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제로 - 하나된 세계를 향한 인간 운명의 논리
로버트 라이트 지음, 임지원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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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주장은 ‘진화에는 방향이 있다’ 단 한줄로 정리할 수 잇다. 생물이든 사회이든 문화이든 진화는 모두 방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진화에 방향이 있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많은 상관이 잇다.

원시, 야만, 미개.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면서도 그 의미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바르지 못한 것이(politically incorrect) 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어떤 사회는 높고 어떤 사회는 낮다고 서열을 매기는 것은 점점 불쾌하고 불미스럽게 여겨지게 되었다.”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기준이 잇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옳은 것인가? “인간의 문화가 특정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옳을 수 있는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문화상대론의 입장이다.

문화상대론이 대세가 된 것은 19세기 유럽인들이 진화란 말을 오용해 자신들의 우월감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부당한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당한 오용은 나치의 인종청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600만 유대인의 시체 앞에서 문화상대론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되었고 20세기 중반이 되면 문화의 진화라는 개념은 “거의 멸종 지경에 이른 생물의 신세가 되엇다.” 그러나 문화 또는 사회가 진화 또는 진보한다고 말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인가? 저자는 묻는다.

“마크 트웨인은 북미 서부에 살던 쇼숀 인디언을 가리켜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목격한 인종 가운데 가장 형편없는 인종’이라고 말햇다. 그들은 ‘촌락도 없고 엄밀한 의미에서 부족사회라고 할 만한 조직마저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형편없는 인종”이란 말은 정확한 말이엇다.

“미국 인디언 문화를 다룬 어떤 책은 쇼숀 인디언을 다룬 부분의 소제목을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최소한의 사회’라 달았다. 쇼숀 인디언들에게 사회조직의 안정적인 최대 단위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남성 가장은 ‘유일한 정치 조직이며 사법체계 전체’였다. 쇼숀 인디언들은 가족 단위로 수개월씩 가방 하나 짊어지고 땅 파는 막대 하나 손에 들고 나무뿌리나 씨앗을 찾아 사막을 헤매고 다녓다.”

쇼숀 인디언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른가? 저자의 질문이다. 저자의 답은 이책의 제목에 나와있다. “역사가 진보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넌제로섬 게임을 하게 된다. 상호의존은 점점 확대되고 사회의 복잡성 역시 더 큰 폭으로 더 깊이 증대되어 간다.” 저자가 이책에서 하려는 말의 전부이다.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변하며 그 복잡성은 더 많은 사람과 협력(넌제로섬 게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는 결과이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의 방향이란 복잡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역사를 볼 때 이는 법칙처럼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복잡성의 증가가 법칙처럼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유전자에 뿌리를 두고 잇다.

“자연선택은 ‘호혜적 이타주의’의 진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양한 종류의 충동을 심어놓았다. 관대함과 감사,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의무감, 보답하는 사람(친구)에 대한 신뢰와 공감. 그 충동은 언뜻 보기에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감상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상호이익을 도모하고려는 냉정하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설계되엇다.” 따뜻한 충동의 이유는 차가운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주면 돌려받지 못한다면 즉 호혜적이지(또는 공정하지) 못하다면 따뜻함은 차가움으로 돌변한다.

“이러한 사실은 일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실망스러운 것일 수도 잇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복잡한 사회구조를 짖한다면 이러한 특질은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 보답에 대한 인간 본성의 레이저처럼 정확한 초점은 문화 진화의 원동력이다. 본능적으로 깨우쳐진 이기심은 현대사회의 씨앗이라 할 수 잇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와 수렵채집 경제 간의 차이는 게임에 참여하는 손의 수, 그리고 그 손들의 상호의존성의 복잡하게 얽혀진 정도에 있다.”

물론 인간은 협력만 하지 않는다. 협력자도 얼마든지 경쟁자로 돌변한다. 협력은 공동체를 만든다. 그러나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공동체에는 누구에게나 돌아갈 수 없는 희소한 자원이 있다. ‘사회적 지위’이다. 사회적 지위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채택되고 칭송받을 만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성은 넌제로섬 게임이 아닌 제로섬 게임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천재라 불리던 사람들이 가장 창조적이엇을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라. 모두 결혼적령기인 20대 내지는 30대였다. 예술적, 지적 창조성이 꽃피는 이유는 성적 매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저자는 사회적 지위를 위한 경쟁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모순적이다.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것은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경쟁에서 성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새로운 넌제로섬 게임을 창조하는 기술을 발명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의 진화, 사회의 복잡성 증가의 이면에 인간 본성의 역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넌제로섬 게임과 제로섬 게임을 모두 벌인다. 이 두 힘 사이의 긴장은 많은 고통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엄청난 창조력을 낳았다.”

저자는 이런 모순을 칸트의 말을 빌려 ‘비사회적 사회성(unsocial sociability)’라 말한다. “명예, 권력, 부에 대한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료들 사이에서 지위를 추구하도록 몰아댄다. 그 동료들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존재이지만 또한 그들을 떠나는 것 역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러한 지위에 대한 추구를 통해서 미개 상태에서 문화에 이르는 첫걸음을 내딛으며 이는 인간의 사회적 가치에 내재되어 있다.” 칸트의 말이다.

“문화의 진화를 일으키는 추진력에는 바로 권력의 추구, 남들 앞에 뽑내고 으쓱대는 즐거움, 생존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에서부터 별로 쓸데없는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물질적 대상에 대한 갈망 등도 포함된다.” 전통적 이론은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고도화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과 협력이 가능해진다는 말이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모여도 될만큼 ‘잉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잉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960년 인류학자인 로버트 카네이로는 아마존 정글에 사는 쿠이쿠루족에 대한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햇다. 그들은 아마존 정글에 살면서 주식이자 타피오카 전분의 원료인 마니오크를 재배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생산량을 두배나 세배쯤 증가시킬 수잇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여가 시간을 선택햇다. 그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대성당을 설계한다든지 그밖의 일반적으로 그들이 사는 사는 터를 개선하는데 쓰는 법이 거의 없엇다.”

잉여를 만들 수 잇는 환경이 주어진다해도 잉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잉여는 어디서 온것인가? 저자는 인구밀도라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값싼 운송수단과 값싼 통신수단이다. 정보와 유통비용이 작을수록 보이지 않는 손은 매끄럽고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러한 비용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넌제로섬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얻는 파이는 더 커진다. 또한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수록 인구대비 교환망의 생산성은 더 높아진다. “ 비용을 낮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객과 공급자를 모두 곁에 두도록 가깝게 밀집해” 사는 것이다. “천하태평하게 보였던 마니오크 재배자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야심이 아니라 인구밀도엿을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 국한된 것과 다른 수공예품이나 자연자원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면 마니오크 농부들은 그와 같은 물건과 바꾸기 위해 마니오크 생산량을 늘렸을 rrejt이. 나중에 유럽인들이 멋지고 신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와 거래를 시도하자 그들의 마니오크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햇다”

“인구규모가 더 크고 밀도가 더 높을수록 더욱 진보한 기술과 더욱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게 되리라고 즉 인구규모 및 밀도와 기술 및 사회의 복잡성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숭 있다.” 전통적으로 가정했던 것처럼 잉여가 먼저 있고 그 잉여를 교환하는 시장이 있고 잉여가 부양하는 사회가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먼저 있고 사회가 먼저 있은 후 잉여가 만들어졋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잉여를 사람들이 어떻게 거래했는가이다. 시장에서 거래된, 사람들이 원한 물건” 중 상당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심지어 5만년도 더 전인 중기 구석기 시대에도 사람들은 물감의 원료인 쓰인황토나 황철광 결정 등에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중석기 시대에는 보석과 같은 ‘사치품’ 총생산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햇다. 이와 같은 지위 상징물을 얻는데 엄청난 노력이 투입되었다. 이러한 물건들은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넘어 거래되었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지게 한 “원동력은 바로 지위 경쟁이 부추긴 인간의 허영심이엇다.”

