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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평점 :
A신문의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A신문은 아마추어들의 사진을 월별로 상을 준 후 연말에 연간상을 준다. 이번 연간상은 <격돌>이다. 이 사진은 도메이 고속도로 야간에 발생한 연쇄 추돌 사고 장면을 담고 있다. 5중 충돌 장면을 찍은 것인데 놀라운 것은 세 대의 차량에서 솟는 화염이 소용돌이를 틀며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위에서 찍었다는 것이다. 평에 의하면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하고 그 박력과 효과가 월등한 작품이다. 보통 보도 사진이 사고 후의 잔해 등을 찍는 반면에 이 사진은 사고 발생 순간을 거의 찍은 것이다. 심사위원장이 이것을 10만분의 1의 우연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우연을 하나씩 파헤치고 반격한다.
세계를 뒤흔든 유명한 사진들이 많다. 그 중 몇 작품은 연출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 상황을 극대화시키는 순간을 제때 포착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서 <격돌> 이후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여 응모한다. 심사위원장도 중간에 어느 정도 연출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어릴 때는 사진은 사실만을 보여주는 도구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사진이 어떻게 연출되고 편집되는가에 따라 원래 상황이 왜곡되고 뒤틀린다. 포토샵의 발전은 이것을 더 부추긴다. 작년 대선의 몇 장면은 너무 유명하다. 요즘 종이신문을 보지 않아 매체 사진에 관심이 없지만 가끔 의도에 의해 편집된 사진이, 연출된 사진이 나온다. 재벌가의 코스프레는 대표적인 연출이다. 이 연출에 대해 주인공은 또 다른 연출로 복수한다.
보도 사진이 나오면 늘 두 진영이 싸운다.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셔터를 누를 수 있냐고 하는 것과 그것은 사진가의 직업이자 사명이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진영 사이를 수없이 오고 갔다. 그것은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바뀌었다. 도입부에 <격돌>을 두고 벌어지는 독자와 신문사와의 논쟁은 이것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사실 이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이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연출로 만들어진 장면들이란 것이다. 오랫동안 다루어져 온 논쟁을 밖으로 끄집어낸 후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 바로 왜 이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고. 그리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피해자 가족 등을 내세워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격돌>을 찍은 야마가 교스케, 이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남자. 이 둘도 서로 격돌한다. 피해자 유족인 남자는 사고의 진실을 파헤치고 이것을 복수로 풀려하고, 교스케는 어느 순간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격을 가하려고 한다. 정확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자는 교스케가 연출했던 것처럼 상황을 연출한다. 처음에는 그 장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몰랐는데 사건이 발생한 후 그 흔적으로 뒤따라갈 때 그것이 드러난다. 연출 대 연출의 격돌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멈췄다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출 속에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를 여운으로 남기고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개인에게 달렸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조금 부족하다. 연출된 상황을 파헤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은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어떻게 이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교스케에 대한 정보가 수집된다. 이 수집된 정보와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단서가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 한 남자의 집념이 담겨 있지만 감정들은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차분히 진행될 뿐이다. 세밀하고 치밀한 설명으로 장면과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인간은 그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 숨은 인간이 앞으로 나올 때 연출로 통해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냉혹하고 치밀하고 차가운 복수가 펼쳐진다. 얼마나 증오가 심해야 이런 냉철한 복수로 이어질까? 보도와 인명보다 개인적으로 연출에 대한 연출의 복수라고 이 소설을 읽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