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 - 북핵 문제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게임이론이 보여주는 미래 설계도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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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합종책으로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소진의 유세술은 7단계로 정리된다.

“첫째 단계는 열지이예(悅之以譽)이다. 먼저 상대방을 칭찬하여 기분을 띄워준다. 소진이 유세한 내용을 보면 ‘나라의 강성함과 대왕의 현명함’이라는 말이 자주 반복된다. 어느 나라 어느 왕을 대하든 그 나라를 칭찬하고 그 군주를 높여주는 것으로 말문을 여는 것이다.

둘째 시지이성(示之以誠). 상대방에게 정성을 보여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여는 책략이다. 소진은 말 하나하나를 섣불리 하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대왕을 위해 슬퍼하나이다’ ‘대왕을 위해 부끄러워 하나이다’ ‘대왕을 좀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생각해준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는다.

셋째 명지이세(明之以勢). 지세와 군사력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자신의 위치를 객관저긍로 파악하도록 한다. 이 책략은 상대가 자신을 과소평가하여 위축되어 있을 때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고 상대방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는 정신을 차리게 하는 효과가 잇다.

‘천하에 진나라에 대하여 초나라만큼 위협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초가 강해지면 진은 약해지고 진이 강해지면 초가 약해집니다. 이 두 세력은 절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정세분석을 말했을 때 초 위왕은 합종책에 동의하는 결단을 내렸다.

넷째 유지이리(誘之以利). 이익으로 유혹하는 책략이다. 합종에 동의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은근히 이 이권에 탐을 내도록 유도하여 동의하게 만들었다. 조나라 군주 숙후가 목욕을 즐기며 휴양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소진은 숙후에게 합종에 동의하면 한, 위, 중산 나라들이 휴양지 시설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리고 초나라 위왕이 음악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소진은 각 나라의 멋있는 음악과 미인들이 후궁에 가득찰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다섯째 협(脅之以害). 이익으로 유혹한 다음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해가 미칠 것이라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밝혀 은근히 협박을 했다.

‘대왕이 진을 섬기면 진은 반드시 의양과 성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금년에 그것을 떼어주먄 내년에 또 다른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떼어줄 땅이 더 없는데도 진은 계속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다 줄 것이 없게되면 진은 쳐들어올 것입니다. 진나라를 섬겨 땅을 떼어주어도 기다리는 것은 파멸 밖에 없습니다.’

여섯째 격지이언(激之以言). 자존심을 건드려 격동시키는 책략이다. ‘이제 대왕이 서면하여 진나라를 섬기니 바로 쇠꼬리가 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로 한나라 선혜왕을 분격시키자 왕은 칼을 뽑기까지 하며 진을 더 이상 섬길 수 없다고 고함을 쳤다.

일곱째 역배이의(力排異議). 상대방이 결단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책략이다. 일이 잘 마무리되려는 이 지점에서 방심하거나 긴장을 풀어버리면 상대방의 결단을 확고하게 해주지 못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진은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다른 생각이 스며들어 결단을 망설이는 눈치가 보이면 그 스며든 생각의 정체를 파악하여 힘써 물리쳤다.” (조성기)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는가 보시오’
;혀요? 혀야 잘 붙어 있지요.’
‘그러면 충분하오’

종횡가로 불리게 된 소진과 장의는 합종과 연횡으로 세치 혀 위에 천하를 올려놓았다. 그들의 유세술은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방의 생각과 바라는 바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중시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비(飛: 상대의 명성을 띄워주는 것)의 방법으로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내고 겸(箝: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상대를 통제하는 것)의 방법으로 상대를 제어한다.”

소진과 장의의 스승인 귀곡자가 한 말이다(‘귀곡자’ 비겸편) 비겸술은 상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상대는 호의로 받아들여 원하는 대로 끌려오게 된다. 비겸술의 핵심은 상대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가지고 싶어하는 것, 부족한 것을 정확히 파악해 비위를 맞추어 상대를 제어하는 것이다. 소진의 유세술은 비겸술의 구체적인 절차이다.

비겸술은 인간을 어둡게 본다. 인간은 오직 이익만으로 움직인다고 본다. 마치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계산하는 기계이다.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 손익계산에 따라 이익은 늘리고 손해는 줄여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따르는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는 계산 기계이다. 그 이익이 무엇인지는 기계마다 다르다. 그러나 손익을 계산한다는 점에선 모든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계산에 사용하는 함수(function)를 알 수 있다면 행동은 예측할 수 있다. 이책의 저자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예측이다.