생각을 자극하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는 협력과 (이기적인) 경쟁의 긴장이라 말한다. 역사는 단순한 수렵채집 사회에서 조직화된 마을로 그리고 국가와 초국적기업으로 사회의 복잡성을 높여왔다. 그것은 점점 더 큰 규모로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더 복잡하고 수익성 잇는 넌제로섬 게임을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결과라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그 넌제로섬 게임은 제로섬 게임과의 긴장에서만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잇기에 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을 위해 협력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혁신을 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협력하게 만드는 경쟁이다.

그런 긴장은 집단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 집단간에도 있다고 그리고 그 집단간 긴장은 집단내 긴장보다 더 강력한 진화의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촌락의 남자들이 다른 촌락을 습격해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납치한다면 대기는 온통 제로섬 원리로 가득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란 제로섬 게임은 넌제로섬 게임을 낳는다. “도끼를 휘두르는 살기등등한 자들이 당신의 촌락을 포위하면 당신과 이웃의 관계는 즉각 넌제로섬 원리를 향해 선회하게 된다. 전쟁은 각 집단 내부 사람들 사이의 운명의 공유 정도를 높임으로써 넌제로섬 원리를 빚어내고 그것은 문화의 진화를 더욱 심원하고 광대한 사회적 복잡성을 향해 나가도록 촉진한다.” 더나아가 전쟁이란 제로섬 게임은 집단의 경계를 넘어 넌제로섬 게임이 확장되도록 한다. “공격을 막아내거나 공격을 도모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촌락과 동맹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어느 한쪽에서 이러한 동맹을 맺게 되면 그 적 역시 동맹을 찾아나설 동기가 충분해진다. 이런 식으로 경쟁적으로 동맹의 수를 늘리다 보면 사회적 그물망이 밖으로 확산되면서 점점 더 많은 촌락들을 그 망안으로 엮어들이는 조직화의 ‘군비경쟁’이 벌어진다.”

전쟁은 집단의 합병과 더 큰 규모의 정치적 조직화의 방향을 설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강렬하고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전쟁이 넌제로섬 게임을 창조한 것이다.”

협력을 위해 집단을 만들지만 그 집단 안의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협력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집단간의 전쟁이란 경쟁은 집단간의 협력을 강화한다. “이러한 작용은 문화의 진화 사다리의 위쪽으로 점점 올라가게 된다. 사회조직의 균열(가족이나 촌락이나 추장사회나 국가들 사이의 마찰이 일어나는 제로섬 영역)은 점점 넌제로선 원리라는 시멘트로 채워진다. 제로섬 원리는 아래서부터 차오르는 시멘트에 의해 점점 더 조직화되어 사다리의 위쪽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낮은 수준에서는 여전히 역설적이게도 사회를 통합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칸트가 강조한 ‘비사회적 사회성’으로 귀결된다. ‘사회성’의 영역(평화가 지배하는 지리적 범위)은 수렵채집사회 이후로 엄청나게 증가해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정도의 비사회성을 굴복시켜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사회성의 굴복을 촉진한 것은 얄굿게도 대다수의 경우가 더 높은 수준의 비사회성에 의한 것이엇다. 이러한 문화진화의 동력을 다윈의 말로 하자면 ‘선택되는’ 것은 점점 확산되는 넌제로섬 원리이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주체는 대개 전쟁의 제로섬 속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결국 전쟁을 도모하는 것은 평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농업 역시 저자는 그런 협력과 경쟁의 상호작용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업은 야생에서자란 것을 주어모으는 것보다 비용대비이익이 부족하다. 수렵채집으로 1주일 먹거리를 마련하는데는 몇시간의 노동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왜 농업이 태어난 것일까? 우선 사회적 지위 추구를 말할 수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원시농업사회에 진입한 수렵채집사회에서 경작된 야생 식물들은 대개 공동체 전체의 소유가 아니었다. 특정집안이나 한 가문이 그 식물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거기서 얻어지는 산물을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당연히 그 집안 또는 가문의 지위는 높아진다. 오늘날에도 “교외 주택가나 작은 촌락에서 열성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이웃들에게 신선한 토마토나 꽃을 나누어줌으로써 동네에서 신망을 얻게된다.” 그리고 재배한 작물은 ‘진귀한 구리 방패와 교환될 수도 있었다. 농사는 가족 수준의 집단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사적 사업이다. 갓 결혼한 젊은 야노마모족 남성이 작품을 심기 위해 밭을 갈고 잇다면 그는 촌락 전체의 이익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종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 식량을 둘러싸고 벌어진 군비경쟁이 농업 발달을 일궈낸 것이다.”

그리고 농업은 비유적으로 뿐 아니라 말 그대로 군비경쟁의 일부였다 “원시 시대의 전쟁에서 순수한 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농업은 수렵채집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거주지를 지탱해줄 수 있었다. 두 촌락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농업이 거부할 수 없을만큼 유혹적인 삶의 방식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농업이란 “사회집단 안에서 지위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 사회집단 사이의 무력 투쟁, 빈곤에 대항한 투쟁” 이 세가지로 설명된다고 말한다.

농업은 잉여를 만들고 그 잉여는 추장이나 왕, 귀족과 같은 무임승차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부 좌파적 관점에서 말하듯 그런 무임승차가 무임승차만은 아니다. “추장사회의 착취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화폐가 없는 경제체제에서 사회가 돌아가도록 돌보는 다시 말해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는 데 따르는 추장들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추장들의 자원 제한에 있어써 흔히 발견되는 전술은 ‘물에 대한 지배’를 ‘사람에 대한 지배’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교과서는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 경에 이 설명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 댐을 건설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댐에 저장한 물을 댈 수잇는 땅을 나눠준 하와이 주창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단 그는 댐이 만들어지도록 할 수 잇었다. 그 다음 그는 넌제로섬 이익을 얻는 길에 도사리는 장애물, 바로 무임승자자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잇었다.” 물론 추장이란 존재 자체가 “어느 정도 착취를 부추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공복지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재부분시스템의 살아있는 문맥 안에서 볼 때 (거대한) 무덤 거석, 사원 등은 기능적 요소로 나타나며 농업 생산에 대한 의식의 상화에 따라 증가되는 수확에 비해 그 비용은 미미하다.” 추장사회에서 국가까지 이어진 정치시스템의 진화는 더 큰 규모의 협력이 진화해간 역사이다.

