서 수백 명의 시민을 학살한 인물입니다. 통치 당시의 공과를 따지기 앞서 집권 자체가 불법이었고 이미 대한민국의 헌정법 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집권 자체의 정통성이 부정된 자이기도 하죠.

당시를 간접적이나마 반성하기도 했던 모 대통령과는 달리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대의 논리에 의해 상관들을 체포하고 후배 군인을 살해했던 쿠데타는 면죄부를 받았고, 광주 학살에 대한 죄과 역시 이후 대통령에 의해 사면을 받아 짧은 복역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전두환을 직접 암살함으로써 응징하고자 하는 특전사 대위 출신의 주인공을 이 소설에서는 내세우며 풀고자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한태형은 군인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쿠데타에 가담한 육사 동기 장재원과 달리 저항군 쪽에 속해 있다 강제로 군복을 벗고 한국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랑했던 연인마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장재원에게 뺏기게 되고 장재원은 승승 장구합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인용되었던 클리세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네요..

한태형은 해외 용병단에 가담하게 되고 전두환 암살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북한 측이 직접 암살을 시도하자 내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지휘관이었던 참군인 석장군의 '전두환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워라'라는 마지막 명령이 어느새 그의 사명으로 다가 오게 됩니다. 한국 정부에도 쫓기는 신세인데다가 북한의 암살 시도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여전히 일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전두환 추종 세력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소설이었고 소재 자체가 대통령 암살 시도를 다루다 보니 읽는 재미 또한 꽤 있었습니다.. 나름의 대리 만족을 느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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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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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리 형제의 소설 이웃 사냥은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닌 대놓고 호러, 공포 소설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미국에서도 가장 인구가 적은 주인 와이오밍주 산간 오지 마을에 터를 잡은 젊은 부부 해리와 사샤를 노리는 악령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전 미국 출장 때 덴버에서 솔트레이크까지 8시간 정도를 운전해 간 적이 있습니다. 와이오밍 주를 경유해서 가는 코스였는데 당시 5월이었음에도 별안간 함박눈이 내리고 어두컴컴해져 굉장히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도로에 차도 거의 없더군요. 그야말로 황량함 자체였고, 이런 곳이라면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죠..

소설 속 부부가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와이오밍주 산간 오지입니다. 반경 몇키로 내 이웃이라곤 목장을 운영하는 노부부 단 두 명만이 존재하는 마을이었죠. 그들은 노부부와 인사를 나누던 날 무시무시한 경고를 듣게 됩니다.

연못에 빛이 비추면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곰에게 쫓기는 벌거벗은 남자를 보면 그 남자를 쏘아라.... 그렇지 않으면 악령이 너희를 찾아올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미친 소리로 취급하고 그들을 내쫓지만 막상 노부부가 경고했던 일들이 발생하자 그들은 악령이 실제로 존재함을 알고 이를 믿게 됩니다.


악령은 끝내 노부부 중 남편의 목숨까지 앗아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임신까지 하게 된 해리 부부... 그들은 악령과의 제대로 된 대결을 준비하게 되죠..

해리와 사샤의 관점에서 차례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일단 굉장히 무서운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계절별로 다른 모습으로 현현하는 악령에 대한 묘사는 에어컨 없이 보더라도 전혀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소설의 제목은 이웃 사냥이지만 이웃은 오히려 이들을 돕는 역할로 나오고 악령과의 대결이 소설 내내 그려집니다.

오지에서 부부 단 둘만이 절대적 힘을 가진 악령에 대항해야 하는 상황은 그 설정 자체만으로도 으스스합니다. 더군다나 아프가니스탄 참전 군인이기에 직접 살인까지 해야 했던 해리는 더욱 업그레이드 된 악령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여기에 대한 묘사 또한 섬뜩할 정도이죠..

그야말로 무더위를 싸악 날릴 수 있을 정도의 호러 소설입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를 깊이 신뢰하며, 악령과 싸울 용기를 내는 부부애를 느낄 수 있기에 한편으론 조금은 훈훈하게 느껴지는 결말을 가진 소설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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