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코너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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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액션물이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협의 현대물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의 기본은 복수다. 아내를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한다는 줄거리인데 그 과정이 아주 단순하다. 물론 이 단순함에 복선을 깔고, 반전을 집어넣어 살짝 다른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빠르고 신나게 읽히는 부분에서 문제점이 많이 나오지만 장르의 특성상 그냥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의 킬러물처럼 아주 꼼꼼하고 치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한국 장르 특성 상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평온한 일상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정체를 숨긴 전설적인 킬러는 자기 집에 머무는 고양이와 눈싸움을 한다. 이것을 본 아내가 한심한 듯 말한다. 아내가 밖으로 나간 후 자동차 사고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차에 치인 것이다. 병원에 아내를 데리고 간다. 목숨이 위태롭다. 다행히 급한 것은 중단된 것 같은데 집에 설치한 CCTV를 확인하러 간 사이에 누군가가 아내를 죽이려고 한다. 이 장면을 본 그는 폭발한다. 범인을 잡고 그 윗단계를 하나씩 찾아올라간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아내의 불륜이다.

 

사람을 죽여 모은 돈을 숨겨놓고 평범한 일상을 산다. 아내는 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다. 처음 든 생각은 그에 대한 복수였다. 그런데 아니다. 우연한 사고일까? 그렇다면 그의 집에 들어와 CCTV를 들고 간 사람은 왜 그런 것인가? 아내를 죽이려고 한 인물의 배후는 또 누군가? 이런 의문은 아내가 죽었다는 말에 그냥 사라진다. 이성은 사라지고, 폭발할 듯한 복수의 감정만 남아 불탄다. 첫 조사에서 마주한 배후의 일원에게서 가져온 핸드폰 자료와 함께 아내의 불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 불륜이 그의 복수심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 다음은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그와 그를 돕는 사람과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대결이다. 시체를 처리하는 청소업자가 나오고, 청부업을 중개하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내를 죽인 범인이다. 명확하게 이 부분을 정하지 않고 이야기는 진행된다. 누구일 것이란 추측만 하게 만든 상태에서 말이다. 항상 이런 부정확함은 살인 대상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계를 한 번 더 거쳐야 하고, 적도 이에 준비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덕분에 더 많은 액션이 펼쳐지고, 시체는 더 늘어난다. 이 와중에 행운도 작용하고, 실력은 더욱 빛난다. 주저함이 없는 살인은 아마추어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가볍게 보기 좋다. 이런 살인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로일지 모른다. 무협을 앞에서 말한 것도 바로 가볍고 살인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조연들의 무의미한 죽음과 강력한 주인공의 액션과 적당한 수준의 악당들. 하지만 뭔가 치밀하고 정보가 풍부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냥 먼치킨 같은 주인공의 활약을 보려고 한다면 권하고 싶다. 재벌 같은 권력자의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행동에 대한 통쾌한 복수는 또 하나의 덤이다. 그리고 곳곳에 살짝 심어놓은 단서는 마지막에 분명하게 그 의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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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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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에서 변호사로 변한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다른 책에 실렸던 적이 있다. 나에게 다행이라면 가지고 있지만 읽지 않은 단편집 속 작품들이란 것이다. 물론 <미스테리아> 같은 책은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이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덧붙여 놓았다. 개인적으로 모든 단편을 읽고 난 후 봤을 때 그렇게 많은 단서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눈길을 끄는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현실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있지만 발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는 순간 무슨 사건일까? 언제쯤 나올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해졌다.

