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슈의 발소리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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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인기 드라마 중 '기묘한 이야기'라는 에피소드 묶음물이 있습니다. 코믹하고 판타지스런 소재도 많이 쓰이지만 때론 기괴하고 살벌할 정도의 공포물도 많이 나오는 드라마입니다.

사와무라 이치의 중단편 모음집인 '젠슈의 발소리'는 딱 이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소설 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기묘하면서도 밤에 읽으면 서늘함을 느끼게 할 정도의 이야기들이 연이어 터져 나옵니다. 메인 제목인 젠슈의 발소리 외에도 빨간 학생복의 소녀 등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이 책엔 실려 있죠.


어느 정도 공포물이 갖는 클리세를 빠짐 없이 갖춘 작품 들이지만 그렇다고 서사의 독창성까지 전형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와무라 이치만이 갖는 몰입성 강한 서사 전개가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듭니다. 처음엔 우리가 흔히 겪는 일상적인 상황을 풀어나가는 듯 하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공포와 판타지로 가득한 작가만의 세계로 독자들을 아낌 없이 끌어 들입니다.

자신의 딸의 끔찍한 미래를 보는가 하면,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현재와 교차 되고, 수십 년간 실종된 남편의 쌍둥이 형이 느닷없이 나타나는가 하면,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 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가는 상황도 전개됩니다. 알수 없는 상대에 의해 시민들이 연이어 폭행 당하다가 드디어 두 연인이 참혹하게 살해 당하는 사태도 발생합니다.

가히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스토리 구사죠.. 충분히 강한 떡밥이 던져지지만 어느새 모두 회수됩니다.


요괴물로 분류되어야 할 젠슈의 발소리는 사와무라 이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히가 자매가 등장하여 마치 미스터리 추리물을 풀어가 듯 요괴의 정체를 밝혀 냅니다. 두 자매의 각각 다른 개성이 잘 어우러져 묘한 재미를 주면서도 짜릿한 공포와 결말부의 휴머니즘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작품이더군요.

사실 일본에서 공포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인도 못지 않게 워낙 많은 신과 요괴가 판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소재가 많다는 것과 이를 잘 버무려 재미난 공포 소설로 탄생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죠.

사와무라 이치는 이 어려운걸 제대로 해내는 작가임에 틀림 없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읽어 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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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로마사 (텐바이텐 로마사) - 천년의 제국을 결정한 10가지 역사 속 100장면
함규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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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기원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여 동로마를 포함하면 거의 2천년 가까이 존재했던 국가입니다. 서양이라고 칭해지는 바운더리의 사실상 기원이자 현재의 문화, 사상을 규정 짓고 있는 국가입니다. 아니 ...였습니다.

로마를 다룬 책은 무수히 많고, 2차 창작물 또한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로마가 현재의 로망이 된 것이죠.. 당시의 인류 발전 과정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간주되던 중국을 제외하곤 납득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앞선 문화와 제도를 개척했던 로마... 인류 역사를 분석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함규진 작가의 10X10 로마사는 무수히 나온 로마에 관한 역사를 10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 카테고리마다 10가지 에피소드를 넣어 총 100가지 꼭지로 로마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간 나왔던 로마를 다룬 역사물과는 살짝 궤를 달리하고 있는 접근 방식이 눈에 띄더군요.

영웅, 황제, 여성, 건축, 전쟁, 기술, 책, 신 등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분야를 꼼꼼히 다루면서 임팩트 있는 부분을 한껏 강조하는 구성인지라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줄리어스 시저나 갈리아 정복 전쟁,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기독교 승인, 콜로세움 등 현재에까지 존재하는 위대한 건축물 등 익히 알려진 내용도 많지만 한때 로마를 뒤흔들었던 여성들의 숨겨진 비사나 지금까지도 서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위대한 저서들까지 빠짐 없이 소개되기에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로마의 실체에 더욱 접근하는 느낌이 듭니다. 교과서에서는 몇 글자로 정리되었던 로마(동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 또한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 서두와 내용 중간중간에 포함된 여러 시각 자료들 또한 쉬운 이해를 도우며 작가의 노력이 상당했음을 느끼게 합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 자체를 이 책을 보면서 또한번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위인 들과 위대한 역사적 건축물과 서적, 이를 가능케한 기술이 있었던 로마였기에 그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자신 들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이제는 과거의 영화로 남게 된 그들의 역사가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도 합니다. 이러한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또한 로마입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수많은 시사점을 남겨주는 나라이기에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로마를 바라 보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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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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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도 벌써 24회째를 맞았습니다. 한해 동안 발표된 소설 중 단편 들을 대상으로 수상하는 문학상입니다. 하긴 이효석 선생의 소설 역시 거의 단편만 읽어 봤던 듯 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상작들을 접하게 되었네요.

