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



누구라도 한때는 있다.


봄날 물오르던 가지

새순이 밀어내는 껍질의 간지러움.

사랑하는 이에게 만들어주던 그늘조차

소문이 되어


이제 진위가 불분명한 봄날의 기억

너의 한때와 나의 한때가 늘 일치하지 않을 것이기에


네가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타오를 수 있다면

나는 붉게

타오를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기특할

추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님의 서재에서 4대강 저지 소송 지원단 모집하는걸 보면서 따라 들어갔습니다. 

무심코 빈칸을 작성하고 지원금액수를 치고 소송단에 이름을 올리다가 문득 이러다 추적되면 어쩌지 하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발끝이 시려 이불을 끌어당기며 생각합니다. 

저녁에 아이들 앉혀놓고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생각하면서 슬그머니 뒤로 미루었습니다. 

이건 비겁한게 아니야 하고 눈을 감고 곰곰 생각해봅니다. 

정말 이야기해 볼 필요를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 잠시 헷갈립니다. 

참 비정상적이고 슬픈 시대입니다. 

이 삽질의 시대에 나의 삽질이 가슴아픕니다.  

세월이 후딱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11-22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주쯤부터 건우는 각각 다른 이유로 제엄마와 또 아빠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건우 아빠는 최근 보이는 건우의 늘어진 생활태도와 그것을 바로잡아주지 않는 내모습이 영 못마땅했나봅니다. 

그러나 나라고 딱히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니 섣불리 대할수도 없는 이른바 무시무시한 사춘기권역에 들어가버린 녀석을 쉬 나무랄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나대로 녀석의 재발한 축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좀만 빈정이 상한다 싶으면 눈을 부릅뜨는 녀석을 어떻게 추스릴까 생각중이지만 아직은 딱히 수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당분간 지켜보며, 일차적으로는 축구에 대한 녀석의 집착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미루던 주말행사등을 축구를 빼먹더라도 과감히 시행하리라 마믐먹었더랬습니다. 

좀 시큰둥해진 공부는 두어번 싫은소리로 나름대로 태도가 좋아지는듯한데 문제는 퍽이나 예민해진 녀석의 생활태도입니다. 

때로 축구시합등에서의 전투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녀석을 보면 이제는 축구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게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담주에 지리산콘도에 예약을 해놓았는데 녀석을 어찌 끌고갈지 벌써 눈앞이 아득합니다. 

누가 좀 사춘기 사내녀석 다루는 비법좀 알려주세요....ㅜ.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이 시작되자 곧 겨울임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습니다. 

발이 시립니다. 

담주에 지리산으로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면 제법 춥겠구나 싶어 쓸데없이 오만원을 꾹꾹 눌러 책을 주문하곤 선택사은품으로 무릎덮개를 눌렀습니다. 

계산까지 다치르고나자 그것 말고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엄마는 이맘때면 연탄을 주문하곤 하셨습니다. 

까만 연탄이 삼백장쯤 헛간에 쌓이고 나면 까만 잔해들을 쓸어내고 정리해내며, 연탄들이 쌓여 있는만큼의 안온함이 불도 피기전의 방안에 차오르는 듯 따뜻해 하셨습니다. 

연탄이 쌓이면 배추를 절이고, 아버지는 서둘러 담장밑 그늘에 구덩이를 파내어 장독을 묻으셨지요. 

나는 엄마의뒤끝을 따라다니며, 잔파나 마늘 따위를 다듬고 깠습니다. 

때론 그릇에 담긴 양념들을 쏟아가며 구박을 들어도, 아줌마를 따라온 옆집아이와 눈짓을 주고 받으며 그언저리에서 빙글빙글 돌곤 했습니다. 

