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란 이름을 듣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게 된 것이 2~3년 정도다. 예전에 sf문학 관련된 해설에서 그의 희곡 에서 로봇(robot)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을 읽었지만 작품으로까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영미문학과 서유럽문학 중심이었기에 그런 것도 있고, 카렐 차페크가 어떤 인물인지 해설자조차도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문학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책들이 대부분 그런 종류고,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흘러가는 출판 현실에서 문학의 변방인 그를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헌책방에서 절판된 책을 찾아다닐 때 카렐 차페크의 철학 3부작 중 한두 권을 산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산 것은 아니다. 그 책을 사기 전 누군가가 아주 급박하게 구하는 글을 유심히 읽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놓친 걸작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 당시 나의 책에 대한 얕은 지식 때문에 놓친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절판 혹은 희귀판들이 싸게 또는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렸는데 그냥 지나갔다. 내 관심이 베스트셀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순간들이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책읽기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언제나처럼 신간을 훑어보다가 발견했다. 반가웠다.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덜컥 내손에 들어왔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산만한 편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랗고 푸르고 빨간 색지가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전에 헌책방에서 구한 철학소설이란 이름이 얼마 전에 읽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같이 힘겨운 책읽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먼저 읽고 미뤄 두었다. 그런데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예상보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었다. 재미와 속도감을 주지만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몰입도를 높여주고 진도가 잘 나가지만 이야기가 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도롱뇽의 관계 변화와 힘의 역학 관계를 우화적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그 당시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지 고민되었다. 뭐 이런 고민은 서평을 위한 것이지 책읽기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다. 서평이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판타지나 sf로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도롱뇽이란 존재 때문이다. 도롱뇽이 등장하는 첫 부분을 읽을 때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중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반 토흐 선장이 타나마사라는 섬 사람들의 공포를 무시하고 데블베이란 곳으로 가서 어둠속에서 도롱뇽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곧 반 토흐 선장이 이 도롱뇽이 지닌 사업성을 파악하고 G.H. 본디를 찾아가서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할 때 이전 세기의 노예무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도롱뇽이 지닌 경제성을 파악한 사람들의 행동에서 폭력과 약탈과 잔혹함 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시선에 담긴 마음과 행동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작가는 특별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 않는다. 중간 이후 도롱뇽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했던 포본드라 씨를 등장시켜 시대의 변화를 보여줄 뿐이다. 반 토흐 선장이 도롱뇽을 이용해 진주 캐기를 기획할 때만 해도 한편의 모험소설을 연상했지만 그의 출현은 거기까지다. 이후 놀라운 도롱뇽의 번식과 그들의 특수한 능력을 놓고 벌어지는 토론을 보면서 세계 시장을 보는 사업가의 시선을 경험한다. 도롱뇽이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에서 일상의 존재로 바뀌는 순간은 결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변화 속에서 작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각 나라가 도롱뇽을 이용해 군비확장을 꾀하는 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군비확장과 도롱뇽과의 전쟁 속에서도 작가가 은근히 주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이 도롱뇽들에게 무기 등을 제공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도롱뇽들에 의해 하나씩 대륙이 물에 잠길 때조차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데 이것은 지금에도 변함없는 현실이다.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포본드라 씨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롱뇽를 보는 관점이 변하는 장면들은 하나의 사물이나 사람이 그 한 시점만으로 평가할 때 어떤 문제나 의문이 생길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것은 역사가 하나의 시점이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아직 제대로 이 책을 소화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평생 두고두고 소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사와 세계를 보는 시각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체와 장르를 오가는 구성과 편집은 전혀 재미를 떨어트리지 않는다. 약간의 우려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포만감에 빠져 하나하나 소화시키기 바쁘다. 글을 거의 다 쓴 지금 다시 펼친 곳에서 읽을 당시 유심히 생각했던 몇 개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