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컬처의 모든 것 - 생각을 지배하는 눈의 진실과 환상
니콜라스 미르조에프 지음, 임산 옮김 / 홍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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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유럽인 학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한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언어란 도구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쓰이는 도구인 언어 또는 기호(이책이 대상으로 하는 시각적 기호)는 도구와 같을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메시지에 대해 기호는 임의적 (소쉬르의 말에 따르면) 또는 우연적이다. 그러므로 기호와 메시지의 관계는 (이책의 용어에 따르면) 유사성의 원칙이 아니라 표상의 원칙을 따른다.

문제는 그림이나 사진과 같이 기호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시각기호의 문제이다. 이책의 논리적 전제는 시각기호도 기호이기 때문에 메시지와 기호는 유사성의 원칙이 아니라 표상의 원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원근법이 태어날 때부터 전개된 것이다. 그러나 시각문화의 외연이 미술이 사진을 거쳐 영화, 그리고 가상현실로 확대되면서 시각기호 역시 다른 기호들과 마찬가지로 유사성이 아니라 표상의 원칙에 따른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가상현실과 같은 경우 어떤 원본과도 유사한 것이 아니다. 기호 자체가 현실을 표상하고 있는 그 자체가 현실이다.

이상이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근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별스럽지도 않은 퓨평범한 주장을 하기 위해 저자가 쓰고 있는 텍스트는 지독하게 현학적이다. 유럽인 학자들의 대부분을 생각할 때면 인간적으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글을 보면 그 인격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글은 독자가 무엇을 알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다. 왜 글을 쓰는지 아주 궁금해진다. 이책에는 수많은 현학적인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나는 이정도로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은 심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파악하려면 엄청난 머리싸움을 해야한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도 건지는 내용은 극히 적다. 시간낭비다.

이책은 영상문화학에 관한 대학원 과정 교과서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 시절 많은 논문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코스의 텍스트로 채택된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경우 가급적 유럽인 학자가 쓴 것은 내용이 어떻든 배재했다.

왜냐하면 유럽인이 쓴 글은 도대체가 알아먹을 수가 없게 쓰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학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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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 - 유대최강상술
데릭 윌슨 지음, 이희영 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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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홉스봅의 말을 빌리자면 '혁명의 시대'에 태어나 '자본의 시대'에 권력과 부의 제국을 세우고 '제국의 시대'와 함께 사그라져간 금융가문의 이야기이다. 

로스차일드가는 18세기말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게토의 허름한 잡화상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와 빈, 파리, 런던의 금융업을 지배하면서 19세기 세계의 중심이엇던 유럽을 지배한 금융가문의 역사를 쓰고 있다. 

로스차일드에 관한 책을 주문했을 때 기대한 것은 당시 어떻게 로스차일드가문이 금융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세기 금융업이 자본주의를 지배하게 된 과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책에서 그러한 경제사 또는 가문의 경영사는 배경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책이 다루는 것은 천하디 천한 유대인 가문이 명문거족으로 부상하면서 세대간의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가문의식이 어떻게 생기고 가족구성원들을 구속했는가와 같은 가족사이다.  

일본 속담에 입맛은 부자 3대가 가야 얻어진다고 한다. 상스럽다는 말까지 들었던 1세대와 2세대의 창업세대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성공이란 목표를 쫓아 모든 것을 걸었던 세대이다. 그러나 그 후의 세대들은 부유한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서 안목을 키우고 취향을 타고났다. 그들에겐 창업세대와 같은 성공을 향한 열정은 없었다. 이미 그들이 태어났을 때 그들은 세계최고의 부와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은행업이란 사업은 의무였고 지배층으로서 누리는 것을 갚아야 하는 의무엿다. 그들에게 은행이란 사업은 가문과 그들의 가문이 중심으로 있는 나라를 위한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가문의 이름을 명예롭게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받아들이는 자손과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이 주어진 것을 누리며 살고 싶어하는 자손으로 나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의무의 중압감에 눌려 삐뚤어져가는 자손들... 

이책은 명문가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이어지며 그 가문의 자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다룬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200년이 넘는 긴 시간을 다루기 때문에 개개인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성실했다. 천재엿다는 형용사가 주어진다면 그 근거가 되는 구체적 사실의 지지없이 그냥 선언되는 서술이 많다. 로스차일드가문이 금융업자답게 입이 무거웠고 권력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비밀주의가 몸에 밴 가문이었다는 점이 크다. 사료가 될 만한 것은 상당량이 사후 소각되었다. 그러나 인물이 어떻 사람이엇는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둘째 가문의 사람들에게 의존한 점이 많고 그들과 인터뷰를 거치면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저자와 서술대상의 거리유지에 실패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긍정적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물론 독실한 유대교도였던 가문사람들의 성향상 높은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자선사업을 벌였던 것이 위선은 아니었던 점에서 긍정적인 서술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사업이란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사업상 관여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는 도덕의식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로스차일드가를 공격하는 비방이 많았던 것은 질시도 있었겠지만 근거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단지 비방과 질시로만 처리한다. 