여기서 저자는 밈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 사회의 진화는 교역, 농업, 전쟁, 정치 등의 밈을 낳는 진화이며 밈을 통한 진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의 원래 주장과 달리 저자는 넌제로섬 게임이 만든 인간의 뇌보다 인간의 네트웤이 이루어 만드는 더 거대한 뇌(저자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뇌라 말한다), 즉 인간집단을 밈의 운반자로 본다.

“문화의 진화는 단순히 밈들이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저 사람의 머릿속으로 폴짝폭짝 건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임들은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건너 뛰어다닌다. 추장사회들은 서로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가장 도움이 도는 문화가 우세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밈은 자연선택에 의해 성공자의 밈으로 교체된다. 이처럼 혹독한 문화적 선택의 시험을 통과하여 살아남고 그 결과 전체 사회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기여해온 밈들이 많은 경우에 넌제로섬 사호작용을 촉진한다는 것이 바로 이책의 전제이다.” 그러므로 밈을 바이러스와 비교하는 것은 그리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라 저자는 말한다. 나쁜 밈은 집단의 경쟁에 의해 도태되기 때문이다.

문자와 화폐는 그런 밈의 또 다른 예라 저자는 말한다. 문자와 화폐는 정보비용과 교통비용을 확기적으로 낮추어 보이지 않는 손을 더 활발하게 만들었다. 농업과 추장, 국가 등의 밈이 독자적으로 여기저기서 발명되었듯이 문자와 화폐 역시 독자적으로 여러 번 발명된 것을 저자는 진화의 방향성을 증명하는 좋은 예라 말한다.

문자는 정보비용을 낮추어 집단을 더 쉽게 단결하게 하고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을 더 쉽게 뭉치게 한다. 과거 귀족계급이 강력한 힘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문자를 독점했고 그 문자를 통해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자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후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민주화가 일어난 것 역시 같은 논리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문자와 돈과 정보기술은 “사회 안의 권력을 재분배한다.”

돈이 왜 정보기술의 혁신인지 집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돈은 개인이 과거에 수행한 노동과 그 노동에 대해 사회가 평가하는 가치를 기록한다. 한편 우리가 돈을 쓸 때 그 행위는 일종의 신호가 된다.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혹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해주고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그 정보를 당신으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잇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돈은 억압에 대한 해법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돈은 읽고 쓸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배받는 중앙통제경제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준 셈이다. 만일 어떤 경제적 정보기6nf을 당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 자신이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노예제도, 인간의 희생. 적당한 형태의 착취 등은 오랜 시간을 거쳐 차츰 사라져갔다. 오늘날 문명은 고대의 문명보다 더욱 ‘문명화’되었다. 그리고 그 주요원인은 돈과 문자가 오랜 시간 동안 진화되어온 방식과 그 둘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있다.”

밈의 진화에 비하면 어떤 국가, 제국, 문명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케네스 클라크는 1969년 BBC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지침서 ‘문명’의 한 장에서 ‘구사일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책의 전제는 서구 문명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중세 초기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는 계속해서 관심을 끌어온 주제이다. 토머스 카힐의 베스트셀러 ‘아일랜드인들이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라는 책에서도 부각되엇다. 카힐은 아일랜드의 필사자들에게 특별한 상찬을 보냈다. 중세 초기는 그 당시로 돌아가보면 희미하고 어두컴컴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것이라 말한다. “설사 수도승들이 없었다하더라도 유럽은 결국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으로 다시 도약했을 것이다. 중세 말기 서양문명이 다시 소생한 것이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힌 것임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밈을 주목하라’이다. 문화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펄쩍펄쩍뛰어다니며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를 남기지만 자기 자신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미개인이 로마를 휩쓸어비리기 훨씬 점부터 로마제국의 중심은 공식적으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졋다. 그곳 비잔틴의 동로마제국에서는 고전문화의 상당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유럽의 암흑기가 다 지나갈 때까지.”

더군다나 “문화적 자산, 이 귀중한 밈의 축적물은 ‘고전적 유산’과 별 관계가 없다. 밈을 내포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기술은 소포클레스의 작품들보다 훨씬 지속력이 강하다.(소포클레스의 희곡은 대부분 사라졋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잇다. 문학은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식탁 위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안티고네의 사본은 문맹수준을 넘어선 농부들 사이에서도 별 수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쇠 말발굽은 세계 공용의 언어인 유용성으로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아이디어가 더 유용할수록 널리 퍼져나가고 재탄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용한 아이디어의 확산이 세계의 인구를 증가시키고 더 향상된 통신과 교통에 의해 지적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킴에 따라 이러한 가능성이 더 커지고 그 결과 마침내 확실성에 가깝게 된다. 사회는 점점 더 크고 조밀한 뇌를 닮아가고 이 뇌의 뉴런들은 점덤 늘어나는 혁신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산시켜 또 다른 새로운 혁신에 박차를 가한다.

이 거대한 뇌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다문화성이다. 어느 한 문화가 혼자 책임지고 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650년 무렵 이탈리아나 프랑스를 관찰한 사람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전면적 시스템 장애’라 부를만한 상태였다. 마치 전 세계의 하드드라이브에 충돌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관점에서는 긴급 상황이 아니엇다. 세계는 백업 카피를 만들어두기 때문이다. 쓸모 잇는 밈은 스스로를 무더기로 복제해 국지적 충돌에 대비한다.

더 넓은 범위의 문화 진화 즉 사회적 복잡도와 넌제로섬 원리의 정도와 범위가 증대되는 것 역시 멈추기 어렵다. 이와 같은 사회의 진화가 의존하는 것은 문학이나 철학이나 예술의 특정 작품의 우연한 보존이 아니라 기술 진화라 볼 수 잇을 것이다. 전형적으로 서양적인 특징들 이를 테면 수세기에 걸친 농노제도의 뒤를 이어 활짝 핀 개인의 자유와 같은 것도 본질적으로 기술의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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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기원 - 최첨단 경제학과 과학이론이 밝혀낸 부의 원천과 진화
에릭 바인하커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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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에게 정말 충격을 준 것은 경제학이 또 다른 시대로 후퇴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산타페 연구소의) 미팅에 참가한 한 사람은 나중에 그날 미팅에서 경제학을 접하고 보니 자기가 최근 쿠바를 여행햇던 기억이 다시 생각나더라고 논평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로 거의 50년 넘게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다. 거리는 이미 퇴출된 자동차 브랜드인 1950년대의 패커드와 데소토로 꽉 차있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 여기저기서 수집한 폐품들과 소련제 트랙터의 끄트러기나 잡동사니들을 가지고 이런 자동차들이 계속 굴러다니게 해온 쿠바 사람들의 독창성에 놀랐는게 얘기의 골자엿다. 한마디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이 물리학자에게는 바로 쿠바 자동차와 유사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의 눈에 경제학은 지난 수십년동안 과학적 진보와의 접촉 없이 그 자신의 지적 봉쇄에 갇힌 채 독창적으로 이론을 수정, 확장, 갱신하면서 굴러온 것처럼 보였다.”

물리학자들이 놀란 것은 자신들은 이미 예전에 폐기처분한 19세기 뉴튼역학이란 유령이 경제학의 패러다임에선 신주단지로 모셔진다는 것이었다. 뉴튼역학이 폐기된 것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반균형이란 개념이 문제엿다.

