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자이언트 - 업계의 거인을 쓰러뜨리는 10가지 핵심전략
스티븐 데니 지음, 구계원 옮김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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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꺾을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중소기업의 전략에 관한 책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히든 챔피언이나 브레이크스루 컴퍼니 같이 양질의 책도 없는 편은 아니다. 물론 그런 책들은 말하자면 전략에 관한 것이고 이책은 전략 전술에 가까운 내용을 말하기 때문에 내용이 다르다. 그리고 이책은 꼭 중소기업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1등이 아닌 누구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관한 책들과는 다르다 하겠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두책을 보았다면 이책의 내용이 낯설지는 않다. 예를 들어보자.

“소규모 기업들은 고객 수가 많지 않다. 소수의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더 이상의 비즈니스는 없을 것이고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직원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렇기에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납품하고 불량품을 개선하고 설치문제를 해결해주는 등 직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소규모 기업은 이렇게 고객만족을 위한 사후활동에 신경슬 여지가 많다.

소규모 기업은 제품의 조유도 많지 않다. 고객이 사지 않을 제품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수요가 없다면 치명적이다. 그러나 점점 고객이 많아지면 기존의 제품 외에 새로운 제품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장한다.” (키스 맥팔랜드, ‘브레이크스루 컴퍼니’)

간단한 예이다. 규모가 작다고 반드시 약하라는 법은 없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고성과, 저비용구조 가능할 수 있으며 직원들의 소속감과 책임감이 높을 수 있다.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책에서 말하는 10가지 전략 중 앞의 5가지는 위에서 인용한 예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책의 장점은 무엇인가? 스토리텔링이다. 물론 이책에서 말하는 전략(이라기보다는 전술0은 새롭지는 않더라도 기억하기 쉽고 다른 책에서 보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다. 그러나 이책의 구조는 그런 전술 자체를 알려주는 것보다는 그 전술의 구체적인 예에 있다.

이책은 전략 하나 당 구체적인 케이스 3개씩을 할당한다. 흔히 경영서적에서 보는 케이스와 달리 이책을 읽어보면 잡지나 다른 책을 뒤지는 대신 저자가 발로 뛰면서 사례의 당사자를 찾아가 인터뷰하는 수고를 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당사자의 인터뷰가 상당량이 인용되기 때문에 생생하고 저자가 발로 뛴 결과이기에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저자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좋기도 하다. 재미있게 읽힌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책의 스토리텔링은 재미 이상이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등장인물이 특정한 행동을 취했을 때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일과 그 행동을 취했을 때 실제로 일어나는 일 사이의 현실적인 간극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놀라움의 순간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역사, 사회를 꿰뚫어볼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미리부터 준비해서 심어놓은 장치이죠. 이야기는 일차적인 의미대로 흘러가는데 그것도 충분히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전환점에서 관객은 근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차적 의미는 일차적 의미보다 더욱 심오하고 중요하지요. 일차적 의미는 다소 사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차적 의미는 어떻게 왜 방금과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좀더 심오하고 강렬하면서도 포괄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며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사건에 더욱 묵직한 무게감과 중요성을 부여합니다.”

이책에 인용된 시나리오 작가의 말이다. 이책의 장점은 저자가 자신이 인용한 말대로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가 말하려는 전술은 반상식적이다. 그런 전술을 아무리 말해봐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만 못하다. 저자는 자신이 인용한 말처럼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독자가 일차적 의미에 이차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러면서 재미까지 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경영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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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 - 인간다운 행복을 외면하는 경제적 사고에 제동을 건다
요하네스 발라허 지음, 박정미 옮김, 홍성헌 감수 / 대림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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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일에는 목적이 있다. 시장에서 사람이 하는 일 역시 목적이 있다. 그러나 시장이 어떤 목적이 있는가는 말하기 힘들다. 시장 역시 사람이 만든 제도인 한 정부나 학교, 기업처럼 존재이유 즉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시장이 있는 이유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거래의 이유이다. 거래 자체로는 목적이 될 수 없다. 거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평균을 내 대표값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삶의 목표를 행복이라 흔히 말한다. 시장의 거래 역시 그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보기에 행복은 순수하게 경험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기 나름의 행복관이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떤 윤리적인 법칙의 확실한 기반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거래를 통해 사람들이 얻으려는 “행복과 이익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류경제학에선 시장의 목적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학의 대상은 분명하지 않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거래의 목적이 무의미하다면 거래 자체 즉 거래를 통해 얻는 이익을 대상해야 한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해왔다.

