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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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저자는 자신의 조상을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고 말한다. 이런 부류를 부르는 말이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 등이지만 저자는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단어 속에 서로 다른 의미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은 이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의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선은 이렇게 다르다.

 

이 책은 밴스의 자서전이자 힐빌리 사회, 문화, 경제 보고서다. 그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고, 떠났는지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알고 있던 미국의 모습이 상당 부분 깨진다. 영화나 소설 등에 나온 이상한 백인들의 모습이 밴스의 할모와 할보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마약에 절어 지내는 사람들 속에 자신의 엄마를 본다는 현실을 이렇게 적은 글을 만난 것도 처음이다. 이 낯선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물론 기준은 내가 알고 있는 미국 중산층 백인의 삶이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복지정책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불편한 사실이다. 복지정책을 확대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될 현실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는 가정의 평화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 도시들은 퇴락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이혼과 재혼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부모가 마약을 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마약을 한다. 평균 수명도 낮다. 실제로 밴스의 엄마도 마약을 하고, 몇 번의 결혼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행복을 느꼈는데 이것은 바로 할모와 할보 덕분이다. 이 두 분이 자식들은 제대로 키우지 못했지만 손자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키운 것이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낀 공간’을 제공 받은 덕분이다. 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가정인데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 아니다.

 

저자가 힐빌리 문화 속에서 살 때 보여준 일상은 도시 하층민이나 저개발국가의 도시 빈민과 상당히 닮아 있다. 꿈은 꾸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다. “나는 우리 힐빌리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아이들 돌보기, 아이들이 세상에 맞서게 하는 일,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만큼 강한가? 하고 물으며 이 강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지적한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강한 허세를 피우는 것은 쉽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은 진짜 강한 사람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그가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번 돈을 너무 쉽게 낭비하고,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의 의미도 이때 처음 알았다. 능력 부족과 무능력을 구분한 것도 이곳이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 백인 노동 계층에서 가장 변화시키고 싶은 부분이라고 할 때 무력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아주 잘 표현했다. 한두 번의 시도와 대충의 최선으로 쉽게 말하는 자신의 결정이 아니다. 해병대는 진짜 세계를 그에게 보여줬다.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예일의 로스쿨도 당연히 가지 못했다. 예일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봤다. 인맥의 고마움도 무서움도 같이 배운다. 여자 친구를 통해 분노를 절제해야 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에게 온 기회를 감사해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적은 잠과 많은 일로 돈을 벌고 그 남은 시간은 열심히 공부했다. 아메리카 드림의 실현이다. 실제로 이런 벽을 돌파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그가 본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면이 적지 않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같이 놓고 봐야한다. 이 부분은 빠져 있다. 힐빌리의 문화, 그곳을 벗어난 한 청년의 삶은 그의 기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사회의 단면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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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의 체스 민음사 외국문학 M
파올로 마우렌시그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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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툼한 책이 아니라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체스를 모르다보니 작품을 이해하는데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룰이나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것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체스의 거장들 중 몇 명은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낯선 이름도 많다. 아마 다른 책이나 영화 등에서 본 적이 있기에 낯익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 덕분에 도입부에 나온 죽음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왜 라는 의문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사람의 인생과 체스가 더 매력적이다.

 

프리슈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면 한 남자의 인생이 흘러나온다. 한스 마이어. 체스에 영혼을 빼앗긴 그는 우연인 것처럼 프리슈의 기차 속 체스 게임에 개입한다. 프리슈가 둔 수에 대한 그의 해석을 시작으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인생에서 체스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영혼에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인물을 만난다. 타보리다. 타보리와의 만남과 그의 훈련을 짧게 들려준다. 이 훈련으로 그는 점점 성장한다. 멋진 선수가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타보리가 사라진다. 그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시 둘이 만나고, 타보리의 의도가 드러난다. 이제 이야기는 타보리로 넘어간다.