“19세기 후반 이후 경제학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은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 특히 정지 상태의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경제학자들이 영감을 얻은 곳은 물리학이었다. 그중에서도 운동과 에너지의 물리학이다. 전통적 경제이론에서는 경제를 큰 사발 그릇 멭에서 굴러다니는 고무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공은 사발 밑바닥에 멈추면서 정지 내지 균형 상태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어떤 외부적인 힘으로 사발이 흔들리거나 기울어지는 경우 혹은 충격을 받는 경우 공은 새로운 균형점으로 이동하겠지만 그전까지는 그 상태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는 사발 안의 공과 같은 균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균형을 가정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시장의 공급과 수요는 균형상태이다. 수급불균형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균형은 사발 안의 공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사발 안의 균형을 복원력을 갖기 때문에 그 힘이 소진되면 언제나 균형은 회복된다.

그러나 “현실 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같아지는 상황에 결코 있지 않으며 시장은 거의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 실제로 많은 시장들은 균형보다는 불균형이란 가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대부분의 시장을 보면 재고, 주문잔고, 여유생산능력, 그리고 이런 불균형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중개자들이 존재한다. 당신이 살고 잇는 지역의 자동차 딜러는 천천히 팔리는 차들로 가득찬 주차장을 갖고 있고 소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인기 차종에 대해서는 주문 잔고를 갖고 잇다. 당신 지역의 슈퍼마켓은 거의 균형상태에 있지 않다. 가게 뒷문으로 수송되어 오는 식료품 공급과 가게 앞문에서 빠져나가는 수요 사이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가게의 재고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사장에 가장 가까운 시장으로 볼 수 잇는 금융시장조차 불가피학5ㅔ 공급과 수요 간 불균형을 다루는 메커니즘을 갖고 잇다. 뉴욕증권거래소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나스닥에는 시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잇는데 이들 모두 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경기변동은 그런 시스템 내재적인 불균형 때문에 일어난다(경기변동에 관해선 라스 트비드, ‘비즈니스 사이클’이 좋은 시작이다). 키친 사이클이니 쿠즈네츠 사이클, 콘트라디에프 사이클 등 경제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사이클이 그렇다. 경제학자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스템의 상태를 정적인 균형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경제학의 패러다임에선 그런 사실을 포함할 수 없다.

“균형을 위해 지불한 또 다른 대가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이다.” 뉴튼역학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사발의 공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가역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흐르므로 가역적 균형을 가정하는 뉴튼역학은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뉴튼역학의 균형을 받아들인 “전통 경제 모델은 실제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현실 세계의 경제현상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한 변수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수송하고 팔고 정보를 얻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요점은 우리가 이런 시간척도를 모른다면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이야기할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복잡한 동적인 측면과 현실 세계의 시간 척도를 전통 경제학의 균형 개념과 결합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포함할 수 없으니 경제학은 왜 변화가 있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변화는 현실이니 설명은 해야 한다. 그 결과 변화를 경제학 밖으로 밀어내고 외생변수라는 말로 처리해버린다. 사발 안의 공이 움직이는 이유처럼 말이다. “가장 흥미로운 궁금증들을 경제학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버렷다. 기술 변화를 돌발적인 외부의 힘(기후처럼)으로 취급하면 기술 변화와 경제 변화같은 상호 작용에 관한 근본적인 이론은 필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경기 사이클도 외부의 힘, 예컨대 소비자 신뢰의 변화라든지 뉴스에 따른 주식시장의 추락 등 같은 신비로운 바깥의 힘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문제는 경제학의 범위만이 아니다. 한 세기가 넘는 동안 경제학은 “비현실적 가정에서 출발해 수학적 불가피성에 따라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가정이 비현실적이기에 그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었고 문제의 답도 잘못될 수 밖에 없었다. Garbage in garbage out.

산타페 연구소의 미팅에서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충격을 받앗다. 가정에 대한 테스트는 현실과 부합하느냐가 아니라 이 가정이 이 분야의 공통적인 흐름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필 앤더슨이 ‘경제학자들 당신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궁지에 몰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햇다. ‘이런 가정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가 잇다. 만약 당신이 이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햇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당신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바보가 아니니(오히려 ‘지나치게’ 똑똑하다) 그 비현실성을 모를 수 없고 현실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모델의 근본에 있는 균형이란 개념이 경제와는 무관한 것이기에 균형이란 개념을 버리기 전엔 어떤 시도도 쓸모가 없어진다.

균형이란 개념에 현실이 맞아들어가지 않으니 현실을 개념에 맞게 조작해야 햇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균형이라는 박스 안에 집어 넣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증거없는 전제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는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정말 단순한 사람들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텐데도 경제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 너무나 머리 좋은 사람들’로 모델화”되었다. 현실을 모델에 맞추려니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듯 모든 정보를 알고 잇고 비현실적으로 이기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필요햇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에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의 관심은 그런 균형상태와는 거리가 먼 역동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단 한번도 정지 상태에 접어들지 않는 시스템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이런 형태의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뉴튼역학의 시스템은 닫힌 계이다. “닫힌 계는 어떤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이나 소통이 없는 시스템이다. 닫힌 계에서는 어떤 에너지, 물질 또는 정보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닫힌 계다.” 에너지의 유출입이 없으니 시스템 내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열역학 제1법칙).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닫힌 계에서 총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면서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질서가 무질서로 바뀌어 가면서 궁극적으로 시스템이 정치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 뉴튼역학의 균형이란 엔트로피가 최고가 되어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경제가 그런 상태라 말한다.

그러나 “닫힌 균형 시스템에서는 순간적으로 자기조직화를 하는 일도 없고 패턴이나 구조, 복잡성이 발생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새로움이란 게 창조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창 밖에 있는 경제의 모든 움직임 예컨데 그 시끄러움, 조직, 그리고 활동은 단힌 균형 시스템의 산물일 수 없다.”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불균형 시스템이다.” 저자는 균형과 달리 경제를 열린 시스템이라 분류하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말한다.

“사회 시스템은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들로 이루어진 현실적인 물리적 시스템이다. 물리적 경제는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엄청난 에너지를 매일 그 속에 쏟아붓고 있다. 이 덕분에 경제가 작동한다. 에너지는 경제에 들어와 엔트로피에 대항할 힘을 주고 질서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제2법칙에 순응한다. 쓰레기, 오염, 온실가스, 그리고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등 둘러싸고 있는 우주로 무질서를 다시 돌려보낸다.

경제는 단순히 은유적으로 열린 계와 비슷한게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열린 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에 속하는 시스템이다. 누가 경제에 공급될 에너지를 끊어버리면 다시 말해 음식물, 석유, 가스 등을 끊어버리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저항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경제는 정말로 균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나라가 콩고에서처럼 전쟁으로 박살이 났을 때나 북한에서처럼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고립될 때 이런 상황을 본다.”