익히 이름은 기억하는 안보윤 작가의 단편 2편부터 시작해 23회 대상 수상자였던 김멜라 자선작 등 모두 8편의 단편 소설들이 이 책엔 실려 있습니다.


안보윤 작가야 워낙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여러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고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진 그녀의 작품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실린 여러 작가의 작품들 모두 나름의 재미와 기발한 상상력을 담고 있긴 하지만 걔중 가장 짧은 단편에 속하는 안작가의 '애도의 방식'이 주는 강렬한 임팩트를 따를 작품은 없더군요.

학폭이라는 상당히 시의 적절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이에 대한 응징 같은 단순한 클리세가 아니라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 그리고 한평생 지고갈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심경 등을 담담한 문체로,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욱 애절하게 그려낸 듯 합니다.

일반 독자인 제가 보기에도 대상이 당연한 작품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작품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각양의 재미와 각색의 메시지를 가지는 작품들이었고 퀴어나 문화계급, 쓰레기 홀더 등 익히 우리가 접해 왔던 소재 들이 작가 들의 상상력과 어우러져 쏠쏠한 재미들을 선사해 줬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안보윤 작가 작품이 주는 임팩트가 뛰어 났다는 것이죠..

한편한편마다 다른 개성이 있기에 읽는 내내 단편 소설이 부여해 주는 미학에 흠뻑 빠졌던 듯 합니다.. 참고로 이번 수상자들도 한 분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 작가들이네요. 당분간은 여성 작가 들의 파워가 단편소설계를 장악해 나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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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리노블 1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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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IP 공모전에서 무려 대상을 수상한 습기, 작가 마태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입니다.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치열했던 내집 마련기, 사이비 종교, 워킹맘의 애환까지 폭넓은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일상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소재들로부터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창출해 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소설은 클라이맥스가 상당히 후반부에 전개됩니다. 작품 중후반까지 긴장감이 끝없이 유지되는 소설이죠. 결론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어렵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신도시로 이사온 미연, 정우 부부와 그의 초등 2학년생 아들 지호... 다소 심약하지만 순진했고 엄마를 잘 따르던 지호가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 배경엔 도대체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영희 엄마란 존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만세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주요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그녀의 소름끼치는 행적이 끝까지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더군다나 신도시가 들어서기 이전 연달아 발생했던 아이들의 실종 사건을 처음부터 떡밥으로 던져주기에 과연 이 사건들과 만세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궁금증을 계속 유발하게 되죠.


어찌 되었든 반전이 존재하는 결말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나름의 예상은 가능하지만 이를 독자의 예상 밖으로 풀어나가 준 것 역시 작가의 능력이겠죠.

인생의 행복은 무엇으로부터든지 얻을 수 있겠지만 역시나 가족 구성원들과 안정된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행복이 가장 보편적일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 행복을 파괴하고자 하는 이와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게 되었을 때 미연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들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굉장히 몰입감 있었던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답이 보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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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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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논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사형제에 대해 명확한 찬반 의견을 가지고 있진 못하니까요.

사형제가 존속하는 우리 나라지만 21세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흉악범 들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습니다.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되고 있죠. 사실 사형 집행국가 들은 EU 등 인권 선진국에서 알게 모르게 경제적 제재에 처하기도 하고, 국제 엠네스티 등 국제 기구들로부터 잦은 항의를 받는 등 여러모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이기도 하구요.


이석용 작가의 소설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는 유머스런 제목과 달리 꽤나 심각하게 사형 제도 근간의 문제를 화두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무능한지라 지지율이 낮고, 국무회외를 빙자삼아 술이나 퍼마시는 대통령이 꾀돌이 법무부 장관의 제안을 받아 실제 사형 집행을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본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사형 찬성론자들의 지지를 끌어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에서였죠. 결국 본보기로 동아줄에 매달릴 사형수 몇몇이 엄선됩니다. 이 또한 정치인, 이해당사자 들의 구미에 맞춰 선정되는 요식적 행위죠..

이 와중에 사형수에게 제공하는 마지막 식사 부분이 주요한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소설 결말부의 반전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생명을 빼앗기에 온 국민의 합의를 모아 진행되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 대통령 지지율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니 참으로 절묘한 소재 적용이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없는 종신제를 들고 나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소설대로라면 역시나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행위가 되겠죠..

사실 대한민국의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평하게 집행된다면 사형제의 부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극히 소수에 불과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죄라는 것이 전관예우나 유전무죄의 형태로 발현되고, 정치 검찰에 의해 짜여진 각본처럼 만들어진다는 유의미한 추측이 가능한 나라에서 여전히 사법 살인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는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생각할 꺼리를 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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