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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일본 - 민주당 정권, 신자유주의인가? 신복지국가인가?
와타나베 오사무 외 지음, 이유철 옮김 / 메이데이 / 2010년 10월
평점 :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도, 낭비를 없애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것들이 무너졌습니다.
모자가정의 아이들은 수학여행도, 고등학교도 갈 수 없습니다.
노인은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매일 목숨을 끊는 사람이 100명이 넘습니다.
이 현실을 방치하고 콘크리트 건물에는 거액의 세금이 투입됩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치가 있습니까?
저희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이 소중한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관료들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눈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수직으로 이어진 이권사회가 아니라 수평으로 이어진 ‘유대’가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움되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감동적인 글이다. 2008년 총선으로 일본의 55년 체제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55년 체제가 끝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선거에서 자민당이 무너진 이유는 민주당의 선거 매니페스토가 말하는 일본의 현실 때문이다.
일본이 학교도 갈 수 없고 병원도 갈 수 없고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은 90년대부터 시작되어 고이즈미 수상 집권기에 정점에 달했던 ‘구조개혁’ 때문이다.
구조개혁은 일본 엘리트들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더 이상 일본모델은 통하지 않는다. 구조개혁은 일본모델의 개혁이었다.
일본의 구조개혁 어젠다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비슷하더라도 그 개혁의 대상은 달랐고 개혁의 결과와 영향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의 전후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복지국가는 성립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사회를 이끈 것은 기업 사회와 자민당 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형국가였다. 일본 대기업은 노동운동을 기업 안에 봉쇄하였다. 그 대신 기업 사회는 노동자를 ‘종신고용’, ‘연공임금’으로 신규채용부터 정년퇴직까지 평생동안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불황으로 해고되는 일도 없었다. 기업의 우산 아래 실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연공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교육이나 개호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노후는 퇴직금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안일함’으로 공적 복지에 관심이 없었다.
기업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당보다 기업의 번영에 일조하는 자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계급이 늘어도 노동자 정권을 만들지 못햇다. 오히려 이들은 자민당 정권을 안정시켰고 이것이 경제성장의 지렛대로 작용했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증가하는 세금 수입은 도시의 노동자를 위한 복지 대신 지방의 공공사업에 투입되어 자민당의 지지표를 사는 데 쓰였다. 자민당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재분배하면서 지방에 일과 고용을 창출했다.
“기업의 우산에 더해 지방 이익 유도라는 우산이 구축된 것이다. 일본에서 그 결과 유럽 복지국가가 정비한 사회보장제도가 기업과 지방이라는 우산으로 대체되었다. 즉 사회보장을 싼 값으로 기업이 대체한 것이다. 기업 사회+자민당의 이익유도형 정치+빈약한 사회보장”이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의 기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동안 누적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초장기의 디플레이션, 세계화의 압력으로 잃어가는 경쟁력은 일본모델을 감당할 수 없는 사치로 만들었다.
“우선 많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떠안은 기업 사회가 세계화속에서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력의 유연한 배치를 요구하는 기업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다. 게다가 기업의 안정과 기업우위 정첵을 보장해온 자민당 정치도 이중의 불만 대상이 되었다. 하나는 그 이익유도형 정치가 재정을 부풀려 기업에 대한 부담 증가로 오고 결국 그 부담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엇다. 다른 하나는 지방에 대한 보조금, 공공사업 투자 없이 유지하기 힘든 비효율적인 지방산업이나 농가를 유지시키면서 발생한 기업 경쟁력에 대한 부담과 이에 대한 불만이엇다. 빈약하고 값싼 사회보장제도도 급속한 고령화로 비용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불만이 쌓인 재계는 개혁을 요구하며 ‘글로벌국가’를 주장한다: “현재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이며 일본이 세계경제의 중심국가들 중 하나로 연명하려면 다국적 기업에게 선택받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임금, 법인세, 사회보장부담 등 다국적기업 입장에서 ‘고비용’ 경제구조에 대한 개혁”이었다.
