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9 - 제3부 듄의 아이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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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서 3권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9권은 1권과 2권에서 제기되었던 주제들이 해답을 얻어 마무리된다.

폴 무아딥은 예지력으로 본 미래의 많은 가닥 중 하나를 골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폴 무아딥이 인간으로서, 아트레이드 가문의 상속자로서 가문의 도덕(인간으로서 귀족으로서의 긍지)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선택햇던 그 가능성이 실현되기에는 힘들며 임시방편일 뿐이고 결국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아들 레오는 깨닫는다.

이책에서 자살하게 되는 엘리아가 파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무아딥의 그런 미봉책 때문이었고 이책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스러지는 폴 무아딥 자신도 그 운명의 무게를 지고 갈 수 없었기에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 사막에 숨었던 것이다.

문제는 짧은 지하드로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다고 아들은 결론을 내린다. 제국이 붕괴되도록 내버려두고 다시 그 제국을 세우는 거대한 폭력을 통해서만 종족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인류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레오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 4천년의 수명을 가지고 신의 제국을 만들려 한다.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은 그안에 있는 다른 자아인 이집트 왕국의 창설자 파라오이다. 파라오 밑에는 모두 평등하고 개인으로서는 무력하지만 전체로서는 강한 새로운 제국을 만들려는 계획을 말하면서 4권을 예고하면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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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8 - 제3부 듄의 아이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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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3권의 두번째 권에 해당하는 8권에선 아트레이드 황조의 2번째 황좌에 오를 폴 무아딥의 아들인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레오가 자신을 찾기 위한 사막으로 간 여행을 다룬다.

7권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신생 아트레이드 황조는 초대황제 폴 무아딥이 던져놓은 문제를 처리하지 못해 헤멘다. 그의 누이 엘리아는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저주받은 존재'가 되어 그녀의 조상이며 그녀 자신이 죽인 가문의 원수인 하코넨 남작의 자아에 휘둘리면서 제국을 망쳐간다.

그녀가 자신을 망치고 제국을 망치는 것은 셀 수 없는 자아의 기억들에 휘둘리지 않을 강한 (적어도 안정된)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고모가 무너져가는 것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태어나기 전에 태어난 자로 태어난 폴 무아딥의 쌍둥이 남매는 고모를 경멸하면서도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연민을 갖는다. 그러나 그녀를 대신할 자신도 없다. 그들 역시 고모처럼 중심이 확립된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매 중 오빠인 레오는 고모를 대신하여 제국을 떠안을 준비를 하기 위해 아무도 찾지 않을 곳을 찾아 사막으로 떠난다. 그리고 사막에서 그의 할머니 제시카가 준비해둔 훈련을 받으면서 제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자신만의 통치관을 정립한다. 그리고 그 통치관은 고모가 가지고 잇지 않은 중심을 잡는 것과 동시에 오는 것이었다.

고모와 그들 남매에게 부족한 것은 넘치다 못해 주체할 수 없는 기억들과 그 기억들의 주인인 자아들이 아니라 그 그것들 위에서 그것들을 제어할 의지였고 중심이었다. 그리고 레오가 그 중심을 가지면서 8권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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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7 - 제3부 듄의 아이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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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3권의 첫권인 7권에는 3권의 주제가 제시된다. 3권의 주제는 인간과 문명의 정체성이다.

폴 무아딥이 사막으로 사라진 후 제국을 책임진 것은 그의 동생 엘리아다.

엘리아는 태어나기 전에 태어난 자이다. 즉 그녀의 어머니 제시카가 대모가 되면서 이전 대모들의 기억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제시카의 태내에 있던 엘리아도 그 의식에 휘말려 대모들의 기억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정체성이 만들어져 있던 어머니와 달리 엘리아는 수많은 자아들과 함께 태어날 수 밖에 없었고 자아가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일종의 선천적인 정신분열증의 가능성이란 폭탄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폭탄은 제국이란 부담을 떠안으면서 폭발한다. 프레멘의 말로는 귀신들린 자가 된 것이다.