 

전직 판사였지만 그가 법정극을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았다. 그가 쓴다면 가장 잘 아는 부분이 될 텐데 그는 먼길을 돌아갔다. 이 작품집 속에서도 법정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은 두 편 정도다. 표제작인 <악마의 증명>과 다른 작품의 이름을 빌린 <구석의 노인>이다. <악마의 증명>은 그 유명한 모리우치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을 자연스럽게 떠올려준다.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은 그것과 다르다. 악마의 증명은 살인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트릭으로 이용한 것을 두고 말한다. 같은 사건으로 두 번 기소할 수 없다는 그 법칙 말이다. 작가는 미묘한 서술 트릭을 사용하여 이 악마의 증명을 깨트리는데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선의 노인>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변론하는 젊고 패기만만한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논리로 사건을 잘 해결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멋지다. 하지만 그가 놓치는 것이 있다. 이것을 지켜본 한 노부인의 모습은 안락의자 탐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변론하는 동안 본 동영상과 자료와 피의자의 머리와 반지 등을 가지고 그녀가 추론해낸 사실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추론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 더 납득할만한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 재미난 것 하나는 이 할머니의 이름이 진짜 작가 어머니의 이름이란 것이다.

 

호러물로 구분할 수도 있는 작품도 두 편 있다. <외딴집에서>와 <죽음이 갈라놓을 때>다. <외딴집에서>는 시점을 이용해 반전처럼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짧은 분량이지만 자극적인 장면과 연출로 예상을 빗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는 한 살인자의 수기 형식인데 친구와 친구의 애인을 살해한 자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정도에 따라 그 서늘함이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 사실보다 무당이나 귀신이 씌였다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집중하면 사건의 핵심이 완전히 바뀐다. 이런 불안감과 서늘함을 도입부와 마무리를 맡은 판사의 심리와 행동이 배가시킨다.

 

판타지로 분류해도 큰 무리가 없을 두 편이 있다. <정글의 꿈>과 <시간의 뫼비우스>다. 사실 <정글의 꿈>을 읽을 때는 연쇄살인을 기대했다. 추리소설이란 장르와 분위기를 보았을 때 이전에 읽었던 작품과 같은 것이 아닐까 미리 짐작한 탓이다. 이 기대를 넘어선 것은 좋은데 다른 설정으로 바뀐 것은 조금 아쉽다. <시간의 뫼비우스>는 가장 길고 자전적인 요소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 같은 시간의 삶을 백여덟 번이나 산 남자의 이야기다. 판사였지만 너무 꼿꼿해서 혹은 여유가 없어 피의자 신분으로 떨어진 그의 이야기는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 판사를 하면서 친구가 한 명씩 떨어져나갔다고 할 때 제대로 된 판사란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하루가 반복된다면 이 소설은 30년이란 것이 다르고, 자신이 변화를 만들어낼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같은 경험을 다시 할 뿐이다.

 

<선택>과 <킬러퀸의 킬러>는 다른 작품들보다 추리적 요소가 강하다. <선택>의 변호사는 <악마의 증명> 속에서 기발한 발상을 한 호연정 검사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더 많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자신의 내면 속 모습이 부족해서 아쉬게 많은 출현을 못했다고 한다. 폭우와 고속으로 달리는 차, 단숨에 왼손목의 동맥을 자른 것과 추락한 것들이 엮어 내놓는 이야기는 법리 문제가 아니다. 강한 모성애와 추론의 영역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도 법정이 아니다. 감성의 영역이다. <킬러퀸의 킬러>는 좀 더 큰 스케일을 생각했다가 반전에 놀란 작품이다. 액션을 기대했는데 추리작가의 놀라운 추리 때문에 그 기대가 사라졌다. 현실 속 살인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부분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순간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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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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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나로 사로잡은 작가의 처녀작이다. 아주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흔하게 말하는 아낌없는 ‘주는’ 사랑이 아니라 ‘뺏는’ 사랑이다.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오타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책 소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작에서도 악녀가 등장했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다음 작품에서도 악녀가 등장한다면 악녀 전문 작가란 타이틀을 붙여줄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이번 악녀는 조금 다르다. 아니 어쩌면 더한지도 모르겠다. 왜냐고? 그녀의 숨겨진 시간 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 누구나 말하는 단어지만 진실로 삶을 뒤흔드는 사랑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조지 포스가 대학 1학년 때 경험한 사랑이 그 흔하지 않는 사랑이다. 첫사랑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그는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 사랑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볼 때마다 그녀의 흔적이나 닮은 모습을 본다.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다. 그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전 여자 친구를 만난 술집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긴가민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다. 다시 돌아가 그녀를 확인한 것도 역시 당연한 행동이다. 그렇게 그는 첫사랑의 그녀 리아나를 만난다.