게임이론은 인간을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같다고 본다. “게임이론은 아주 단순한 생각, 즉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말한다.”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단순한 거래만 할 뿐이다. 가격이 맞으면 사거나 팔고 아니면 사지 않거나 팔지 않는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사이에는 우정도 사랑도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며 거래할 뿐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에서 인간은 거래 이상의 관계를 맺는다. 상대의 행동에 따라 나의 행동이 달라지며 나의 행동에 따라 상대의 행동은 다시 바뀐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마찬가지로 게임이론의 인간 역시 계산하는 기계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머리 속에 어떤 함수(게임이론에선 전략이라 부른다)를 갖고 있는가를 알면 그들의 행동을 계산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으면 예측할 수 있다.

“게임이론의 핵심에는 냉혹하고 무자비하고 자기 이익을 중심에 놓는 인간관이 있다. 선한 사람이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다.” 게임이론에서 인간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 게임이론의 세계에서는 그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개인적인 손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게임에서 약속은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은 전략의 일부다. 약속은 게임 참가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만 지켜진다. 약속과 이익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배신하고 말을 번복하고 속임수를 쓴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물론 그들은 엄포와 속임수의 대가가 비싸다는 것은 안다. 따라서 그들은 그로 인한 이익뿐 아니라 비용도 고려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방법이긴 하지만 비용이 커지게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정직을 권장하는 한가지 길이다.”

게임이론은 인간을 합리적이라 본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함수가 있다는 말이다. “합리성의 기준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아주 어린 아이나 정신분열증 환자뿐이다.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사람과 이치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말이나 행동이나 희망사항에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려는 열의가 없다. 게임이론은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것을 싫어한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말이다.”

사람의 심리를 모델링할 논리가 세워졌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경제학은 적어도 시장에선 인간의 행동은 뻔하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도대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동기가 무엇이겠는가? 그렇기에 경제학에선 동기를 인센티브란 말로 재정의한다. 이제 인간의 심리는 뻔해지고 계산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 적어도 시장에선. 게임이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이익이 다른 모든 동기를 압도하는 시장이나 정치에 관한 한 인간은 뻔해진다. 이제 책사의 논리가 세워질 차례이다.

책사는 예측자이다. 그런데 무엇을 예측한다는 말인가? 인간은 홀로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한다. 그러나 행위자의 동기를 계산할 수 있으면 그들의 상호작용도 계산할 수 있다. 계산할 수 있으면 수리 모델링이 가능하고 컴퓨터로 계산이 가능하다. 저자는 상호작용의 모델링을 다음과 같은 가정 위에 세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믿을 만한 예측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1.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권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모두 알아내라. 마지막 결정권자에게만 관심을 쏟지 마라.
2. 1번의 경기자들이 서로 사적으로 대화할 때 각각 어떤 정책을 지지하는지 즉 자신이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는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평가하라.
3. 경기자들 각자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이슈인지 즉 그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군침 도는 이슈인지를 어림잡아 보라. 이 문제가 제기되면 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올 정도로 관심이 많은가? 아니면 다른 긴급한 문제가 생기면 이에 대한 논의는 미루고 싶어 하는가?
4. 경기자들에 대한 상대적 평가로서 각 경기자는 이 이슈에 관해 다른 경기자들의 입장을 바꿀 만한 설득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이것들만 알면 된다. ‘이것이 전부라고?’ 역사는 어쩌라고? 문화에 대해서는? 성격은 몰라도 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는?”

저자는 그런 것은 몰라도 방정식을 만들 수 잇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랜 동안 자신의 전공인 남아시아 정치를 떠나 컨설팅을 해왔다. 이책에 소개되는 저자의 컨설팅 사례들만 보면 이란의 정치지형, 이사회 선거, 북핵 해법, PL 소송, 중동평화 프로그램. 기업지배구조 등등

분야가 어떻건 상관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경기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와 그들 간의 역학관계를 알면 모델링은 가능하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 두가지라는 가정하에서 작업한다. 한 가지는 그들이 옹호하는 선택에 최대한 가까운 결정이다. 두번째는 명예, 즉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타인들로부터 인정받는 데서 오는 자아의 만족감이다.”