거래의 이면에 있는 목적 즉 “행복은 이로써 완전히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났다. 행복의 개념을 이익의 개념과 맞바꾼 경제학은 이익에 대해 형식적인 말만 늘어놓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다. 이 돈이 나중에 어떻게 쓰여야 할까 하는 문제나 일반적으로 경제의 의미를 묻는 문제는 공적인 논의에서 제외되는 ‘약한’ 주제에 속할 뿐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이 나름대로 평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얻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의 두드러진 특징은 목적이 없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거래를 위해 거래를 한다. 그 거래를 왜 하는지 목적이 없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은 어떤 행위의 동인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이익 개념을 형식적이고 추상적으로만 파악하므로 모든 것을 사적인 이익으로 이해한다. 달리 말해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 외에도 동기나 의도, 감정 또는 경험에 대한 주관적 판단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은 그런 것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못한다.”

고전적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두가지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소득은 5만 달러인 반면, 사회 전체의 연평균소득은 2만5천 달러에 불과하다.

두번째 세계에서 당신의 연간소득은 10만 달러인 반면, 사회전체의 연평균소득은 20만 달러에 이른다.

하버드 의대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서 절반 이상이 첫번째 세계를 선택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대로라면 이익이 극대화되어야 하니 당연히 사람들은 두번째를 골라야 한다. 그러나 반 이상의 첫번째를 골랐다. 사람은 단순히 더 많은 소득과 더 높은 소비를 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소득이 만 달러 이상이 되면 소득은 생존과는 상관이 없다. 그 이상의 소득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익이 무슨 의미인가를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은 설명할 수 없다.

이익이 무슨 의미인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행동에 관한 한 전적으로 예측가능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버드 의대의 실험에서 드러나듯 의미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예측 역시 할 수 없다.

저자는 다시 의미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는 만족, 더 넓게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행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정의는 칸트가 말했듯이 불가능하다. 저자는 행복의 의미를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번째 가능한 형식적 정의는 욕구의 만족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것이다. “신공리주의는 행복, 더 엄밀히 말해 ‘이익’이란 소망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고객이 구매행위에서 선택하는 것은 바로 그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이미 말했듯이 행복을 만족으로 정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우선 “선택이 반드시 바람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바라던 바가 실현되는 것은 정말 믿을만한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어떤 결정이나 행위, 경험 또는 상황이나 나중에 가서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것에서 굳이 행복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소망은 비합리적이거나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운동에 재능이 없으면서 익스트림 등반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건드리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마이더스 왕처럼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소망실현이란 개념 자체의 불안정성만이 아니다. 소망 자체 역시 행복을 정의하기에는 불안정하다. “로또에 응모한 사람은 최대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소망하고 바라던 대로 당첨이 되면 곧 욕구는 더 높아진다. 그러나 당첨이 되어도 대부분 제한적으로 일시적으로만 행복해질 뿐이다.”

저자는 그러한 행복을 덧없는 것, 에피소드적 행복이라 말한다. 저자는 “에피소드적 행복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아마르티아 센이 제시한 대로 저자는 그 기준으로 “소망실현과 쾌락증대라는 공리주의적 기준보다 삶의 기회라는 평가기준을 우위에 둔다.” 아마르티아 센”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이나 자원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능력이나 사람의 기회가 바로 성공적인 삶에 이르는 열쇠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자신의 목표와 소질, 능력에 부합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행복이 곧 성공적인 삶의 다양한 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 옵션 내지 선택가능성이라고 이해하는 셈이다.”