 

타보리의 이야기는 프리슈 죽음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타보리의 탄생과 성장과 추락과 여생으로 이어진다. 훌륭한 체스 선수로의 성장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체스가 새긴 강한 흔적을 볼 수 있던 그의 삶은 행복했다. 인내와 강한 몰입을 통해 체스의 수들을 배운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기는 유대인에게 아주 불행했던 1930년대다. 재능보다는 출신이 우선이었다.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치가 득세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물론 이 억압과 압박을 피해 달아날 기회가 있었다. 안일했다. 앞으로 펼쳐질 역사의 참혹하고 잔인한 비극을 몰랐을 뿐이다. 타보리와 프리슈의 만남과 대결과 새로운 상황은 영혼에 상처를 깊게 아로새기면서 이어진다.

 

단순히 체스만 다루지 않았다. 체스에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과 시대의 비극을 같이 엮었다. 운명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이 선택마저 강요되는 현실은 너무나도 큰 비극이다. 승부와 복수라는 단어로 요약하기에는 이들의 삶은 너무 많은 굴곡이 있다. 이 많은 굴곡 속에서도 체스판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체스 챔피언이 되지 못한 아쉬움으로, 누군가는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 세 명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알 수 있다. 의지와 노력과 인내가 없다면 이 불공평함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알파고가 바둑을 무너트리면서 이제 인간의 두뇌 게임은 컴퓨터에 완전히 졌다. 이미 체스가 진 것이 오래전이다. 체스의 신비라고 하지만 연산기능이 뛰어난 기계를 인간이 짧은 시간에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기계의 승리는 인간들이 둔 체스의 역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기보를 학습하고, 그것을 이용해 최상의 수를 빠른 속도로 연산하는 컴퓨터의 놀라운 능력은 이제 인간이 당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그럼에도 체스의 새로운 한 수에 대한 열정과 도전과 강한 의지는 매혹적이다. 비록 이것 때문에 비극이 생긴다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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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성숙한 시민을 위한 교양 수업
짜우포충 지음, 남혜선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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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 이상이다. 단순히 나의 집중력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문장이나 설명이 아주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나와 의미가 순간적으로 바뀌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표시했다. 이 책에서 평소 내가 의문을 느꼈던 부분을 잘 풀어낸 부분에 상당 부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나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서고, 어떤 부분은 누군가와 논쟁에서 사용하려고 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논쟁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와 평등 등의 기본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함을 느낀다. 저자도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기본이다.

 

롤스의 <정의론>을 바탕으로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영어에서 다른 단어가 하나의 번역어로 사용됨에 따른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저자는 자유방임주의와 자유주의 좌파를 구분한다. 흔히 자유주의자로 총칭하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인데 나에게는 스스로 만든 용어가 오히려 더 불편하다. 물론 이 책이 중국을 대상으로 했다는 부분을 감안하면 다를 수 있다. 공산국가인 중국이 자유주의하면 우파를 연상시킨다는 주석은 그 나라 대중이 가진 정치적 이해를 드러낸다. 이것이 자유에 대한 해석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번에 쓴 책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발표한 것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같은 내용이나 인용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사실을 알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유다. 자유로운 인간이다. 사실 우리가 학창시절 받은 자유에 대한 교육은 충분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부분이 이 부분이다. 자유란 단어가 주는 아무 곳에나 침을 뱉을 자유 같은 일차적인 상황만 머릿속에 계속 남아 더 깊은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방임과 방종이란 용어를 통해 자유가 제한적이란 사실을 배웠지만 그냥 지나갈 뿐이다. 자유와 내맘대로가 동의어처럼 이해되는 상황을 자주 보는 것도 바로 자유에 대한 교육 부족이다.