이제 게임이론과 비겸술이 만났다. 최소한 저자가 컨설팅해온 정치와 경영의 분야에선 경기자가 어떤 이익과 명예를 원하는가를 알면 게임 끝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인센티브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경영진에게 잘못된 인센티브를 주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할 섯이다. 올바른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그들은 (시민적 덕성의 화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들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옳은 일은 한다.” 게임이론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게임이론에서 본 인간은 인센티브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벨기에 왕이었던) 레오폴드를 기억하는가? 그는 벨기에에서는 선한 인센티브를 가졌고 선정을 베풀었다. 콩고에서는 흉악한 인센티브가 있었고 악정을 행했다.”

문제는 선의가 아니라 인센티브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분쟁은 끝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센티브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평화 대신 땅, 땅 대신 평화란 중동에서든 어디서든 실패하게 되어 있는 공식이다.” 그런 것으로는 폭력을 끝낼 수 없다. 상대가 지킬 약속을 하고 있다는, 그것이 믿을만한 약속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평화 대신 땅이든 땅 대신 평화든 게임이론에서 시간불일치라 불리는 문제에 시달린다. 내일은 상대편이 같은 방식으로 호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한쪽이 상대에게 철회불가능한 이익을 준다. 그러나 거의 어김없이 철회불가능한 이익을 얻은 상대는 약속을 지키기 전에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이쪽을 이용한다. 평화를 준다는 약속을 믿고 땅을 포기하면 상대는 평화가 허용되기 전에 더 많은 땅을 달라는 요구를 반드시 할 것이다. 땅을 나중에 준다고 하고 평화를 약속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평화를 약속한 쪽에서 성실성을 보이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으면 땅을 준다던 쪽은 마음 놓고 배신할 수 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대가 이제는 쥐고 있을 수 없는 땅을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그럴 리스크가 있다면 상대를 믿을 수 없다. 상대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유혹에 저항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북핵문제도 교착상태에 놓여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대편이 무장을 해제하면 이쪽에서 약속을 뒤엎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에게 핵 시설을 해체하라는 요청은” 소용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핵 프로그램의 기능을 억지하라는 협상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도록 할 위협수단을 가질 수 잇기 때문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선행은 좋은 반응을 불러올 것이라는 믿음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있다. 그런 낙관주의는 현실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탐욕과 공격성을 불러올 때도 많다. 게임이론은 인간 본성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예상대로 샤론의 낙관주의는 실패햇다.” 신뢰를 쌓고 싶으면 신뢰가 필요없는 신뢰관계를 만들어야 햇다고 저자는 본다.

그러므로 게임이론의 입장에서 인간은 모두 같다. 인간은 인센티브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컴퓨터로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존재이다.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예상하기 위해 수학처럼 추상적인 것에 의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화학자가 산소와 수소가 미국에서 혼합되는 방식이 중국에서 혼합되는 방식과 다르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터무니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들은 사하라의 팀북투나 오스트레일리아(또는 아일랜드)의 티퍼래리에서는 얼마든지 상이한 원리에 입각해 결정을 내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입자와 좀 다르기는 하겠지만 공통점이 없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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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 타인과 함께 하는 가장 이기적인 생존 전략, 포용
정현천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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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독후감이다. 저자가 읽어온 책들의 내용을 정리한 노트라 보면 된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 정리한 내용이 하나의 주제로 묶인다는 점이다. 이책은 관용 또는 포용에 대해 말한다.

요 몇 년동안 포용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왔다. 이유는 혁신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는 것과 같다. 환경변화가 심해지면서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혁신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럼 혁신은 어떻게 가능한가? 혁신에 대한 답은 혁신에 대한 책만큼이나 많을 수 있다. 혁신이란 개념 자체가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 다양성이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다는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수가 없다. 환경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모를 때 조직 내에 다양성이 있다면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용은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조직 내에 다양성을 갖추려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책은 다양한 책들을 요약하면서 포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로마가 제국이 된 것은 적도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정책 때문이엇다 (로마인 이야기), 세종대왕의 정치력은 흠보다는 능력을 우선하는 인사정책이 핵심이었다, 별볼일 없는 유방이 뛰어난 용장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린란드의 바이킹이 멸망한 것은 환경을 받아들여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 균, 쇠), 링컨의 지도력 (권력의 조건) 등등

포용이나 다양성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이책처럼 구성된 경우는 처음이다.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도 책을 만들 수 있구나 란 생각이 든다. 남의 책으로 자기 책을 만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많은 이야기들이 소개되니 꽤 재미있다. 저자가 그 두꺼운 책들을 요약해 정리하는 솜씨가 좋기 때문이다.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 중 읽지 않은 책이 언급되면 아 그책이 그런 내용이구나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나름 의미가 있고 읽은 책이 언급되면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어 나름 의미가 잇다.