행복을 성공적인 삶으로 정의한다면 경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저자는 본다. “시장과 경쟁은 경제에서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임이 입증되었으나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없고 그저 모든 사람의 삶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일 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경제적 존재 그 이상임에도 대다수 사회에서 자기 생애의 많은 부분을 경제활동에 할애한다. 그래서 대부분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돈을 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소질이나 능력을 펼치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이점에서 경제활동 자체가 성공적인 삶에서 중대한 고유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경제에 대한 가치판단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저자가 인간다운 경제라 부르는 것은 두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모든 사람의 삶이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경제활동은 그 자체가 성공적인 삶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보고 평가를 받기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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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놈들이 온다 - 대중의 죽음, 별★종의 탄생
세스 고딘 지음, 최지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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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은 뻔하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대중은 죽었다. 최소한 마케팅에 관한 한 대중은 그리 의미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의 질문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은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대중의 죽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케팅은 물론 경영은 아직도 대중이 살아있다는 전제에서 움직인다고 저자는 본다. 상황은 바뀌었는데 생각은 예전 그대로이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한번 더 분명하게 대중이 죽었다는 말의 의미를 새겨보고 행동을 바꾸자고 말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케팅은 곧 광고였고 그 광고는 TV 광고를 말했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TV는 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수많은 매체중의 하나로 축소되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마케터들도 다른 수단을 찾아나서는 당연하다. 멀리 갈 것없이 최근 쏟아진 소셜마케팅 서적은 마케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저자가 대중은 죽었다, TV는 죽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마케터들은 몸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바로 40년이 넘도록 텔레비전 광고가 지나치게 저렴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은 대중을 마케터에게 데려다 주었다. 광고를 많이 사들이면 신뢰도 살 수 있었다. 신뢰와 슈퍼마켓의 선반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광고는 썩 훌륭하지 않아도 적당히 무난해도 괜찮았다. 엄청난 할인 혜택은 마케터가 대중에게 미혹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반인을 위해 일반적인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수차례 광고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텔레비전은 산산조각 났다.

텔레비전 홍보에 푹 빠졌던 수많은 브랜드들은 돌아갈 곳도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발이 묶였다. 대중에게 사로잡힌 상태에서 그만 상대할 대중이 없어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표면적으로는 매체가 많아졌다는 점, 매체가 디지털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공중파 TV의 몇 개 채널, 몇 개의 유력 전국지가 매체의 모든 것이었던 시절 소비자는 평균치란 대표값을 갖는 대중으로 묶여졌다. 그러나 인터넷은 매체비용을 거의 공짜로 만들었고 대중은 해체되어 평균값으로 묶을 수 없는 별종이 양산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을 대중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개성을 살리라고 부추기는 고객 맞춤화되고 최적화된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순환고리가 생겨났다.” 인터넷이 쪼개놓은 대중은 모바일로 더 잘게 쪼개졌고 그런 경향은 더 가속화되었다.

이상은 마케터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이해로는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본다. 우선 저자는 대중이란 언제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을 위해 보통 물건을 만들어 내는 대중시장은 공장과 시스템을 계속해서 효율적으로 가동해야 하는 기업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처음에 나온 건 공장이다. 그리고 공장이 대중시장을 창조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시장이 대중의 엄격한 정의에 부합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중시장은 효율적이고 수익성이 높다. 오른손잡이를 위해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을 왼손잡이들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요령을 안다면 외손잡이용 물건을 따로 만들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정중히 선택권을 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갑자기 대중이 사라졌다. 그 이유를 잘 생각해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중이 사라진 이유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별종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종이 되려면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다양성은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 생겨났다.” 문제는 대중시장을 만든 부가 대중을 별종이 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어 준 것은 대량생산과 대량 운송, 대량 판매를 가능케 한 우리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가 오히려 우리에게 부를 안겨준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부추켰다. 기존에는 조립라인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중이 필요했고 조립라인은 광고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마케터와 공장주가 부유해지자 시장도 덩달아 부유해졌다. 시장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며 애초에 부를 창조했던 바로 그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말았다.