남동생을 데리고 나가놀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그언저리에 비비적거리고 있는 것이 마치 나와 동생의 존재가치가 다름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렇게 줄기차게 어른들을 성가시게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온가족이 혹은 온 동네가 며칠이고 따로 혹은 같이 준비한 겨울은 비슷비슷한 추위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여렷이 함께 보내는 겨울은 체감온도를 조금은 누그려뜨려 주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미지근한 연탄불로 데운 방의 온기가 퍽이나 따끈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어느새 갑천변의 나무들이 이파리를 제법 떨구었습니다. 

조만간 첫눈도 내리겠지요.

대관령 어디쯤에는 오늘내일 중으로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아래윗집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파트생활이 십수년째, 

올해도 별수없이 두툼한 양말을 사러 나가야 하겠습니다. 

나간김에 아이들이과 애들아빠의 내의도 좀 골라야겠습니다. 

겨울이 반갑잖은 불청객처럼 벌써 대문밖 어딘가에 다가와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누구와 나누지 못하는 겨울 추위가 아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문드문 천변옆을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알라딘에 들어온지도 오랜만이고, 글을 쓴지는 더 오래되어서 이제 낯가림조차 생긴 모양입니다. 

다들 안녕하신지요? 

대전에 내려온지 그새 2년이 후딱지나 건우는 어느새 징그러운 느낌도 뭉글뭉글 피어나는 육학년이 되었습니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착실한 에프엠 아들내미입니다. 

축구에 목숨거는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진작에 깨달아, 엄마와의 갈등을 요령있게 피해가곤 하지요. 

세월은 건우에게나 제게나 공평히 흘러갔을 것인데, 제가 느끼는 시간은 저에게만 두배쯤 흘러거버린 것 같습니다. 

가끔 일산으로, 서울로 출장을 가다보면 경부선 저너머에 우리 가족이 십년가까이 살던 집이 보입니다. 

판교의 새건물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너머에 우리동네는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그 아스라한 거리 너머에 남아있는 기억들을 더듬으며, 그 기억만큼 나이든 내 손등과 얼굴을 비빕니다. 

그러노라면, 추억은 때로 내나이를 일깨우고, 아직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야할 많은 길이 남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씁쓸한 그 무엇이 되기도 합니다. 

올해들어 부쩍 발밑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지는 것은 내 이웃같았던, 혹은 덜 낯선 전직대통령 두분이 유명을 달리하셨기 때문일런지 모르겠습니다. 

창창했던 젊은날엔 두려운줄 모르고 데모뒷자락을 밟기도 했었습니다. 

먼저 가신 분의 장례엔 학교수업 제끼고 건우를 제아빠와 손잡고 참석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또 한분이 마저 가니, 슬픔조차 맥이 풀려 망연합니다. 

세상은 진보하는 걸까요? 

누군가의 거짓말은 아닐까요? 

가슴이 쉬 뜨거워지지 않는 지난 일주일, 나는 더이상 눈물조차 뜨겁게 흘러내리지 않는 내가 가엾습니다. 

거기 누구라도 혹 지금 저같은 이가 있으신가요? 

나만 이렇게 망연한지,  

나만 이렇게 지나간 세월의 끝에서 넋을 놓고 있는지, 

조금도 겸손해보이지 않는 집권여당의 모습에 분노조차 더 이상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9-08-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나선형으로 회전한다고 했던가요.
느리지만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비록 지금은 캄캄해도, 우리 희망을 버리지 말아요.

배꽃 2009-08-2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랫만에 님 글 보니 반가워요.
그저 맥 놓고 있을뿐..모두 공감할거에요.

건우와 연우 2009-08-2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세월을 견디는 것이 지금 제 몫일까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작아 슬프네요.
그래도 쉬 잠들지 않고,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기라도 해야겠지요...
조선인님, 배꽃님 고마워요.

프레이야 2009-08-2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연우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생각한 고인이
참으로 큰 그릇이다싶어요.

건우와 연우 2009-08-3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넴을 바꾸셨구나...
나이를 먹으면 저도 인생을 관조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나날이 불안만 늘어갑니다.
실천하지 않는 양심이 되어버린 탓은 아닌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