 

소설의 구성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리아나를 만난 후 사건 속으로 휘말려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과거는 리아나를 둘러싼 추억과 사건을 다룬다. 이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아주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첫사랑 오드리와의 만남과 그녀의 죽음이란 자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면서 20년만에 만난 그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 후 그가 알던 오드리의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간다. 그리고 오드리의 집에서 그가 마주한 오드리의 진짜 모습은 다른 사람이었다. 실제 학교에서 그가 사귄 여자는 자살한 오드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빌려 학교 생활을 했다. 이렇게 과거 속에서 리아나의 실체에 대한 진실 일부분을 조금씩 보여준다.

 

현실에서 다시 만난 리아나는 도망자 신분이다. 그녀의 정체를 말하는 순간 경찰에 잡혀가야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녀의 죄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 부분은 과거 속에서 드러난다. 그녀가 어떻게 그를 찾아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지 그의 도움이 필요해서라고 말한다. 그의 도움이란 것도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부자 매클레인에게 훔친 돈을 돌려주는 일이다. 매클레인과 그녀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설명해준다. 그녀를 만나는 사이에 한 명의 무서운 사내가 등장한다. 리아나를 뒤쫓고 있고 DJ 라는 이름을 말하면서 그를 때리고 겁준다. 리아나의 부탁을 들어주고 이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렇게 그는 새로운 사건 속으로 빌을 내딛게 된다.

 

조지의 행동을 보면 정말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느낀 공포나 두려움은 잠시만 생각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끼어든 폭력은 공권력을 불러 해결할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하게 막는다. 아니 자신이 부른 경찰 때문에 그의 여자들이 다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는 장면을 볼 때 조금 불편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년만에 찾아온 그녀의 매력에 다시 빠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모습은 바로 미련이나 집착을 넘어 영혼에 각인된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과도한 부탁이 아니라는 것도 한 역할했을 것이다.

 

조지가 평범한 소시민인 남자를 맡았다면 리아나는 연약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재빠른 계산과 계획으로 남자들을 옭아맨다. 그녀에게 빠진 남자들은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연약한 모습 뒤에 숨겨진 간악한 계획을 파악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매력적이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들은 순간적으로 그 매력에 굴복한다. 전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지만 인간은 자주 감성적인 행동을 한다. 작가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 이야기를 만든다. 리아나가 아주 매력적이지만 누구나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탐욕을 아는 사람도 생긴다. 이 허점이 그녀를 떠돌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을 둘러싼 조지와 리아나의 대화는 이 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 조지의 행동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던 그의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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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독서 - 2016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대상 수상작
잔홍즈 지음, 오하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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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 둘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여행을 바로 가지 못할 때는 독서를 통해 여행을 한다. 여행을 가면 책 속에 나온 곳을 여행한다. 이렇게 이 둘은 뗄 수 없는 상관관계다. 하지만 여행 가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책에 나온 곳을 여행으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아쉬움은 언제나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가 그렇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에서 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읽고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여러 오름을 올라야지 마음먹고 가지만 실제는 맛집만 열심히 찾아다녔다. 비와 아이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잔홍즈는 독서광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언제 책을 읽을까 할 정도지만 상당한 양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아주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 여행지의 일부분은 독서와 관계있다. 이 책은 바로 그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 여정과, 그 여정 위에 ‘책과 함께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했을 뿐이다.”라면서 이 책의 특징을 말한다. 이때의 책은 세상의 모든 종류의 책이다. 어떤 때는 가이드북이 되고, 어떤 때는 소설의 한 구절이 된다. 누군가의 여행기가 그의 시선을 끌어 여행지로 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당연히 그 장면을 재현하려고 한다.

