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터 - 집으로 쓴 시!, 건축 본능을 일깨우는 손수 지은 집 개론서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1
로이드 칸 지음, 이한중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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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뭐라고 말하기가 힘든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책은 재미있다. 그러나 저자가 이책을 쓰면서 말하고자 하는바가 무엇인지가 언뜻 잡히지 않는다.

이책에 소개된 수많은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뗏장을 무덤에만 쓰는줄 알았더니 어엿한 건축재료였군, 흙을 이렇게 건축재료로 써왔구나 어 건초블럭으로 집을 짓는다고? 와 목재만으로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 수도 있구나 버스를 개조해 이렇게 집으로 쓸수도 있군. 살아있는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살다니! 이런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았구나 이런 구조의 집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책의 앞부분은 동굴, 천막, 목조 건물등 세계 곳곳의 여러가지 역사적 스타일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런 집들이 어떤 재료로 어떤 기술로 지어졌는지를 사진과 그림, 설계도면을 통해 자세히 다룬다.

그러다 중간부터는 목재나 시멘트, 폐자재를 활용해 손수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기술적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이책은 건축사이기도 하고 일반인이 손수 자기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책으로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저자는 그리 글솜씨가 좋은 것같지는 않다. 건축사로 읽히는 부분은 거의 다 남의 책을 인용한 부분이다. 그리고 서로 연결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건축사 부분과 뒤의 건축기술을 설명하는 부분의 연결도 애매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책의 성격은 건축의 만화경이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여기저기서 그러모은 자료들을 그냥 나열하면서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 만화경들을 보면서 책을 덮는 순간 저자가 이책으로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말로 설득된 것이 아니라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책의 저자는 성당이나 궁전 박물관 또는 빌딩과 같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다루지 않고 생활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개인들의 거주지로서의 건축물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개인주거공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다른 모습을 띄어 왔는가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살았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공간을 다르게 구성했는가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주거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책을 읽으면서 이런 공간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런 집을 짓는 데 그리 많은 돈은 들지 않겠는데 흠 쉽게 지을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저자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건축의 아나키스트였던 것이다. 아마 그가 서울에 온다면 철근 콘크리트로 찍어낸 붕어빵 같은 아파트들이 도시를 점령한 것을 보면 기절을 할 것이다. 저자가 이책을 통해 독자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여유로우며 자유로운 개인공간을 꿈꾸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이책에 소개한 것같은 건물을 지을 일도 가질 일도 있을 것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는 언제나 꿈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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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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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는 특이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졸업장 밖에 없는 프로 복서 출신으로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자수성가했으며 도쿄대 건축학과 교수가 된 사람. 안도 다다오는 그 이력만으로도 흥미가 가는 사람이다.



한국만큼이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도 건축업은 더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전문가집단 중 하나이다. 그 전문가 사회에서 학연이란 뒷배도 없이 혼자 건축가로 성공했고 그것도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정말로 성공한 건축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안도 다다오가 정말로 특이한 것은 그의 건축이다. 그리고 이책에서 또 하나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바란다면 당신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책의 처음은 그가 어떻게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가 하는 경영자로서 조직의 책임자로서의 일상이 나오고 다음 장에선 어릴 적 집안과 동네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했고 건축가로 이름을 얻기까지 그의 삶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책은 제목처럼 '인간 안도 다다오'가 아니라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관한 책이다. 이책에서 개인으로서의 안도 다다오가 차지하는 양은 그 자신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부분만큼이나 작다(두 챕터에 불과하다).



이책이 보여주고 이책에서 보아야 할 것은 안도 다다오가 70년대부터 건축가로서 세상을 살아온 이야기이고 당연히 그 이야기는 그가 직업으로서 만들어온 그의 건축물들이다. 그리고 그의 건축은 도시의 게릴라 건축가라고 안도 다다오 자신이 스스로를 말하는 말만큼이나 특이하다.



그가 건축계에 자신의 이름을 확립한 작품인 초기건축물 스미요시 나가야는 그가 그 건물을 짖기 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상상할 수 없는 건물이다.