그러나 포용에 관한(혁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책을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은 다양성의 쓸모만 말하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의 예를 들어보면 ‘로마인 이야기’나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는 세계제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관용 때문이었고 관용이 사라지면서 제국이 무너졋다고 말한다. 반박하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인가 무너지기 시작했기에 포용하지 않은 것인가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오늘날 이슬람문명은 불관용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전성기 시절의 이슬람문명은 어느 문명보다 관용이 넘치는 곳이엇다. 이슬람문명이 그렇게 변해간 것은 관용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문명이 쇠퇴하면서 관용할 수 없게 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관용은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 다양성은 다른 말로 하면 무질서라 할 수 잇다. 무질서를 용인할 수 잇는 것은 그만큼 시스템에 질서가 잡혀있기 때문이며 무질서를 시스템에 받아들여 소화해낼 여유가 잇기 때문이다. 포용도 실력이 있어야 할 수 잇다.

그러나 관용, 포용, 다양성에 대해 말하는 책들을 보면 그 가치의 좋은 점만 말할 뿐 그 가치를 실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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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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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발칙할 것도 엉뚱할 것도 발랄할 것도 없다. 이책의 영어 원제는 Made in America는 번역서의 제목보다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이책의 내용은 원제가 말해주듯이 영어가 미국으로 옮겨와 어떻게 변형되었는가를 다룬다. 작은 섬나라에서 쓰이던 언어가 땅도 더 넓고 자연도 다른 곳에 맞게 달라진 이야기를 다룬다.

언어 역시 도구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그 환경에 맞춰 도구 역시 달라져야 하는 법이다. 처음 신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전에 살던 곳에선 볼 수 없엇던 것들을 보았고 그것들을 수용하기 위해 언어를 적응시킬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달라진 자연에 맞춰야 했지만 이후에는 영국과는 달라져 버린 사회, 정치, 경제에 따라 언어도 달라져야 했다.

이책은 어떻게 영어가 미국이란 토양에서 달라져갔는지를 주제로 삼는다. 그러나 그렇게 언어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미국의 역사를 다룬다는 말이 된다. 이책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잇다.

새롭게 추가된 단어들과 기존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런 상황에 부딫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사나 경제사 또는 사회사를 중심으로 쓰여진 다른 미국사와는 달리 새로운 현상을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더 생생하게 엿볼 수 잇다.

저자가 원래 의도한 것은 언어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그 언어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사를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더 생생하게 엿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책에서 저자의 의도는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라면 이책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다. 영어도 친숙하고 미국사도 학교에서 배워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이다. 그런 배경지식이 잇는 사람에게 이책은 아주 재미있다. 아 내가 알고 잇던 것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구나 그게 원래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이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미국식 영어에 익숙하더라도 미국사에 대해 알고 잇더라도 외국인이 이 두꺼운 책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이게 왜 재미있는거지? 하고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도 어느 정도 상식선의 지식만 있다면 이책은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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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
김기수 지음 / 살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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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련 서적이 쏟아진다. “중국이 너무 급작스레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반응은 우선 놀라움이고 놀라움 다음에는 100% 때리기 아니면 100% 찬양 둘 중 하나이기 쉽다.

1980년대 일본이 부상했을 때가 그랬다. ‘Japan is No.1’아니면 Japan bashing(일본 때리기) 둘중의 하나였다. 지금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을 찬양하는 책 아니면 중국붕괴론이다.

