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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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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감기 몸살로 고생을 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을 때였다. 맑은 정신으로 읽어도 제대로 이해를 할까 말까 하는 소설인데 말이다. 처음엔 간결한 문장이구나 하고 좋아라 했는데 금방 긴 호흡으로 바뀌면서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한 번 문장을 쉬고 나면 그 의미를 되새겨봐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집중력도 높지 않은 상태고, 이야기 자체도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면서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장에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추측하면 금방 뒤집어지고, 하나의 사건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사건이 벌어지면서 바뀐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꾸준히 참고 읽은 나에게 점수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

역자의 해설에 기대지 않고 읽는다면 한 편의 연극 같다. 공간이 제약되어 있고, 등장인물도 몇 되지 않는다.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상황과 벌어지는 사건은 여주인공의 독백의 현실 혹은 환상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겠다. 이 제약된 공간과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남자 주인이 하인의 어린 아내를 유혹하고 겁탈하거나 무너진 집안 경제와 고립된 위치 때문에 여주인공이 나중에 겁탈되는 상황 같은 이야기 말이다. 같은 공간을 오고 가고,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살짝 숨기거나 뒤틀어놓는다. 어느 순간에는 한편의 포르노를 보는 것 같은 장면도 있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가장 은밀하고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앞부분에 아버지와 새엄마를 도끼로 죽이는 장면을 볼 때만 해도 참으로 엽기적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아버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고개를 가로 젓는다. 거기에 새엄마는 사라지고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하인 헨드릭의 어린 아내다. 화자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그려내기보다 오히려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이런 상상은 그녀가 결코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자 그녀들에 대한 질투다. 나중에 헨드릭에게 겁탈당하는 후 그녀가 그에게 바라는 행동을 생각하면 그녀의 삶의 깊숙한 곳을 살짝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 장면들은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들이기도 했다. 

과거의 남아공을 생각할 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고, 인종차별이 없어졌다는 표면적 발표가 있지만 말이다. 이 정책은 현대에 벌어진 최악의 인종차별정책이다. 아마 이것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노예제도 정도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현대 식민주의의 문제점, ‘서구 문명의 합리주의와 위선적 도덕성’을 한정된 공간 속에서 풀어낸다.(이것과 비슷한 설정의 소설이 <포우>다) 헨드릭이 화자를 겁탈하지만(상상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백인들이 주인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망간다. 이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들은 합리주의에 앞서 선입견과 편견이 먼저 작용한다. 이성이 제대로 작용할 것 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위선으로 가득하다. 

아버지가 죽고 하인이 모두 떠난 후 홀로 남은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없다. 둘을 굴려 메시지를 쌓는 행동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 외로움이 앞에 나온 모든 현실과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신 분열의 증세가 보이는데 이것은 자신의 정확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것도 있다. 유령이니 마녀니 메마른 노처녀니 하는 단어들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젊음과 열정이 메말라 버린 그녀가 어떤 것을 할 수 있겠는가! 어렵고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역시 곱씹으면서 문장 너머를 상상하면서 읽는다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일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제대로 그 세계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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