 

자유와 평등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고 논증한다. 이 부분은 누구나 유의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빈자들이 가진 자의 정당을 옹호할까 하는 부문에 대한 작은 단서 하나를 얻었다. “독재의 악은 독재가 정치를 우리 삶에서 소외시키고, 우리를 지배하면서도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외재적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우리 삶에서 공공성의 면모를 송두리째 앗아간다”라고 한 부분이다. 자신과 가장 밀접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정파성에 휩싸여 감정적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한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이런 판단을 제대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의 제도를 통해 근본적이고 중요한 기본 자유를 누린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없다. 결국 자유란 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제도를 바꾸고 개선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정치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을 실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때 자유인은 자신의 의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정치권력이 행사될 것을 요구한다. 1인 1표 투표제는 그 방법 중 하나다. 이 투표제가 항상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기회에 개선할 수 있는 기회는 항상 보장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개체임을 실천하고 구현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우선을 외친다. 그래야만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시장은 국가 안에 있는 사회 기본 제도의 일부분이다. 시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강제적인 법률이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가지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들이 작은 국가를 외치면서 결코 국가를 버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을 보호하는 국가가 없다면 그들 자신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정치와 도덕 바깥에 독립된 자족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은 개념 혼란이다.”란 대목이 의미하는 바다.

 

개인적으로 시장자유자의자들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준 대목은 “시장자유주의자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대상은 사실 평등한 자유가 아니라 사유재산권이며, 사유재산권이 평등한 자유를 가져오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유의 불평등한 분배를 제도적으로 합리화하고 강화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 부분이다. 이것은 독재를 설명한 부분과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쉽고 분명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다. 온전한 자유인을 실현하려면 온전하게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모든 영역에서 인간에 대한 억압을 줄이고 없애는 데 온 힘을 다하려면 이런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정치철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쉽지 않지만 몇 가지 개념과 해석은 많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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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6 - 너구리 잠든 체하기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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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식구가 또 늘어났다. 이번에는 너구리다. 부제목도 ‘너구리 잠든 체하기’다. 이쯤 되면 이 집은 과연 어디고, 어떤 환경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동주택이 아닌 것은 알지만 야생동물인 너구리까지 집안으로 들어올 정도면 상당히 숲과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두식이가 너구리를 보고 보인 반응은 본능을 잃어버린 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뭐 자신을 개가 아니라 고양이라고 생각한 두식이니까 가능한 것이지만 두식이가 산책을 하면서 새롭게 개 친구를 만든 것을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부제는 너구리가 위험을 느끼면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먹이 때문에 이 집에 나타났는데 시바 견 두식이가 그냥 가만히 있다. 처음에는 한 마리였는데 어느 순간 두 마리가 된다. 동물을 좋아하는 이 가족은 이 너구리에게도 음식을 준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밥 때가 되면 나타난다. 팥알, 콩알, 두식이, 마당이, 너구리 두 마리까지. 정원 속에는 거북이들이 살고 있다. 이야기 한 컷에 이 거북이들이 점호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아주 웃겼다.

 

콩고양이들이 두식이와 함께 산책 가서 다른 개에게 위협을 느낀 장면은 왠지 이전에 집을 떠났다가 힘들게 돌아온 에피소드가 떠오르게 했다. 두식이가 콩고양이들을 따라 하는 모습은 재밌지만 한 편으로 짠하다. 고양이 타워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쌍둥이 동생이 다른 개를 데리고 와 친구가 되었을 때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혹시 싸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잘 훈련된 개가 두식이 때문에 나쁜 버릇 하나를 배워 갔는데 이것 또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훈련된 개를 보면서 두식이를 훈련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다. 당연히 실패했기에 더 그렇다.

 

아주 놀라운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한낮에 가족들이 한 명씩 누워 낮잠을 즐긴다. 그런데 우연히 이 광경을 본 할아버지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혹시 이 집에 큰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해서 말이다. 이 오해를 단순히 해프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이 집 식구들이 키우는 고양이들과 개와 너구리들과 닭 등을 보면 아주 큰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각자 자신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의 용품을 사주지만 실제 집을 관리하는 마담 복슬의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점점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면서 마담 복슬의 역할이 줄고, 아버지의 사라짐이 없어진 것은 조금 아쉽다. 나의 관심 중 하나가 이 동물들을 키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 가볍게 펼친 6권이지만 단숨에 읽고 말았다. 7권도 손이 갔지만 잠시 멈췄다. 이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남겨놓기 위해서다. 실제로는 6권 읽으면서 마신 술 기운 때문이다. 늦은 밤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자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 술 기운이 조금만 늦게 올라왔다면 7권도 끝까지 읽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다음 이야기는 조금 아껴둬야겠다. 짧은 독서와 긴 여운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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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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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이란 이름 낯설다. 그의 이력을 보니 이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보인다. 박진규란 이름으로 문학동네문학상을 수상한 <수상한 식모들>이다. 워낙 오래 전이라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은 것은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박생강이란 필명으로 다른 작품도 한 권 내놓았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 박진규란 것을 알았다면 한 번쯤 더 눈길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최근 나의 관심이 신인작가보다 이전에 재밌게 읽었던 작가에게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 부족이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거부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러면서 몇몇 문학상 수상작가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관심을 둔다. 점점 편해지려고 하고, 브랜드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 같다.