이런 경우에 진실은 중간 어디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 극단론이 나오는 것일까? 첫째는 갑작스러움에 대한 당황이고 둘째는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에 관해서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이웃이고 오랜 애증관계가 있는 한국에서조차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그리고 사정은 중국 역시 다르지 않다. 세계는 물론 이웃인 한국에게도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이책은 그런 가깝고도 먼 이해하기 힘든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말한다. 우선 한국인들이 느끼는 배신감의 이유를 설명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들은 중국을 친구로 대했다.” 그러나 호의는 “조공을 바쳤던 국가가 뭐 그리 말이 많은가” 식의 행태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이책의 제목대로 저것들이 왜 저러나 아주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중국의 태도에는 충분한 역사적이면서 국제정치학적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왜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본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을 때는 한반도에 힘의 공백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망”으로 한반도에 힘의 진공이 생겼고 그 공백을 미국과 소련이 메웠고 그후 북한과 남한이 메운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과 국경을 맞댄 북한에 대해 남한의 힘의 공백이 생겼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듯 국제정치에서도 진공은 메워져야한다. 힘의 균형이란 논리에 따라 한국전쟁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단 휴전이 된 후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1990년 이후 힘의 공백이 다시 생겼다는 것이다. 소련이 소멸하면서 북에 힘의 공백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련 붕괴 직전 북한과 소련의 총 무역액은 25억 6,300만 달러였다. 북한 전체 대외무역의 56%에 해당하는 절대적인 규모였다.” 그러나 양국의 경제관계는 소련이 사라진 후 사실상 단절되었고 “북한 대외 경제관계의 60%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국전쟁 전 남쪽의 공백을 한국이 메울 능력이 없었던 당시 현실이 한국의 멸망 가능성으로 나타났듯이 북한도 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북한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하면 어떨까? 두가지 문제가 있다. 북한경제의 명줄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이 쥘 가능성이 높다. 둘째 독재체제가 유지될 수 있느냐이다.

가능한 것은 중국이 소련 대신 공백을 메워주는 것이다. 중국은 그럴 능력이 잇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완충지대로 전략적 이익이 걸려 있다. 북한이 망하면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유의 2/3, 식량의 1/3을 지원해 명은 붙여준다.

그러나 황당한 것은 “북한의 의사를 무시하고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이다. 한국에선 경제적 실리를 북한에선 전략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것인데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북한과 수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마 힘들 것이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한민족 모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흔들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북한으로선 중국을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힘의 진공은 스스로 메워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핵이 유일한 답이 된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공백 메우기를 핵무기를 통해 일부 환수했으모로 핵부기는 곧 북한의 생종이라하는 등식이 성립된다. 핵무기의 포기와 생존의 중단은 동격임을 알 수 잇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세계최강국인 미국, 그리고 아시아 경제강국 한국과 일본의 이해를 건드렸으므로 북한은 대가를 치러야만 햇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그것인데 여기에 북한을 경제적으로 살릴 의도가 없는 중국의 이해가 합쳐지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빈사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러한 중국의 양다리 전술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 이를 이해하려면 중국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한 국가의 대외정책은 역사적 경험을 이해해야만 알 수 있다고 본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대외관은 “서양에 대해서는 콤플렉스, 과거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변국에 대해서는 수치심이 뿌리내렸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심리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중 콤플렉스가 중요하다. 정상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판단과 행동을 유발하는 동인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비굴할 정도로 위축되고 그러면 안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과잉반응 시쳇말로 ‘오버’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 예다.”

저자는 그 예로 19세기 독일을 든다. “통일 전 독일은 무려 300개 공국으로 쪼개져 있었다. 힘을 모을 수 없으니 근대 중국처럼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영국과 프랑스에 뒤쳐졌다. 그러니 콤플렉스는 독일민족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것이 영국과 프랑스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독일인의 뿌리 깊은 콤플렉스가 오버한 결과라고 보는 이유이다.”

도광양회, 화평굴기란 말은 결국 “지금은 약해서 고개를 숙일 것이니 남들도 나를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과거 중화제국에 비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인식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외교기조는 마오쩌둥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중국의 외교노선은 ‘우리가 행창하는 경우는 없으니 제발 우리를 건드리지는 말라’는 식의 수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수세적인 것은 중국이 불리한 경우이다.

티벳 점령, 인도와의 국경분쟁부터 최근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까지 중국은 상대가 약하거나 저자세라고 생각하면 언제든 돌변한다.

“중국이 주변국을 다루는 방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덩치가 커서 중국과 정면으로 경쟁할 수 잇는 국가에 대해서는 일단 정면으로 맞서는 척하고 뒤로는 이이제이 정책을 구사는데 소련과 인도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덩치는 작으나 똑똑하고 끈질겨서 요주의 대상인 국가에게는 분리/지배정책(divide and rule)을 구사한다. 한국과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아주 작아 힘이 별로 없는 국가는 무자비하게 점령하는 정책을 쓰는데 티벳이 대표적이다.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척한다.”

이런 중국의 전략에서 북한은 중국에게 순망치한 즉 완충지대로서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북한의 강성함 역시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겨우 생존할 정도의 지원만 제공함으로써 종속시키면 한국과 미국에 의한 통일은 막을 수 잇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완충지대의 보존에는 큰 문제가 없는 셈이다. 물론 계산에는 한국과 미국의 북침이 불가능하다는 가정도 내포되어 잇다.