노동의 저항도 미미하고 복지제도랄 것도 미미한 일본에서 그런 개혁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노동운동과 복지국가라는 벽 대신 다른 저항운동이 등장하여 개혁의 걸림돌이 되엇다. 다름 아닌 자민당 정치가 그것이었다. 자민은 머리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지방의 이익유도형 정치가 자민당 의원들의 생명줄이엇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즉 개발형 정치가 구조개혁 정치의 ‘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흐지부지 시늉만 할 뿐 개혁은 진척이 없었다. 민주당은 재계의 후원을 받으며 탈개발주의를 내세웠다. 민주당의 존재의의를 반자민당 노선에서 찾은 것이다. 자민당 노선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고 자민당의 지지부진한 개혁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대도시 중산층이 민주당의 지지층이 되었다.
“민주당 창당 이후 이들의 강한 지지 기반은 대도시의 중간층, 대기업 정규직, 관리직이었다.” 이들은 대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며 “자신들이 낸 세금이 지방에 빼앗겨 자신들의 삶에 환원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 중간층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개발형 정치 타파, 기득권 정치 타파라는 슬로건에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기업 경쟁력 회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답보상태인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기업/대도시와 이해관계가 다른 “지방은 자민당 지배에 있었다. 민주당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대도시 지역과 지방에서 이른바 정치 1번지라 불리는 현청 소재지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와 함께 정치지형이 달라진다.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바꿔 일본을 바꾸자’ ‘개혁없이 성장없다’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따라 개혁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표절’이라 비난했지만 누가 그런 것에 신경쓰겠는가?
“고이즈미 내각은 구조개혁을 통해 일본 사회의 세 기둥을 자르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기업 사회 구조개혁이 추진되었다.” 비용을 높이는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 확대되었다.
“고이즈미가 감행한 불량채권 처리도 기업 사회 해체를 촉진했다.” 불량채권을 정리하지 않은 채 10여년이 흐르면서 은행이 마비되었다. 금융의 마비를 풀려면 불량채권을 정리해야만 햇다. “그러나 은행의 융자 강제 회수와 융자 거부가 진행되면서 지방 산업, 중소기업은 강제적인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는 비효율 산업을 한번에 정리하는 동시에 대량의 노동력을 시장에 공급하여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화를 촉진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진면목은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의 해체였다. 고이즈미가 2001년에 ‘자민당을 부수겠다’고 선언한 것은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에 대한 정리 선언이었다. 이것이 ‘삼위일체개혁’이다.”
잃어버린 10년동안 자민당이 경기부양을 한다며 지역구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 교량을 만들고 미술관, 체육관을 지으면서 낭비한 돈은 쌓이고 쌓여 일본정부의 부채는 GDP의 2배에 가깝게 되었다. 이런 규모의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예산압박은 지방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공공사업 투자와 보조금 삭감이 단행되었으며 “사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세 기둥 가운데 사회보장제도의 구조개혁”으로까지 나아갔다.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은 잃어버린 10년을 끝낸다는 결의에서 나왔고 10년 동안 마비된 일본을 개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대기업 경쟁력 강화의 벽이었던 세 기둥이 한 번에 정리되면서 대기업의 수익률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의 고용과 사회보험을 지탱해온 세 기둥이 잘려나간 결과,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회 파탄이라는 모순이 폭발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아사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키타큐슈시에 세 명의 아사자가 나왔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구조조정으,로 기업으로부터 내쫓겼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기업으로부터 쫓겨난 비정듀직 노동자를 흡수해온 지방도 구조개혁으로 더는 일자리가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생활보호를 신청하지만 접수를 거부당하거나 일단 수급을 받아도 추ㅟ어ㅓㅂ지도에서 ‘퇴직’을 강요받으며 아사에 이른 것이다. 기업 사회와 지방의 우산 그 자체가 구조개혁으로 축소된 결과다.”