사회 시스템이, 경제가 열린 시스템이란 말은 복잡계란 뜻이다(복잡계에 대해선 다른 리뷰(http://blog.naver.com/qrat/20119554674 )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선 생략한다. 더 자세한 것을 원한다면 이책 자체나 SERI에서 나온 ‘복잡계 개론’ 또는 뷰캐넌의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를 추천한다)

저자는 복잡계의 이미지는 이렇게 그린다. “고립되어 존재하는 물 분자는 좀 지루하다 그러나 수십억 개의 물 분자를 모아 놓고 에너지를 가하면 소용돌이 같은 복잡한 거시적 패천이 나타난다. 이런 형태의 소용돌이는 개별 물 분자들 간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다 하나의 물 분자로는 이런 소용돌이를 만들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물 소용돌이는 시스템 그 자체의 집단적인 또는 창발적인(emergent) 특성이다.”

물분자의 상호작용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듯이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경제와 같은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단순히 열린 시스템으로 보는 것만으로 전통 경제학의 거추장스러운 가정들 없이 경제를 설명할 수있고 현실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그 예로 슈거스케이프(간단한 요약은 http://en.wikipedia.org/wiki/Sugarscape 참조)를 든다. “전통적인 미시경제학 모델은 소비자, 생산자, 기술,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거시경제학 모델 역시 화폐, 노동시장, 자본시장,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 모델은 그런 것들을 가정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조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모델링해 경제질서가 어떻게 창발(emerge)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모델의 목적이다.

슈거스케이프 모델은 행위자와 환경(2차원 그리드) 그리고 행위자와 환경, 행위자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간단한 규칙으로 구성된다. 전형적인 슈거스케이프 모델에서 행위자는 그리드의 셀을 돌아다니며 설탕(또는 향료가 더해지기도 한다)을 찾고 먹는다. 시나리오에 따라 규칙을 확장하면 설탕(또는 향료)를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 대여, 거래, 상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모델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만으로도 80:20으로 알려진 파레토 법칙 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물론 거래 네트웤의 허브(현실에선 도시에 해당하는)의 출현, 은행의 등장 등을 관찰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모델 자체에서 그리고 수요공급곡선에 따른 가격결정도 나타난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 경제가 순간적으로 근사한 X자 모양의 수요공급곡선을 만들어냈지만 거래가 이루어진 실제의 가격과 수량은 결코 이론적으로 예측된 균형점이 아니었다. 슈거스케이프에서 가격은 어떤 끌어당기는 것, 즉 인력체 주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실제로 균형에 안착하는 일은 결코 없다.” 현실에서 가격이 균형에 있지 않듯 슈거스케이프 역시 그러했다. 이 모델에서 균형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따라 일이 전개되고 또 거래 상대방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경제학이 말하는 일물일가 법칙이 나타나지 않고 같은 물건에도 다양한 가격이 매겨지고 그 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장을 그냥 가정하는 전통경제학과 달리 슈거스케이프는 현실의 사회를 시뮬레이트하기 위한 간단한 규칙만 가정하고 그 규칙에 따른 상호작용에 따라 물분자들이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듯 실제 경제 시스템이 창발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델은 전통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요소들 중 많은 것을 재생해 보였다. 비현실적인 가정들의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모델을 통해 이런 고전적인 결과들을 보여 주었다. 행위자들은 초인적인 합리성이라는 힘을 가진 존재라 가정하지 않았다. 미리 존재하는 사회적 또는 경제적 구조를 가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발생한다는 점도 가정하지 않았다. 슈거스케이프는 저자가 경제학에 대한 진실로 새로운 접근이라 믿는 것과 관련하여 하나의 예증을 제시해준다.”

그러려면 먼저 경제현실에 대한 가정을 구성해야 한다. 저자의 방법은 균형이란 개념에 현실을 맞추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가 무엇인가란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창발된 시스템 아래의 행위자부터 이해해야 한다. 행위자의 상호작용이 네트웤을 만들고 그 네트웤이 시스템으로 창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행위자 모델링에서부터 시작한다(행동경제학에 대해선 여러 리뷰에서 다루었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복잡계 경제학은 아직 초보단계일 뿐이기에 복잡계 경제학을 구축하는 작업은 기존 이론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전통 경제학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복잡계 이론, 네트웤 이론에 대해서도 행동경제학에 대해서도 교과서 쓰듯이 자세히 다루는 이유이다. 실제 이책에 인용되는 연구사례들은 다른 개괄서에도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리뷰에서 그것을 요약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리뷰에선 저자가 그리는 복잡계 경제학 논리의 아웃라인만 잡아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행위자들이 상호작용으로 만드는 네트웤을 설명한다. 네트웤 수준에서 경제현상을 보았으면 이제 경기사이클과 같은 현상이 어떻게 창발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예를 들어 저자는 자주 인용되는 ‘맥주 게임’의 예를 들고 이 게임의 논리, 재고 사이클이 실제 어떻게 현실경제에서 경기 사이클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그리는 논리의 아웃라인은 슈거스케이프에서처럼 전통적 경제학에서 미시와 거시 사이의 거대한 심연을 건너뛰어 경제를 하나의 전체로 행위자부터 시스템 수준의 거시현상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리려 한다. “그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론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 그 희미한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됐다.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진화 시스템이다. “’그건 정글이야’, ‘적자생존이다’ 경제를 말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태계와 진화의 이미지를 곧잘 사용한다. 복잡계 경제학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나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 시장, 경제는 생태 시스템과 단순히 비슷한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진화 시스템들이라는 그런 의미다.”

경제를 복잡계로 그리고 진화 시스템으로 본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경제가 진화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진화라는 “전쟁 밑바닥에 흐르는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좋은 복제자가 복제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가장 적합한 자(the fittest)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선택되는 자가 누구냐이다.

“도킨스는 ‘복제자’와 ‘운반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햇다. 스스로를 복사하는 것이라면 뭐든 복제자라 부를 수 있다. 한편 운반자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개체를 말한다. 운반자는 내부에 복제자를 품고 보호한다. 최초의 복제자는 원시수프에 들어있던 단순한 자기복제 분자였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복제자는 DNA다. DNA의 운반자는 생물체이거나 생물체의 집단이고 그들은 바다나 하늘이나 숲이나 평지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상호작용한다." (수전 블랙모어)

진화론의 단위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물체가 아니다. 운반체인 생물체가 품고 있는 DNA 분자가 진화의 주체이며 진화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진화의 논리로 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대니얼 데닛은 가능한 모든 DNA 생명체들의 디자인 공간을 가리켜 ‘멘델의 도서관’이라 부른다. 여기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은 시시한 것들이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기껐해야 처음부터 실패작인 돌연변이체를 생산하는, 한마디로 유전자로서는 별 볼일 없다는 얘기다.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보다 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대한 디자인 공간의 규모와 비교하면 극히 드물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진화란 정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라 말한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디자인 공간에서 효과가 잇는 디자인을 골라내는 ‘공식’이란 말이다.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지식을 축적해가는 하나의 학습 알고리즘이다. 진화는 자연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주는 공식이다. 알고지름은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 매우 광활한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내생적인 진화에서 어떤 디자인들이 살아남아 환경의 제약 하에서 복제를 해나간다면 그것들은 적합한 디지안이다.(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

멘델의 도서관과 같은 디자인 공간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진화의 알고리즘이 존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사업 계획서가 그 좋은 예가 된다고 말한다.