“가난하다는 것은 선택권이 없다는 뜻이며 이때 선택권은 공급자에게 있다.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이 곧 생필품이다보니 마케팅은 전적으로 ‘자 이것 갖고 싶니?’로 국한된다.” 그러나 더 이상 가난하지 않는 대중은 대중으로 남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그것을 기꺼이 취한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별종의 부족들을 찾아 나서라 저자는 말한다. 대중이 무너졌다는 것은 개인으로 원자화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비슷한 별종들 끼리 뭉친 부족으로 분열된다는 말이다. 그 결과 마케팅은 대중을 상대로 광고 한방으로 끝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대중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이유는 그들이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유형 재와나 상업은 단지 결과일 뿐이다. 목적은 바로 소통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대중을 산산조각낸 이유이다. “소통도구의 이용성과 효율성이 이렇게 높아진 건 불과 지난 20-30년간의 일이다.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 대신에 다수의 사일로를 향한 행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소속 구성원들만의 사일로이며 나름의 정통적 별종 노선을 갖추고 제 갈 길을 가는 마이크로 문화이다.”

저자는 냅스터를 대중이 해체되고 부족이 번성하는 좋은 예로 든다. “냅스터가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디오를 틀기만 바로 들을 수 있는 인기곡 40위 차트를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 세계 어디서도 판매되지 않는 80퍼센트의 음반 때문입니다.” 롱테일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저자는 롱테일의 원인을 별종이 되려는 인간의 성향때문이라 말한다.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이라는 아이디어는 사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이없는 것이다. 200가지가격대에 5000가지 와인을 판매하는 상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틈새라 부르는 것을 채워주고 공급해주어야 성공한다. 타워레코드는 다양성을 향한 우리의 끝없는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 탓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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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시장 - 부자나라들과 투자집단의 은밀한 세계 장악을 폭로한 충격 보고서
에릭 J. 와이너 지음, 김정수 옮김, 곽수종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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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주제는 뻔하다면 뻔하다. 세계의 권력이 서에서 동으로 옮겨간다는, 한 세대 전부터 떠돈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단지 특이하다면 이책은 그 뻔한 이야기를 이번 금융위기라는 사건에 초점을 맞춰 되풀이하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왜 힘이 옮겨가는가? 그 이유는 물론 돈이다. 미국의 경제력이 무너지면서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힘도 없다. 이책의 저자는 돈이 미국의 힘을 어떻게 제한하는가를 그림자 시장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그림자 시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림자시장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본부도 없고 거래소나 공식적인 리더십도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이라 정의하는 단일한 교환지대도 아니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그림자 시장은 애매하다. 이미 정립된 개념을 가져와 쓰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만든 개념이고 그 개념도 어떤 명확한 실체가 현상을 부르기 위해 만든 작업용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그림자 시장에 가장 닮은 개념은 금융 암시장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이전처럼 규제없는 금융시장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규제가 있으면 언제나 회피할 수단도 있게 마련이며 규제가 없거나 미미한 조세회피지역이나 작은 국가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의 이동과 함께 “작은 금융의 중심지들은 거대한 금융시장을 대신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소규모 금융 중심지들은 인터넷ㅇ를 통해 대부분의 거래를 할 수 있는 ‘금융 암시장’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니얼 앨트먼)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그림자시장은 암시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와 지정학적 권력이 융합한 글로벌 결합체, 눈에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림자시장은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최고 부자 나라들과 주식, 채권, 부동산, 통화 등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이루어진 막대한 보유자산을 통해 국제경제를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투자자들의 집합체이다.”

