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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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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하진을 책을 몇 권 사놓았지만 읽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몇 년 전 갑자기 하진에 대한 좋은 서평들이 올라와 관심을 두었고, 호평들 덕분에 몇 권을 샀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책장 어딘가에 꽂아둔 채로 몇 년이 흘렀다. 산 후 바로 읽지 않은 책들의 운명이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책더미 속에 파묻힌다. 하지만 기억 한 곳에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미지들이 남아 있다. 이 기억은 나중에 그 작가나 작품을 읽고자 하는 마음을 되살려준다. 하진의 이번 소설도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다. 취향의 차이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다. 하진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보니 취향에 맞는지 알지도 못했다. 단순히 하진이란 작가의 이름 때문에 선택했다. 최근 바빠 충분히 집중할 시간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낯선 작가의 장편을 읽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비교하고, 삐딱하게 보면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론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정도는 아니다. 분량이 그렇다. 난의 이야기 속에서 하진의 모습을 찾고, 작가가 만난 시인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읽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난 우다. 중국인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학업을 포기한다. 중국 정치에 혐오를 느낀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니아다. 그녀가 그의 삶을 지배한다. 아내 핑핑도 이 사실을 안다. 난은 핑핑과 결혼해서 타오타오란 아들을 두고 있다. 미국에 유학 와서 아내를 불렀다. 나중에는 아들도 왔다. 이 소설을 첫 부분은 다섯 살 아들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이다. 엄마는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다행히 잘 도착했다. 제대로 된 가족이 모인 것이다. 이때부터 우 가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한 사람의 중국인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난 우의 이야기다.

 

중국 국민으로 생활하다가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한 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의 국적을 감안하면 거의 노동일 밖에 없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살아야 하는 그에게 이 일은 생존에 대한 문제다. 부잣집 관리 일을 하지만 돈이 부족해서 뉴욕에서 중국 시 잡지 편집 일을 하지만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부업으로 선택한 것이 식당 일이다. 그의 성실함 덕분에 식당에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는다. 이제 요리사는 그의 평생의 직업이 된다. 아메리카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난이 바라는 것은 평온한 일상과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이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식당을 인수하고 빚내어 집을 산다. 생활이 쪼달린다. 풍족한 미국에서 그들의 삶은 궁핍하다. 물론 그 당시 중국에 비하면 풍족하다. 조그만 중식당을 운영하고 빚을 갚으면서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시인의 삶이 꿈틀거린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인 시인이 되고 싶은 난의 의지가 곳곳에 스며있다. 그는 중국인이지만 영어로 시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이 괴리는 평생 그를 괴롭힌다. 나중에는 포기하라는 혹평까지 듣는다. 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중국인의 영어에 대한 나의 착각을 깨닫는다. 그들이 쉽게 영어를 배운다는 착각을.

 

난은 중국 태생의 중국인이지만 미국 영주권을 얻고 시간이 흐른 후 시민권을 받는다. 그런데 그의 태생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에게 와서 애국을 강요한다. 단지 중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중국을 도와야 하고 응원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거부한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정부를 비판했던 사람들마저도 무분별한 애국주의에 빠져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단순히 이것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한국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민족주의, 애국주의, 국수주의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오쩌뚱을 비판한 글을 읽으면서 다시 우리의 박정희가 떠올랐다. 박정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어른들은 미화된 위대한 지도자 이미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마오도 여자를 바꿔가며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그것은 그가 쓴 책의 인세를 챙겼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주석이 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이미지들이 산산조각난다. 그리고 90년대 급속하게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가 흔히 부패되었다고 말하는 중국의 진짜 모습 중 한 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소설은 한 중국 이민1세대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문화의 충돌을 경험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간다. 밖에서 볼 때는 평온하지만 그의 내면은 불타고 있다. 사랑보다 의무감에서 처자식을 돌보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미국에서 수년 간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아니 산다고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보면서 놀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미국으로 온 그의 아들보다 영어의 활용이나 이해가 떨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교적 평온한 이야기지만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된다. 난의 삶이 평탄하게 흘러가도, 주변의 삶에 흔들려도, 내면에서 열정이 솟구쳐 올라도 작가는 무리하게 비약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심한 소설인데 긴 세월 속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 덕분에 결코 심심함을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난이 애국을 외치는 사람들에 반대하여 자유를 말할 때 깊이 공감한다. 물론 미국인으로 산다고 그의 삶이 자유로울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과 정보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나라라면 다를 것이다. 작가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란 부분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세부적인 부분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모든 부분을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인의 정체성과 시와 영어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알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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