제국의 문제는 무아딥과 함께 시작된 변화였다. 몸을 씼는데 물을 사용하고 집을 짓는데 진흙벽돌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물을 써야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프레멘들이 물을 물 쓰듯 할 수 있게 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들을 누르던 물의 희귀성에서 해방되었고 그들을 누르던 제국정부의 억압에서도 해방된 그들이 휩쓸리는 변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제국의 문제였다.

무아딥 이전의 제국정부는 그러한 변화를 억누르면서 제국을 다스렸다. 지금으로부터 만여년이 흘렀는데도 기본적으로 중세의 문명수준으로 퇴화한 제국의 문명은 그러한 통치법때문이라고 이책은 암시한다.

그 넓게 퍼진 우주에서 오랜 시간을 제국이 하나로 유지될려면 변화를 억압해야 가능했던 것이란 암시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억누르는 것은 통치와 종교적 도그마로 보인다. 컴퓨터를 거부하느 문명 인공수정과 같은 것을 거부하는 문명, 온갖 기술적 과학적 가능성을 억누르는 종교적 도그마의 효용은 그런 것일 것이다. 지금 이슬람 문화가 서구문명이 시작한 세계화에 거부의 몸짓을 보내는 것도 그들 문명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거부감때문일 것이다. 이책에서 던지는 주제는 바로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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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6 - 제2부 듄의 메시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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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서 시작된 음모는 6권에서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그 실패는 황제 폴 무아딥의 해방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그를 짓누르던 짐을 벗고 죽음이란 해방으로 걸어갔다

폴 무아딥은 인류의 종족의지를 대행하는 에이전트로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예지력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문에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종족의지의 꼭두각시로 의지가 명하는대로 살기보다는 그 의지의 행사를 최대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억누르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폴 무아딥을 짓누르는 종족규모의 짐을 지면서 그가 한 개인으로서 무너지지 않고 개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짐을 지지만 자신은 그 짐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 것이라는 그의 결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5권과 6권에서 느껴지는 폴 무아딥이라는 개인은 자신의 역할에 짓눌린 피로감이다. 그 피로감의 무게에 비하면 그 자신의 의지의 무게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그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그 덧없이 작은 무게감의 의지력이었다.

그러나 그를 향한 음모가 끝나고 그를 괴롭히던 그 자신의 능력인 예지력도 같이 사라졌을 때 그는 살아갈 힘을 잃었고 나른한 해방감을 안고 죽으러 사막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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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5 - 제2부 듄의 메시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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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과 6권은 원서의 2권에 해당한다. 2권의 제목은 메시아이다. 2권에서 주인공 폴 무아딥은 황제이면서 종교의 선지자이다. 그를 교주로 받드는 사막의 야만인들은 우주를 휩쓸며 지하드 즉 성전을 벌이며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한다.

그러나 폴 무아딥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가 황제가 된 것도 종교의 교주가 된 것도 그가 원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종족의지는 그보다 더 파괴적인 일을 벌일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차라리 내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는 체념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 지위를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불행하다.

5권에선 그의 이름으로 600억이 죽어간 지하드에 대한 반대세력이 꾸미는 음모를 배경으로 예지력을 갖춘 능력자의 불행이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우주의 흐름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의 일부라고 말한다. 예감이라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근거는 없지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이다. 그것은 믿음도 아니고 예측도 아니고 그냥 사실로 느껴진다. 이 소설에선 예지력이 무아딥만의 능력이 아니다. 수많은 능력자들이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선 무아딥의 고뇌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보여준다.

한가지 더 지적할 것은 이 소설을 영화화 것을 본 사람이면 그 배경이 중세 이슬람의 도시와 거의 똑같았던 것을 봤을 것이다. 그런 설정은 5권을 읽어보면 원작자의 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하메드가 이슬람을 만들고 일어난 지하드를 통해 사라센 제국이 형성된 과정을 2권은 그대로 빌리고 있다. 주인공의 고통은 바로 그러한 지하드가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살육을 막을 수 없고 자신이 그 학살을 명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의지의 한계를 느낀다. 그가 자살을 바라는 것은 그런 고뇌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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