저자가 말하는 그림자시장은 그런 자본의 우연한 결합체를 말하며 일종의 현상을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 현상은 막강한 위력을 낳기 때문에 단순한 현상은 아니며 그 자본의 출처 때문에 아무 의도가 없는 결과 이상이다. 그림자 시장의 투자자들은 “거대한 국가 소유 지주회사는 물론 헤지펀드와 비공개 투자펀드 그리고 정부가 운영하는 국부펀드처럼 대체로 규제받지 않는 투자수단을 통해 금융상품을 보유한다.”

물론 모든 투자자가 그렇듯 이들이 신경쓰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며 이들간에 어떤 동맹도 협력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이 모여 집단적으로 결과를 낳을 때 그것은 패권의 이동으로 나타난다고 저자는 본다. 그리고 힘의 이동은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그림자시장이란 존재 자체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중국이 온갖 방법으로 미국을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미국의 엄청난 채무때문입니다. 미국을 가장 괴롭힌 것은 중국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손 하나 까딱할 필요조차 없다는 겁니다. 그들은 단순히 게임이론의 기본을 활용할 수도 잇습니다. 이를테면 그냥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잇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점은 그 위협을 뒷받침할만한 뭔가를 갖고 있느냐는 겁니다. 중국은 그런 수단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본과 미국의 채무가 바로 그것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마약중독자와 마약상의 관계와 비슷하다. 미국은 냉정한 현금에 중독되어 있다. 이런 상황 덕분에 중국은 마침내 양국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자본 공급을 줄이고 달러화 중심의 보유자산을 매각할 수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미국은 견딜수 없기 때문이다.”

마약중독자가 제대로된 인격으로 대접받지는 못한다. 이전까지 중국에 대해 미국은 거만했다. 중국은 미국을 대국으로 대접하려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도 마땅한 대접을 받는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인권을 들먹이며 사사건건 내정간섭에 가까운 훈수를 두엇고 뭔가 모자라는 학생을 가르치듯 선생으로서 우월감을 드러냇다. 미국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이건 중국으로선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중국은 그런 관계를 참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중국 관리들은 미국 관리들에게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고 거림낌 없이 촉구해왔다. 중국 관리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논의하고 싶지 않은 주제는 ‘콧등으로 날려 보냈다.’ 중국은 갈수록 양국 간 대화의 조건을 정할 수 잇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2009년 11월에 이루어진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한번 생각해보라. 그 방문은 대통령이 실제로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았거나 말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더 주목할 만했다. 오바마의 일차적 사명은 환경과 세계경제를 비롯해 국제적 쟁점을 놓고 세계 강대국들간에 까다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국간의 가장 곤란한 경제문제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입을 다물었다. 중국관리들에게 인민폐의 가치를 조작하는 일을 중단하고 중국상품의 원가를 높이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이전까지 꿈도 꿀 수 없었던 운의 역전(reversal of fortune)이다. 이런 역전은 돈의 힘에서 나온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는 엄청난 국채 규모 그리고 그 부채를 대부분 전 세계의 여러 적대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잠재적인 지정학적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미국에 투자한 나라들이 실제로 미국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상 미국주식회사의 주주다.” 예를 들어 “오늘날 중국관리들은 미국의 건강보험 프로그램 계획이 예산 적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지적은 중국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은행으로서 그 계획에 따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이 발행한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그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영향력은 어떤 음모의 결과가 아니다. 단지 중국이 벌어들인 돈을 투자한 결과 갖게 된 영향력일 뿐이다. 그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중국만이 아니다. 오일달러를 투자하면서 중동국가들도 얻게 된 힘이다. 이책이 말하는 그림자시장은 그런 투자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구체적인 과정이며 그 투자로 얻게 되는 영향력의 메커니즘이다. 사실 이책의 주제는 단순하다. 그리고 그 단순함 이상 이책이 어떤 논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기자답게 저자는 그 디테일을 풍부하게 재미있게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디테일이 이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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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스 - 세계사를 바꾼 튜더 왕조의 흥망사
G. J. 마이어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튜더왕조란 말은 몰라도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둘 만큼 대중문화의 사랑을 받은 왕도 없다. 튜더왕조는 아버지인 헨리8세와 딸인 엘리자베스 1세의 왕실계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지도면에서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엘리자베스 1세보다는 아버지인 헨리8세가 압도적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영국이 변방으로 보잘 것없는 약소국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계기를 마련한 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업적도 황당한 아버지 앞에선 무색해진다.

