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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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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매춘이 혁명적 행위라고? 인류 최초의 직업으로도 불리는 매춘을 혁명적 행위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그리젤리디스 레알, 직업은 창녀다. 또 다른 직업은 작가와 화가다. 이 세 직업은 그녀의 묘지에 적힌 것들이다. 그리고 그녀의 무덤은 놀랍게도 제네바의 왕립묘지에 신교개혁자 장 칼뱅과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그녀의 업적이 어느 정도기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이 부분은 작가 소개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떻게 그녀가 창녀가 되었는지, 창녀가 된 후의 삶은 어떤 것인지, 흑인에 대한 그녀의 예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사실 처음에 건조한 문체와 자유로운 구성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 적응하고 난 후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문체가 가끔 집중력을 깨트리기도 하지만 삶의 자유와 더불어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 삶이 아직도 윤리와 도덕이란 두툼한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나에게 버겁기만 하다. 

한때 결혼과 매춘의 차이가 무얼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런 고민은 내밀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느 부분에선 윤리와 도덕이란 허울이 더 강해지기도 했다.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그것도 잃지 않기 위해 보수적으로 조금씩 변한다. 이런 변화가 그녀의 행동과 삶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았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보여준다. 쾌락을 위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거나 마리화나를 파는 행위는 비록 과거의 흔적이라 하더라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대한 의지는 강한 인상을 남기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사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든 것은 섹스나 매춘이 아니다. 바로 자유다. 소설 중간에 그녀는 부자 인디언 흑인을 만나 삶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그 삶은 여자를 집에 가두어두고 가사 일에 전념하는 것을 넘어 억압하고 노예처럼 만드는 일이다. 그녀가 왜 그 남자의 아내가 도망쳤는지 깨달았다고 하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편안한 일을 위해 힘든 일을 포기하고 달아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매춘 등을 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이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매춘으로 발을 돌리게 될 때까지의 삶과 본격적으로 매춘을 할 때와 매춘과 마리화나 판매를 동시에 할 때다. 처음 하나의 직업으로 그녀가 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 다만 또 다른 삶의 한 면을 본다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했다. 그녀를 찾는 수많은 남자들의 성적 취향과 변명과 넋두리가 더 흥미로웠다. 욕구불만을 창녀를 통해 풀어내는 수많은 남자들의 행진은 지금도 변함없다. 특히 그녀가 그렇게 흑인 예찬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데 잠깐 잠깐 나오는 감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 또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이 소설에서 검정은 많은 뜻을 품고 있다. 먼저 그녀가 사랑했던 흑인의 색깔이다. 밀입국자로서 매춘녀로 살면서 그녀가 겪게 되는 삶의 어둠이기도 하다. 이것을 좀더 확대하면 매춘여성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 소설 속에서 그녀보다 더 자유로운 존재인 집시들의 어둡고 아픈 과거가 담겨 있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검은 색의 의미가 거의 모두 담겨 있을 것이다. 가볍게 읽기에, 매춘에 대한 흥미로 읽기에, 단순히 한 여성의 삶의 질곡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도덕과 윤리라는 두 시선을 벗어던져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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