 

얇은 책이 아닌데 다루고 있는 곳은 열 곳 정도다. 첫 장에서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다루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 나라를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인터넷 서점 책 광고에 나오는 사진 속 장면은 바로 여기서 비롯했다. 책을 그대로 믿고 따라한 것이다. 스위스에서도 책을 믿고 그대로 했다가 낭패를 봤다. 실제 이런 일 때문에 실종 사고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상호확인의 중요성을 알려주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들 부부의 고생이다. 첫 고비에서 돌아갔으면 됐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다음 고비는 무엇이고 종착점은 어떨까 하는 기대로 이어지는 그 과정 말이다. 이후 이런 고생은 더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인도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속고 있구나’ 였다.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읽고, 장중한 사유를 붙여 설명하지만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양탄자의 아름다움이다. 인도 여행기를 읽다 보면 늘 마주하는 것 중 하나가 사기인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고 한다. 한두 번은 꼭 당한다고 해야 하나. 독자에게는 빤히 보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왜 그렇게 매혹적인 것인지. 뭐 이것을 저자에게 한정할 것도 없다. 나 자신도 외국에 나가면 작은 돈이지만 늘 속지 않는가. 반면에 미식평론가로 오해받아 인도 호텔 주방을 들여다본 장면은 예상과 다른 결말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상황이 뒤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이 책 속에서 테러와 지진으로 피해 본 곳을 다녀온 이야기가 두 편 있다. 한 곳은 요즘 윤식당으로 인기 절정인 발리고, 다른 한 곳은 동일본이다. 발리 이야기는 호화로운 호텔에서 보내는 일정인데 너무 황량한 분위기가 강해 쓸쓸함만 강하게 남는다. 휴양지의 활력이 사라지고, 공포가 똬리를 튼 곳에서 어떤 모습이 보이는지 아주 잘 묘사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다시 그곳을 찾아간 그의 여행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곳의 현실을 새롭게 파악하게 만든다. 피해와 공포가 확대 해석된 상황임을 보여주고, 그 지역을 살리기 위해 현지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대만의 관계가 살짝 보였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친 그들의 역사가 떠올랐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경험한 곳도 두 곳 있다. 아프리카 초원과 알래스카다. 알래스카 편을 읽으면서 얼마전 휴가를 내고 이곳으로 여행을 떠난 직원이 떠올랐다. 비록 저자처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보낸 며칠 동안은 야생 속 현대의 삶이다. 머무는 곳은 현대식으로 깔끔하고, 그 경계를 벗어나면 사자들이 먹이를 잡아먹는 잔혹한 야생의 삶이 있다. 모험가, 탐험가의 시대가 끝난 후에도 인간들은 야생의 맛을 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이곳에 온다. 단순히 동물만 보려면 각 나라에 있는 동물원으로 충분한 텐데 말이다. 알래스카 이야기는 여행보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있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더 재미있었다.

 

식도락의 즐거움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오사카에 가고 싶었던 것도 일본의 주방이라는 말과 흘러넘치던 맛집 정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장소는 교토와 도쿄였다. 교토에서 그가 맛본 음식들은 단품이나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식당들이다. ‘카모메’의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맛난 음식은 최상의 식재료를 최고의 스시 명인이 만드는 오노 지로의 스시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늘 회전초밥과 뷔페 초밥을 먹다가 스시집에서 주방장이 직접 만들어주는 것을 먹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예약하기 힘들다는 오노 지로의 스시를 먹고 쓴 글은 맛있다는 말 너머의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 모양이다.