남자 아이를 갖고 싶다고 이혼하기 위해 온 유럽을 뒤흔들고 종교개혁까지 한 왕. 그렇게 이혼하고 결혼해 놓고는 마누라를 처형한 왕. 황당하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는 왕이다. 황당의 극의를 보여준 왕인 만큼 영화와 소설, 역사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얘기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얘기거리가 많기는 그 딸들인 매리 여왕과 엘리베자스 여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두 여왕에 대한 책도 영화도 많고 많다.

이책은 그 세사람을 모두 다룬다. 그렇다면 이책은 그 많고 많은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워낙 책들이 많이 나왔으니 한두권쯤은 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책들과 이책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책은 그 세 사람이 속한 왕실계보 즉 튜더왕조에 대한 책이다. 이책은 그 세 사람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그 세사람의 시대를 묶어 하나의 전체로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튜더왕조가 등장한 시기는 중세가 끝난 시점이다. 12세기 르네상스부터 영국을 지배한 플랜태저넷 왕조가 백년전쟁의 패전과 그 패전의 후유증으로 일어난 장미전쟁으로 무너지고 그 전쟁의 폐허와 함께 중세가 끝난 시점이 튜더왕조의 시대였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귀족의 수를 격감시켰고 귀족의 약화와 함께 영국에선 절대왕정이 일찍 시작될 수있었다. 한 왕조를 연 사람답게 헨디7세는 특별했다. 그러나 그의 특별함은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함이었고 덕분에 그에 대한 역사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의 특별함이란 중세말기라는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7세의 과제는 “영국의 왕관을 귀족의 일개 분파 이상이었던 이전의 지위로 회복하는 것이었다 왕은 단순히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해야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잉글랜드의 왕은 ‘국왕이자 황제’라기보다는 ‘동등한 자들 중의 제일인자’에 불과했다. 장미전쟁은 농업, 목축업, 산업, 무역에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별 손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군주제에 해단 신뢰를 손상시켰다. 왕은 무능해보였고 모든 신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능력이 없어 보이거나 보호할 의사가 없는 것같이 보였다.” (옥스퍼드 영국사)

헨리7세는 그 과제를 해내는 위업을 이룬다. 이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헨리7세가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엇기 때문이라 말한다. “현재 그에게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데 아마 당시에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스워스 전투 이전까지 그의 인생에는 극적인 순간들과 위기의 순간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 자신이 그런 시련을 원한 적은 없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조용히 보냈다. 그에게 왕위를 안겨준 전투에서조차 그가 했던 일은 농아나 마네킹도 할 수 있을만한 역할이엇다. 헨리는 공격당했고 헨리는 보호받았고 헨리는 왕관을 얻었다. 어떤 장면에서도 그는 수동적인 역할만 했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큰 업적을 이루었다. 기질적으로 그는 중세의 모험심 넘치는 전사황보다는 현대의 유능한 기업간부에 더 가까웠던 것같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언제나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는 군사적인 영광을 조금도 중시하지 않았으며 유럽의 유력 가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특별히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명성을 남기지 못했지만그가 무대를 세운 덕분에 그의 아들과 그의 손녀가 거의 1세기 동안 차례 차례 활략을 보일 수 있었다.”

