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지 오웰의 책들이 다시 번역되어 나온다. 예전에 읽지 않았던 소설이나 르포도 덕분에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은 처음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럴 때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숨은 걸작이란 상투적인 문구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이름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더욱 그렇다. 책 소개에 나오는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사실 무겁다. 그런데 첫 문장을 읽고 난 후 이 뚱뚱한 중년 보험사원에게서 잠시 잊고 있던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간 후 현재가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당연히 현재가 아닌 과거다. 그래서인지 분량도 가장 많다. 이 과거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나와 우리 아버지들의 잊고 있던 역사다. 역사란 거창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누구나 살아온 길이 있다. 아무리 평범한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과거는 그가 현재에서 도망갈 유일한 곳이자 희망이 깃든 곳이다. 아내 모르게 생긴 17파운드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중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간다. 이 과정에 중년 가장의 삶이 하나씩 밝혀진다. 틀니를 낀 마흔다섯 살 중년의 아침으로 이야기 문을 연다. 일상적인 가정의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사는 곳 웨스트블레츨리의 엘즈미어로드 교외주택단지로 장면이 바뀌면서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주택금융조합의 영악한 사기 행위는 현대의 재건축조합이나 토건족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 이런 현실 속 조지의 일상이 그려지고 조그 왕이란 이름이 기억을 자극한다. 이 자극된 기억 속 세계는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 속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의 유년 시절, 청년 시절, 군 시절, 제대 시절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풀어낸다. 성실한 부모 아래에서 평온하게 자란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부모들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현재 삶의 무게에 짓눌려 뚱뚱해지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지만 찬란하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변화의 바퀴는 굴러가고 적응하거나 변하지 못한 사람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향수와 그리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데도 말이다. 그리고 전쟁. 1차 대전은 삶을 바꿔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전쟁과 정의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선동가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경험이 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이어지지만 선동에는 찬성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과 통찰로 이어진다. 이미 지나온 역사이기에 그의 통찰력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다. 전쟁보다 전쟁 후를 더 걱정하는 그의 인식에서 그가 걸어온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뚱보 조지의 말과 행동과 심리를 통해 유머와 위트를 계속 풀어낸다.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즐겁게 읽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핵심은 2부와 4부라고 생각한다. 2부가 조지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면서 시대의 흐름과 한 개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면 4부는 현대 속에 무너진 과거의 흔적과 현대 사회의 불안과 소외와 공포다. 2부에서 그가 가장 행복을 느꼈던 낚시를 위해 4부에 찾아간 고향은 이미 과거 기억 속 장소가 아니다. 이 장소와 환경의 변화, 조지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 추억과 현실의 불일치 등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속된 말로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일상에 지친 그가 숨 쉬러 간 그곳이 오히려 그를 질식시킨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본 표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공돈이 생긴 한 가장의 일탈기라고도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던 그가 싫증을 느껴 숨 쉬러 간다. 실제 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탈(?)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이 더 각박해지고 빨라지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라는 괴물이란 표현이 미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도 숨 쉴 곳을 찾지만 생활과 경제라는 단어들이 나를 삼켜버린다. 혹시 내가 숨 쉴 곳을 찾는다 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지막 문장에서 그가 선택할 것을 아는 것처럼 나의 선택도 이미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