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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언제나 힘겹게 다가온다. 그의 높은 인지도를 생각하면 단숨에 읽고 몰입해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읽는 것은 왜일까? 그 명성에 대한 끝없는 동경, 읽었다는 것을 티내기 위한 행위, 아니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 중의 재미나 흥미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정확하게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 이제는 르 클레지오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줬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물론 그 이후 계속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르튀르 랭보의 <허기의 축제>로 문을 열고, 허기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전후 불량했던 식량 사정과 미군을 따라가며 그 유명한 대사 ‘기브 미 초콜렛’을 외치던 어린 시절. 처음 이 시절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육이오가 겹쳐보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 후 미군이 진입한 모든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작가가 말하는 이 당시 허기는 굶주림이다. 배고픔이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데 소설 속 허기는 또 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읽으면서 그 허기가 무엇일까 계속 고민했다.
에텔이라는 부유한 집안의 딸을 주인공을 내세웠다. 해설에 따르면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어머니의 기억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풀어낸 소설이다. 하지만 기억과 사실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소녀의 삶을 다루는 과정에 역사적 사실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그녀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녀가 전혀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그 거대한 흐름은 그녀를 삼켜버린다. 어쩌면 그녀는 삼켜져버린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복원 혹은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외종조부 솔리망 씨는 어린 에텔에게 큰 선물을 준다. 추억과 유산이다. 이 둘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려지고 빼앗긴다. 연보라색 집은 그런 점에서 이 둘과 관계있다. 하지만 현실은 미래는 다르다. 솔리망 씨가 구상했던 연보라색 집은 에텔 아버지의 욕망에 의해 사라진다. 아니 에텔의 유산 자체가 넘어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성녀자의 재산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가는 것이 그 시절에 가능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것이 아버지라고 해도 말이다. 이 탈취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가족 전부를 추락하게 만든다. 그것은 부유한 자산을 정확한 검토나 확신 없이 사기꾼들에게 퍼주었기 때문이다. 허영에 물든 아버지의 모임 때문이다. 이 모임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을 그대로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이들이 어떻게 독일에 빌붙었는지도 보여준다.
에텔. 그녀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다. 첫 번째 동성 친구 제니아는 몰락한 러시아 귀족 출신이다. 한동안 둘의 관계는 좋았다. 하지만 부와 욕망의 차이가 둘을 갈라놓았다. 현실적이다. 처음에 이 둘의 관계는 사실 위험해보였다. 아마 조금 야한 소설이었다면 동성애의 분위기를 풍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을 나만 받은 것일까? 그리고 이 관계는 그녀가 현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후 그녀 집에서 벌어지는 모임에 대한 그녀의 기록과 기억은 이런 현실을 더 깊숙이 이해하게 만든다. 집안의 몰락을 그녀가 목격했을 때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그 과정을 보았고 현실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부자들의 몰락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몰락이 무분별한 투자와 사기로 인한 것인 경우 그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어머니 쥐스틴은 너무 순종적이다. 명예란 추상적인 허상에 매달려 현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제적 어려움과 허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쥐스틴과 아버지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다. 이 둘의 관계가 애정 넘칠 정도로 다정하지는 않다. 이 둘의 관계가 이어진 것도 역시 명예와 관련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세밀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나오는 장면과 문장으로 추론해야한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기억은 단편적이고 추상적이며 개인적이다. 때때로 기억은 다른 인상들에 의해 왜곡되어질 수도 있다. 현재의 나에 의해서도 그 기억은 바뀐다. 종종 경험한다. 에텔의 성장이 세계사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풀려나가는 이 소설에서 기억은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과 추억을 잊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이고 조금의 왜곡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언제나처럼 작가의 문장은 좋다. 그렇지만 그의 감성에 나의 감성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녀의 삶을 떠올려보면서 그렇게 깊게 공감하지도 몰입하지도 못하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 계속 나 자신에게 물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