타일이나 벽돌은 물론 페인트 조차도 없이 그냥 그대로 콘크리트를 노출한 벽에 밖으로 난 구멍은 대문 밖에 없고 창문조차 없는 건물, 집의 중앙 1/3이 아무 용도 없이 빈 공간으로 버려져 있고 그 빈 공간의 천정만 하늘로 열려 있어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집의 중앙이 집을 둘로 나누니 자연스런 동선이 나올 수도 없고 단열도 되지 않은 콘크리트가 누드로 처리되었으니 집이 예쁘지도 않을 뿐더러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세상에 이런 건물이 있다니. 당시 이 건물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이 스미요시 나가야는 안도 다다오에게 상을 안겨주었지만 상을 수여하는 문구에는 일반적일 수는 없는 건물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안도 다다오의 이후 건축물들이 모두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건물은 그후 안도 다다오 건축의 모든 것을 이미 담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가 그 건물로 세우려 한 것은 여백의 미학이다.



동양화 기법에 공탁법이라는 것이 있다. 달을 그릴 때 달을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검게 칠해 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큰 차이를 말할 때 보통 여백을 말한다. 물론 서양화에서 여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양화에서처럼 여백이 크며 그 여백이 그림에서 능동적으로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그려진 부분과 능동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자체로서 큰 의미를 만든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이다. 건물은 공간의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은 건물이 세워지는 장소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건물은 관계 속에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초 정립된 현대건축은 그 관계를 무시했다.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가 건축재료로 확립된 시기 그 재료에 영혼을 부여한 것은 모더니즘이었다. 모더니즘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인 직육면체와 각진 모서리로 대표되는 무표정한 기하학적 외양은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그 자신만의 경제성과 기능성이라는 기준을 강요하면서 주변을 위압하고 대화를 거부한다. 광화문의 교보빌딩과 서울역의 대우빌딩을 보면 모더니즘 건축물의 유아독존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이 구현하고 있는 원칙은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경제성과 기능성이었다. 그리고 안도 다다오가 속한 68세대는 바로 그 원칙에 반기를 들었던 세대이다.



68세대의 정신을 건축으로 표현해온 안도 다다오는 자신을 도시의 게릴라라고 부른다. 그가 저항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건축인가 무엇을 위한 건축인가를 묻지 않고 경제성과 기능성만 따져온 일본의 도시였다. 성장과 개발만 외치면서 수백년의 역사가 사라지고 공동체가 사라진 일본의 도시에 저항한 것이다.



스미요시 나가야는 일견 또 하나의 모더니즘 건축처럼 보인다. 무표정하다 못해 추하기까지 한 콘크리트 외양, 각진 기하학적 표현, 대문 하나 이외에는 창문도 없는 아예 주변과의 대화를 거부한 고립.



그러나 그가 거부한 것은 무분별하게 개발된 도시의 거리였다. 그 건물이 들어선 거리는 이미 조화를 할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건축물에서 도시의 거리를 차단하고 하늘로만 통로를 열어 좁은 건물 안에 자연으로 뚫린 조화된 공간을 창조한 것이다.



그의 다른 대표작들인 산 등성이의 경사를 따라 지어진 연립주택이나 박물관, 사원, 교회 건축에선 그런 닫힌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초기작에서나 후기작에서나 동일하다. 조화의 원칙이다.



건물은 그 장소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안도 다다오는 말한다. 즉 그 건물이 들어서는 주변공간과 조화되어야 하며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그 건물의 목적에 맞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주변과의 조화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건축은 장소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고 그 장소에 유일한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이 이책에서 읽을 수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론일 것이며 이책에서 찾아야 할 내용일 것이다. 물론 이책에서 안도 다다오는 분명하게 자신의 건축론을 체계화하고 있지도 않으며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까지 있다. 그리고 위에서 요약한 내용을 알아보려면 건축사에 대해 어느 정도 예비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건축사에서 안도 다다오가 차지하는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예비지식이 있다면 이책에서 안도 다다오란 건축가가 왜 유명할 수 밖에 없는지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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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 - 광기와 집착으로 완성된 현대미술 컬렉션
임근준 지음 / 갤리온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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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인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 이책의 제목에는 크레이지 아트란 말이 나오지만 소개되는 작가들과 작품들은 미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여기서 미쳤다는 말은 'Only the paranoid surive'라는 앤디 그로브의 책제목과 같은 의미이다.