800페이지를 읽는데 퇴근후 시간만 들여 3일만에 읽었다. 그러나 분량에 비해 건진 내용은 적다. 최상류층 가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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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은반짝 2009-07-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깔끔하면서도 핵심은 콕콕 찌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빠빠라기 - 남태평양 티아비아 섬 투이아비 추장의 연설문
투이아비 원작, 유혜자 옮김 / 동서고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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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처음 본지도 20년이 가까워진다. 그 시간동안 여러번 이책을 읽었다. 사모아의 추장말마따나 지친 눈빛을 한 빠빠라기가 되었다고 느낄 때면 이 얇으나 두터운 지혜를 담은 책을 펴고 웃으며 다시 힘을 찾았다.  

이책의 저자인 사모아의 추장은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와 그가 본 황당한 문명을 다른 문명의 시각에서 서술한다. 그가 본 문명을 설명하는 언어는 당연히 그의 문명의 언어이다.  그의 글에서 구두는 쓸데없이 반짝이는 발껍질이 되고 아파트는 돌상자가 되고 동전은 둥근 쇠붙이가 된다. 그의 글에서 낯설어지는 것은 물건들만이 아니다. 노동, 근면, 부, 지식, 예절, 신앙 등 문명의 가치들 역시 낯설어지며 의문시된다.  

다른 문명의 눈에 보인 다른 문명은 이해될 수 없는 것이고 추장 역시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니 혐오한다. 그를 통해 우리를 보면 내가 왜 그런 것에 매달리며 아옹다옹하고 있는가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힘이 난다. 물론 내일이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지만 그런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책은 충분한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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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esis (Paperback, 50th, Anniversary) -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
Erich Auerbach / Princeton Univ Pr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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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요점은 제목에 있다. 미메시스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틴어로 반영을 말하는 미메시스는 맑시스트 미학이론의 기본전제이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메시스는 텍스트이 내용에서 반영을 찾았다. 그런 접근의 대표적인 저작은 아놀드 하우저의 'The Social History of Art' 나 루카치의 미학이론등이다. 그러나 그런 접근을 취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드물다. 미메시스의 입장을 취하는 대안적 접근으로 대표적인 것은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이다. 아도르노의 음악이론은 음악학에선 고전에 속한다. 아도르노는 사회가 반영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 말한다. 음악과 같은 추상적 예술에선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맑시즘과 모더니즘이 결합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논점은 다른 예술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우얼바하의 접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도르노와 마찬가지 전제에서 서구문학을 그리스시대, 성경시대부터 19세기작품까지 분석해 낸다. 그의 접근이 위대한 것은 이론만이 아니다. 그의 접근은 철저하게 텍스트분석에 머문다. 텍스트의 형식을 당시와 연결시켜 생생하게 그려준다. 글 자체도 아주 재미있는 문학작품을 읽는 것같다. 아름다운 책이다.

다음은 내가 아마존에 포스팅했던 리뷰이다

Others reviewd this legendary book already. But I have a point to tell: Mimesis not as content but as form. Mimesis, the title of the book comes from latin word, reflection. Traditionary, mimesis is used to analyse the content of text. You can see that kind of approach in Arnold Hauser's 4 volumes of 'The Social History of Art' or Lukacs's aesthetic theory. But that kind of approach mainly inspired by Marxism went out of mode. Alternative approach is the one of Adorno's 'sociology of art'. Adorno's analysis of music is distinct. He insisted that we could detect the totality of society not in content but in the form of text. He himself is the composer and pupil of Schonberg. So he advocated Modernism in this light. At first glance, Modernism could not match to Marxism. But persausively, Adorno showed the opposite case. You can see that kind of approach in the textof Frederic Jameson's 'Marxism and Form'.
Auerbach's approach should be captured in this line. He analysed various Western literary text in the light of form and the social structuer of that time. His point is that we could detect the social structure of that time or totality, in the term of Marxist tradition, not only in content but also in form, or in Auerbach's term,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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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vage Mind (Paperback)
Levi-Strauss, Claude / Univ of Chicago Pr / 196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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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가 대중화된 것은 이책의 출판과 함께이다. 개인적으로는 구조주의의 논리를 싫어한다. 앞으로 50년후에도 구조주의를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금도 레비스트로스를 읽는 사람이 읽을까? 그러나 구조주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를 이해하려면 이책부터 시작하라. 실제 인류학 연구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어떻게 구조주의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아주 명료하게 볼 수 잇다. 인류학의 사례를 통해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읽기도 아주 쉽다. 그리고 적어도 이책에서 제시된 논리는 구조주의란 유행을 떠나 아직도 유효하다

다음은 내가 아마존에 섰던 리뷰이다.

hmmmm..... I can't see why this book has got such humble and unskilled review till now. This book is the easiest material to understand the tenet of structuralism. Personally I don't like the disposition of structuralism at all and I suspect whether in 50 years, anybody remember that kind of school existed at all except writers of history of philosophy.
Anyway, this book made structuralism floating on the vogue with its ease to understand and constructed the intellectual fashion of structuralsim which dominated the whether of discourse in human science in the 1960s and 1970s. Yep. now nobody read Levi-Strauss, even anthropolgists don't read his books. But if you want to understand structuralism, post-structuralsim and postmodernism, you'd better begin with this book for it's the easiest and fun to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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