 

사실 이미 나는 브랜드의 노예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나 문학상이나 기존 작가의 믿음 등에 완전히 빠져 있다. 이 소설 속 고급 멤버십 피트니스의 보증금이 3~4천만 원이라고 할 때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텔의 가격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이 헬라홀 회원들이 1%라고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더 놓은 곳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비싼 가격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고, 더 힘쎈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이런 착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 많이 본다. 자신들의 위치를 항상 최상위급과 비교하는 나를 비롯한 지인들의 모습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물론 이 헬라홀 회원 모두가 1%는 아니다.

 

갑을 관계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현실에서는 병이 더 많다. 병보다 못한 정도 있다. 하층에 하층으로 내려가면 그들의 지위는 을보다 훨씬 못하게 된다. 아니 병보다도 못하다. 그래도 소설가 태권은 병은 된다. 월급도 많지 않지만 밀리지 않고 나온다.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힘이 들지만 실제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육체노동보다는 오히려 감정노동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우나 매니저란 이름이 있지만 그들은 ‘락카’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퇴락한 헬라홀의 비품들은 고객들의 불만을 사지만 이 불만을 그대로 받는 역할도 그들이 한다. 한 사람의 당당함을 보여주면 불편함을 느끼는 회원들을 보면 그들의 현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1%라고 하지만 이 헬라홀은 신도시 부자 노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이 부자들이 사우나에서 새로운 양말 등이 나오면 들고 가 골프장에서 한 번 신고 버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새로운 양말 등을 계속 가져다 놓을 수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회원들이 빠져나가면서 특별히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바꿀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대여품이란 글자까지 쓸 정도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신도시란 특성과 권력에서 멀어진 노인들이란 위치는 이 불만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요구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백화점 휘트니스가 생겨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 같지만 이곳은 비싼 회원제가 아니다. 1%의 대우를 원하는 노인 등은 그곳으로 갈 생각이 없다.

 

사우나라는 곳을 거의 가지 않는 나에게 이곳의 풍경은 낯설다. 호텔 사우나에 간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냥 보통의 목욕탕보다 조금 더 넓고 좋다는 것 정도 밖에 느끼지 못했다. 내가 빨리 씻고 나가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생각도 못했다. 동네 목욕탕이야 너무 좁고 자주 보니 금방 눈에 들어오지만 낯선 사우나는 그렇지 않다. 세신사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진 것도 이용해본 적이 없고, 내가 자주 이용할 때는 없던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 속에는 세신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발사는 나오는데. 노인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생기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아주 특이했다. 아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보지 못했을 뿐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뛰어난 블랙유머로 패러디했다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냥 한 단면을 보여준 것뿐이다. 작가의 사우나 매니저 경험이 70%나 녹아 있다는 글을 보면 뛰어난 관찰기다. 사우나 매니저 일 자체가 힘들지 않지만 이직율이 높다는 것은 낮은 급여와 그 일의 만족도와 연결된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 일을 지원하는 듯한데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풍자적인 문체와 개성 강한 캐릭터와 한정된 공간 속의 다양한 군상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출간 전 이 책 제목으로 바뀐 것은 그 사우나의 정의를 잘 보여준다고 한 작가의 말 그대로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노인층이 실제 JTBC를 거의 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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