어느 전문가 세계이든 자신의 일에 미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이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런 의미에서 미친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 확고한 견해가 있고 그 견해를 밀고나가는 프로다운 집착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생존자가 되고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책이 다루는 21인의 작가들은 바로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책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는 작고한 백남준씨가 사재를 털어 한국에 유치했던 휘트니 비엔날레가 열린 1993년 이후 한국미술계에 등장한 A급 신예작가들이다. 연령대는 386세대와 7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들이 된다.

저자가 휘트니 비엔날레를 경계선으로 잡는 이유는 휘트니 비엔날레가 한국미술에 준 쇼크를 계기로 1993년을 전후해 한국미술의 지형이 판갈이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이 역동성을 보이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주류를 지배한 것은 추상주의였고 80년대 민중미술이 대두되면서 양파전이 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전후로 민중미술은 그 존재의미가 없어졌고 세계미술의 중심인 미국의 트렌드를 바로 안방에서 볼 수 있었던 휘트니 비엔날레는 민중미술은 물론 앵포르말로 대표되었던 주류미술까지 같이 날려버렸다. 이후 90년대를 장악했던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후 한국미술과 세계미술간의 시차는 거의 없다시피하게 되었다. 즉 세계미술의 직접적인 영향에 한국미술이 노출되었고 경제가 그렇듯이 미술역시 세계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책이 다루는 작가들은 그렇게 판이 달라진 한국미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경쟁할 능력이 된다고 저자가 판단한 작가들이다.

이책에선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던 홍팡 세대까지를 연령대의 상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해 미술은 물론 음악,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서 어떤 주도적인 트렌드란 의미가 없어졌고 홍팡세대 이후 이책이 다루는 작가들에게 어떤 뚜렷한 트렌드를 잡아내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의 작품에서 읽히는 것은 개별성 또는 특이성의 향연이다. 이책은 그러한 특이성의 향연을 나열한다. 21인의 작가들은 모두 개별적이고 어떤 도식으로 잡아내어지지 않는다.

이책은 그 작가들의 개성을 짧은 작가론에 담아 나열하면서 한국미술의 현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들의 개성을 포착하는 저자의 필치는 예리하면서 평이하게 읽힌다. 이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일화로 작고한 불문학자인 김현 교수가 미술평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미술평론가들의 글을 보다보면 내 자신이 작문선생이 되어버린다. 읽히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학적인 언어유희에 담긴 내용도 별볼일 없는 글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그런 병폐에서 예외이다.

이책의 작가론은 평이하게 읽히면서도 짧은 글에 담긴 내용은 깊이와 폭이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작가의 전시회들은 물론 작품들을 개관하고 작가를 직접 만나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나를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작업까지 관찰하는 공을 들였다. 그런 준비가 있는 글은 당연히 내용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읽기 쉬워진다. 말하려는 내용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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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 가는 길 - 그림감정사 박정민의 행복한 뉴욕 경매일기
박정민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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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수다'이다. 이책의 내용이 수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저자가 2004년 한해 동안 썼던 일기를 정리해 책으로 엮었기 때문이다.

일기의 형식대로 날자순으로 배열한 책의 내용에 어떤 체계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살아가는 것이 누구나 비슷하게 맥락이 통하지 않는 여러가지 잡다한 사건들이 두서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들의 나열에서 어떤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지나고 나서 가지를 치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때 만들어지는 사후적인 성격일 뿐이다.