“저축을 할 수 없는 세대의 급증도 그 결과다. 1980년대 말 예금이 없는 세대는 3%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조개혁 10년 사이 23%로 늘었다. 구조개혁으로 예금을 야금야금 쓴 결과이다.” 무보험 세대도 마찬가지 결과이며 아동학대, 자살, 범죄 등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구조개혁의 모순이 사회적 위기를 가져온 것에 놀라며 노선전환을” 받아들인다. 사회적 위기 때문에 자민당은 지지기반인 지방의 반란으로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다. 자민당 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아베 내각이 붕괴하고 “자민당은 구조개혁 급진파가 퇴진하고 점진파가 권력을 차지”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손을 쓴 것은 고이즈미 구조개혁으로 무너진 사회보험의 구조개혁에 대한 제동이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아소 내각의 “신점진 노선 전환은 국민들의 환심을 가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정책의 내용보다 자민-공명 연립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을 강행한 자민당의 몰락을 보며 같은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노선을 선회한다. 오자와는 자민당에서 이탈한 지방의 표심과 노조의 손을 잡고 복지를 강화하는 정강을 내세운다.
민주당은 지방의 표를 얻은데 더해 자민당의 구조개혁의 미진함이 불만이었던 대도시의 표를 얻어 집권에 성공한다. (대도시 중간층은 고이즈미의 퇴진 이후 자민당이 “고이즈미가 추진한 개혁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자민당의 낡은 정치에 대한 반발과 고이즈미의 개혁에도 바뀌지 않는 자민당에 대한 환멸이 민주당으로의 회귀를 만들었다.”)
그러면 민주당은 일본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저자들은 그 방향이 애매하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그룹은 당 집행부로 이들은 신자유주의/자유주의파이다.
둘째 그룹은 오자와 그룹이다. 오자와는 이전까지 집행부와 마찬가지로 “자민당의 개발주의정치를 무너트린다는 점에서 일치”하였으나 오자와는 이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바꾼다. 자민당의 개발주의 정치 즉 족의원 정치에 능통한 그는 “구조개혁에 의해 버려져 자민당에서 이탈한 지방공장, 중소기업, 건설회사, 농가층을 그대로 민주당으로 흡수하여 지방의 자민당 지지기반을 무너트렸다.나아가 오자와는 자민당이 하지 못한 노조를 동원하였다. 렌고와도 연대하였다.” 결국 오자와에 의한 정책선회는 개발주의 정치와 다를 것이 없다.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의 민주당 버전이다. 오자와는 이미 고이즈미의 삼위일체 개혁이 지방을 망친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때문에 그 지방을 민주당 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방에 대한 자원 배분이 필요했다.” 오자와의 노선선회는 당의 머리인 집행부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두 그룹의 공방은 “기존 자민당 내 공방과 비슷하다. 그러나 민주당에는 셋째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민주당의 중견 의원 그룹이다.” 이들은 지역의 이익집단, 노조와 연대하며 구조개혁 정책에 반대해왔다. “이들은 중앙, 지방을 가리지 않고 구조개혁의 모순을 한 몸에 받았던 사회계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점이 이 그룹의 힘이다.” 이들이 앞에서 인용한 “매니페스토의 제작자이며 그 실현에도 힘을 쓰는 그룹이다. 사실 이 그룹이 민주당을 반구조개혁의 기수로 만든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의 ‘수족’이다. 이들은 당의 머리와 몸통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고 개별 정책에선 “전문가이지만 개개의 정책을 초월한 독립된 국가 구상이 없다.”
“머리는 개발형국가를 해체하고 관저주도체제, 지역주권국가의 신자유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반면, 몸통인 오자와파는 구조개혁으로 버림받은 지방의 이해실편을 위한 수단으로 자민당이 해온 개발형국가를 민주장이 대신하려고 한다. 즉 퇴보적 정치지향이다. 이에 비해 수족은 국민의 반구조개혁 목소리를 반영하여 왼편의 정치를 지향한다.수족은 명확한 국가의 상이 없어 피상적인 복지지향과 신자유주의 국가 구상이 공존한다.” 머리와 몸통, 수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당이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저자들은 “당에 꾸준히 압력을 가하는 미국이나 재계 또는 언론의 압력과 당조직 그리고 여러 운동의 역관계ㅔ에 달렸다”고 본다.