"Ecologists assume that organizationl populations can be identified that have 'unit character', responding in similar ways to environmental forces. Populations are dependent upon distinct combinations of resources-called 'niches'- supporting them. Brcause they compete for resources within the same environment, organizations in a population are in a state of competitive interdependence. Competition pushes organizations toward adopting similar forms, resulting in greater homogeneity or specialization of fomrs within different niches. Organzaitons, in a sense, find niches to protect themselves against competition. Organizations often make common cause with one another as they compete with other organizations and populations, thus creating a mutualistic state of cooperative relations. Competitive and cooperative interdependencies jointly affect organizational surivival and prosperity, resulting in a distribution of organizational forms adopted to a particular environmental configurations" (Aldrich)

Population ecology(간단한 요약은 http://en.wikipedia.org/wiki/Organizational_ecology 를 참조)라 불리는 학파에 대한 요약이다. 여기서 organizational forms, 저자의 말로는 사업계획서는 DNA와 별 다를 것이 없다. DNA가 진화의 대상이라면 사업계획서 역시 진화의 대상이다. 진화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알고리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의 진화는 하나의 단일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서의) 3개의 다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진화의 결과이다. 사업계획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혼합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모델은 경제의 진화를 물리적 기술 공간, 사회적 기술 공간, 사업 계획 공간이라는 이 세 공간에서의 합동적인 진화의 산물로 볻다. 세 공간은 별개의 개념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진화는 것으로 생각할 수있다. 각 공간마다 진화가 작동한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적합 디자인을 찾아내 증폭시키는 한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은 도태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기술, 사회, 경제 세계의 질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를 진화 시스템으로 본다면 시장은 사업계획이 선택되는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 “시장을 진화를 위한 탐색 메커니즘이라 해석할 수 잇다. 시장은 사회구성원의 고아범위한 수요를 반영하는 적합도 함수와 선택과정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시장은 선택5된 사업계획으로 자원을 몰아주어 승자는 더욱 번성하게 하고 패자는 도태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장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진화는 당신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통치자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지적이고 자비롭다 해도 경제적인 적합도 지형에서 적합도가 가장 높은 정점을 찾아가는데는 진화의 알고리즘을 당할 수없다. 시장이 명령, 통제보다 우월한 것은 시장이 균형 상태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불균형 상태에서 혁신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시장은 역사적으로 혁신 제조기였다. 대부분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혁신은 시장경제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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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연.홍지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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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 가만큼 런던의 화려함이 잘 드러나는 곳은 없다. 고급 보석상인 그라프의 특대형 다이아몬드, 파텍 필립의 명품 시계, 샤넬 정장, 루부탱 신발, 그리고 소더비 경매품 등 고가의 물품들을 가득 채워놓고 파는 이곳 상점들은 런던의 과거를 우아하게 재연해 놓았다.

본드 가는 세계의 위대한 도시 유원지 중 한 곳으로 보고 사고 맛보고 배울 것으로 가득 찬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면 본드 가 오른쪽에 있는 고급 호텔 클라리지에 머물면서 아르 데코 미술품을 감상하고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세계적 요리사 고든 램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런던에서는 이 외에 더 고매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린니언 학회, 왕립천문학회, 왕립예술아카데미 등 런던의 지적인 장식품이라 할 수 있는 건물들은 벌링턴 아케이드 바로 옆에 있는 멋진 팔라디오풍 맨션 내에 있다. 런던 택시를 타고 몇분만 가면 웨스트엔드 극장 공연이나 내셔널 갤러리에 보관된 보물들을 볼 수 있다. “런던이 싫증 난 사람은 인생이 싫증 난 사람이다. 런던에는 인생이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 했던 사무엘 존슨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도시의 고용은 도시의 성공을 결정한다. 인재는 계속 이동하면서 생산하고 소비하기에 좋은 장소들을 물색한다. 런던의 오락 시설들은 런던이 32명의 억만장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런던에 사는 이런 엄청난 부자들 중 절반은 영국인이 아니다.

런던과 뉴욕, 파리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즐거운 도시로 변한 한 가지 이유는 이들 도시에 수세기에 걸쳐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박물관,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도시를 근면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인간의 창의성을 극대화시켜 주는 도시의 능력으로부터도 혜택을 받는다. 도시의 혁신이란 단순히 새로운 유형의 공장이나 금융상품뿐 아리나 새로운 요리와 놀이도 의미한다.

도시가 왜 성공하는지 그리고 도시가 미래에도 계속해서 번성할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생활 편의 시설들이 어떤 작용을 하고 소비 도시들이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에드워드 글래이저)

그리고 이책은 소비도시로서 뉴욕이 어떻게 성공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책의 내용을 한줄로 말한다면 ‘보고 사고 맛본다’ 이다. 이책은 뉴욕에서 무엇을 어디에서 사고 먹고 보는가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보다보면 왜 뉴욕이 정상의 글로벌 시티로 군림하는가를 알 수 있다. 런던이 싫증 날 수 없는 것처럼 뉴욕 역시 싫증 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리첼: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프리챌은 대표적인 거리 음식이기도 하다. 얇고 가늘게만 반죽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튀겨낸 후, 소금을 뿌려 머스터드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정석. 하지만 벤더에서 파는 것은 맛이 없으니 가게에서 갓 구워낸 것을 꼭 구입하자.”

“예쁜 조카에게 줄 양말과 모자 세트”

“유니언 스퀘어에서 M14D 버스를 타면 첼시 마켓 근처로 갈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첼시의 명물이자 까다로운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는 유명 브랜드들이 모여 있어 한자리에서 뉴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책의 용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욕 같은 소비도시의 관광은 결국 쇼핑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편들과 마찬가지로 이책 역시 입국절차, 준비물, 교통편, 예산짜기, 추천코스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발리나 푸켓 같은 관광만을 위한 관광지와 달리 뉴욕과 같은 글로벌 시티의 안내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비즈니스 같은 목적성 방문이 아닌 한 뉴욕에서 보내는 시간은 쇼핑하고 먹고 자는, 돈 쓰는 일이 대부분일 수 밖에 없고 이책은 돈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수 있는가를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물론 이책은 돈 쓰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장소들과 문화들에 대한 소개도 나름 충실하다. 이책의 4/5는 장소에 대한 소개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소개도 2페이지에 4곳씩 명소, 음식, 쇼핑의 순서로 소개된 것을 보면 이책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용도가 ‘쇼핑 뉴욕’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책을 택한 것은 관광 가이드북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뉴욕에 대한 지도가 필요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다 그렇듯이 관광가이드만으로 용도가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책의 대부분은 장소에 대한 소개이다. 자동차가 없으면 시민권이 없다고 봐야 하는 LA와 달리 걸어다니는 것이 정상인 뉴욕이기에 이책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걸어다니면서 관광할 것이라 가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구성은 지도에 따라 보행자의 동선을 고려해 장소들을 소개한다. 책을 읽다보면 뉴욕 구석구석의 분위기를 알기에 좋은 구성이다.

그리고 관광명소만이 아니라 쇼핑장소, 음식점, 클럽, 공연장, 박물관 같은 곳도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뉴욕의 생활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책의 장점이다. 간단히 말해 이책의 용도는 읽기 나름이며 원래 편집의도와 다른 목적에도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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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씽커블 Unsinkable - 역경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
소니아 리코티 지음, 윤경미 옮김 / 빅북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책의 주제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Unsinkable, '가라앉지 않을'이란 말은 회복탄력성(resilience)란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책의 저자도 한몫하는 미국 성공학파의 주장과 달리 사는 건 힘든 일이다. 언제나자잘한 스트레스로 넘치고 어려움으로 넘친다. 그리고 가끔은 위기를 만나기도 한다.