그러면 어지러운 다른 사람의 수다에서 건질 것이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있다'

CJ에서 5년을 근무하다 이거다라는 필이 꽂혀서 뉴욕으로 날아간 저자는 소더비가 운영하는 경매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경매학교를 나와 견습과정을 거치면서 경매라는 사업을 몸으로 익혀간다. 그러다 보석에 강한 크리스티로 옮겨가 견습과정을 계속 거친다.

이책의 내용은 이런 타임라인을 따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몸으로 겪어내는 뉴욕의 사람들과 생활문화가 묘사되며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업무를 직원의 눈으로 관찰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책의 키워드는 뉴욕과 경매회사이다. 물론 이책의 두서없는 형식때문에 그 두가지 키워드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이책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물론 1년동안 저자가 몸으로 겪은 기록만 존재하는 이책에서 어떤 체계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다. 저자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까.

그러나 이책의 두서없음으로 인해 체계를 거쳐 정보가 걸러졌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다양하고 잡다한 그렇기에 구체적인 정보들이 이책에는 수록될 수 있었고 그 정보들은 다른 체계적인 책들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서 이책의 가치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책의 가치는 이책만으로 얻어지지는 않는다. 세계미술의 수도인 뉴욕의 미술시장에 대해 다른 책을 보았다면 그런 책들에서 얻을 수없는 디테일을 보기 위해 이책을 볼 때 이책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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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장 가는 날
박영택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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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이다. 미대를 나와 미술잡지 기자, 큐레이터를 거쳐 미대 교수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인사동을 시작으로 사간동 광화문의 화랑을 돌며 전시회를 관람하는 하루 일정을 기록한 책이다.

자신의 일상을 인사동을 가는 날과 아닌 날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로 현업 평론가인 저자에게 인사동 순례는 큰 의미가 있다. 평론가로서 살아움직이는 미술현장을 점검하면서 현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직업의 일부이다.

책의 시작은 그런 순례가 어떻게 시작되는가부터 설명한다. 교수실을 열고 우편함에 쌓인 미술전시회 카다로그와 잡지, 신문을 체크하면서 가봐야 할 전시회를 선정한다.

그리고 책의 다음 챕터는 자신이 어떻게 미술을 직업으로 택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은 물론 어려웠던 시절 한국미술의 역사를 개인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인사동의 화랑 순례를 시작하면서 인사동이 언제부터 하나의 거리로 정착되었고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하는 역사를 말하고 자신의 소소한 기억들과 섞어 인사동의 역사와 함께 한국미술의 역사도 설명한다.

그리고 화랑에 들어가 전시회를 설명한다. 모든 그림을 설명하지는 하지는 않고 작가의 대표작 하나를 골라 그 작가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림을 설명하면서 보여준다.

인사동에서 화랑을 들러 전시회를 보는 여정은 이책의 끝까지 이어지면 그 편제도 별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편제에 담긴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평론이 직업인 사람인 만큼 전시회를 체크하는 것도 일이다. 그러나 모든 전시회를 다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가 이책에서 보여주는 하루동안 그가 고른 전시회는 현재 한국미술의 흐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전시회이다. 그리고 그 전시회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한국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가 이책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한국미술의 현주소이기 때문에 이책에 담긴 내용은 단순히 작가론 작품론에 한정되지 않는다. 낙후되고 후진적인 제도로서의 미술과 그 좁은 땅에 어떻게든 송곳 하나 꽂을 자리라도 찾아야만 하는 작가들의 절박한 현실, 그러한 현실에서 한정된 자원을 더욱 귀하게 만드는 정치논리, 비현실적인 대학 커리큘럼 등 저자가 제도로서의 미술이란 현장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겪었던 내부자만이 말할 수 잇는 내용들이 끼워넣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책은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하루동안 인사동에서 광화문의 화랑들에서 열린 전시회들을 따라가는 우연적이고 사소한 평론가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하루 동안의 일정을 샘플로 보여주면서 한국미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한권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물론 이 한권으로 그런 작업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도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이책의 형식이 그렇게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저자가 의도한 것처럼 한국미술의 현실을 엿보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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