북한의 생존이 보장되는 한 즉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지 않는 한 양다리 전법을 구사하는 데는 아무 장애요인이 없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순망치한에 기초한 양다리 전법을 구사하고 잇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의 복잡한 전략이 제 발목을 잡기 시작햇다고 저자는 말한다. 최소한의 지원이란 뒤집으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없다는 말이다. 죽이려 덤비지 않는한은 북한이 중국의 말을 들어야 할 일은 없다. 그러므로 온갖 사고를 쳐대는 북한을 제어도 못하면서 싸고 돌아야 하는 중국은 막대한 외교적 손실을 입었다.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자극함으로써 두 국가가 미국에 더욱 밀착하는 현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센카구 열도에 대한 중국의 공세적 입장이 더해지면서 반북을 넘어 전략적으로 반중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지속하고 북한 감싸기를 계속하자 파장은 더욱 번져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나아가 러시아까지 반중의 대열에 가세하기 시작햇다. 북한으로부터 얻게 되는 전략적 이득을 지키기 위한 대가로 동아시아의 전체 전략구도에서는 손실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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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일본 - 민주당 정권, 신자유주의인가? 신복지국가인가?
와타나베 오사무 외 지음, 이유철 옮김 / 메이데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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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도, 낭비를 없애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것들이 무너졌습니다.
모자가정의 아이들은 수학여행도, 고등학교도 갈 수 없습니다.
노인은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매일 목숨을 끊는 사람이 100명이 넘습니다.
이 현실을 방치하고 콘크리트 건물에는 거액의 세금이 투입됩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치가 있습니까?
저희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이 소중한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관료들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눈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수직으로 이어진 이권사회가 아니라 수평으로 이어진 ‘유대’가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움되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감동적인 글이다. 2008년 총선으로 일본의 55년 체제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55년 체제가 끝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선거에서 자민당이 무너진 이유는 민주당의 선거 매니페스토가 말하는 일본의 현실 때문이다.

일본이 학교도 갈 수 없고 병원도 갈 수 없고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은 90년대부터 시작되어 고이즈미 수상 집권기에 정점에 달했던 ‘구조개혁’ 때문이다.

구조개혁은 일본 엘리트들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더 이상 일본모델은 통하지 않는다. 구조개혁은 일본모델의 개혁이었다.

일본의 구조개혁 어젠다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비슷하더라도 그 개혁의 대상은 달랐고 개혁의 결과와 영향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의 전후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복지국가는 성립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사회를 이끈 것은 기업 사회와 자민당 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형국가였다. 일본 대기업은 노동운동을 기업 안에 봉쇄하였다. 그 대신 기업 사회는 노동자를 ‘종신고용’, ‘연공임금’으로 신규채용부터 정년퇴직까지 평생동안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불황으로 해고되는 일도 없었다. 기업의 우산 아래 실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연공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교육이나 개호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노후는 퇴직금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안일함’으로 공적 복지에 관심이 없었다.

기업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당보다 기업의 번영에 일조하는 자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계급이 늘어도 노동자 정권을 만들지 못햇다. 오히려 이들은 자민당 정권을 안정시켰고 이것이 경제성장의 지렛대로 작용했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증가하는 세금 수입은 도시의 노동자를 위한 복지 대신 지방의 공공사업에 투입되어 자민당의 지지표를 사는 데 쓰였다. 자민당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재분배하면서 지방에 일과 고용을 창출했다.

“기업의 우산에 더해 지방 이익 유도라는 우산이 구축된 것이다. 일본에서 그 결과 유럽 복지국가가 정비한 사회보장제도가 기업과 지방이라는 우산으로 대체되었다. 즉 사회보장을 싼 값으로 기업이 대체한 것이다. 기업 사회+자민당의 이익유도형 정치+빈약한 사회보장”이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의 기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동안 누적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초장기의 디플레이션, 세계화의 압력으로 잃어가는 경쟁력은 일본모델을 감당할 수 없는 사치로 만들었다.