소위 '끌어당김의 법칙'을 말하며 '생각대로지'라는 카피처럼 세상이 된다고 설교하던 저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번 금융위기로 저자도 피해를 보았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 남편은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이혼해야 했고 집도 잃었다. 저자는 죽음까지도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가 이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저자만 그때 위기를 만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 견디고 어떤 사람은 무너진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보통 회복탄력성이라 한다.

원래 물리학 용어인 회복탄력성이란 말은 공이 바닥을 차고 튀어오르는 것처럼 스트레스나 어려움, 또는 위기를 만나도 빠르게 중심을 잡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는 여유이다.

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더 쉽게 털어버리니 여유 또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당연히 남보다 삶을 쉽게 헤쳐나가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성격이 스트레스에 민감한 신경성인 사람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고 회복탄력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대개 탄력성이란 타고나기 보다는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얼마전에 나온 ‘튀어오르는 공처럼’은 광범위한 심리학 조사에 근거해 회복탄력성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이다. 이책이 연구대상으로 한 사람들은 고위직 임원이나 고위관료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보잘 것없었다. 어린 시절의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극복 과정에서 얻은 능력이 탄력성이다.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낙관적이다. 그책이 대상으로 하는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기본특징이다. 성공학에서 말하는 특징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신감은 근거없는 자만심이 아니며 대책없는 낙천주의가 아니다. 그들의 자신감과 낙관주의는 그들이 현실을 이겨내면서 얻은 전리품이다.

그런 극복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자부심은 언제나 근거가 있다. 그냥 ‘생각대로지’란 주문을 외운다고 자부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기최면은 현실의 무게 앞에선 너무나 연약하다. 현실에 근거가 있는 자부심만이 진짜 자신감이 된다.

자신감의 근거가 되는 현실은 안정되어 있게 마련이다. 안정된 현실에서 그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실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고 느낀다면 오기와 뚝심은 남을지 몰라도 자신감이 있을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에 그들은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자신만만하고 밝은 성격인 사람은 일에 솔선수범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실수를 하더라도 고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 잘못이나 실수쯤은 웃어넘길 수 있고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으며 현실을 똑바로 보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남의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 사람은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에너지가 높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회복탄력성이 높지 않으니 그냥 주저앉아야 하는가? 이책의 주제이다.

문제는 그런 책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책 중에서 이책만의 가치가 있는가?

사실 목차만 훑어보아도 제목에 ‘우울’이란 말이 들어간 책들과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도 그렇다.

내용은 그렇다치고 그 내용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깊게 다루어져 있는가?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이책을 보고 느낀 것은 급하게 썼다는 것이다. 저자의 전공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대로지’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되는 상황을 저자 스스로 겪게 되었고 그 상황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이책을 썼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 스스로 탐색하는 연구노트라고 할까?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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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전쟁 - 세계 경제를 장악한 월스트리트 신화의 진실과 음모
펠릭스 로하틴 지음, 이민주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출판사가 좋은 책을 망쳐놓은 경우이다. 이책의 내용은 책 표지에 도배된 음모론 문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책은 음모보다는 월스트리트 금융사의 자료로 훌륭하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네트웤 덕분에 놀랄 정도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글로벌 시스템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비밀스런 대화와 은밀한 만남을 충분히 관찰해온 나는 여기에 음모가 도사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엇다. 실제로 이들 엘리트들은 서로의 의견차에 고통을 받으며 대부분의 음모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좌절한다. 세계지배에 대한 오래된 환상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다.

유대인인 나는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의 음모’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세계지배기관의 내부조직에서 괜찮은 자리를 하나 얻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음모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 음모에 참여할 경우 비밀을 지키지 못할 것같아서 혹은 뉴저지 출신이어서 특별히 차별을 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까ㅓ지 나는 과거 수천년에 걸친 유대 역사의 주요 사건들, 예컨대 추방과 이단자 탄압, 나치의 대학살, 적들로 둘러싸인 사막에서의 국가 건국, 그리고 잔인한 증오와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그 많은 사건들의 주도자가-희생자가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항상 놀란다. 유대인이 절말로 그런 음모를 주도했다면 그들은 분명 모든 면에서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로스코프)

‘슈퍼클래스’의 저자는 잇는 것은 음모가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는 엘리트의 엘리트, 슈퍼클래스가 있고 그들은 집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는 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엘리트간의 이해충돌과 의견충돌은 엄연한 사실이며 음모론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한다.

반세기 이상을 월스트리트에서 보낸 이책의 저자는 비즈니스 엘리트들의 네트웤의 중심에 있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도 연결이 되었다. 이책에는 수많은 거물 경영자들과 정치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ITT 회장이었던 제닌,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한 스티브 로스, GE의 잭 웰치, 등과 같은 거물 비즈니스맨은 물론 뉴욕시장, 뉴욕 주지사, 닉슨 대통령, 여러 의원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책의 저자는 많은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이 그랬듯 비즈니스와 정치의 경계를 넘나든다. 뉴욕시의 공직을 맡기도 하고 프랑스대사를 지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유대인 금융가인 저자는 음모의 참여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책에는 그런 음모론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 그런 음모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책은 원제인 dealings가 말하듯,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가가 자신이 해왔던 거래에 대한 회고록일 뿐이다. 여기엔 어떤 음모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투자은행가의 비즈니스 현장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가치가 있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월스트리트라면 떠올리는 말이다. '월스트리트'란 영화에서 고든 게코가 한 이말은 우리가 월스트리트라면 떠올리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실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는 정말 탐욕이 좋은 것인가란 의문을 던지게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원래부터 그런 곳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책의 저자가 처음 투자은행에 들어가 자신의 경력을 쌓던 시절에는 그랫다.

저자는 거의 평생을 라자드 투자은행에서 보냈다. 저자는 처음 입사했을 때 사소한 사고를 친다. 저자가 라자드에 들어간 것은 아버지와 회사의 대표인 마이어와의 인맥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젊은 저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마이어 씨는 사무실에 선 채 처음으로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질문 속에 담긴 비난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견습으로) 2개월 동안 근무한 후 (정식사원이 되어) 주급이 50달러로 인상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감사의 편지를 쓸 생각조차 못했다. 이는 '가족'의 일원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마이어 씨의 배려로 채용되었든 아니든 '가족'의 일원이 된 이상 가족답게 행동해야 했다는 말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가족'이란 말은 말 그대로엿다. 당시 투자은행들은 주주들의 것이 아닌 파트너들의 공동소유였고 이익이 나면 가족기업처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관계는 내부만 아니라 외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이어는 라자드를 가족중심체제의 기업체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다른 투자은행들처럼 라자드는 여러 세대를 거쳐온 특정한 가족중심체제의 기업들과 오랜 개인적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리먼브러더스와 군로브, 딜리온리드 그리고 골드만삭스처럼 라자드 역시 유대계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건실한 고객관계를 구축했으며 모건스탠리, 이스트만 딜론같은 비 유대계는 그들대로 그들만의 관계를 구축했다." 당시의 투자은행은 J P 모건이 살아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High finance란 말이 쓰이던 그 시절의 은행업은 광고가 필요 없었다. 물론 소도시의 작은 은행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은행들처럼 지점을 내고 크게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물들에게 그런 것은 잔챙이들의 코묻은 돈을 만지는 하찮은 일이며 자신과 같은 ‘고귀한(high)’ 은행가가 할 일이 아니었다.

