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자동차로 네시간 반을 꼬박 달려 곰배령에 다녀왔다.
원주 횡성을 거쳐 홍천을 지나 인제에 들어서는 길,
가을볕에 딸 내보내고 봄볕에 며느리 내보낸다더니 흐드러진 봄 햇살 낭자한 고속도로를 네시간을 줄창 뚫고 나가기란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만연한 봄햇살에 눈을 씀벅이며 운전대와 씨름을 하는 사람이야 어떻든, 중부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니 구부러진 길이나 길쭉길쭉한 나무들이 제법 울울해 오랫만에 집밖에 나선 감회를 새롭게 한다.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서느라 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설친 건우와 연우는 뒷좌석에서 널브러져 잠이 곤하다.
어렵게 나선 나들이길에 내쳐 잠들어 있을지라도 어린 녀석들 눈에야 푸르러가는 녹음이 무어 대수랴.
녀석들이야 살아가며 볼 날이 부지기수니 아직 만연한 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턱없이 어린것을.
하루하루 풍경이 새로운 마음이, 오히려 나이를 가늠케해주는 쓸쓸한 표시일 뿐이다.
이미 봄이 한참 늦었건만 홍천근처에 들어서니 물오른지 얼마 안된 나무들이 연두빛 이파리를 가지끝에 달고 있어 새삼스럽다.
우리동네 나무들은 이미 파랗게 초록이 기세를 올리는데 강원도와 충청도의 거리가 이파리 색깔만큼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어린것들은 언제 봐도 곱다. 사람이든 이파리든...
인제에 들어서니 이제부턴 가파른 산길이 아찔하다.
어이쿠 소리를 몇번이나 해가며 급경사에 급커브를 돌아가며 오르는 산굽이가 애써 오르는 사람을 내켜하지 않는듯도 하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한적이 있는 남자동료들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가겠네 하며 갔다온 강원도 군대라며 너스레를 떨때마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하는 남자들>로 한묶음에 도매금으로 취급했던 그 인제가 문득 어질어질한 이명이 되어 고막을 막았다.
낮잠에 혼곤하던 건우녀석도 일어나 연신 <아싸, 엄마 무지 아찔해요>하며 멍멍한 귀를 풀어준다며 입을 크게 벌린다.
상남을 지나 현리 표지판을 보고도 한시간쯤 더 골짜기로 돌아, 비포장도로를 조금 더 들어가 도착한 점봉산 곰배령의 숙소근처엔 풀꽃도 지천이요, 바닥까지 보이는 물도 지천이요, 그속에 송사리도 지천이었다.
어항에 된장 한수저 넣어 물속에 담가두고 산속이라 서늘한 주인집 마당에서 장작불속에 있던 작대기를 끄집어내어 시꺼먼 숯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나물도 뜯다가 물가에 내려가보니 그새 어항 가득 송사리들이 바글바글이었다.
기름에 튀겨 안주해달라던 건우아빠는 손가락만한 송사리 두어마리를 다듬어보더니 전부 알이 차 있다며 산란기물고기를 잡은것 같다고 찜찜해하더니 그예 잡은 물고기를 죄 계곡에 도로 풀어놓았다.
별미 안주야 날아갔지만 미리 재워간 등갈비를 계곡이 보이는 마당에서 구워먹으니 오랜만에 눈도 입도 호사다.
바람에 저희들끼리 부딪치는 나뭇잎 그늘아래 집주인까지 불러 앉혀 술을 마시자니 산그늘이 마음속 깊숙이에 들어와 앉는다.
밤새 귓전에 가득한 바람소리가 자꾸만 등에 진 무언가를 내려놓으라 속삭이며 돌아나오는 순간까지 등을 만져보게 한다.
무엇이 딸려와 등에 얹혀 있었던지, 바람이 하는 말이 자꾸만 귓등에 얹혀 귓가에 쟁쟁한 봄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