“우선 많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떠안은 기업 사회가 세계화속에서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력의 유연한 배치를 요구하는 기업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다. 게다가 기업의 안정과 기업우위 정첵을 보장해온 자민당 정치도 이중의 불만 대상이 되었다. 하나는 그 이익유도형 정치가 재정을 부풀려 기업에 대한 부담 증가로 오고 결국 그 부담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엇다. 다른 하나는 지방에 대한 보조금, 공공사업 투자 없이 유지하기 힘든 비효율적인 지방산업이나 농가를 유지시키면서 발생한 기업 경쟁력에 대한 부담과 이에 대한 불만이엇다. 빈약하고 값싼 사회보장제도도 급속한 고령화로 비용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불만이 쌓인 재계는 개혁을 요구하며 ‘글로벌국가’를 주장한다: “현재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이며 일본이 세계경제의 중심국가들 중 하나로 연명하려면 다국적 기업에게 선택받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임금, 법인세, 사회보장부담 등 다국적기업 입장에서 ‘고비용’ 경제구조에 대한 개혁”이었다.

노동의 저항도 미미하고 복지제도랄 것도 미미한 일본에서 그런 개혁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노동운동과 복지국가라는 벽 대신 다른 저항운동이 등장하여 개혁의 걸림돌이 되엇다. 다름 아닌 자민당 정치가 그것이었다. 자민은 머리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지방의 이익유도형 정치가 자민당 의원들의 생명줄이엇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즉 개발형 정치가 구조개혁 정치의 ‘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흐지부지 시늉만 할 뿐 개혁은 진척이 없었다. 민주당은 재계의 후원을 받으며 탈개발주의를 내세웠다. 민주당의 존재의의를 반자민당 노선에서 찾은 것이다. 자민당 노선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고 자민당의 지지부진한 개혁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대도시 중산층이 민주당의 지지층이 되었다.

“민주당 창당 이후 이들의 강한 지지 기반은 대도시의 중간층, 대기업 정규직, 관리직이었다.” 이들은 대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며 “자신들이 낸 세금이 지방에 빼앗겨 자신들의 삶에 환원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 중간층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개발형 정치 타파, 기득권 정치 타파라는 슬로건에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기업 경쟁력 회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답보상태인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기업/대도시와 이해관계가 다른 “지방은 자민당 지배에 있었다. 민주당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대도시 지역과 지방에서 이른바 정치 1번지라 불리는 현청 소재지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와 함께 정치지형이 달라진다.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바꿔 일본을 바꾸자’ ‘개혁없이 성장없다’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따라 개혁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표절’이라 비난했지만 누가 그런 것에 신경쓰겠는가?

“고이즈미 내각은 구조개혁을 통해 일본 사회의 세 기둥을 자르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기업 사회 구조개혁이 추진되었다.” 비용을 높이는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 확대되었다.

“고이즈미가 감행한 불량채권 처리도 기업 사회 해체를 촉진했다.” 불량채권을 정리하지 않은 채 10여년이 흐르면서 은행이 마비되었다. 금융의 마비를 풀려면 불량채권을 정리해야만 햇다. “그러나 은행의 융자 강제 회수와 융자 거부가 진행되면서 지방 산업, 중소기업은 강제적인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는 비효율 산업을 한번에 정리하는 동시에 대량의 노동력을 시장에 공급하여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화를 촉진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진면목은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의 해체였다. 고이즈미가 2001년에 ‘자민당을 부수겠다’고 선언한 것은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에 대한 정리 선언이었다. 이것이 ‘삼위일체개혁’이다.”

잃어버린 10년동안 자민당이 경기부양을 한다며 지역구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 교량을 만들고 미술관, 체육관을 지으면서 낭비한 돈은 쌓이고 쌓여 일본정부의 부채는 GDP의 2배에 가깝게 되었다. 이런 규모의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예산압박은 지방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공공사업 투자와 보조금 삭감이 단행되었으며 “사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세 기둥 가운데 사회보장제도의 구조개혁”으로까지 나아갔다.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은 잃어버린 10년을 끝낸다는 결의에서 나왔고 10년 동안 마비된 일본을 개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대기업 경쟁력 강화의 벽이었던 세 기둥이 한 번에 정리되면서 대기업의 수익률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의 고용과 사회보험을 지탱해온 세 기둥이 잘려나간 결과,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회 파탄이라는 모순이 폭발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아사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키타큐슈시에 세 명의 아사자가 나왔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구조조정으,로 기업으로부터 내쫓겼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기업으로부터 쫓겨난 비정듀직 노동자를 흡수해온 지방도 구조개혁으로 더는 일자리가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생활보호를 신청하지만 접수를 거부당하거나 일단 수급을 받아도 추ㅟ어ㅓㅂ지도에서 ‘퇴직’을 강요받으며 아사에 이른 것이다. 기업 사회와 지방의 우산 그 자체가 구조개혁으로 축소된 결과다.”