‘고귀한’ 은행가가 할 일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거물들의 돈을 굴려주는 것이었다. 론 처노는 그런 금융귀족들의 영업방식을 관계형 거래라 부른다.

모건 시절의 고급금융이 몰락한 전후에도 그런 관계형 거래는 살아있었다. 투자은행 자체도 투자은행의 고객도 같은 올드보이 클럽에 속했기에 말 그대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마이어씨는 이 회사의 문화를 구축했다. 그는 이 회사의 투자은행가들에게 라자드가 활동의 양보다 질을 추구하며 우리가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사라는 믿음을 주입햇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어의 시절 라자드에서 "리스크란 리스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보수적 은행가인 신사들의 시절은 끝나가고 있엇다. 론 처노는 모건이 살아와 지금의 월스트리트를 걷는다면 뭐라고 할까 상상해본다. 모건이 살아있을 때보다 분명 지금의 월스트리트는 더 화려하고 커졌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인이 살았을 때 월 스트리트는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고 론 처노는 말한다. 모건이 살아 온다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가 화려하고 거대해진 것은 모건과 같은 거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월스트리트가 100년을 사이로 허우대만 멀쩡해진 것은 대공황을 전후해 금융의 지배가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며 금융의 몰락을 보통 금융교과서들은 탈중개화로 설명한다. 은행업은 자금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것이다. 은행의 힘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힘이 커지면 작아진다. 대공황 이전 강세장은 공급자들, 즉 개미들의 자금이 풍부해지고 잇다는 전조였다. 그리고 그 이후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의 힘이 막강해졌고 2차대전 이후 대중의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들의 자금도 풍부해졌다.

저자가 은행업에 입문한 시절은 바로 탈중개화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거래 상대방보다 은행의 힘이 약해져 간 것이다. 그리고 은행의 약화는 은행의 모습을 바꾸어갔다. 더 이상 신사들의 여유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의 촉매는 1970년에 일어났다. 저자는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의 이사로서 그 중심에 있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하나둘 파산상태에 들어갔고 저자는 라자드와 뉴욕 투자은행가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의 이사로서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3년을 분투한다.

저자가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때 이후로 투자은행의 모습은 변한다. 라자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객들이 거대해지고 자본시장에 직접 참여하면서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거래를 잃어갔다. 그리고 증권거래의 수수료도 얄팍해지면서 은행들은 사면초가에 빠진다. 대안은 마찬가지로 거대해지는 것이었다. 올드보이 클럽 같은 목가적 분위기의 파트너십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았다. 이제 은행도 시장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싸구려 용병이 되어야 햇다. 신사의 시대는 끝났다.

“라자드는 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30명의 파트너와 250명의 직원들이 근무했다. 그리고 20년 후가 되면 이 회사는 1,000여명의 직원과 69명의 경영이사들이 일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원들이 저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가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 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라자드에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잇는 날들은 끝났다.

또 한가지 문제는 회사가 내가 거의 열정을 느끼지 않는 분야로 과감하게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이어의 후임인) 마이클은 거대 시장 참여가 우리의 성공적인 인수합병 비즈니스와 비교적 많지 않은 우리의 증권인수능력을 보완하는 데 필요하다고 믿었다. 라자드가 추가적인 트레이딩 기능을 갖춰야 하는지 논의햇던 경영이사 회의에서 나는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무시되었다. 조만간 수익성이 있고 위험성이 낮으며 자본 집약적이지 않은 자문사업이 위험성이 높고 자본집약적인 트레이딩 활동을 보조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차대조표상의 이런 불일치가 회사 내의 긴장감을 유발하게 만들 것이다.”

마이어는 라자드를 작고 가족적인 회사로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 시절에 투자은행업에 뛰어든 저자는 자신의 일을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전달하고 주주들에게 수익을 주는 것을 돕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몇십년이 지난 지금 안정된 금융의 원칙은 걷잡을 수 없는 탐욕에 짓밟혔다. (투자은행업의 주업무 중 하나인) 합병은 단순한 딜일 뿐인 추상적인 금융거래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가동 중인’ 기업들이 하는 일이나 제조한 물건 혹은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벌어질 일과는 거의 무관하다. 수천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기업들이 도산할 때 그 지역이 붕괴되는 것은 딜을 성사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의 사람이 과 과정에서 얻게 되는 놀라운 부가 전부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기업 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다. RJR-나비스코의 합병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커다란 딜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직원들과 해당 지역에 미치는 결과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높은 레버리지의 투기시대엿다. LBO와 정크본드들 말이다. 은행가들은 기업을 휘젓는 것과 달리 투자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그때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낸 관행과 마음가짐, 세상을 바라보고 시장을 조종하는 방식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리먼을 파산으로 몰고 간 투기적인 도구인 모기지 기반 금융 파생상품의 번들이 정그본드의 사생아였다. 성공적인 LBO가 진행되는 동안 경영자들이 챙겼던 막대한 보수가 오늘날 거대한 월스트리트 보너스의 선구자엿다.”

이책은 저자가 라자드에 처음 입사했던 40년대 후반부터 저자가 프랑스대사로 라자드를 떠난 90년대 후반, 그리고 리먼브러더스에서 일한 2000년대 후반, 그리고 리먼브러더스에서 나와 다시 라자드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50여년을 포괄한다.

그 긴 시간 전체가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이 반세기를 보내며 겪은 일들의 무용담을 말한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할 것입니다.” 광고사에 언제나 언급되는 에이비스의 광고이다. 이책의 저자가 맺은 빅딜의 첫머리에 오는 인수합병건이었다. 에이비스를 시작으로 이책에선 60년대 인수합병 열풍의 선두엿던 ITT의 인수합병들을 말하고 RJR 나비스코, GE의 RCA(NBC의 모회사)인수, 마쓰시타의 MCA 인수 등이 말해진다.

저자는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투자은행가가 어떻게 딜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거래기회를 만나고 사람들과 신뢰를 쌓으며 협상을 어떻게 했는가 등 거래의 현장을 그려준다.

저자가 이책에서 소개하는 딜들은 경영사에 기록되는 큰 건들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책이 큰 가치를 갖기에 부족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거물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저자의 경력은 금융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제의 혈관이랄 수 있는 금융은 정치와 연관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일에 종사하면서 공공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렇기에 나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는 금융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책에서 저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70년의 금융위기와 75년 파산 직전까지 갔던 뉴욕시 재정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위원회를 조직하고 위기를 타개할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실행해 하루 하루를 넘기기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했는가가 잘 그려진다.

경영사에 남는 빅딜들과 금융사에 남는 큰 사건의 인사이더의 기록이기에 이책은 처음에 언급했듯이 월스트리트 역사의 좋은 자료이다. 이책은 누구나 읽을 책은 아니다. 금융사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금융과 금융사에 대한 나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권할만한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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