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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재미있는 제목이다. 처음에는 이 제목에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새롭게 와 닿았다. 낯익은 타인이라는 모순된 단어 조합이 첫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그 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자신을 찾는 K의 3일 동안의 여정을 시간대별로 보여준다. 분명히 낯익고 함께 살아온 그들이 주는 낯선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말이다. 그의 3일 여정은 어떻게 보면 자신을 찾는 구도 과정이고, 어떻게 보면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이다.

주인공 K는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깬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주말 동안에는 자명종을 켜지 않는데 울린다. 아내가 켰을까? 아니다. 아내는 기계치다. 이런 낯선 생각을 하고 화장실로 간다. 거울을 본다. 놀란다. 낯선 누군가가 자기 앞에 있다. 자신이다. 소변을 보고, 면도를 한다. 스킨을 바른다. 그런데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것이 아니다. 낯설다. 이 낯익은 공간에서 벌어진 낯선 환경이 신경을 건드린다. 이것은 부엌에 있는 아내에게서도 느껴진다. 분명히 자신의 아내인데 낯선 타인 같다. 이렇게 K는 낯익은 사람들과 낯익은 공간 속에서 낯선 기분을 느끼고 자신을 잃어간다.

그가 가장 먼저 잃은 것은 핸드폰이다. 핸드폰의 상실은 그가 가진 인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현대인에게 핸드폰은 단순히 전화기 그 이상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그 속에 담아놓고, 많은 것을 핸드폰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자기 핸드폰을 찾기 위해 전화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문자와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바로 회신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연락이 닿았다. 이 연결이 낯익은 타인에서 낯선 타인과 환경 속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 속에 만난 사람들은 재미나게도 낯익은 사람들의 반복이다. 한 사람이 다른 직업과 위치에서 낯익은 모습으로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역시 익숙한 일상의 변화를 우리가 쉽게 감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낯선 감정을 깨닫게 된다고 해도 K처럼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품고 K의 모험 속에 빠졌다. 비록 그 모험이 너무나도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주인공 때문에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은 K가 느끼는 이질감이 거울 이미지와 중첩되기도 했다. 혹시 그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거울 속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작가는 그런 평이한 구성을 벗어났다. 자명종과 자신의 집을 시발점으로 삼으면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환경을 구축했다. 그가 잔 곳과 상관없이 매일 7시 자명종 소리에 자기 방에서 깨기 때문이다.

K의 모험은 낯익고 낯선 세계를 떠도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를 되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사람의 반복적인 등장과 낯선 환경은 묘한 결합을 이루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그 과거는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기억과 추억 여행이다. 하지만 이 기억과 추억은 낯익은 타인들과 잊고 있던 자신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강한 지진은 세계를 뒤흔들어 세계의 틈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준다. 더 깊이 들어가면 머릿속이 더 복잡할 것 같다.

빠르고 흥미롭게 읽힌다. 하지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불가해의 세계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나’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이 낯익은 세계가 진짜인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심오한 철학세계로 빠진다. 능력 밖이다. 이 부분은 그만하자. SF소설이라면 다중우주 혹은 평형우주 이론을 내세워 다르게 풀었겠지만 작가는 그럴 목적이 전혀 없다. 곳곳에 묻어나오는 자전적인 내용들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가독성에 비해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첫 번째 전작 장편소설이란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현대물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보다 나중에 더 많이 생각날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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