“저축을 할 수 없는 세대의 급증도 그 결과다. 1980년대 말 예금이 없는 세대는 3%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조개혁 10년 사이 23%로 늘었다. 구조개혁으로 예금을 야금야금 쓴 결과이다.” 무보험 세대도 마찬가지 결과이며 아동학대, 자살, 범죄 등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구조개혁의 모순이 사회적 위기를 가져온 것에 놀라며 노선전환을” 받아들인다. 사회적 위기 때문에 자민당은 지지기반인 지방의 반란으로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다. 자민당 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아베 내각이 붕괴하고 “자민당은 구조개혁 급진파가 퇴진하고 점진파가 권력을 차지”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손을 쓴 것은 고이즈미 구조개혁으로 무너진 사회보험의 구조개혁에 대한 제동이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아소 내각의 “신점진 노선 전환은 국민들의 환심을 가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정책의 내용보다 자민-공명 연립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을 강행한 자민당의 몰락을 보며 같은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노선을 선회한다. 오자와는 자민당에서 이탈한 지방의 표심과 노조의 손을 잡고 복지를 강화하는 정강을 내세운다.

민주당은 지방의 표를 얻은데 더해 자민당의 구조개혁의 미진함이 불만이었던 대도시의 표를 얻어 집권에 성공한다. (대도시 중간층은 고이즈미의 퇴진 이후 자민당이 “고이즈미가 추진한 개혁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자민당의 낡은 정치에 대한 반발과 고이즈미의 개혁에도 바뀌지 않는 자민당에 대한 환멸이 민주당으로의 회귀를 만들었다.”)

그러면 민주당은 일본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저자들은 그 방향이 애매하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그룹은 당 집행부로 이들은 신자유주의/자유주의파이다.

둘째 그룹은 오자와 그룹이다. 오자와는 이전까지 집행부와 마찬가지로 “자민당의 개발주의정치를 무너트린다는 점에서 일치”하였으나 오자와는 이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바꾼다. 자민당의 개발주의 정치 즉 족의원 정치에 능통한 그는 “구조개혁에 의해 버려져 자민당에서 이탈한 지방공장, 중소기업, 건설회사, 농가층을 그대로 민주당으로 흡수하여 지방의 자민당 지지기반을 무너트렸다.나아가 오자와는 자민당이 하지 못한 노조를 동원하였다. 렌고와도 연대하였다.” 결국 오자와에 의한 정책선회는 개발주의 정치와 다를 것이 없다.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의 민주당 버전이다. 오자와는 이미 고이즈미의 삼위일체 개혁이 지방을 망친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때문에 그 지방을 민주당 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방에 대한 자원 배분이 필요했다.” 오자와의 노선선회는 당의 머리인 집행부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두 그룹의 공방은 “기존 자민당 내 공방과 비슷하다. 그러나 민주당에는 셋째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민주당의 중견 의원 그룹이다.” 이들은 지역의 이익집단, 노조와 연대하며 구조개혁 정책에 반대해왔다. “이들은 중앙, 지방을 가리지 않고 구조개혁의 모순을 한 몸에 받았던 사회계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점이 이 그룹의 힘이다.” 이들이 앞에서 인용한 “매니페스토의 제작자이며 그 실현에도 힘을 쓰는 그룹이다. 사실 이 그룹이 민주당을 반구조개혁의 기수로 만든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의 ‘수족’이다. 이들은 당의 머리와 몸통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고 개별 정책에선 “전문가이지만 개개의 정책을 초월한 독립된 국가 구상이 없다.”

“머리는 개발형국가를 해체하고 관저주도체제, 지역주권국가의 신자유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반면, 몸통인 오자와파는 구조개혁으로 버림받은 지방의 이해실편을 위한 수단으로 자민당이 해온 개발형국가를 민주장이 대신하려고 한다. 즉 퇴보적 정치지향이다. 이에 비해 수족은 국민의 반구조개혁 목소리를 반영하여 왼편의 정치를 지향한다.수족은 명확한 국가의 상이 없어 피상적인 복지지향과 신자유주의 국가 구상이 공존한다.” 머리와 몸통, 수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당이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저자들은 “당에 꾸준히 압력을 가하는 미국이나 재계 또는 언론의 압력과 당조직 그리고 여러 운동의 역관계ㅔ에 달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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