튜더시대는 절대왕정의 시대로 불린다. 헨리7세는 절대왕정을 실현했고 그가 실현한 토대위에서 그의 자손들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업적은 악전고투의 결과였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군주정은 흔들리고 있었고 귀족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재정은 파산상태엿다. 그는 군주의 권력을 세우고 귀족과 교회를 복종시키며 재정을 확립한 것은 헨리7세의 업적이다. 그런 아버지를 둔 것은 헨리8세의 행운이엇으며 동시에 불운이기도 햇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이 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었다. 헨리는 행운이 따랐다. 그는 역사상 가장 운이 좋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가 누린 행운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헨리7세는 잉글랜드의 왕권을 과거 수대에 비해 훨씬 더 확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국고를 금으로 가득 채웠고 백성들은 평화로운 시대가 가져다주는 혜택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익숙함, 당연함이 문제였다. 주어진 모든 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헨리8세는 아버지가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은 물과 공기처럼 얼마든지 낭비해도 상관없었다.

헨리8세는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자신의 매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모든 중요한 문제에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평생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그는 그냐말로 폭군의 자격을 제대로 갖춘 한심하고 위험한 살인광이엇다. 헨리처럼 자만심이라는 높은 벽 안에 갇힌 사람은 고마움과 같은 건강한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또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운이 좋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의 운명은 거의 신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고 그에게 일어나는 행운은 모두 우주에 대한 신의 위대한 설계를 이루는 과정이며 나쁜 일은 모두 신이나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 외의 무언가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났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헨리8세의 황당함은 그런 감사할줄 모르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국왕은 혹시 재채기라도 하면 국사를 내려놓고 스스로 쉬는 날이라고 정하고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비가 잦아들면 정원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겼다."

"국왕이 잠을 설친 건 사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땅이 꽁꽁 얼어붙었으니 사냥개가 움직이기 어럽지. 사냥개들이 나갈 수 없었을 거야. 양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아니야."

"자네가 인내심을 갖고 우리 군주를 모실 수 있을까? 군주가 낮에 올린 서류에는 서명도 않는 채 자정이 다 되도록 브랜든하고 술을 마시고 킬킬대면서 노래나 부르고 있을 때 자네가 인내심을 보일 수 있을까? 자네가 국왕을 채근할 때 국왕이 이제 잠이나 자야겠다고, 내일은 사냥을 갈 거라고 말한다면 인내심을 보일 수 있을까? 국왕을 모실 기회가 온다면 국왕을 있는 그대로 쾌락을 추구하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할 거야."

아버지가 물려준 관료들이 있었기에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헨리7세 통치 말기에 정부고관이었던 충성스럽고 유능한 사람들이 있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들은 모두 그들이 관리했기에 그들의 군주는 마음껏 사냥과 음악과 춤을 즐기고(그는 악기 연주와 작곡에 재능이 있었다) 마상 창시합, 도박, 테니스, 수집, 궁전 개축 등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전형적인 중세귀족이었다. 그는 아버지 덕에 주어진 모든 것이 당연했고 당연한 것을 마음껏 낭비했다.

중세귀족에게 궁극의 오락은 전쟁이다. 전쟁의 영광을 위해 헨리는 아무 득도 없는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그의 사치와 전쟁취미에 그의 아버지가 이룩한 재정은 파탄에 빠진다. 그러나 재정위기도 헨리의 취미를 그만두게는 하지 못했다.

"그대는 세금때문에 이 나라가 쓰러질 거라는 이유를 들어 내가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 전쟁에 나가는 군주를 지원하지 않을거라면 나라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한 루이 14세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벌여 프랑스의 재정을 파멸로 이끌었고 결국 그 재정상태 때문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만든 루이 14세. 그에게 전쟁은 자신의 영광을 위한 놀이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헨리8세에겐 전쟁도 사랑도 사냥과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왕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왜 가지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왕의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겠는가? 사랑 이야기로, 앤 이야기로,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으로 흐를 것이다."