 

이렇게 미식에 대한 글들이 나를 유혹하는 와중에 터키가 나왔다. 양 머리라는 부분에서 조금 질색을 하지만 우리가 소머리와 돼지 머리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것도 없다. 예전에 시장에 가면 얼마나 돼지머리가 얼마나 많이, 자주 보였던가. 이렇게 이 책은 멋진 풍경의 묘사보다 관광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보다 책과 음식에 더 집착한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적인 장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압도적인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먹기 위해 여행은 간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뭐 이런 곳에 간 것도 책 때문이다. 서문을 보면 1/3을 줄인 것이라고 하는데 몇 곳은 더 손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살짝 그 줄인 2/3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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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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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앞부분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라틴어는 개념을 충분히 잡기에 부족했다. 번역도 매끄럽지 않아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낯선 개념과 이야기는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이해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모두 읽고 페터 슬로터다이크를 검색했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없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에 읽은 독자의 서평은 내가 이해한 것과 달라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분노.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이자 주제다. 저자는 분노를 키워드로 세계 역사를 재해석했다. 고대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이슬람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이해의 깊이만큼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분노의 은행 개념이다. 이 분노 은행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작동하게 되었는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는 기독교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고, 나머지 하나는 새롭게 다가온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라 혹은 이슬람이다. 너무 광범위한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서구의 역사 속에서 이 시기들은 구분이 충분히 가능한 범주다.

 

이 책의 서문은 상당히 길다. 거의 전체의 사분의 일 정도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이 서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인용하면서 풀어내는 라틴어의 개념은 아주 낯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철학자의 글에서 한 단어의 개념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데 사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단어는 티모스다. 저자는 “티모스는 자랑스러운 자아의 충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수용하는 감각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검색한 번역으로 보면 용기, 기개, 분노 등이 보인다. 어떻게 이해할지 모른 상태에서 저자의 분노의 정치심리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분노의 은행에서 “폭발적이고 복수심에 찬 도덕적 프로젝트를 위한 저장고인 분노의 은행을 세움으로써 개별적 분노의 숙주는 하나의 관리체계에 의해 주도되는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폭발한 것이 혁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그렇다. 저자는 이 혁명을 낱낱이 해부하고 혁명의 오류와 잘못을 끄집어내어 진열한다. 이것 이전에는 기독교의 허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분노의 신이란 개념이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교리 변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분석한다. 연옥을 발명했다고 했을 때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또 한 번 깨어졌다.

 

혁명과 공산주의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 둘을 근현대사에서 자발적으로 이룬 나라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모두 실패했다. 러시아의 쿨라크 정책이나 사회민주주의자의 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스탈린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드러났다고 해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서구의 지성인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입을 다물었다고 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서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이런 바 문빠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하고.

 

중국의 혁명을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 글은 낯익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으로 죽은 인원이 몇 명인가 하는 것은 러시아의 대기근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하지만 현대 중국은 이 사실에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당연히 출판은 금지다. 마오주의가 한때 유럽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왜곡되고 선별적인 정보가 어떤 효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현재도 마오주의가 변형된 채 제3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하니 조심하고 더 유의할 부분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몇 가지 사실만 기억하는 우리에게 저자가 주장하는 모택동의 공산주의 혁명은 사실이 아니라는 대목에서 눈길이 머문다. 다만 그가 성공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알바니아와 루마니아의 대규모 투자 사기극에 대한 부분은 이전에 한 번 다른 곳에서 들은 적이 있지만 다시 봐도 놀랍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이런 대사기극이 가능한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당하는지 등. 물론 한국에서도 조희팔의 거대한 피라미드 사기가 있었다. 이 모든 사기의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고, 그 탐욕은 허술한 정보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개인들과 사회 시스템 부재와 맞물린 결과다. 여기에 저자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폭동을 보여주고, 새롭게 자라는 이슬람의 테러를 조금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온 시기가 2006년이란 부분이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어난 이슬람 테러가 저자가 주장하는 분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뭐 독일에서는 저자의 논문이나 주장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고, 쉽지도 않다. 냉소로 가득한 문장과 사실 지적은 저자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없다면 오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번으로 이 책을 이해하기는 나의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번역의 아쉬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분노를 키워드로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부분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국의 분노 은행이 어떤 식으로 적립되고 이것이 어떻게 폭발했는지 연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역시 나의 이해력과 지식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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