"추기경은 국왕이 직접 편지를 쓰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늘 말했다. 다른 국왕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심지어는 교황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그랫다. 직접 편지를 쓰면 많은 게 달라질 경우라도 국왕은 절대로 직접 편지를 쓰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앤 불린은 왕이 직접 쓴 편지를 받았다.

사랑의 불장난에, 덧없이 사라질 감정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왕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삼켰다. 당신은 이제 마흔이고 (왕의 꿈에 나타난) 형은 당신에게 어른이 되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당신은 아서 왕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연극으로 상연했나요? 가면극은 얼마나 많았고 가장행렬은 또 얼마나 많았나요? 종이 방패와 나무칼을 들고 등장했던 배우는 또 얼마나 많았나요?" (이상 힐러리 맨틀 ‘울프홀’에서 인용)

영국의 정상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왕에게 나라는 그의 소유물일 뿐이었다. 그의 소유물일 뿐이니 그 나라는 자신의 욕망에 봉사해야 하는 도구일 뿐이며 그는 그 소유물에 대해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었다.

그런 왕에게 사랑은 사냥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한때의 유희였다. 전쟁 역시 더 거창할 뿐 그에게는 마찬가지였다.

헨리8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메리,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벌려놓은 뒷치닥거리를 하느라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가 망가트린 재정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그가 사랑의 불장난 때문에 일으킨 종교개혁 때문에 분열된 나라를 다시 통합해야 했다.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이책은 헨리8세의 변덕이 왜 어떻게 그런 문제를 일으켰는가를 헨리8세의 행동을 따라 자세히 설명하고 그가 일으킨 문제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상세히 살핀다. 이책은 반 이상의 지면을 그에 할당한다.

그리고 나머지 반에선 그 문제들이 그의 아들과 딸들의 치세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그 문제들 때문에 그들이 악전고투해야 했던 상황을 설명한다.

이책은 영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왕이란 개인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본격적인 역사서보다는 전기에 가깝다. 가령 이런 서술은 이책에서 보기 힘들다.

“튜더 시대는 영국사의 한 분수령으로서 앵글로-아메리카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신성한 전통, 고유한 애국심, 식민시대 후기의 침울함 등이 합쳐져 이 시대를 진정한 황금시대로 과대평가하게 햇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신화보다 더 복잡하고 더 흥미롭지만 덜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튜더 시대 잉글랜드가 지닌 잠재적 힘은 사회적, 경제적, 인구적인 것이엇다. 그러므로 만일 이 시기가 황금시대엿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1500년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사망 사이에 일어난 상당한 인구성장이 가용자원의 양, 특히 식량공급을 초과성장하여 맬서스주의적 인구위기를 초래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근과 질병은 분명히 튜더 시대 경제를 저해했으나 14세기의 경우처럼 경제의 토대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인구증가로 인한 노동력과 수요의 증ㄱ5k는 경제성장과 농업의 상업화를 자극하고 무역과 도시의 부활을 고무하고 주거의 혁명을 가져왔으며 특히 런던에서 영국식 예절을 세련화했다. 그리고 튜더 시대 영국인들 사이에서 새롭고 활력 있는 태도 특히 종교개혁 사상과 칼뱅주의 신학에서 유래한 개인주의적 태도를 조장했다.” (옥스퍼드 영국사)

그러나 이책은 충분히 왕조사라 불릴만하다. 그 이유는 100년이 넘는 튜더왕조의 시대를 묶는 문제가 무엇이었는가가 이책의 주제이기 때문이며 그 주제를 제대로 설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서에선 무시되기 마련인 왕이란 개인에 주목하고 개인이 어떻게 시대를 규정햇는가를 이해하는데 주목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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